늦은 밤, 인적이 드문 산책로를 거닐었다.

살짝 쌀쌀한 날씨에 몸을 움츠리며 외투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오래되고 관리가 되지 않은 가로등은 살짝 맛이 가려고 하는 건지 뿌옇게 빛났고 가끔은 깜빡이기도 했다.

산책로를 비추는 가로등이 이 정도라는 건 이 산책로 자체가 관리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었고 관리되지 않은 장소에 사람이 찾아올 턱이 없었다.

해서 좋았다. 이 산책로는 사람이 거의 찾아오지 않으니 사실상 내 전용 산책로라 말해도 좋지 않을까.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보자 뿌연 빛에 비쳐 보이는 날벌레들이 한가득.

요즘 드는 생각인데 요즘 벌레들은 자연적인 진화를 거쳐서 냉기에 대한 저항력이 생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지금이 11월인데 당장 어제만 해도 집에서 모기가 나왔잖아?”

괜스레 가려워져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손등을 긁적이며 시선을 돌리자 무언가가 시야에 잡혔다.

“...뭐지 저게.”

무심코 내뱉은 혼잣말.

형편없는 가로등들의 빛 때문에 저 멀리 있는 게 뭔지 잘 보이지 않는다.

미간을 찌푸리고 노려보자 그게 사람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가로등 아래, 뿌연 빛을 받으며 비틀거린다.

조금 무례하게도 나는 내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약간의 호기심과 상당한 불쾌감을 느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불쾌감을 느끼다니, 무슨 이유에서일까.
스스로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감정에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시선을 옮기진 않았다.

도대체 저기서 뭘 하는 걸까.
술에 취한 걸까, 어디가 아픈 걸까.

굽은 허리에 산발이 된 머리카락.

불규칙적으로 비틀거린다. 그 몸짓은 가로등의 뿌연 빛에 현혹된 날파리보다도 힘이 없어 보였다.

입고 있는 옷을 보았다. 아무런 특징이 없는 검은 옷.

“...돌아가자.”

도대체 여기서 왜 저러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굳이 저길 지나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어차피 밤 산책을 오래 할 생각도 아니었잖아.
그냥 답답해서, 차가운 공기를 들이키고 싶어서 나왔을 뿐.

몸을 돌렸다.

인적 없는 산책로에 취객이나 노숙자가 나타나는 일은 드물지만 있는 일.

하여 신기할 게 없음에도 꺼림직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는다.
스스로 몇 번이나 되물어도 적당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괜스레 발걸음을 재촉했다.

산책로를 벗어나기 위한 걸음은 분명 급한 일이 있는 것이 아님에도 달리는 것과 흡사했다.

알 수 없는 이유에 심장이 쿵쾅거린다.
여기서 이상한 사람을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님에도 낯선 기분이 든다.

발소리는 탁탁탁탁- 짧은 간격으로 울렸다.

겨울에 접어드는 어두운 밤에 뿌연 가로등의 빛은 미약하기 그지없었다.

어쩐지, 방금 전 보다 빛이 약해진 거 같은 느낌도 든다.

분명 기분 탓이겠지.
몸이 살짝 떨린다. 추위 때문은 아니었다.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이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조금 더 가까워지지 않았어?”

그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못하는 물음은 허공으로 흩어졌고 나는 입술을 살포시 깨물었다.

그래, 사람이니 움직일 수야 있겠지.
하지만 어째서 방금 전 보다 가까워졌냐는 이야기다.

나는 분명 달리듯이 걸었다.

빠른 속도였다. 저 사람이 움직였다 해도 일반적 속도로 걸었다면 나와 저 사람의 거리는 분명 멀어져야 정상일 텐데.

어째서 더 가까워진 걸까.

그에 대한 답은 나 역시 이미 알고 있잖아.

내가 등을 돌려 걸음을 재촉했을 때, 저 사람은 나를 향해 뛰었다.
그 소리다. 그 말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바라보자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방금 전처럼 힘없이 비틀거리기만 할 뿐이었지만.

