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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피고인 에질라이 라템에 대한 심판을 시작합니다."

판사가 말했다. 워낙 큰 사안이라 경비는 삼엄했고 우스터 가문의 예언가 등 수많은 주요인사들이 참관했다. 검사가 자신의 차례가 되자 에질라이 라템의 죄를 읽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피고인 에질라이 라템은 제2관문 지역의 호텔 카운터 직원이자 제14관문의 문지기입니다. 호텔의 모든 수익을 비밀리에 마왕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죠. 그런데 호텔을 관리하던 도중 우리의 적인 비트립 병단과 카스트로 병단이 그곳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피고인 에질라이 라템은 그들에게 무효화의 목걸이를 주었습니다. 비트립 병단과 카스트로 병단은 이후 그들의 수중에 들어간 무효화의 목걸이를 활용해 제2관문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관문들의 관문지기를 사살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피고인 에질라이 라템의 죄가 크다고 판단되므로 피고인에게 사형을 구형합니다."

에질라이 라템이 막대한 후회심과 절망과 죄책감에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순간 죽음에 대한 공포가 밀려왔다.

 

그 때 변호사가 에질라이 라템을 변호했다.

"에질라이 라템은 그 병단들이 슬레이어에서 온 것인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는 언제나처럼 기계적으로 손님을 대했을 뿐입니다. 또한 무효화의 목걸이는 마왕성을 옮기기 이전에 여성의 21%가 소지했고 지금도 제2관문 지역 여성의 9%가 소지하고 있을 정도로 대중적이고 저렴한 물건입니다. 회전추첨기에서 운 좋게 그것들이 나왔을 뿐 그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지 못합니다."

 

검사가 반론했다.

"지금까지 그들이 무찌른 모든 관문들의 문지기들은 그들이 슬레이어 출신임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런데 피고인만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것은 피고인의 자질을 의심해야 할 일입니다. 또한 무효화의 목걸이를 넘겨줌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이것도 피고인의 자질이 매우 처절함을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즉, 이 사안은 피고인의 무능에 의해 벌어진 대죄입니다."

 

변호사가 검사의 말을 반박했다.

"피고인이 슬레이어의 병단임을 알아차리지 못한 이유는 있습니다. 첫째, 피고인은 원래 카운터 아르바이트 출신이었습니다. 마왕이 관문지기로 적당한 사람을 찾아다니다 피고인을 발견한 것입니다. 피고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관문지기를 맡게 되었고, 슬레이어의 병단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피고인이 슬레이어의 병단임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리고 또 하나 있습니다. 제2관문의 민간인 거주구역은 중앙정부가 건 마법에 의해 통제되고 있습니다. 그곳에 사는 백성은 그 누구도 마왕성이 왜 이전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심지어 마왕성이 이전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합니다. 이렇게 한 것은 백성들의 혼란을 잠재워 세금이 잘 걷히게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이 마법에 따라 피고인도 그들이 슬레이어 출신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관문지기인 피고인조차도 알지 못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 해당 마법의 예외지역은 오직 제2관문의 관문지기가 살고 있는 주택가 뿐입니다. 주택가와 완전히 떨어져있는 호텔은 당연히 마법의 영향을 받아 그들이 슬레이어 출신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거기에 더해 피고인의 호텔을 예외구역으로 지정시키는 작업은 비경제적입니다. 해당 마법을 구현시키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필요하지만 중앙정부는 그곳에 돈을 더 낭비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제2관문이 뚫리자마자 해당 마법이 풀리도록 세팅해놓았습니다. 이에 따라 피고인이 알지 못했던 것은 정당하며 피고인의 무죄를 주장합니다."

 

검사가 되받아쳤다.

"그렇다고 해도 나라를 위험에 빠뜨리게 한 죄는 어떻게 보더라도 죄일 뿐입니다. 아무리 고의가 아니라고 해도 그의 죄는 국가의 존망에 영향을 줄 정도로 그 죄질은..."

 

 

그 때 법정의 문이 활짝 열렸다. 그곳에서 보인 사람은 마왕이었다. 모두가 반사적으로 격식을 갖춰 90도 폴더인사를 했다. 그러나 그러기도 전에 마왕이 소리쳤다. 

"재판부는 당장 이 재판을 중단하라! 슬레이어의 전사들이 제12관문을 넘었다!"

법정의 모든 사람들은 그 말에 경악했다. 검사가 뭐라고 대꾸하려 하기도 전에 마왕이 말을 이었다.

"관문지기를 교체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그들은 그 안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에질라이 라템은 관문으로 돌아가라!"

에질라이 라템이 죽다 살아난 기쁨에 바로 튀어나가 마왕에게 엎드려 절했다. 그리고 그가 맡고 있는 관문이 위치한 호텔로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