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즈마 소드 채널

13관문을 지난 슬레이어의 병사들은 14관문으로 넘어섰다. 14관문은 어딘가 눈에 익었다. 윗층으로 올라가는 층계참과 그곳에서 내려오는 곳 바로 앞에 있는 카운터를 보고 뭔가 익숙함을 느꼈다.

 

"여기는... 호텔?"

 

그렇다. 제2관문을 통과할 때 머물렀던 곳이자 무효화의 목걸이를 얻었던 호텔이었다. 제14관문이 제2관문에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호텔 맞네. 카운터도 그대로고. 그런데 어째서 여기 있지...?"

카스트로가 뭔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그리고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아 다른 쪽을 살피러 갔다. 시온이 그의 뒤를 따랐다.

"왜 그래? 여기 언제 와봤어?"

제2관문에는 와 본 적이 없어서 상황파악이 아직 안 되는 키무두한이 말했다.

"네. 여기는 제2관문을 뚫었을 때 머물렀던 호텔입니다. 그때 저희가 저 카운터에서..."

루티온이 얼떨떨하게 답했다. 루티온이 카운터 쪽으로 가면서 무효화의 목걸이를 어떻게 구했는지 설명하려 했다. 루보, 코스타도 설명에 동참하고자 카운터 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 순간 호텔 프론트의 바닥 한가운데에서 폭음이 들리더니 바닥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구덩이 깊이 떨어졌으며 실력있는 인물들도 그 자리에서 추락했다. 비트립, 키무두한, 수르트카, 갈릴레오 등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지하로 떨어져 사라졌다. 땅이 꺼진 곳에서 유일하게 버티고 있던 사람은 이스밀라였다. 바닥을 잡고 겨우 매달리고 있는 이스밀라를 코스타가 끌어올렸다.

그렇게 남은 사람은 다른 곳을 살펴보러 갔던 카스트로, 시온과 카운터 쪽으로 갔던 루티온와 루보와 코스타, 그리고 추락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이스밀라가 전부였다. 다시말해 6명만 빼고 다 추락해버린 것이었다.

 

"이게 대체 뭐야... 그건 그렇고 키무두한 님도 빠지다니..."

이스밀라가 말했다. 그녀도 이 호텔에는 와보지 못했는지라 지금까지의 상황에 매우 당황스러워했다. 이 와중에 코스타는 키무두한 님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매우 놀랐다.

 

그 때 딱 타이밍에 맞춰서 카운터 뒤 창고 쪽에서 누군가가 걸어나왔다. 그는 카운터의 의자를 밟은 후 데스크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자세를 한껏 잡았다.

"나는 제14관문의 문지기 에질라이 라템이다! 감히 지금까지 13개 관문을 전부 깼겠다. 나는 너희들을 용서치 않겠다!"

이스밀라를 제외한 6명은 그가 누군지 거의 바로 알아맞칠 수 있었다. 그는 다름아닌 호텔의 카운터 직원이었던 것이었다.

"너는 카운터 직원...?"

"그래, 카운터 직원이었지, 동시에 14관문의 문지기이면서. 너희 때문에 얼마 있지 않아 문지기 권리 박탈되게 생겼다 이 새끼들아! 네들이 내가 무심코 줘버린 무효화의 목걸이로 지금까지의 모두를 죽였다고 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복수해주겠다!"

 

이스밀라가 빠르게 마법을 쏘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카운터 직원, 아니 문지기는 에질라이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너희들이 그럴 줄 알고 준비해둔 게 있다. 너희들은 이걸 상상도 하지 못했을 거다."

그리고 빠르게 마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루보가 무효화의 목걸이를 쓰려고 하는 모습을 본 에질라이는 여유롭게 주문을 외쳤다. 그리고 그 주문은 무효화의 목걸이에 직격했다.

그 누구도 무슨 주문이었는지 알지 못했지만 이스밀라만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에질라이가 주문을 다 외우기 전에 마법을 쓰려고 했으나 이미 늦었다. 불 마법은 나오지조차 못했다.

 

한편 지하에 떨어져 중상을 입은 카일라도 운석을 소환해 에질라이의 머리 위를 타격하려 했다. 그러나 그 마법 또한 나오지 않았다.

 

에질라이가 그걸 보고 잘됐다고 비웃으며 말했다.

"무효화의 목걸이는 모든 마법을 다 막지만 딱 하나 막지 못하는 게 있지. 그게 뭔지 알아?"

"설마, '마법 강제 조종술'?"

마법 강제 조종술. 이 마법은 다루기 매우 힘든 고위마법으로 분류되며, 마법이 실행되는 과정에서 그 세기를 강제로 바꿔버리거나 고정시킬 때 사용한다. 해당 마법은 오직 시전자만이 풀 수 있다.

"그래, 마법 강제 조종술이지. 목걸이의 반경을 최대로 맞춘 다음 고정시켜버렸다. 구덩이의 깊이는 20m지만  목걸이의 반경은 100m! 너희들은 이제 마법을 쓸 수 없다 이 말이다!"

그 말에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이스밀라였다. 자신의 주특기인 마법을 쓸 수 없어 공격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루보 또한 충격에 빠졌다. 지금까지 써왔던 치유의 만년필을 더는 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카스트로는 그게 어찌되었든 모두에게 사인을 보내며 에질라이에게 돌격했다. 그러나 에질라이는 이미 이런 것도 생각해두고 있었다. 에질라이가 짧게 말했다.

"발포."

그러자 벽 쪽에서 대포가 날아와 카스트로를 명중했다. 카스트로가 중상을 입고 고꾸라져 넘어졌다. 그의 가방이 몸과 분리되었다.

