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서울 2063 모음집 

---------

다음날 아침, 그녀의 계좌에 엄청난 금액이 들어온 것을 안 지원은 소리를 지를 뻔하다가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조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세스 리,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아니, 계좌에 돈이 너무 많이 들어온 것 같아서. 500만원은 너무 많지 않아?”


“음? 잠시만… 아하, 아니야 미세스 리한테 간 수당은 정확히 500만원. 원래 그런 어려운 일은 의뢰측에서 주는 돈도 많고 용병들에게 가는 돈도 많아.”


“전에 당신이 했던 말, 기억 나? ‘이 바닥 용병의 60%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고, 30%는 그것도 못 벌지만 나머지 10%는 삼성 왕국의 임원들처럼 살 수 있다’고 했던 거.”


“아, 그래. 기억 나고말고.”


“500만원이라… 내가 경찰로 일하면서도 못 만져본 목돈인데 이렇게 받을 줄이야…”


“받았으면 즐기든 쌓아 놓든 하라고. 은행에는 입금하지 마, 그놈들은 언제든지 호구들의 입금한 돈을 훔쳐갈 수 있는 놈들이니까.”


“알았어. 아, 맞다. 지난번의 그 의사 있잖아, 김 선생? 그 사람 주소 좀 알려줘. 사이버웨어가 좀 망가져서 말이야.”


“그래, 주소는 금방 보내줄게.”


연락이 끊기자 지원은 몸을 씻으며 전날 싸움으로 이리저리 이상하게 잘린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정돈했다. 이젠 혼자서도 쉽게 보브컷 정도는 만들 수 있어진 자신의 손에 만족을 표한 지원은 옷장을 열었다. 전날 날려먹은 값비싼 방탄 코트에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매일매일 더워지는 날씨에 그런 걸 입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 그리고 야구모자를 골랐다. 손의 실리콘 피부가 모조리 벗겨져 검은 사이버웨어가 번들거렸지만 지원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차를 주차시켜 놓은 인근 공터로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그 근처에 그들이 있었다. 여기 온 첫날 지원에게 시비를 걸던 조폭들이었다. 지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이봐, 여기 사는 건가?”


“뭐야, 이 여자?”


“그리고 내 차 앞에 둔 트럭도 좀 빼지 그래? 내가 차를 써야 하는데 말이야.”


“하! 이 여자 봐라… 우리가 누군지 모르는 모양인데…”


그들 중 한 명이 팔뚝을 걷어 팔 전체를 휘감은 드래곤 문신을 보이며 위협했다.


“우리가 그 ‘(드래곤)(파워)’이야! 험한 꼴 보기 싫으면 썩 꺼져!”


“잠깐만… 이 여자, 어딘가 낯이 익은데…”


“오… 그러셔? 순순히 비켜주기 싫다는 거지?”


“이 여자! 몇 달 전에 우리 애들 다 때려 눕힌 그 년이잖아!”


그 순간, 지원의 주먹이 가장 가까이 있던 조폭의 배를 갈겼다. 그 놈이 배를 움켜쥐고 뒷걸음질을 치자, 지원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마저 주먹을 갈겨 놈을 완전히 쓰러뜨렸다. 곧이어 다른 조폭들이 달려들었지만, 지원은 주먹 만으로 아주 쉽게 그들을 쓰러뜨렸다.


“히익…! 괴, 괴물 새끼! 죽어버려!!”


조폭 하나가 알루미늄 방망이를 휘두르자, 지원은 손을 뻗어 아무런 타격도 없이 방망이를 잡고는 가볍게 힘을 줘 종잇장 구기듯 구겨버렸다.


“대체 뭐, 뭐야?! 이 사이버웨어는!!”


지원은 붙잡고 있던 방망이를 세게 밀어 놈의 머리를 찍어버린 다음 턱에 주먹 두 방을 날려 완전히 다운시켰다. 처음 시비를 걸던 놈들은 모조리 쓰러지고, 멀리서 도와주러 달려왔다가 지원의 모습에 그대로 굳어버린 조폭들만 남자, 지원은 자신의 차 앞을 가로막은 1톤 트럭 뒤로 다가왔다.


