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울타리 아래로 푸른 잡초들이 무성한 시골의 흔하디흔한 풍경.

심심할 정도로 별다른 꾸밈없는 단출한 모양의 3층 주택 앞으로 두 남녀가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 작전 포인트 알파 접근 완료. 확인 바람.


그들의 겉모습은 다른 시골 젊은이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으나 손목에 착용한 단말장치는 이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

곧바로 단말장치로부터 투사된 홀로그램에서 여성의 모습이 나타났다.


- 포인트 알파 확인. 1km 이내에 인간으로 판단되는 생명체 없음. 포인트 베타로 이동해 주시길 바랍니다.


- 알겠다.


홀로그램과 짧은 대화를 끝마친 남성은 주변 풍경을 감상하고 있던 동행인을 부른다.


- 테미스.


- ...그 이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요.


- 그저 코드네임일 뿐이야.


테미스라 불린 여성은 불만 가득한 눈초리로 문 앞으로 다가가 어깨를 가로질러 메고 있던 가방에서 바코드 스캐너처럼 생긴 장비를 꺼내 들고 자물쇠를 스캔했다.

잠시 후 스캐너를 다시 가방으로 집어넣은 테미스의 손에는 새하얀 열쇠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 정말이지 언제봐도 마법 같단 말이죠


어린아이같이 눈을 빛내며 신기한 듯 열쇠를 이리저리 돌려보는 그녀에게 남성은 나지막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 마법이 아니라 기술부 녀석들이 노력한 결과야. 어서 열어줘.


테미스가 자물쇠에 열쇠를 꽂아 넣고 돌리자 원래 한 짝이었던 것 마냥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해체되었다.


- 먼저 간다.


남성은 그 말을 남긴다음 문을 열고 들어가 단숨에 2층으로 뛰어올라갔다. 


- 아 정말!


테미스는 2층을 쏘아보며 가방에서 곤충형 로봇을 꺼내 현관문에 붙이더니 [부탁해]라는 말과 함께 자물쇠를 건네주었다. 


- 선배! 같이가요!


티티안 빛깔의 단발머리를 휘날리며 남성의 뒤를 쫓아 발 빠른 걸음을 걷던 그녀는 계단을 오르며 집안 여기저기를 눈으로 훑어보았다.

소박하면서도 초라한 내부였지만 마음이 진정되는 부드러움이 스며들어 있는 공간.

편리하지만 아늑하다고는 볼 수 없는 자신의 방을 떠올리며 알 수 없는 부러움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좁은 복도를 지나 안쪽에 자리 잡은 고동빛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성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이렇듯 언제나 제멋대로인 선배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해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 복도에서는 뛰면 안된다고요.


-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몰라. 귀찮은 일이 생기기 전에 어서 끝내자고.


- 그렇게 말하면 왠지 우리가 도둑잖아요.


서글픈듯한 테미스의 반응. 그런 그녀를 보며 남성은 사악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 목적은 달라도 과정만 놓고 보면 차이가 없다고 볼수있지.


그 말에 언어가 아닌 굉장한 표정으로 반박하는 테미스를 외면한 채 단말장치를 가동시켰다.


- 포인트 베타 접근 완료. 확인 바람.


- 포인트 베타 확인.미션[프로메테우스]의 발동을 허가합니다. 귀환 포인트까지 이동하는데 늦지않도록 주의를.


- 알겠다.


짧은 대답과 함께 두 사람은 조심스레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근원을 알 수 없는 퀘퀘한 냄새의 가라앉은 공기가 어두컴컴한 방안 분위기를 더욱 음산하게 만드는 듯 했다.


- 이거 완전 연구 외엔 관심 없다고 주장하는 거 같은 방인데?


- 선배가 좋아하는 스타일 아니었던가요?


-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이런곳은 사양하겠어. 그보다 어서 타깃을 찾자고.


나무로 짜인 책상과 의자 아래, 벽에 세워진 수납장의 빈틈 등 무언가가 숨어 있을법한 공간을 집중적으로 찾아보았지만 타깃은 발견할 수 없었다.


- 여기에는 없는건가


조금 허탈해진 심정으로 방 안쪽에서 옆방으로 이어진 문을 여는 순간 자그마한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 !


갑작스럽게 나타난 생명체는 어두운 방안에서도 매섭게 빛나는 두 눈을 가졌으며.

짧고 뭉툭한 입 안으로 보이는 날카로운 송곳니는 이 흉흉한 포식자에게 어울리는 무기였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이 통통하면서도 폭신해 보이는 발일지니...


- 야-옹


- 고...고양이??


고양이는 본적없는 인물이 붙잡기 위해 뻗은 손에 위협을 느낀 탓인지 어두운 방안을 헤집어 놓듯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책상위로 올라가버리는 바람에 넘어진 플라스크병의 깨지는 소리와 정체모를 액체가 쏟아지는 소리, 연구자료일 것이라 생각되는 종이들이 날리는 소리. 겁먹은 고양이의 비명소리.

