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즈마 소드 채널
루티온 일행은 관문을 넘어섰다. 넘어서자마자 보인 것은 거대한 철문이었다. 마왕성에서 이것을 세운 것은 원래 적들의 침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목적이었다. 그러나 루티온 일행은 이것을 그리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이에 딱 맞는 무기인 플라즈마 소드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시투스타만큼은 달랐다. 막시투스타는 그의 가방에서 검을 꺼냈다. 생김새가 조잡해보였지만 그럭저럭 멋을 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막시투스타가 자신있게 말했다.
"여러분, 드디어 제가 활약할 때가 왔습니다. 예언에 나오는 무쇠를 자를 수 있는 검을 제가 만들었다, 이 말입니다!"
막시투스타는 이 말을 하면서 매우 지랑스러워했다. 그는 지금까지 루티온 일행과 합류함과 거의 동시에 블랙홀에 빨려들어가고 구덩이에 빠지는 등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드디어 활약할 수 있게 됨에 기뻐했다.
한편 막시투스타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소식에 놀라워했다. 무쇠를 자를 수 있는 검은 그들이 가진 플라즈마 소드와, 무쇠를 넘어 마법까지 자를 수 있지만 지금은 두 개의 검으로 나뉘어졌다고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는 로즈와 카를의 성검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무쇠를 자를 수 있는 검의 등장에 놀라워했다.

막시투스타가 우쭐해하면서 은근슬쩍 비트립을 향해 멋을 부리면서 검을 들었다. 비트립은 늑장이나 부린다고 생각하며 속으로 재촉했지만 카스트로와 하스코는 그 속뜻을 알고 있었다.

막시투스타가 철문을 향해 검을 내리치며 말했다.
"제가 손수 만든 검, '막시투스타 소드'를 소개합니다! 이제 예리우스 님의 예언에 나오는 그 검을 선보일 때입니다!"
자칭 막시투스타 소드가 철문을 지나면서 철문에 상처를 남겼다. 상처는 대략 5cm 정도 되었다. 막시투스타가 다시 검을 들어 철문의 금 간 부분에 다시 내리쳤다. 이번에도 5cm의 홈이 파였다.

비트립은 막시투스타 소드라면서 철문을 부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기대에 못 미치는 성능에 실망했다. 그리고 루티온을 시켜 검을 베게 했다.
"루티온, 그냥 네가 자르는 게 빠를 것 같다."
"네."
루티온은 별 거 아니라는 생각으로 걸어가 철문을 플라즈마 소드로 베어나갔다. 검은 유려하게 무쇠를 갈라 막시투스타 소드를 가뿐히 능가했다.

옆에서 철문을 여러 번 내리치며 낑낑거리던 막시투스타는 당연히 충격을 금치 못했다. 예언에 나오는 검이 자신이 만든 검일 것이라고 굳게 생각했던 예언의 바로 그 검이 그의 눈 앞에서 생생히 보여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막시투스타는 그 자리에서 생각했다.
'예언에 나오는 무쇠를 자를 수 있는 검은 저것이었단 말인가? 그럼 나는 그동안 무엇을 위해 이 검을 만든 거지? 그보다도 비트립은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겠지?'
막시투스타에게 자괴감과 인지부조화가 몰려들었다. 막시투스타는 그 혼란스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분노와 슬픔과 애통함에 철문에 그의 주먹을 내리쳤다. 당연히 주먹은 매우 아파왔다. 막시투스타는 화풀이로 그의 검을 바닥에 내리쳤다. 그리고 가방에서 영어사전을 꺼내 포효하며 찢으려고 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내가 이걸 만들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보다도 예리우스 그 뒤진 놈은 이걸 왜 나한테 준 건데! 이걸로 예언을 풀어보라고? 어림도 없어!"
카스트로가 막시투스타가 영어사전을 찢으려는 것을 보고 바로 달려들어 막았다. 그는 영어사전으로 예언을 푼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해. 그걸로 예언은 확실히 풀 수 있다고!"
"네가 뭘 아는데? 네가 이걸로 풀어보기라도 했어? 안 풀어봤으면 말을 하지 마!"
막시투스타는 이제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예리우스고 카스트로고 뭐든 간에 반말을 쓰며 울부짖었다.
카스트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이 예언을 풀었다는 것을 말하면 잘못하다가는 루티온과 그 일행들을 방심시켜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 그렇네. 아무 말도 못하네. 안 되겠어, 여기서 확 죽어버려야지! 내가 누굴 위해 이딴 걸 했는데? 앙?"
막시투스타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사람들을 향해 영어시전을 집어던졌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검을 다시 집어들었다.
"부단장님, 부단장님께서 이러시면 저희는 어쩌자고요..."
하스코가 말했다. 하스코는 막시투스타를 따라다니고 있어서 그를 어떻게든 위로해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 그러나 막시투스타는 아직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아 몰라, 네 맘대로 해!"

