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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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2시 30분이었다. 기숙사 자습실은 학생들의 수면권을 보장하기 위해 2시 30분 부터는 강제 소등이었다. 랑이는 항상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다가 들어갔다.

 

“완전 뿌듯해! 오늘도 계획 세운대로 다 했어!”

 

 그의 계획은 항상 투철했고, 성공적이었다. 그는 정말 성실한 학생이고, 남들보다 영민했다. 어떤 과목이든지 항상 최고였고, 선생님들 말도 잘들어서 학생으로서의 이미지가 좋은 편이었다.보통은 2시쯤만 되도 애들은 피곤해서 침실로들어가는 편이다. 그러나 그날은 인기척이 아직 남아있었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웅크려 있길래 이제 소등이라고 말해주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조금 가까이 갔을 때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훌쩍거리고 있었다. 툭 건드려 보니, 그의 친구 A였다.

 

 새학기가 되자, 새로 만난 A의 담임이 급우들에게 가장 먼저 했던 말은 반갑다는 말보다 학생의 본분이었다. 그는 학생은 학생다워야 하고, 학생 다운 것이 뭐냐면 선생님의 말을 잘 듣는 것이다. 삭발이나 백지동맹같은 철지난 반항은 하지 않으며, 기본적인 교칙 준수는 물론, 개인적인 열정들은 모두 학업에 쏟는 것이다. 갑자기 예체능계열 친구들을 손들어보라고 하더니 이름을 체크하고선 면전에서 너네는 그러므로 담임의 재량 밖이니 알아서 학교생활 잘하라고 하였다. 기분나쁘지만 기분나쁠필요도 없는 그런 말들이었다.

 

 학교에는 매년 열리는 학술제 행사가 있다. 1년 동안 학생 개개인이 각자의 영역에서 연구한 것을 발표, 교직원들이 평가해서 상을 주는 방식이다. 당연히 이는 대학 진학에 영향력이 큰 상이며, 학업의 중요한 일부이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좋은 결과를 얻을려고 노력한다.

 

 A는 물리학분야의 역학 어쩌구의 발명품을 냈다. 랑이가 이름을 못외운 이유는 너무 과학적인 용어라 생소했고, 무엇보다 이름이 길어서이다. 그리고 랑이는 문과라 그런거 모른다. 비문학에 나와도 이니셜로 대체해서 체크할이름이다. 또는 네모, 또는 세모. 랑이는 왜 그토록 물리학 분야를 파냐고, 정말 학구적인 열정이나 재미를 느껴서 그런거냐고 물어보니 A의 대답은 이러했다.

 

“우리 아버지가 물리학 교수셔. 솔직히 나도 이거 재미없어... 근데 아빠가 도와주면 상타기 쉬워. 나 작년에도 아빠가 도와줘서 탄거야.”

 

 랑이는 부러웠다. 언뜻보면 비겁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랑이는 그런 것을 비겁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그것을 입시제도를 결정하는 정치인의 입장이었으면 자신들의 제도에 생긴 허점이니 ‘편법’이라고 칭할 것이다. 허나 그런 정치인들이 만든 세상에서 ‘살아가는 입장’인 랑이에겐 그건 그저 ‘전략’일 뿐이다. 가령 자기 중학교 동기중에는 주변에 질 낮은 학교로 전학해 좋은 학교성적을 쉽게 따서 대학에 잘붙으려고 시도한 친구도 있었다. 주변 소문으로는 그 방법은 통했다고 한다. 그걸 랑이는 그저 ‘전략’이라고 불렀다. 그걸 어느 곳에서도 위법이라고 칭할 수 없는데 그런 허점을 이용하는 것은 머리를 잘굴리는 것 뿐이다. 비행기를 타고가든, 인력거로 가든, 서울대로 가면 되는거다.

 

 평가 발표의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가장 긴장하는 순간이다. 각자 자신의 연구 결과물이 좋은 성적을 얻길 바랄 뿐이다. 1등 상은 이번에도 A의 역학 어쩌구 였다. 랑이는 친구가 상을 탄 것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기 전에 친구는 이미 벌떡 일어나서 소리치고 있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얼마나 쩌렁쩌렁 했는지 강당이 모두 울렸다. 그리곤 잠시 조용해졌다. A는 원래 이런 분위기 메이커이다. 

