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건 또 어떻게 데려온 거야? 또 너가 만든 거냐?"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다. 이 녀석의 만능권총이라면 능히 액체인간이라도 만들어 낼 수 있을것 같으니까. 갑자기 노래 하나가 머리를 맴돈다. 


 '심심한 날 친구가 필요한 날 나는 나는 친구를 만들죠~'


 리돌은 내 쪽을 몸을 돌리며 이야기를 받았다.


 "아닙니다. 나는 계단에서 고양이가 내 집으로 가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저는 캐롤라인에게 제가 해야 할 일을 물어보러 갔습니다. 그리고 캐롤라인은 민재에게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데려왔다."


 "그래? 그래서 저 녀석 집에서 키우려고 말하는 기능까지 추가해서 데리고 온 거냐?"


 "무슨 말입니까?" 


 "그러니까, 왜 고양이를 말하게 만들었냐고. 말 못하면 같이 못 살줄 알았어?"


 내가 이렇게 질문을 하자, 리돌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반문하였다.


 "네가 말하는 동물이 너 고양이야?"


 "또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니가 저렇게 만들어 놓은 거 아냐. 장화신은 고양이마냥."


 이 녀석이 장화신은 고양이 이야기를 알 리는 없겠지만. 리돌은 침대에 턱을 괸 자세 그대로 고개를 저었다. 그 결과, 턱이 침대에 박혀 움직이지 않아 정수리만 마치 메트로놈처럼 까딱까딱대는 희한한 몸짓이 되어 버렸다.


 "모든 고양이가 말하는 것은 아니겠습니까? 나는 나비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뭐?"


 "진짭니다."


 내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자, 리돌은 초롱초롱한 빨간색 눈동자로 나의 공격을 받아쳤다. 잠깐, 이 녀석이 만들어 낸 게 아니라면... 나비의 정체는 도대체 뭐지? 진짜로 지구상에 말하는 고양이가 출몰했다고? 

 갑자기 소름이 좍 돋는다. 아까 전에 나비가 자신의 비밀을 지켜달라 한 이야기에 OK한 거야 어차피 리돌하고 관련이 되어 있으면 그게 그거라고 생각했기에 크게 신경쓰지 않은 부분이다. 하지만 그 녀석의 출신이 내 앞의 달나라 아가씨와 전혀 관련이 없는 부분이라고 한다면, 또 다른 외계생명체가 나에게 접근한 것이나 다를 바 없는 거잖아, 지금. 아까 너무나 놀라서 제대로 이야기를 하지 못한 것도 한 몫 하긴 했지만, 일단 이 녀석이 어떤 연유로 말을 할 수 있는지, 어떤 녀석인지를 제대로 물어 보았어야 했다.

 나는 최소한의 예방책, 아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리돌에게 일단 정확한 지식을 주입해 넣기로 했다. 리돌은 여전히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 빠지겠다.


 "리돌."


 "네, 민재."


 "고양이는 말을 못해."


 다시 한 번 리돌의 표정이 의구심으로 가득 찼다. 살짝살짝 눈을 굴리던 리돌은, 다시 조심스럽게 나와 눈을 마주치고서는 진실의 여부를 확인하였다.


 "정말?"


 나는 대답 대신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의심으로 가득 차 있던 리돌의 표정이 살짝 충격을 받은 얼굴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마치 표정이 뭉크의 절규 흡사해 졌다. 쇼크를 받은 표정으로 한 십여초 정도를 그대로 굳어 있던 리돌은, 떨리는 손으로 리모콘을 잡고서는 다큐멘터리 채널을 급하게 찾았다. 처음으로 나온 채널에서는 남극의 펭귄들이 태양이 나지 않는 겨울을 모두 뭉쳐서 견디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남극의 펭귄들은 한 곳에 뭉쳐서 겨울을 이겨냅니다. 만일 새끼펭귄이 대열을 이탈해 어미 품에서 떨어지게 된다면, 안타깝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죽게 되고 말 겁니다."


 리돌은 TV화면을 가리키며 이야기하였다.


 "이것 보세요. 민재. 이 검은 새들도 말할 수 있습니다. 목소리는 나비와 같습니다."


 ...이제야 무엇이 문제의 시발점이었는지를 알겠다. 그러면 이 녀석, 지금까지 하마고 사자고 다른 동물들 모두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 아냐? 아이고, 이 순진한 아가씨야. 나는 한숨을 쉬며 이야기하였다.


 "리돌... 그건 나레이터 아저씨야. 성우라고. 저 펭귄들이 이야기하는 게 아니야."


 "성우? 성우는 무엇입니까?"


 "목소리로 연기하는 사람."


 나는 짧게 대답한 다음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냥 예시로 보여주는 것이 훨씬 이해가 빠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단 핸드폰으로 유명한 성우 이름이 뭐가 있나 검색한 다음, 인터넷으로 같은 성우가 다른 프로그램이나 애니메이션에서 다른 역할을 하는 것을 직접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믿지 못하던 리돌이었지만, 계속해서 같은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보고서는 다시 경악을 금치 못하는 표정으로 바뀌어 갔다.


 "그래서 이게 또?"


