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

딸랑


눈이 섞어치는 사나운 바람의 할큄 사이로 간간히 작은 종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둘러봐도 인적이, 아니 생명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없었다. 아무리 걸어도 보이는 것은 오직 눈 뿐이었다. 세계의 끝, 얼음의 아륵토니아는 그런 곳이었다. 감히 인간이 범하지 못한 순수한 자연의 극. 그런 금지()에,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한 인형이 눈에 띄었다.


그 사람은 흰 로브를 걸치고 있어서, 자세히 보아야만 알아챌 수 있었다. 자그마한 체구와는 맞지 않게 거대한 스태프를 들고 있었는데, 그 스태프의 끝에는 푸른색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보석과 함께 작은 방울 몇 개가 함께 달려있었다. 


"힘들다. 마법도 안 써지고."


노래하는 듯한 여린 미성이 들렸다. 살짝 드러난 로브의 틈 사이로 보이는 사람은 나이가 어리고 굉장히 예쁘장한 소녀였다. 지쳤는지 잠시 걸음을 멈춘 소녀는 다시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적지가 거의였다.


취향 한 번 독특하다고, 소녀는 그의 집을 보며 생각했다. 그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걸 싫어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집을 아륵토니아의 중앙에 짓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살 수 있느냐의 문제를 제쳐두고서라도, 발을 들이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 이다. 


덕분에, 소녀가 찾아간 집은 상당히 독특한 풍광을 자랑하고 있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와중에도 꿋꿋하게 서있는 통나무 오두막. 그게 소녀의 목적지였다. 소녀가 막 노크하려는 찰나,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나왔다.


"어서오세요, 스타시커 양. 굉장히 먼 길 오셨네요."


"오랜만이에요, 하이랜더 경. 들어가도 될까요?"


"그럼요. 어서 들어오세요."


집안을 둘러보며, 스타시커는 다시 한 번 그의 취향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눈 앞에 있는 남자는 마음만 먹으면 대륙의 가장 비옥한 땅에 거대한 제국을 세워 죽을 때 까지 누릴 수 있는 남자였으니까. 그런 능력을 충분히 가진 남자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집을, 대륙에서 가장 추운 곳에 짓고 산다는게 정상은 아니었으니까.


"구경은 다 했나요?"


하이랜더가 웃으며 말했다. 자신이 잠시 멍하게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스타시커는 퍼뜩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아, 죄송해요. 실례했습니다."


"괜찮아요. 스타시커 양은 뭘로 마실래요? 커피? 녹차?"


"코코아요. 그리고 아렐이면 충분하다고 계속 말씀드렸는데."


남자, 이너스 하이랜더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머그컵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그래요, 아렐 양. 굉장히 오랜만이네요. 오는데 춥지는 않았나요?"


"춥지는 않았어요. 요즘 마도구가 잘 나오거든요. 다리는 좀 아팠지만."


아렐의 말을 들은 이너스는 그녀의 로브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


"빛의 탑 주인의 로브네요. 아, 그러고보니 그새 경지가 올랐군요? 축하해요."


소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부끄러운 듯 말했다.


"이제 겨우 진리의 끄트머리를 엿봤을 뿐인걸요. 이 정도 실력으로 빛의 탑주를 맡은게 부끄러워요. 주위 사람들이 계속 수근대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아렐의 머리를 이너스가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아요. 아렐 양은 분명히 재능이 있으니까요. 게다가 지금 인간 중에는 아렐의 실력을 따라갈 사람이 없잖아요?"


아렐은 말 없이 끄덕였다. 그녀의 울음이 그친 걸 본 이너스가 말을 이어갔다.


"그나저나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게 벌써 50년 전인가요?"


아렐이 눈가를 문지르며 말했다.


"정확히 47년 만이에요. 하이랜더 경은 삼 왕국-아, 삼 왕국은 경의 동료 세 명이 세운 나라를 말해요-성립 전에 떠나셨으니까."


"벌써 그렇게 됐군요. 시간이 참 빠르네요. 그래서, 오늘 아렐 양은 누구의 부탁을 받고 왔나요?"


그 말에 아렐이 놀라 눈을 둥글게 뜨며 물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뻔하죠. 마법의 끝에 다다른 아렐 양이 처리 못할 문제는 거의 없을건데, 다른 기운은 느껴지지 않으니 이세계의 침입 같은 건 아닐거고. 그렇다는 건 사람 문제겠죠. 그래서, 누구의 부탁을 받았나요?"


"...성녀 하이렌 언니요."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로 이너스는 다리를 꼬며 말했다.


"왜 그녀의 부탁을 받았나요?"


"우선 다른 둘은 저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녀만이 저에게 말을 했죠. 신의 뜻을 받들어, 두 왕국 사이에서 시작될 전쟁에서 죽어가는 이들을 살리고 싶다고. 그러려면 하이랜더 경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이런, 작게 말하며 이너스는 잠시 집안을 뒤지는 듯 하더니 이내 작은 구슬을 꺼내 탁자에 내려놓았다. 


"아렐 양, 함정에 걸렸군요. 당신의 선택의 결과를 직접 봐볼래요?"


이너스가 꺼내온 구슬 안에서는, 방패와 갑옷에 십자가를 세긴 교국의 군대가 타국의 백성들을 베어넘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