그런 모습을 보인다고 눈치를 못 챌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소리 지를까.
왜 따라오냐고 물어볼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은 건 아니지만, 입을 다물었다.

뒤로 몇 걸음 물러서 봤지만 딱히 움직임을 보이진 않는다.
숨이 가빠져서 호흡을 정돈했다.

저 사람이 무슨 생각인 건진 모르겠지만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그 사실은 분명히 인지했다.

아무리 외진 곳에 위치한 산책로라지만 여기서 10분만 뛴다면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큰 거리로 나갈 수 있다.

거기라면 안전할 거다.

어차피 일자로 된 산책로라서 움직이는 방향이 앞과 뒤밖에 없어서.

만약 저 사람이 급한 볼일이 있어서 뛰었다면, 그리고 그게 하필 내가 있는 방향이었다면.

그래, 거기까지는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는 문제였으나.

내가 시선을 돌리자 움직임을 멈췄다는 부분에서 이미 경계 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가빠진 숨을 가다듬었다.
10분을 쉬지 않고 뛸 수 있을까.

체력이 약한 편이었지만 달리고자 한다면 못 할 건 없을 거다.

마른 입술을 혀로 적셨다.
생각은 많았지만 10초 정도에 불과했다.

“단순한 기분 탓이나 피해망상이면 좋겠지만.”

기분 탓이라거나, 피해망상이라거나 그런 애매모호한 것들에 기대기엔 도망칠 구멍이 있었고 그게 그렇게 어려운 방법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최상의 결과를 떠올렸을 땐 언제나 최상의 결과 미치지 못했고.
최악의 결과를 떠올렸을 땐 언제나 최악보다 더 큰 최악의 결과로 나타났다.

단순히 ‘운이 나쁘다.’로 설명이 불가능한 내 인생에 이러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부터 도망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생각이 끝났으니 행동을 취해야 한다. 몸을 돌렸고 뜀박질을 시작했다.

체력이 약한 편이라 호흡은 금세 가빠지고, 폐를 누군가가 쥐어짜는 것처럼 아팠지만 이대로 멈춘다면 결코 좋은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거다.

심장에서 차오르는 공포심은 호흡이 이미 한계에 달했음에도 달릴 수 있도록 도왔다.

다리에 힘을 풀릴 뻔하길 몇 번.
뒤를 돌아보고 싶다는 충동이 수십 번.

얼마나 달렸을까. 시간을 확인하진 못하지만 체감상 6~7분가량.

땅을 박차는 발걸음 소리에 둔탁한, 무언가의 소리가 섞이기 시작했다.

그건 귀로 듣기에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도대체 뭘까.
뭘 원하는 걸까.

알 수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억지로 달리고 또 달렸다.
어느 순간부터 내 발소리에 섞여들던 둔탁한 소리가 사라졌다.

쫓아오지 않는 걸까.
역시 단순히 착각뿐일 걸까.

하지만 내 발소리에 다른 누군가의 발소리가 섞여들어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고개를 돌리거나 뜀박질을 멈춰선 안 될 거 같다.

조금만 더 가면 큰 거리가 나온다. 쉬는 건 거기에 도달해서 쉬어도 된다.

나 혼자 착각해서 발작하고 혼자 기겁하고 혼자 도망치고 있는 거라면 그것도 좋겠지.

하지만 ‘만약’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다.

만약 내 뒤에 여전히 그 사람이 있다면, 그저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뿐이라면.

체력은 이미 한계였기에 다리가 몇 번 꼬여 넘어질 뻔했다.

산책로를 벗어났다.

거리가 보인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가게 간판들은 밝게 빛났고 사람들은 바삐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이 늦은 시간에 퇴근하는 건지, 정장을 입은 샐러리맨들이.
이 늦은 시간에 하교를 하는 건지,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그 밖에도 다양한 옷과 나이대를 지닌 사람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그제야 살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이상한 사람도, 불길하고 불쾌한 기분도 사라졌다.