“차 뺄 생각이 없으면 내가 직접 밀지 뭐.”


가만히 서 있던 조폭 중 하나가 조용히 물었다.


“형님, 저 트럭 사이드브레이크 채웠죠?”


“그렇지, 엄청 세게.”


“야, 거기 너희!”


“네, 네!”


조폭들이 5미터는 떨어져 있는 그녀의 기운에 눌리고 있었다.


“이 차 열쇠 내놔!”


“드, 드리겠습니다!”


조폭이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던져 주자 지원은 그것을 잡고 으깨 버렸다.


“필요 없어!”


지원은 화물이 잔뜩 실린 트럭 뒤에 서서 트럭 밑부분을 잡고 팔에 힘을 모았다. 그리고, 다음 광경에 조폭들은 할 말을 잊었다.


“1톤 트럭이…”


“저렇게 쉽게 들리다니…”


지원은 트럭 뒷부분을 들고 몇 걸음 움직여 대략 10미터 정도 앞에 트럭을 내려 놓았다.


“여기 뒀으니까 알아서 해라?”


지원이 차를 몰고 떠났음에도 그들은 멍하니 자기들 트럭과 지원이 사라진 방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저 무거운 트럭을…”


“그것도 짐이 1.5톤이나 실려 있었는데…”


지원은 차를 몰고 조 씨가 알려준 주소로 향했다. 경기도 고양시, 서울과 가까운 동네의 어느 골목. 지원도 보았던 익숙한 거리가 보이자 적당한 거리에 차를 댄 다음 병원으로 향했다. 사설 병원의 의사가 입구를 돌아보았다.


“오랜만이에요, 김 선생.”


“어… 아! 이지원 씨, 어서 오세요. 사이버웨어에 문제라도 있나요?”


“다행히 문제는 없어요. 대신…”


지원은 사이버웨어가 드러난 양 손을 보였다.


“어제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실리콘 피부가 다 찢어져서요. 제가 하면 보기 안 좋기도 하고요. 그리고 겸사겸사 다른 사이버웨어 점검도 필요해요.”


김 선생은 각종 도구를 챙기며 의자를 가리켰다.


“저기 앉아요.”


지원이 자리를 잡자 김 선생은 그녀 옆에 다가와 물었다.


“혹시 사이버웨어 교체는 필요 없으신가요?”


“아직은요.”


그러자 김 선생은 주사기를 그녀의 팔뚝에 꽂으려 했다.


“잠깐만! 거긴 진짜 팔이 아니거든요?!”


“아, 실례. 셔츠 좀 걷어 주시겠습니까?”


지원이 팔뚝 셔츠를 걷자 주사 바늘이 그리로 파고 들었다.


“푹 쉬세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자, 눈에 가장 먼저 보이는 UI가 벌써 2시간이나 지났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김 선생은 눈을 뜬 지원을 보더니 다가와 의자 앞에 설치된 모니터를 켰다.


“정신이 좀 드시나요? 그럼 이쪽 화면을 보세요.”


모니터에서 밝은 빛이 빠르게 3번 점멸했다. 그에 따라 지원의 눈도 깜빡이자 김 선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모니터에 지원의 사이버웨어 현황을 띄웠다.


“전체적으로 손을 제외하면 큰 손상은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눈에 미세손상이 가 있는 정도? 물론 전부 수리했지만요. 손은 좀 손상이 있더군요.”


김 선생이 화면을 확대하자 사이버웨어 이곳저곳에 난 균열이 확실히 들어왔다.


“왠만한 콘크리트벽 정도는 부숴도 별 영향이 없는 물건인데… 대체 뭘 치신 겁니까?”