카스트로가 아닌 다른 쪽으로도 포탄이 날아왔지만 코스타가 그걸 보고 바로 미러쉴드로 방어했다. 다행히 미러쉴드는 무효화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덕분에 다행히도 나머지 대원들은 다치지 않았다.

벽은 대포의 충격의 3배의 힘에도 버틸 수 있는 재질로 만들어졌기에 타격을 받지 않았다.

카스트로가 제 몸을 겨우겨우 가누면서 일어났다. 에질라이는 카스트로에게 검을 가지고 다가갔다. 그리고 카스트로를 구덩이로 밀어넣었다. 에질라이가 흐뭇하게 다시 데스크를 밟고 올라갔다. 가방은 어떻게 처리할까 하다가 데스크 뒤쪽의 경품창고에 던져넣었다. 카스트로의 검은 그가 집기 쉬운 위치의 벽에 놓아두었다.

나머지 사람들이 충격에 빠졌다. 카스트로가 한순간에 허망하게 패배한 것이 그들을 공포스럽게 했다.

 

그러나 검을 쥔 모두는 그 자리에서 에질라이를 치기 위해 용감하고 무모하게 돌격했다. 그들이 에질라이에게 동시에 다가가자 에질라이는 몸을 유연하게 움직이며 피했다. 검을 쥔 4명이 서로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갔다.

 

그 자리에서 루티온과 에질라이가 맞붙었다. 루티온이 에질라이를 계속 공격했다. 위 아래 위 위 아래. 그러나 에질라이는 놀라운 반사신경으로 루티온의 플라즈마 소드를 회피하였다. 그리고 결국 검으로 루티온에게 상해을 입혔다. 다름아닌 루티온의 오른팔이 에질라이의 검에 의해 베어졌다. 루티온이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그리고 다시 공격하려고 했지만 한쪽 손이 없었기에 플라즈마 소드를 제대로 들 수 없었다.

루티온이 플라즈마 소드로 마지막 일격을 날리려 했으나 심한 고통에 플라즈마 소드가 손에서 미끄러져 시온 쪽으로 붕 날아갔다. 플라즈마 소드는 바닥을 살짝 부수고 떨어졌다. 시온은 날아오는 소드를 간신히 피했다.

 

루티온은 자신의 주무기가 사라지자 금세 당황했다. 에질라이가 루티온의 멱살을 잡아올리고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이제 보니 루티온도 별 거 아니네. 장비는 최고인데 무술은 그냥저냥이라니. 근데 죽이기는 아까우니까 한쪽에 쳐박아놓을까..."

에질라이의 말이 끝나자 루티온은 경품창고에 처박혔다. 루티온이 계단에서 몇 바퀴 굴렀다. 피가 사방에 흩뿌려졌다. 루티온이 벽장에 부딪혔다. 경품용으로 추정되는 망치와 기타 여러 박스들과 통들이 바닥에 우수수 떨어져 루티온의 머리 위를 약하게 때렸다. 루티온이 그 사이에서 우연히 붕대를 발견하고 자신의 팔을 둘렀다.

 

루티온이 고통받는 모습을 에질라이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재밌는 장난이라고 생각하고 시온과 맞붙고 있을 뿐이었다. 시온은 루티온이 놓친 플라즈마 소드를 집어 에질라이를 공격해왔다. 확실히 무예가 뛰어나 루티온보다 훨씬 좋은 공격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에질라이보다는 한 수 아래였다. 시온이 조금씩 지쳐갔으나 에질라이는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에질라이의 검술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시온이 플라즈마 소드로 에질라이의 검을 베려고 발악했으나 에질라이는 문어마냥 매우 유연한 움직임으로 그를 피했다.

 

한편 루보와 이스밀라는 어떻게든 무효화의 목걸이에 걸린 마법을 해제시키려고 했다. 각종 스크롤들과 각종 조작법을 모두 시도해보았지만 목걸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장전이 끝나자 에질라이가 다시 발포를 명령했다. 모두가 미러쉴드로 부상을 피했지만 이번에는 루보가 쓰러졌다. 루보가 이스밀라에게 목걸이와 치유의 만년필을 넘겨주었다. 그리고 루보는 그 자리에서 계속해서 일어나려고 시도했다.

 

경품창고에 박힌 루티온은 절망했다. 내가 검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다. 병단도 또래보다 뒤늦게 가입했고 마법도 쓰지 못하고 무예도 다른 사람들이 더 뛰어나고... 루티온은 바로 허탈한 한숨을 뱉었다.

'다른 사람들의 조언이 맞았어. 나는 다른 분들보다 기술이 좋지 않아. 플라즈마 소드에 의존하고 있을 뿐이었지. 그러면 이제 뭘 어쩌지...?'

루티온이 회상했다. 그리고 죽기 싫다고 발버둥쳤다. 그러나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살아온 과거가 막 떠올랐다. 비트립 단장님과 처음 만났을 때, 마왕성이 옮겨진 것을 알았을 때, 거울에서 만레이우스 님을 만났았을 때...

루티온이 만레이우스를 떠올리면서 중얼거렸다.

"만레이우스 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방법을 모르고 있을 때 방법을 제시해주셨지..."

그리고 루티온은 순간적으로 깨닫고 다짐했다. 죽고 싶지 않다는 발버둥과 이제 변해야겠다는 생각이 담긴 성장이 합쳐진 다짐이었다.

"만레이우스 님, 전에는 당신이 해결책을 제시해주셨다면, 이번에는 저 스스로 찾아내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