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꼬."



선배가 나간 사이 잠시 변신을 풀고 청소를 했다.


오랜만에 변신을 해제하니 느낌이 새삼 달랐다.


일단, 흉부가 무겁지 않았다.


등도 당기지 않았다.


청소하던 와중에 식탁을 보니 시아의 쪽지가 있었다.


쪽지 남겨놨었구나.


언제 이런 걸 또 남겼담.



"할일없이 돌아댕기고 할 아는 아니니께 짐작이야 허지만은...."



쪽지의 내용이야 늘 그렇듯 옆동네 괴수 퇴치에 힘을 보태겠단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이 날라리 같은 글씨체 어떻게 못 하냐 시아야.



"하고야. 누가 보면 머스마가 대필을 헌 줄 알겄다. 이 놈 가스나야."


'딩동'


"들어오세요."



선배, 카멜레온이 돌아오는 소리에 나는 후다닥 마법소녀로 변신했다.


선배에게 들키는 날에는... 상상도 하기 싫다.


앓아누웠을 땐 몸 닦아준다면서 옷도 벗겼단 말이야.



"아니지?"



들어오자마자 한다는 말이 이 모양이다.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알아요 선배.



"없지? 없는 거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선배가 추궁했다.



"없는 거 맞지? 있을 리가 없잖아, 상식적으로!"


"뭐가요?"


"아니... 미안, 혹시 언니나 여동생 있어?"



어제 가명을 둘러대었듯, 신원을 숨기기 위해서라면 없다고 부정하는 게 옳을 테지만

어째선지 선배의 다급한 얼굴을 보니 그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여동생이 한명 있어요."


"여동... 생."



선배는 넋이 나간 얼굴이 되었다.



"여동생이라고."


"네. 걔도 마법소녀하는데."


"마법소녀를... 한다고?"



선배가 힘 없이 고개를 떨궜다.



"그래, 그렇지. 하겠지. 하는 게 맞겠지...."


"무슨 문제 있어요?"


"아니, 아니야. 아무 문제도. 지금은 그냥... 머리가 아파서 그래."


"저번 부상이 아직 안 나은 거 아니에요?"


"손대지 마세... 손대지 마!"



선배의 이마에 얹어보려던 손은 정작 당사자에게 거부당하고 말았다.


또다.


또 선배가 불안정한 상태가 되었다.


기껏 집에서 간호를 했더니.



"...?!"


"선배 우선은 진정 좀 하세요."



허그에 심신안정의 효과가 있다고 하던가?


게다가 나 지금 여자잖아.


안으면 푹신푹신하고 하늘하늘한 향기까지 나는 여자.


나는 선배를 꼬옥 안았다.


마침 선배와 나의 키차이 덕에 선배의 머리가 내 가슴팍 언저리에 들어왔다.


이렇게 보니까 진짜 작구나 선배.



"도대체 누굴 만나고 왔길래 그러세요."



선배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 사역마."


"그 도마뱀 녀석이요? 벌써 회복하고 돌아왔나요?"



선배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녀석 회복했으면 나한테 먼저 올 것이지.



"그래서, 걔가 뭐라고 했는데요?"


"네 정체하고...."


"예?!"



이 개 자... 아니 도마뱀 자식.


남의 신상을 그렇게 함부로 통보한다고?


요정들은 개인정보란 개념이 없는 거야?



"그럼 이름도 혹시...."


"김틋붕 아니고 김서호라며."


"나이도 혹시...."


"20대."


"... 설마 성별도?"


"남자였다며."



슬며시 선배에게서 손을 뗐다.


많이 작지만, 분명히 성인의 축에 낄 듯한 여성에게서.



"잘못했어요. 성추행범이라고 신고하지 말아주세요."


'피식'



여태 긴장하고 있던 선배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남은 심각해요. 왜 웃어요.



*



"흐흥, 흐흐흥."



남자가 통닭 한마리를 들고 계단을 올랐다.