지원이 아무런 답도 없자, 김 선생은 다른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나저나 궁금했던 건데, 다른 곳은 대부분 일반 피부인데 양 팔만 순수 사이버웨어에 실리콘 피부인 이유가 있나요? 혹시 프라이버시였으면 대답 안 해도 됩니다.”


“…프라이버시예요.”


“실례했습니다. 내려오시죠.”


지원이 의자에서 내려오자 김 선생이 말했다.


“총 8만원입니다.”


지원은 군말 없이 돈을 지불하고 병원 밖으로 나왔다.


“주변에 가장 가까운 대형 건샵으로.”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지원은 아직 남아 있던 약 기운 때문에 또다시 잠에 들었다. 잠시 후, 알람 소리와 함께 지원은 눈을 떴다.


“홍대 건샵에 도착했습니다.”


AI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금방 정신을 차린 지원은 차 문을 열고 내려 건샵으로 들어갔다. 총기 비범죄화, 아마 삼성 공화국의 수많은 정책 중 출산율 증가 정책과 함께 실책 TOP2를 찍을 수 있는 개짓거리 일 것이다. 그 덕분에 각종 범죄율이 100배는 올랐으니까. 뭐, 그들의 수도에선 범죄율이 매우 낮으니까 별 생각도 안 들겠지만.


“오늘도 건 Bang 홍대점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프랜차이즈 총기 전문점 건 Bang의 홍대점은 마치 버려진 창고 같은 분위기를 내는 인테리어를 자랑했다. 곧이어 지원의 허리 정도 오는 바퀴 달린 로봇 한대가 다가와 스캔기를 들이밀었다.


“신분증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오른쪽 눈으로 여길 바라보세요.”


지원이 눈을 뜨고 기기를 바라보자, 로봇의 표정을 나타내는 모니터가 웃음으로 변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지원은 다른 곳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권총들이 즐비한 곳으로 다가갔다. 21세기 초에 나온 것부터 시작해 최근에 나온 권총까지 줄줄이 전시되어 있는 와중에 안드로이드 로봇이 다가왔다. 이 가게의 직원이었다.


“손님, 무엇을 찾고 계시나요?”


“권총, 9mm.”


“9mm구경의 권총을 검색 중입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로봇 직원은 가게 한 켠을 가리켰다.


“SNT 2050은 어떠신가요? SNT모티브가 2049년 개발한 권총으로 100만정 이상 팔린 인기와 뛰어난 정밀성이 장점인…”


“최근 나온 거 말고, 21세기 초에 나온 거로.”


“21세기 초, 권총, 9mm 구경을 검색중입니다…”


로봇 직원은 다시 다른 쪽을 가리켰다.


“글록 19는 어떠신가요?”


“그걸로 두 자루. 그리고 9mm 파라벨럼 탄환도 2박스.”


로봇 직원이 글록 두 자루와 탄환 2박스를 들고 계산대로 이동했다.


“전부 다 해서 180만원입니다.”


지원은 그대로 결제하면서도 투덜거렸다.


“존나 비싸네… 글록만 아니었어도 여기서 살 필요가 없었는데…”


지원은 총을 챙겨 가게를 나왔다. 대낮이었음에도 회색 스모그가 낀 거리는 어두웠으며 오염물과 미세먼지가 섞인 습기가 피부에 내려앉아 불쾌지수를 높이고 있었다. 그리고, 자동차 뒷자리에 총알 상자를 싣던 지원은 우연히 익숙한 얼굴을 보았다.


“레나!”


길 건너,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길을 건너던 레나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다 이내 지원과 눈이 마주쳤다. 레나의 얼굴이 당혹감에 물들었지만, 지원은 반갑게 말을 걸었다.


“이 근처에 사는 거야?”


“네, 네…!”


“마침 잘 됐네, 시간 있어? 밥이라도 먹자고.”


레나의 생각이 어떻든 간에, 그녀는 지원의 제안을 거절할 용기가 없었다.

----------

총이 너무 비싸서 화난 지원

예상치 못한 만남에 깜짝 놀란 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