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즈마 소드 채널
루티온은 아픈 팔을 겨우겨우 가누면서 우선 파리만 날리는 것 같던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경품창고에 떨어져있는 지라 각종 물건들이 매우 많이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망치였다. 손잡이 부분이 루티온의 머리를 때렸던 그 망치였다.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주변의 물건들을 죄다 꺼내보았다.

일단 첫번째 상자는 무효화의 목걸이였다. 마왕성에서는 흔한 것이었기 때문에 여러 개가 있는 것이 이해가 갔다. 그 다음 상자는 연필이었다. 별 특징 없는 그냥 연필. 그 뒤로는 성냥이 나왔다. 이것도 별 마력 없는 그냥 도구였다. 그 다음으로 나온 것은 살충제 2개였다. 이것도 별 마력은 없었다.

이후로도 평범한 물건들이 많이 나왔다. 밧줄, 물총, 낚싯대 2개, 작은 크로스백, 슈크림빵 세트 등등 여러가지 물건들이 나왔다. 또한 진통제가 나왔길래 바로 먹었다. 경품창고답게 이런저런 하찮고 평범해보이는 물건들이 많았다.

루티온이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카스트로의 가방을 발견했다. 가방끈이 끊어지고 겉이 아주 헤져있었다. 낭떠러지로 떨어진 카스트로가 생각나 루티온이 순간 슬퍼졌다.
루티온이 카스트로의 가방을 뒤졌다. 별의별 고급 물건들이 있었으나 지금의 그의 몸으로서는 다루기 힘들어보였다.
루티온이 그 장비들 사이에서 <예리우스 예언집 300>과 번역기를 발견했다. <예리우스 예언집 300>은 카스트로가 집필했던 책이라 이해가 갔다. 또한 번역기는 카스트로가 달라고 해서 줬던 그 번역기였다. 루티온이 카스트로의 기운을 받고자 번역기와 예언서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낚싯대의 줄을 끊어 번역기에 묶어 목걸이처럼 만들었다. 루티온이 번역기를 이리저리 조작해보다가 뭔가 뜨긴 했으나 결국에는 켜지지 못했다. 무효화의 목걸이의 영향범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루티온이 뭔가 이길 만한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고뇌했다. 이전 관문에서 만레이우스가 거울을 부술 방법을 알아냈듯 이번에도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루티온이 주변이 어떻게 이루어져있는 지 고찰해보았다. 프론트 중 카운터와 일부 벽을 제외한 모든 부분들은 낭떠러지가 되었고, 저 멀리 벽에서 대포가 쏘아지고 있다. 벽은 대포에 맞아도 끄떡 없고 무효화의 목걸이에 의해 이스밀라의 공격은 차단되었다...

'...그러면 무효화의 목걸이를 부수면 되잖아?'
루티온이 바로 시행에 옮기려 했다. 그러나 어떻게 문지기의 눈을 피해 갈지를 고뇌해야 했다. 그리고 어떻게 무효화의 목걸이를 부술 지 고민해야했다. 망치로 부수려고 했으나 그 목걸이는 제10관문에서 해발 300m에서 떨어졌는데도 부서지지 않았던 게 생각나 기각했다.

루티온이 지금까지 본 물건들을 살펴보다가 뭔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슈크림 빵 상자에서 슈크림빵 밑에 깔린 종에 연필로 무언가를 썼다. 그리고 가방에 필요한 물건들을 넣은 후 차근차근 계단을 올라갔다. 루티온이 자신의 계획대로 되길 바라며 아픈 몸을 겨우겨우 움직였다. 아까 먹은 진통제의 효과를 꽤 받아 그나마 나았다.
루티온이 중간중간 지쳐 계단에 나앉았다. 그리고 파리가 날아다니는 피가 흥건한 경품창고를 보며 저기는 다시는 가고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한편 루보에게서 목걸이와 만년필을 전달받은 이스밀라는 만년필이 있다는 것을 보고 놀랐다. 지금까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걸 쓰면 저 밑에 빠진 사람들도 구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으나 지금은 무효화의 목걸이에 의해 그 어떤 마법도 쓰지 못하는 때였다. 또한 이스밀라는 그 사용법도 자세히 몰랐다. 이스밀라의 절망이 깊어갔다.

