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간지럽히는 햇살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사실 어제 겪은 일을 생각하면, 한 24시간 정도는 자 줘야 할 듯 싶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내 정신을 일으켰다.

 첫째. 어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집이 멀쩡한지부터 확인해 보아야 한다.

 둘째. 등짝이 아파서 더 이상 누워 있을 수가 없다.

 셋째. 이게 제일 큰 문젠데, 리돌의 무게 때문에 몸을 빼지 않고서는 더 잠을 청할 수가 없게 되었다. 리돌은 어제 보았던 모양새 그대로 내 위에서 잠이 들었던 것이다. 어제 피로로 고꾸라져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조금 정신이 돌아오자 이게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다. 

 나는 살짝 어깨를 돌려 리돌의 아래 깔린 내 반쪽을 빼내려...


 “아아아.”


 뭐 이렇게 아파?! 절로 신음성이 나온다. 어우, 이게 뭐야. 누워 있을 때는 그냥저냥 살짝살짝 아프던 것이, 지금은 조금만 움직여도 등 전체를 찌르는 듯하다. 도대체 어떻게 리돌을 어루만져 준거지? 어젯밤은 그냥 감각이 없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방금 느낀 고통 덕분에 졸음과 피로로 흐리멍덩했던 시야가 좀 분명해 졌다. 나는 일단 일어나는 것은 보류하고, 집에 무슨 변고가 생긴 것은 없는지 고개만 까닥여 주위를 둘러 보았다.

 가장 가까이 있는 창문부터 확인해 보았다. 일단 육안으로 보았을 때, 창문은 깨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안쪽에도 별 이상은 없다는 얘긴데, 어떻게 된 거지? 분명히 어제 깨지고 박살나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당최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일단 일어나서 확인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아픔을 무릅쓰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내가 둘렀던 팔을 풀자, 리돌은 힘없이 스르르 침대 밑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마자 일어나, 침대 밑으로 스러지는 리돌을 잡아챘다. 리돌의 모습을 보자, 등의 통증은 '따위'가 되었다. 

 리돌은 언제나 보았던 종이같은 하얀 색이 아니었다. 어제의 폭발의 여파인지, 몸 전체에 잿빛이 돌고 있었다. 언제나 하얀 색을 고수하던 그녀의 원피스는 검댕으로 얼룩덜룩해져 있었고, 머리카락도 살짝 탄듯 해 보였다. 

 그걸 보고 나서야, 걱정해야 할 순서가 틀렸다는 것을 알아챘다. 사실 폭발의 중심에 있었던 건 이 녀석인데. 어제 이 모습 그대로 나부터 걱정한 거야? 나는 왠지 눈물이 나려고 하는 것을 참으며 리돌이 괜찮은지를 살폈다.


 “리돌, 괜찮아?!”


 리돌의 어깨를 잡고 흔들자, 그녀의 눈이 천천히 떠 지는 것이 그래도 의식은 있는 듯해 보였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리돌은 반쯤 떠진 눈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민재. !@#!~$!%?”


 “그래, 나 여기 있어. 괜찮은 거야?”


 “!@#$@. ^!!#$.”


 뭐라고 하는지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목소리에 힘이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나는 리돌을 잡고 흔들어서 정신을 차리게 해 주었다. 그녀는 다시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선, 달나라 말로 무어라 더 웅얼웅얼 이야기를 하였다. 그 소리는 마치 내겐 정신을 차리지 못한 신음성으로 들렸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그녀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뭐?! 방금 뭐라고 한 거야? 정신 차려! 리돌!”


 그러자 리돌은 바로 다시 눈을 떴다. 생각보다 너무 즉각적으로. 

...이상하다. 지금 보이는 리돌의 눈동자는 분명히 생기는 없었다. 하지만 환자의 그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자다 깬 사람의 눈. 

 나를 졸린 눈으로 쳐다보던 리돌은, 턱 근방을 손가락으로 매만져 번역기를 조정하였다. 그러고선 나에게 뭐라뭐라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번역기를 거쳐 나온 말투 자체는 감정 하나 없이 정중하기 그지 없었다. 