방안은 순식간에 아비규환 으로 변해버렸다.

그러다 잠시 멈춘 고양이의 시선이 열려있는 방문으로 향하는것을 남성은 보았다.


- 방문으로 나가는걸 막아!


- 네? 넷!


정신없는 와중에도 선배의 외침에 반응하여 재빠르게 문 앞으로 달려 나가 기세 좋게 막아섰다.

하지만 훤히 열려있는 다리 사이로 유유히 빠져나가는 고양이.

테미스는 자책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빠져나간 고양이를 뒤쫓아 굉장한 속도로 복도를 내달렸다.

계단 앞에서 잠시 멈칫하던 고양이는 붉어진 얼굴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테미스의 기세에 놀란 나머지 계단 아래를 향해 포물선을 그리며 도약했다.


- 야아아아앗


그녀 또한 가속도를 이용해 고양이를 따라 그대로 뛰어올라 녀석을 붙잡기 위해 손을 뻗는다.

공중에서 펼쳐진 화려한 캐치 그리고 고양이 같은 안정적인 착지.

화가들이 보았다면 캔버스에 담아내고 싶어질 만큼이나 극적인 장면이었다. 


- 미안해 많이 놀랐지?


테미스는 끌어안은 품 안에서 발버둥 치는 고양이를 어루만지며 진정시켰다. 

그녀의 손길에 녀석이 잠잠해지자 위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 테미스, 그녀석 이름을 확인해봐.


그녀는 고양이가 다시 놀라지 않도록 조심스레 목걸이에 적혀져있는 이름을 읽었다.


-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 라고 쓰여있어요 선배.


- 이번 세계에서는 고양이인가.


- 이전번에는 뭐였는데요?


- 개. 그리고 앵무새나 거북이였던 적도 있었지.


- 이번에도 거북이였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 소리에 고양이는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 미안해 농담이야. 자 방으로 돌아가자.


방안에 다시 들어서자 남성이 손에 양초를 쥔 채 단말장치와 대화하고 있었다.


- 약 900M 전방에서 접근중인 인간이 있습니다. 


- 테미스, 드론은?


- 아까 들어올때 설치해 놨어요.


- 아이모, 누군지 확인해둬. 아마도 집 집주인 일 테니 슬슬 맞이할 준비를 해 둬야지.


집밖에서 현관문에 자물쇠를 걸어둔 뒤 대기 중이던 곤충형 드론이 반투명의 날개를 펼쳐 조용히 날아 올랐다.

꽤 높은 고도까지 올라간 드론은 강력한 줌인 기능을 가진 카메라를 이용하여 접근 중인 인물의 인상착의를 홀로그램 오퍼레이터인 아이모에게 전송했다.

전달받은 자료를 기초로 아이모가 분석에 들어간 와중에 남성은 방의 창문을 반쯤 열어놓은 채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자료들을 주워 모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 아까랑 상당히 다른데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까요?


- 다른 사람이면 그럴지 몰라도 이 집 주인이라면 괜찮을 거야.


- 왜요?


- 그사람 건망증이 좀 유별나거든. 분명 생활암기력은 저 고양이쪽이 더 뛰어날껄?


- 야-옹


긍정의 뜻이 담겨져 있는 울음소리.

그렇게 농 아닌 농을 주고받는중 단말장치로부터 아이모의 음성이 들렸다.


- 분석을 완료했습니다. 접근중인 해당 인물은 99% 확률로 아이작 뉴턴 본인이라 판단됩니다.


- 알겠다. 도착까진 얼마나 걸리지?


- 3분후 입니다. 


- 테미스, 다이아몬드를 여기 내려놔.


남성은 바닥에 내려놓은 다이아몬드의 앞발을 지그시 누르더니 튀어나온 발톱으로 손에 쥐고있던 양초를 긁었다.


- 이것으로 이곳 역사에 남을 방화범 탄생이로군.


당사자는 자신의 발톱에 묻어나온 양초를 유심히 쳐다보더니 이내 흥미를 잃었는지 나뭇바닥에 긁어서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남성은 긁힌자국이 있는 양초에 불을지펴 책상위의 종이더미에 불을 옮긴 다음 발견하기 쉽도록 바닥에 던져버렸다.

책상위의 불은 순식간에 매캐한 검은 연기를 개워내며 덩치를 키워가기 시작했다.


- 테미스, 아랫층으로 이동한다. 창문으로 새어나가는 연기를보고 금방 주인이 달려올테니.


그말과 함께 뒤를 돌아본 남성에게 타오르고 있는 불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테미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에 알수없는 불안감을 느낀 그가 가까이 다가가자 미동조차없는 그녀의 불안정한 숨소리만 들려왔다.