시온과 코스타는 계속해서 에질라이와 전면전을 벌이고 있었다. 둘이 동시에 달려들었으나 역시 14관문의 문지기였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솜씨로 둘을 격파하고 있었다.

루티온이 계단에서 모습을 보인 것은 이 때였다. 루티온이 메시지를 적은 슈크림빵 종이를 시온 쪽으로 있는 힘껏 날렸다. 카운터와 경품창고가 생각보다 가까워서 수월했다.

시온이 루티온의 처참한 몰골을 보고 놀라더니 이내 깨닫고 잠시 물러나 종이를 펼쳤다. 종이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플라즈마 소드로 무효화의 목걸이를 부숴주세요. 목걸이가 없을 때의 미래를 신경쓰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여기는 제가 맡겠습니다.'

시온이 알겠다고 하며 루티온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목걸이를 부수기 위해 빠져나갈 눈치를 조금씩 보았다.

루티온은 최대한 빠르게 에질라이에게 다가갔다. 에질라이는 루티온이 올라왔다는 것에 놀라면서도 이번에야말로 확인사살해주겠다며 검을 들고 빠르게 다가갔다. 루티온이 타이밍을 기다리다가 에질라이의 얼굴에 계획대로 살충제를 정면으로 살포했다.

에질라이가 고통받는 사이 시온이 재빨리 플라즈마 소드로 무효화의 목걸이를 부쉈다. 이스밀라가 깜짝 놀랐지만 목걸이의 마법이 사라진 것을 깨닫고 바로 자신의 마법을 사용해 루보를 일으켰다. 루보가 어리둥절해하며 일어났다.

에질라이가 루티온에게 반격하며 검을 루티온의 어깨를 향해 가로로 내리쳤다. 루티온은 자신의 부무장인 검을 꺼내어 살짝 막아냈지만 팔 안쪽을 살짝 베면서 피가 나왔다.(원작 제4화 참조) 검이 바닥에 떨어지자 허리를 굽힐 기운은 없던 루티온은 살충제를 한 번 더 뿌리고 가방에서 뭔가 두꺼운 게 있나 찾았다.

코스타가 그 장면을 보고 에질라이에게 검을 향했다. 검이 에질라이의 복부를 정통으로 꿰뚫었다. 주변에 선혈이 낭자했다.

루티온이 가방에서 카스트로의 두꺼운 예언서를 꺼내 그 모서리 부분으로 정신을 차리려는 에질라이의 머리를 힘없이 무정하게 내리쳤다. 두께와 굳기가 매우 적절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에질라이의 머리에서 피가 나왔다.

에질라이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살충제의 고통에 정신이 혼미했고 복부는 검에 찔렸으며 머리는 두꺼운 책에 의해 깨져가고 있었다. 에질라이는 자신이 최후에 쓰려고 놔뒀던, 그리고 어차피 이기더라도 써야했던 마법을 쓰기로 했다.

루티온이 점점 힘이 빠져 쓰러졌다. 그런 루티온을 코스타가 이스밀라와 루보 쪽으로 데리고 갔다.

그렇게, 에질라이는 마지막 주문을 외치고 숨을 거두었다. 주문을 인식한 번역기가 살짝 반짝였다.


한편 코스타가 에질라이를 검으로 찔렀을 때 루보는 치유의 만년필로 낭떠러지 아래의 사람들을 대규모로 치유하고 있었다. 낭떠러지 아래에서는 갈릴레우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사람들을 위아래로 수송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운반이 끝나자 모두들 전황이 어떻게 되었었는지 물었다. 그나마 멀쩡한 시온이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은 문지기인 에질라이의 사망을 확인하고 관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카스트로는 뭔가 이상하다 하고 이곳저곳을 유심히 살펴보던 도중 루티온의 목에 걸린 것을 보았다. 낚싯줄을 묶은 번역이였다. 카스트로가 루티온에게 물었다.
"너 혹시 문지기가 말할 때 번역기 틀어져있었어?"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있어서 잘 모르겠는데, 아마 그런 것 같아요."

카스트로는 번역기에 써진 글자들이 사실인 것을 보고 놀랐다. 번역기에는 에질라이의 마지막 마법이 해독되어있었다.
'거리상 가장 가까운 자에게 문지기 권한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