 “이제 그만하십시오, 성가십니다.”


 나는 느닷없이 튀어 나온 거절의 말에 멍하니 리돌을 바라만 보았다.  ...일단 말하는 것에서 보면 거의 확실하긴 한데. 나는 머뭇거리며 다시 리돌의 안부를 물었다. 


 “괜찮...은거지? 다친 데 없고?”


 리돌은 귀찮다는 듯 딱 잘라 말했다. 


 “네.”

 

 그러고서는 한 마디를 더 남기고선 그대로 몸을 띄워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나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그녀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 주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


 “좀 더 자야 겠습니다. 위층에 가서 잡니다.”

 

 네. 나는 마음속으로만 그렇게 대답하고서 멍하니 리돌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다, 그대로 뒤로 다시 자빠졌다. 저 녀석이 괜찮은 것에 안심을 해야 할까, 아니면 지금 이렇게 벙찐 것에 대해 무슨 말을 할지를 고민하면서.



 몇 시간 후, 꿀잠을 자고 일어난 리돌이 나를 깨웠다. 그리고 그녀에게 사건의 전말을 들을 수 있었다. 

 번역기의 오역을 최대한 감수하고 내가 이해한 내용은 이렇다. 이 장비를 설계한, 리돌이 처음에 말한 과학자란 양반이 이미 편지를 보내는 방법은 폭발이라고 리돌에게 말을 해 두었단다. 그래서 일단은, 폭발에 대비하는 방호 장비까지 설계해 두었다고 하였다. 리돌은 막연히 조치가 되어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여 딱히 나에게 별다른 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규모가 계산보다 컸기에, 이 사단이 난 것이었다.  그리고 기계에서 폭발이 일어났을 때, 리돌 자신은 자동으로 보호가 되어서 괜찮았지만 내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부랴부랴 기절한 나를 수습하여 집으로 데려가려 하였으나, 폭발의 여파는 딱 우리집까지만을 초토화 시켰다. 그래서 나를 그대로 뉘여 놓고 원자분해기로 부랴부랴 뒷수습을 하고, 집에 들어갈 수 있을때 쯤은 벌써 한밤중이 되어 버렸다고 했다. 리돌은 모든 말을 마치고서는 한숨을 쉬듯이 말했다.


 “그녀는 약간 녹슬었어. 나는 어디에도 고통을 겪지 않았다.”


 “...어쨌든, 그래서 너는 다친 데가 없다는 거지?”


 리돌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론적으로는 다친 건 나 혼자 뿐이라는 거구만. 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그래서... 그 편지는 어떻게 된 거야?”


 리돌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멈추었다. 그 대신 단 하나의 모음을 말했다. 'ㅏ'. 

 달나라 아가씨는 그대로 입을 다물지 못하는 조각상이 된 듯 했다. 움직임 없이 나를 바라보던 그 눈동자는, 몇 초후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흰자위 이곳저곳을 이동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혼란에 빠져 시선을 어디로 둬야 할 지 모르는 모양새였다. 아마도 편지가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파악이 되지 않는가 보지. 리돌은 약 1분간을 그렇게 눈알을 굴리다가, 벌떡 일어나서는 문을 박차고 뛰어 나갔다. 종이에 휘갈겨 남긴 듯한 한 마디와 함께.


 “갔다 오겠습니다.”

 

 방금 전에 리돌이 그러했던 것처럼, 나 역시 조각상이 된 듯 했다. 하지만 이건 경우가 다르다. 나는 아파서 움직이지 못하는 거니까. 생각같아서는 그냥 다시 이대로 눕고 싶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있기에. 한숨을 쉬며 찌릿찌릿한 등허리를 잡고서는, 간신히 책상으로 다가갔다. 책상 위에 있는 핸드폰을 잡고는, 가장 최근에 온 전화로 다시 통화를 시도했다.


 “네, 아버지. 다른 건 아니고 오늘 못가요. 다쳤어요. 등. 아니, 내가 지금 소개를 안 받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