애초에 그런 건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하지만 아직 진정하지 못한 심장은 쿵쾅거리고 갑작스레 혹사당한 폐는 통증을 내며 짜증을 부렸다.

내가 겪은 일은 결코 없었던 일이 아니다.

고개를 내저으며 이마를 훑었다.
식어버린 땀을 닦아냈다.

손은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건 도대체 뭐였을까.

일단 의문은 넘기더라도 당분간은 저 산책로를 사용하지 말아야겠다.
아니, 그냥 밤 산책 자체를 그만두자.

산책을 기어이 해야겠다면 차라리 낮에 나와서 조금 번잡스럽긴 하지만 인기가 있는 산책로를 가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무서워서, 최대한 사람이 없는 곳으로 피하고 피해서 겨우 찾은 나만의 산책로였는데.

어쩌다가 이런 꼴이 된 건지 모르겠다.

“하아...”

내뱉은 한숨이 답답함에서 흘러나오는 건지, 아니면 안도하여 나오는 건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일단 오늘은 집에 가서 씻고 바로 자자.
오늘 벌어진 일들은 잊자, 난 오늘 아무것도 못 본 거고 아무것도 겪지 않은 거다.

자기 최면을 하듯 속으로 읊조린 말.

몇 주째 악몽을 꾸고 있는데 오늘 이 일까지 합쳐지면 아마 오늘 밤도 악몽이 확정일 듯싶다.

악몽 때문에 잠에 드는 게 싫어서 최대한 깨어있으려 밤에 산책을 하기 시작한 건데 그 밤 산책이 악몽을 불러오다니.

“어처구니가 없지.”

역시 단순히 운이 나쁘다가 아니었다.

다시 한번 한숨.
그리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집으로 가자.

큰 거리를 이용해서 간다면 적어도 집이 들어서기 전까진 안전하겠지.

사람이 많은 게 싫다지만 그렇다고 혼자 있을 때,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보다야 몇 배는 낫잖아.

흘깃거리며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영 부담스럽다.

사람이 많아서 안전한 건 좋지만 역시 이곳도 내가 있을 장소는 아닌 듯 싶다.

걸음을 옮겼다.

가로등은 밝았다. 뿌연 빛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자 반쯤 가려진 달이 보였다.
그 산책로에선 저 달빛이 가로등의 빛보다 더 밝다고 느꼈는데.

정작 큰 거리에 나오니 달빛은 느껴지지도 않는다.

어두운 것보다야 밝은 게 좋으니 불만은 없다지만 얼마 떨어져 있지도 않은데 그 산책로의 가로등의 상태는 왜 그렇게 안 좋을까.

갑작스러운 의문과 함께 도착한 집 앞.

큰 거리와 얼마 떨어져 있지도 않은데 눈에 띄게 낙후된 동네.

이런 말이 어울릴진 모르겠지만 내가 자주 찾았던 그 방치된 산책로와 닮아 있었다.

어쩌면 내가 그 산책로를 애용했던 건 그 산책로에서 친근함을 느꼈기 때문은 아닐까.

관리되지 않고 거의 방치된 환경이 말이다.

어깨를 으쓱였다.
뭔 뜬금없는 감상일까.

집에 들어가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잠이나 자야지.

낡은 빌라에 들어섰다.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오르는 소리는 생각보다 크게 울렸다.

한 걸음, 두 걸음.
그리고 내가 3층에 도달할 때쯤, 아래층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발소리는 빨랐고,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씨.”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는 시간도 아까워 욕설을 내뱉었고, 다급하게 집 문을 열고 들어가 문을 닫았다.

이 집, 이 빌라.
나 혼자 살고 있다.

누군가 따라 들어올 리가 없다는 소리다.

안전고리까지 걸어놓고 다급히 환기한답시고 열어놓은 창문을 닫고 커튼까지 쳤다.

문을 노려보았다.

똑똑-.

정중한 노크 소리가 집안에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