한편 비트립은 이 모든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불안해했다. 내부의 불화는 자칫 모두를 패배로 이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비트립은 막시투스타에게 가서 말했다.
"그거 만든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그런 걸 만들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냐? 그니까 그렇게 침통해 좀 하지 말고."
막시투스타는 비트립의 말에 분이 단번에 풀렸다. 역시 사랑의 힘이었다. 그러나 비트립은 생각보다 그의 기분이 너무 쉽게 풀려서 단순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일단은 길 텄으니까 가보자고."
비트립이 말했다. 그리고 루티온 일행은 철문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근데 내 영어사전 못 봤어?"
막시투스타가 걸어가다 말고 갑자기 생각난 듯이 말했다.
"아까 네가 저기 던졌잖아."
비트립이 말했다.
"근데 안 보인단 말이지. 누가 주웠으려나?"


*

"아무리 찾아봐도 왕자님을 치료할 방법이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이 시간이 얼만데 아직도 찾지 못한 것이냐?"
마왕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리고 얼마 뒤 생각을 가담으며 거의 포기했다. 시간도 시간인지라 지치기도 했다.
"그래, 지금처럼 무효화의 목걸이를 차게 하면 되겠지. 수고했다. 연구는 계속 진행하도록."
신하가 돌아갔다. 그리고 마왕은 어떻게든 원래대로 돌려놓으려고 하며 회상했다.

그 때는 루티온 일행이 제2관문을 넘었을 때였다. 왕자는 예언을 해독하러 온 최고의 마왕성의 예언가인 레피체드 우스터를 따라 나섰다. 왕자는 예언가를 따라갈 때만 해도 단지 운명에 울상짓는 훌륭한 인성의 후계자였다. 그런데 다음 날 그 복도에서 쓰러져 있는 왕자는 그 전날과는 전혀 달랐다. 마왕이 일으켜세우자 그 예의범절하던 왕자는 반말과 함께 태도불량에 인성씹창으로 변해있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마왕성의 모든 학자들을 동원해도 왕자는 나아지지 않았다. 마을에서 민가를 불태우는 등 각종 기행과 범죄를 일삼았지만 유일한 후계자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결국 그에게 무효화의 목걸이를 씌우는 것 외에 마땅한 해결책이 없었다. 지금도 그 목걸이가 없으면 바로 난리를 일으켜 버리니 골치아팠다.

한편 그 날 이후로 사서 파타야에 사랑에 빠진 것 같기도 했다. 이유는 알지 못하지만 이것도 무효화의 목걸이를 쓰면 사라졌다. 그래서 무효화의 목걸이가 없을 때는 사서 파타야를 데려와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었다.

마왕이 마음을 다잡고 예언서를 폈다. 예언가 레피체드가 그 날 보여준 막대기가 4등분으로 쪼개지는 것은 어떻게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도 그녀는 예언을 풀려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최근에는 그녀가 서기장 레플레 에도츠를 만나기도 했다.

마왕이 여러가지 잡생각에 그의 신세를 한탄하며 짜증과 함께 옆에 있는 동상을 내리쳤다. 동상이 산산조각나며 흩뿌져렸다. 그래도 마왕의 근심은 풀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