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아파트의 지하주차장. 105동 아파트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 한 소녀가 CCTV를 향해 반갑게 인사한다. 그 모습은 주차라인을 따라 생각없이 늘어선 흑백의 승용차들과는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그런 일이 몇년째 반복되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되는 그 소녀가 이제 중학교 교복을 입고 그 CCTV에 인사한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것이 내 경비원 생활의 유일한 낙이었다.
 
소녀가 처음 인사를 했을 때는 지나가다가 장난치는 일개 학생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 일이 몇번이고 반복되다보니, 나도 그 소녀의 행동에 의미가 있음을 깨닫고 이제는 CCTV에 중계되는 영상을 통해 화면 너머로 소녀를 바라본다. 오늘은 교과서를 받는 날이었나보다, 오늘은 우산을 집에 두고 나왔나보다? 오늘은 현장학습을 하러 나가나보다. 사시사철 변하는 그 모습이 나를 아빠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소녀의 초등학교 시절, 나는 소녀에게 왜 CCTV를 향해 인사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러나 그 소녀는 내 질문에 알 수 없는 미소만 짓고는 CCTV를 향해 다시 웃음을 보이더니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그 이후로 나는 소녀에게 더이상 그것에 대해 묻지 않았다.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을 억지로 끄집어내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소녀를 보며 머릿속으로 이유를 나름대로 그려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처럼 출근을 하던 나는 내가 근무 중인 아파트의 재개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 아파트가 은근히 오래 되었으니 재개발을 해야 하긴 할 것이다. 그런데 재개발이 되면 나도 거기서 일하지 못하게 되고, 그 아이가 인사하는 장소도 없어진다는 생각에 약간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인생의 사소한 즐거움이 소리없이 빠져나간다면 이런 느낌일까.
 
그렇게 아파트의 재개발 때문에 입주민 대부분이 어딘가로 인사를 가버리고, 그 소녀도 결국에는 어딘가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마지막 순찰을 돌던 날이었다. 지상과 지하 모두 사람들이 빠져 적막이 감돌았고, 주인에게 버려져 방치된 장기주차 차량들을 제외하면 롤러스케이트장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완전한 평지였다. 이제 이곳과는 작별이겠구나, 그 소녀와의 추억도 마음의 별로 남겠구나 싶었다.
 
저 멀리에서 회사에서 나온 듯한 제거반 사람들이 수다를 떨며 CCTV를 차례로 뜯어내기 시작했다. 101동부터 104동까지 뜯어져나간 CCTV를 보니 과거가 기억으로만 남게 된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105동의 CCTV를 제거할 때였다. 그 소녀가 '잠깐만요'하면서 아파트 입구로 뛰쳐들어왔다. 소녀는 제시간에 맞춰 오려고 뛰어와 헐떡이면서도 CCTV를 보자 바로 눈웃음을 지었다. 이제 이 장면도 보지 못하겠구나 싶었다. 나도 참 이 네모난 카메라가 뭐라고 이렇게 미련을 느끼는지.
 
소녀가 105동 CCTV가 제거되는 모습을 보며 여전히 눈웃음을 지었으나,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억누르기는 힘들었다. 소녀를 바라보던 제거반 직원들이 '얘는 뭐하는 놈이냐'하는 표정을 지었다.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는지 제거반 직원 중 한 명이 소녀에게 물어보았다.
 
"얘야, 왜 우는 거니?"
"저 CCTV는, 저에게는 아버지에요."
제거반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소녀가 코를 훌쩍거리며 말을 이었다.
"5년 전에, 아버지께서 병으로 입원하셨어요. 저희 가족은 매주 병원으로 찾아갔고, 아버지는 그때마다 저희를 반갑게 맞으셨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저에게 유언을 남기셨어요. '애야, 아빠는 죽지 않을 거야. 눈을 뜨지 않아서 사람들이 내 몸을 불태워도, 나는 네 곁에 있을거야.'. 그래서 제가 물었어요. '그러면 어디에 계실건데요?' 그래서 아버지께서 한마디 하고는 숨을 거두셨어요. '우리 아파트 앞에 CCTV 있지? 거기서 내가 너를 지켜보고 있으마.'......"
 
소녀가 눈물을 닦았다. 소녀의 아버지는 죽으면서도 소녀를 기죽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의 영혼이 저 CCTV에 계속 남아있으리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해가 되었다. 이전까지의 상황을 겹쳐서 생각해보자니, 나도 따라서 눈물이 나왔다. 제거반 사람들이 우리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소녀는 그 이후로도 계속 CCTV 주변을 떠나지 못했다. 그걸 보고 안쓰러워 한 제거반 사람들 중 가장 젊어보이는 사람이 말했다.
"괜찮으면 이거 네가 가져가도 되고."
"정말요?"
"어, 그래. 이거 어차피 가져가서 쓸데도 없으니까, 너 줄게."
소녀가 눈물을 닦으며 황송스럽게 연거푸 감사인사를 했다. 제거반 사람들이 아빠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났다. 내 근무지는 다른 빌딩으로 옮겨졌다.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지금은 그 소녀가 잘 있으려나'하는 회상이 무의식중에 떠올랐다. 
 
경비실 옆으로 한 고등학생이 CCTV를 들고 거기에 말을 걸면서 지나갔다. 그 순간, 문득 이 고등학생이 그때 그 소녀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