- 테미스!


외침과 함께 파르르 떨고있던 손을 부여잡으니 그녀의 눈동자가 잡혀진 손쪽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그 이상의 반응은 없었다.


기억의 파편이 남아있었던 것인가.

자신처럼 모든 요원들은 임무의 편의를 위해 생전기억이 제거된다.

그 후 임무에 필요한 지식과 필요하다면 주저없이 살인마저 가능하게끔 교육을 받게된다.

하지만 이렇게 지워지고 덧씌워진다 해도 의식 깊은곳에 자리잡은 파편들은 지워지지 않고 남는 모양이다.

어떠한 파편이 남겨져 있는지는 발현하기 전까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리고 설령 알게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지울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써는 없다는 것이 상층부의 주요 스트레스 원인중 하나이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그녀의 지금 이러한 모습은 남겨져 있는 불에 대한 기억때문일 것이다. 분명 좋은 기억은 아닐것이라 본다.


- 도착예상까지 앞으로 60초 남았습니다. 다른 장소로 이동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 테미스, 괜찮아. 괜찮아. 옆방으로 가자.


식은땀이 한가득한 손을 이끌어 한 발 한 발 천천히 이동했다.

단순히 옆방으로 이동했을 뿐인데도 먼 거리를 걸어온 듯한 피로감이 몰려온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그녀의 시야에서 불이 사라졌기 때문인지 호흡이 안정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속으로 안심하고 있는 사이 엄청난 기세로 문이 열리며 주인이 계단을 뛰어 올라왔다.


- 안돼에에에에에에!!!!!


곧장 방으로 뛰어 들어간 그는 정신없이 불을 끄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복도로 사람이 지나가는 것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방금전보단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두 사람은 그대로 집을 빠져나왔다.


- 미션완료 확인바람.


- 미션완료 확인. 두사람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20분 이내로 귀환포인트까지 이동해 주세요.


귀환포인트는 분명 근처의 인적이 드문 나무 아래였다.

그리 먼 거리는 아니였기에 느린 걸음으로도 충분히 닿을 것이다.


- 괜찮을까요?


아무래도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상태가 나아진듯 했다.


- 괜찮을꺼야 자료랑 책상좀 태워먹을 정도에서 진화될 불이였으니까. 뭐 고양이는 주인에게 혼나겠지만 말이지.


- 미안하네요.


- 그녀석이 한끼정도 굶는벌을 받는다 해도 죽을일은 없을테니 너무 걱정하지마.


- 아니요, 선배한테요. 미안해요.


- ...


서로 맞잡은 손은 떨어지지 않고 아무런 말없이 걷는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을 정도의 짧은 시간이 흐르자 귀환포인트인 나무가 시야에 닿았다.


- 네 잘못이 아니야.


- 하지만...


- 네 잘못이 아니야 테미스. 그러니 미안해 하지마. 난 오히려 이번기회에 알게되어서 다행이라 생각해. 앞으로는 미리 대비할 수 있을테니까. 운이 좋았어.


- ...


왠지 선배의 얼굴을 보기 힘들어진 테미스는 땅만 바라보며 걷는다.

그러다 앞에서 이끌던 선배가 멈추자 따라멈춘다.

시선을 올리니 보이는것은 선배의 뒷모습과 한그루의 나무. 귀환포인트였다.


- 귀환포인트에 도착확인. 전송시작까지 남은시각은 5분입니다. 전송 후 단말은 관리처에 반납해 주세요.


테미스는 남은 시간 동안 멍하니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작은 구름이 바람의 흐름을 거부하지 못하고 흘러 흘러 큰 구름 속으로 사라져 간다.

사라지는 구름을 보며 여러 생각들을 떠올리고 있을 때 작은 구름이 사라진 방향에서 무언가가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아이모가 전송개시까지 마지막 카운트다운을 하는 와중에 그제야 중요한 것을 생각해낸 듯 탄성을 내뱉는 테미스. 


- 아!


그 소리에 남성 또한 하늘을 올려다보니 손바닥만 한 물체가 날아와 테미스의 가방 안으로 착지하는 것이었다.


- 미안미안, 잊고있었네


손바닥으로 가방을 통통 두드리며 드론에게 사과한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는 미소와 함께 말했다.


- 돌아가자.


직후

두 사람의 모습은 세계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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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세계에 요원을 파견하여 도라O몽 스러운 4차원 가방의 힘으로 역사를 바른 흐름으로 조정하는 역사조정물(...) 


위인들의 일화를 가져다가 맘대로 꼬아놓고 고증따위 평행세계니까 다를수도 있다고 정신승리 하고, 똑같은 일화라도 내용을 랜덤으로 바꿔버리면 이것은 흡사 마르지않는 우물(...)


이러니까 뭔가 꾸러기 수비대랑 비스므리 한거 같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