남자가 끔찍이 아끼는 여동생과 함께 먹을 예정이었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이상하지. 두 남녀가 저녁 한끼를 겨우 통닭 한마리로 떼운다니.]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요정이 말했다.


요정과 남자 사이의 거리는 상당하여, 어느 한쪽의 말소리는 다른 한쪽에겐 들리지 않았다.


요정의 곁에는 낯빛이 무척이나 어두운 한 소녀가 서있었다.



"언제부터 알았어."


[몇년 전 요정계에서 제기되었다가 폐기된 '괴수의 의식 공유 이론'. 일반인은 알 턱이 없는 이론이거든.]



도마뱀 요정이 말을 이었다.



[이 일대에선 유명인이 되어버린 널 못 알아보는 것도 수상했고.]


"그런 얘기 아니야."


[그래서 요정 왕국에 요양차 돌아갔을 때 이것저것 찾아봤어.]


"요정 왕국에선 뭐래."


[난 정신강화 조항의 해제를 요청했는데 기각시키더군.]



한차례 침묵.


도마뱀이 침묵을 못 이기고 슬쩍 물었다.



[넌 어땠어. 말했어?]


"못 했어. 어떻게 해."


[그래. 대단히 용기가 필요하긴 하지.]



노란 소녀는 땅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색해서도 있었지만 상황의 암울함도 그 이유였다.



"당연히 못 말하지, 당연히...."


[너무 자신만 책망하지 마. 나도 몰랐으니까.]


"언니, 아니 스승님이 특별히 부탁하신 거라고! 근데 그걸 나는...."



노란 소녀가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가 얼굴을 감싸쥐었다.


후배의 앞에서 쿨한 모습을 보여주던 때와는 딴 판이었다.



[알려줄 거야?]


"스스로 깨우치리란 보장은 없는 거야?"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르지.

정신개조 마법 때문에 마법소녀 상태에선 환청도, 환각도 느끼지 못하니까.]



도마뱀이 한마디 덧붙였다.



[하지만 변신을 해제했을 땐 그렇지 않잖아.]


"그렇대도."



노란 소녀, 카멜레온이 품에서 스승의 유품을 꺼냈다.


펜던트 속에는 이제는 고인이 된 마법소녀, [크림슨레드] 가 찍혀있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지금껏 몇년 째 보던 게 환각이라고 어떻게 통보하란 말이야...."



그녀의 오빠인 김서호와 함께 찍혀있었다는 점이다.



"아나! 오빠 왔대이!"



남자가, 서호가 문을 벌컥 열었다.



".... 무겁다 시아 이 가스나야 앵기지 마라!"



남자는 아무도 없는 집 안에서 평소처럼 여동생과 화목한 대화를 했다.



*



"카멜레온."


"저, 저는 이러려던 게 아니고...."



마법소녀 [카멜레온] 의 노란 원피스가 피로 반쯤 물들었다.


카멜레온은 길쭉한 가시로 변형시킨 제 팔을 내려다보았다.


스승을 찌르고 있는 제 팔을.


카멜레온은 덜덜 떨고 있었다.



"분명히 괴, 괴수였는데...."



환각이었다.


괴수가 만들어낸 환각.


마법소녀 [크림슨 레드] 가 피를 토했다.



"콜록, 콜록콜록! 잘 들어요 카멜레온...."


"이거 다 거짓말이죠? 거짓말이라고 해줘요 언니...."


"부탁이 있으니... 잘 들어요. 제 죽음은 제 사역마가 알아서 전할 테니까 카멜레온은..."



크림슨 레드, 김시아가 쥐어짜듯 가족사를 말하기 시작했다.


카멜레온은 잠자코 들었다.


스승의 유언이니까.


마법소녀 카멜레온에게 있어서는 잊을 수 없는 기억 중 하나였다.



*

틋챈 출품작 백업.

https://arca.live/b/tsfiction/63903759?

틋챈 버전도 딱히 다른 건 없음
근데 왜 얘만 백업을 안 해뒀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