 리돌은 뚝뚝 끊기는 동작으로 나에게 핸드폰 화면을 계속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뭐, 맞겠지. 니가 생각한게. 어차피 더 설명해줘 봤자 끝없는 질문의 향연에 빠질 것을 알았기에, 나는 그대로 대답을 끊었다. 리돌은 계속하여 대단하다는 표정으로 핸드폰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쨌든 오늘의 소동은 그렇게 일단락이 났다. 리돌은 내일 다시 나비가 오면 도대체 그 녀석이어떤 생명체인지 자초지종을 정확하게 물어보기로 하였고, 나는 일단 없어진 밥솥을 채우기 위해서 쌀을 씻어 밥을 하였다. 오늘의 반찬은... 남은 게 없어서 그냥 라면을 끓였고, 이제는 라면에는 김치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리돌을 위해서 우리 어머니가 해주신 특제 김치를 다시 썰어 주었다. 마치 머슴 밥먹듯 라면을 포크로 후루룩후루룩 삼키고 김치를 죽죽 찢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매운 맛은 중독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매워서 못 먹던 달나라 아가씨도 이젠 이게 없으면 밥을 못 먹는 지경까지 와 버린 것을 보면. 밥을 먹는 동안 리돌은 지구의 동물들에 대해서 몇 가지를 더 물어 보았고, 그것들은 대부분 동물들이 말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앵무새를 말을 할 줄 아는 동물로 이야기를 할까 말까를 잠시 고민하다, 어떻게 설명할 지를 짧게 생각한 후 말하는 동물은 지구상에 없음을 다시 못박아 두었다. 리돌은 마치 산타할아버지는 이 세상에 없는 것을 처음 안 아이처럼 우울한 표정으로 자신의 침소로 올라갔다. 



 그리고, 날이 밝았다. 


 "리돌, 나 갔다 온다."


 대답이 없다. 그냥 자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은 스터디가 있는 날이라 조금 일찍 나갔다 와야 했다. 나는 리돌에게 출발하기 전, 어저께 말했던 나비의 정체에 대해서 물어보라 하는 것을 다시 확인해 주려 하였지만... 이 녀석은 아침에 제대로 일어날 줄을 모른다. 포스터 위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 오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쉬며 신발을 챙겨 문 밖으로 나갔다. 


 문을 열자마자 눈을 찌르는 아침햇살에 자동적으로 기지개가 펴진다. 오늘따라 왜 바람은 또 완벽한지 모르겠다. 여름에 그렇게 내렸던 비가 무색하게, 가을의 서울 하늘은 거의 대부분 맑디 맑았다. 가끔씩 미세먼지 경보가 나오는 것을 제외하면, 진짜 오늘같은 날은 여자친구와 함께 어디 공원에라도 죽 누워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난 여자친구가 없잖아? 안될거야 난. 그런 생각을 하며 실없이 입이 조그많게 벌어진다. 옥상 문을 열고 내려가면서, 한숨과 함께 내 앞날의 흐린 청사진이 떠오른다. 애인이고 뭐고, 일단 지금 안정적이지는 않더라도 돈이 벌리는 무언가라도 있어야 나 자신이 떳떳할 텐데, 지금 이렇게 옥탑방에서 고시원 비슷한 생활을 하면서 나는 어떤 미래를 보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막막해진다. 내가 지금 보내고 있는 하루하루에서 일궈내는 변화. 그것을 기다리는 것인데, 그 과정이 너무나 혹독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 삶에 눈에 띄는 변화, 있다. 당연히. 집 안팎으로 비현실적인 존재들이 득시글하다는 것. 그런데 그래서 반대로, 오히려 나 자신은 더욱 현실적이 되어 버렸다. 이 녀석들이 나에게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수정같이 투명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해준 것도 아니고, 지구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나한테 계속해서 부탁하고 있으니. 게다가 리돌 녀석뿐만 아니라, 이제는 말하는 고양이까지. 인터넷에서 자주 보이는 짤방이 갑자기 생각난다.


 "죽겠어요."


 무의식중에 혼잣말이 튀어 나왔다. 리돌이나 나비 같은 비현실적인 문제 때문에가 아니라, 내가 해결해야 하는, 내 눈 앞의 문제때문에. 일자리, 결혼, 돈.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위해 활용해야 하는 시간의 문제가, 내 주위에서 상상속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들로 인해 천천히 어그러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어째서 초현실적인 문제들이 내 현실까지 뒤흔드는 것인가. 

 또 다시 한숨이 튀어 나온다. 누구한테라도 털어 놓으면 좀 괜찮아 질까? 친구들한테? 술자리에서야 푸념조로 자주 이야기하지. 부모님한테? 죽어도 이런 이야기 못 한다. 리돌한테? 뭐, 어디 절에 올라가서 불상에 비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내 옆의 벽 위로 지나가는 고양이한테? 어제 보았던 듯한?


 고양이? 어제 보았던?


 나는 망상에서 빠져나와 내 뒤로 지나가는 고양이를 쳐다 보았다. 틀림 없다. 나비 녀석이다. 작은 몸집에, 고등어 무늬. 저 녀석, 이렇게나 아침 일찍 찾아가는 거야? 나비는 마치 나를 보지 못한 듯, 벽 아래로 폴짝 뛰어 우리 건물 현관으로 걸어 들어갔다.  지금 가도 리돌은 일어나 있지 않을 텐데. 문은 어떻게 열려고? 그리고, 그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 뒷모습이라 잘 보이지는 않지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계속 나는 것이 저 녀석, 분명 입에 봉지 비슷한 걸 물고 있다. 우리 집에서 도대체 뭘 하려고? 나는 나도 모르게 나비의 뒤를 따라서 집으로 올라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