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대한 내 재능과 열정은 어릴 때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직 표현법도 다 익히지 못한 시절에 쓴 시 하나는, 초등학교 교사 겸 시인을 하고 계시던 모 선생님의 눈에 들었다. 시판되는 동시집 한 켠에, 선생님의 고귀한 성함과 함께 인쇄된 내 이름은, 내가 시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렸다.


난 다양한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아직 내겐 신기한 것이 많았다. 파도는 왜 하얗게 밀려들어오는지, 파도가 밀려오는 저 바다 끝을 넘어가면 뭐가 있을지.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은 어떻게 터지는 건지. 불꽃 너머, 손에 닿지 못할 저 별빛들 사이엔 무엇이 있을지.

중학교 즈음까지도, 이런 호기심들을 담아 작은 노트에 소중히 품고 다니곤 했다. 기분이 내킬 때 노트를 피고 상상력을 넣어 조금 다듬으면 한 편의 시가 완성됐다. 시 30편이 모일 때마다 출판사에 보냈고, 그들은 군말 없이 내 시들을 출판해주었다. 문학도로서 절대 나쁜 시작은 아니었지만, 부모님은 학교 공부도 절대 소홀히 하지 말라고 조언하셨다.

중학생 때의 공부는 생각보다 내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파도는 공기방울 때문에 하얗게 부숴지고, 바다 너머엔 육지가 있을 뿐이다. 불꽃은 화학 원소의 연소이고, 별들 사이엔 수소와 헬륨이 간간히 떠다닐 뿐이라는 것을, 가슴 서리게 알려주었다.
아직 내 노트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노트에 새롭게 적는 것들이 적어지고 있었지만, 아직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서 많은 시간을 공부에 들였음에도 평균에 못 미치는 성적은, 나 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마음까지 굳히기 충분했다.
부모님께 컴퓨터와 고급 키보드를 선물 받은 것은 고등학교 입학식 때였다. 본격적으로 무언가를 하려면 기본적인 장비는 갖춰야 한다는 부모님의 신념에 따른 선물이었다.

고등학교에선 평범하게 지냈다. 아침에 일어나서, 다른 사람과 같이 학교에 가고, 다른 사람과 같이 수업을 듣고, 점심을 먹고, 다른 사람과 함께 하교했다. 집 밖에서의 나는 수많은 학생 중 하나일 뿐이었다. 유일하게 내가 빛나는 순간은, 컴퓨터 앞에 앉아 내 책 속 이야기를 풀어낼 때였다.

내가 들고다니는 것은 더 이상 노트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어릴 적 동심을 기록해놨던, 지금의 나는 더 이상 편집할 수 없는 책에 불과했다. 부모님은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본격적으로 문학을 시작하길 원하신 것 같았지만, 이미 나는 책의 끝표지로 이루어진 벽을 향해 엑셀을 밟고 있는 자동차가 되었다.
나는 고귀한 성함을 가진 선생님을 다시 찾아뵈어야 했다. 그 분은 어떻게 동시를 쓰고 있는지, 나는 그것을 배워와야만 했다.

하지만 선생님조차도 내 질문에 대답하지 못 하셨다. 본인은 예정보다 일찍 시 쓰기를 그만두었다고. 그리고, 출판사와 맺었던 출판 계약은 중학생이었던 내게 선물인 셈 치고 넘겨주었다고,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선생님의 선물이 내 인생을 망쳤어요, 속으로 되내였다. 시집이 출판되고 있다는 것만 보고 헛된 자신감을 가진 나의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 진실이던 간에, 현실에서는 결과만이 중요한 법이었다.

몇 주 뒤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한 동시인의 부탁으로 내 시집을 계속 출판해왔다. 그 분은 나에게서 무슨 자질을 보았을지 모르겠으나, 출판사 측에선 시에서 전혀 특출난 점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가장 최근 출판한 시집은 단 한 부도 팔리지 않았으므로, 더 이상 나의 시집을 출판해줄 수 없다, 라는 내용이었다.

고등학교에서, 나는 평범하게 지냈다. 아침에 일어나서 다른 사람과 같이 학교에 가고, 다른 사람과 같이 수업을 듣고 점심을 먹었으며, 학교가 끝나면 하교했고, 남은 시간을 쓸 곳이 없어 방황했다. 집 밖에서도, 집 안에서도, 난 회색의 세상에서 갈 곳 잃은 강아지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