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돌아와 베이커 가 221B에 홈즈와 살게 된 지도 벌써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여러번 언급했지만, 내가 홈즈에 관해 글을 쓰기 시작한 이래로 나의 빈약하기 짝이 없는 글솜씨에도 변함 없이 나와 홈즈의 이야기를 사랑해 주신 독자 여러분 께 감사할 따름이다. 


약 10년 간 글을 연재하며 독자 분들께 굉장히 많은 편지를 받아왔다. 이번 글은 그 편지들 중 독자 여러분들이 가장 많이 궁금해했던, 홈즈의 독특한 성격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에 홈즈의 어린 시절과 여성상 또한 포함되어 있으니, 그동안 홈즈의 그것을 열렬히 원하시던 숙녀 분들께서도 만족해주시리라 생각한다. 지면의 한계 탓에 보내주신 모든 질문에 답을 드리지 못해 죄송할 따름이다.


사실 나는 꽤 오래 전에 그에게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렇듯 숨기고 싶은 과거늗 하나씩 있는 법이기에 그간 묵혀두고 있었으나, 홈즈가 흔쾌히 허락해 준 덕에 이에 대해 쓸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나의 절친한 친구 홈즈와, 항상 변함없이 노력해주시는 <스트리트 매거진>의 편집자 님께 감사를 전한다.


오늘도 런던의 거리는 어두침침했다. 시간이 늦었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런던의 명물인 안개 때문이기도 했다. 스모그가 짙게 내린 거리는 꺼질듯 아른거리는 가스등 불만이 간신히 밝히고 있었다. 거리를 다니는 마차도 하나 둘 줄어 시간이 느지막한 저녁이라는 걸 말해주는 듯 했다. 평범한 런던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는데, 홈즈가 신경외과 논문을 읽고 있는 걸 봤기 때문이었다. 이전에 스쳐가듯 언급한 적이 있지만 홈즈는 자신의 수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분야의 것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사건의 해결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신경외과 논문을 뒤적이고 있는 것은 독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시선을 눈치챈 홈즈가 논문을 테이블 위에 던져놓으며 말했다.


"이스트엔드의 신사 분 댁 환자는 괜찮은가? 꽤 급박했던 것 같은데?"


그가 나의 모습을 보고 내가 한 일을 맞추는 일은 일상과도 같았지만 그때마다 놀라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떻게 알았는가?"


"뻔하지. 자네 코트와 구두 오른쪽에 진흙이 튄 자국이 있지 않은가? 그냥 왕진이었다면 급하게 마부 오른쪽에 탈 일이 없지."


"그럼 이스트엔드는?"


"이스트엔드는 교외라 흙이 런던의 다른 지구보다 검은 빛이 덜하지. 게다가 흙이 꽤 많이 튄 것으로 보아 포장이 되지 않은 곳을 지났을 텐데, 런던에서 포장이 덜 되어 흙이 튈 만한 곳은 이스트엔드 밖에 없네. 더구나 어제 이스트엔드는 소나기가 크게 내렸다는군."


"들을 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자네 설명을 듣다보면 내가 바보가 되는 기분이야."


나의 말에 홈즈는 웃으며 파이프를 집어들었다.


"내가 누차 강조하지만, 누구나 이런 추론을 할 수 있네. 노력만 한다면 말이야. 뭐, 시덥잖은 얘기는 이쯤 하세. 자네가 궁금한 건 그게 아니지 않은가?"


나는 홈즈의 맞은편 안락의자에 몸을 기대며 그가 읽던 논문을 집어들었다. 논문의 표지에는 <호르몬에 관하여: 감정 조절의 핵 옥시토신의 존재와 작용>이라 적혀 있었다.


"그렇지. 난 자네가 호르몬에 관심 있는지는 몰랐네."


"호르몬 자체에 관심이 있는건 아니라네. 그 논문 8페이지 두번째 문단 읽어보게."


그의 비상한 기억력에 다시 한 번 놀라며, 난 논문을 펴 읽어보았다. 


"옥시토신은 뇌에서 분비되어 인간의 감정, 특히 사랑의 작용에 기여한다. 즉, 사랑을 비롯한 인간의 감정은 화학물질의 작용일 다름이다... 낭만이라고는 없는 얘기군."


"자네도 의사면서 낭만은 무슨. 나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마음에 드는 연구였네. 결국 감정도 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화학 작용에 불과하다는 거지. 세상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구술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환상적인가?"


"글쎄, 감정이라는 걸 그렇게 분석하고 쪼갠다면 세상에 감상할 수 있는게 얼마나 되겠는가. 예를 들어 자네가 어느 숙녀 분을 사모한다고 해보세. 그 미묘한 감정을 느끼고 설랠 때 마다 그걸 분석하려 든다면 얼마나 낭만이 없겠는가?"


"글쎄, 내가 미쳐버리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없을거야."


나의 말에 홈즈는 드물게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홈즈의 과거사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물었다.


"실례가 안된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도 되나?"


"물론. 하지만 그 전에 술이라도 가져다 주겠는가? 꽤나 긴 얘기가 될거고, 그다지 유쾌한 얘기도 아니라서 말이야."


"마침 괜찮은 프랑스 산 와인이 생겼지."


"좋군.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