 

 잠깐의 정적이 지나고 학생들은 모두 웃기 시작했다. 주변에선 ‘쟤 갑자기 아버지는 왜 찾는거야? 하하! 바보같아!’ 라던지 ‘어머니는? 이 밥통아!’ 등의 말이 쏟아져 나왔다. 웃음 바다 속에서 A는 뒷통수를 긁으며 상을 탔다. 랑이는 이 비웃음이 의외로 정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화나 있는 이가 한명 있었다. 그것은 A의 담임이었다. A의 담임은 학술제가 끝나기 무섭게 A를 교무실로 불러 몰아세웠다. 

 

“너 이 쌍놈의 새끼! 너 때문에 교장한테 내가 얼마나 창피 당한지 알아? 하! 시이-발 살다 살다 별 또라이 같은 애를 다봤네.”

 

 A는 바짝 쫄았다. 그래도 이쯤까지는 아직도 상받은 즐거움 때문에 속으로는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 개새끼봐라? 그런 표정으로 나온다 이거지? 시이-발 나는 선생이고 넌 학생이야! 알아? 근데 니가 나를 물로봐?”

 

 담임은 엄청난 호통을 쳤다.

 

“생활기록부가 어떻게 되는지 두고보자.”

 

 그 말을 끝으로 A의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아니 미친. 실화야? 선생이란 작자가 그 모양이라고? 뭐해, 빨리 신고해서 그 새끼 엿먹여!”

 

“안돼.”

 

 A는 울면서 고개를 휘저었다.

 

“아니, 왜?”

 

“신고한다고 바로 짤리겠어. 그전까지 내가 어떤 수모를 당할 줄 알아. 난 참을 수 밖에 없어. 그 사람 정말 가차없고 악랄하대. 애초에 내가 잘못한거니까 참는거야. 애초에 한번은 봐준댔어.”

 

“시발, 니가 잘못한게 뭐가 있어! 좋아서 소리한번 지른거 가지고 그렇게 지랄하는 담탱이 새끼가 또라이인거지! 그걸로 그렇게 체벌한다는게 말이되냐?”

 

“우린 학생이니까 그 사람이 잘못했다면 잘못한거야.”

 

 A는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대학 못가면 어떡해...”

 

 그 한마디에 랑이는 너무나 많은 걸 느꼈다. 우리는 학생이다. 독자적 행동을 하기엔 나약한 존재고, 교복은 그러지 못하게 만든다.

 

“주말에 우리 지역 교육청에 가서 신고하자.”

 

“안된다니까.”

 

“너가 안되면 내 이름으로 할께. 너는 그냥 어떤 학생이라고만 말하고 신고는 내 이름으로 넣을께”

 

“야-“

 

 말을 툭 끊더니,

 

“난 해야겠어.”

 

 랑이는 주말에 사복으로 갈아입고 기숙사에서 나와 교육청에 신고를 하러갔다. 그리 복잡한 절차는 아니었다. 청소년부 관계자를 만나고 이에 관하여 이야기 한 뒤 곧바로 수사를 진행할 것을 약속받았다. 이 후의 보복적인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게 막을 것이라 이야기 해주었다.

 

 랑이는 어른의 말이라 안심하고선 기숙사로 복귀했다. 다시 일상이 시작됐고, A는 랑이의 이야기를 듣고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원래와 같은 학교생활은 이어져갔다.

 

 어느 날이 되자, A의 담임은 A를 다시 교무실로 불렀다. A는 무언가 직감했지만 그 상황에서 도망칠 수도 없었다. 교무실로 불려갔을 때는 이미 매를 든 담임, 아니 담탱이가 버티고 있었다.

 

“니가 학생이야! 니가 학생이냐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때렸다. 체벌은 매로만 이루어지지 않았고, 주먹과 발길질이 오갔다. 주변 선생님들도 말렸지만 어른의 행동은 감히 다른 어른이라도 말릴 수 없었다. 그 광경을 주변에 있던 학생들이 봤고, 다른학생들도 전해듣게 되었다.

 

“아니 이봐, 이 선생. 애를 어떻게 그렇게 때려! 가서 빨리 사과해! 애가 신고해서 교직 박탈당하면 어쩌려고?”

 

 여기서 포인트는 가장 뒤의 문장이다.

 

“조용히 하세요. 난 이미 그렇게 될 예정이니까. 그래서 이렇게 한거고.”

 

 쓰러져있는 A를 향해서 모두가 섬뜩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A는 그 와중에도 모든 광경을 봤다. 

 

 기숙사에 돌아와서, 아무도 감히 A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이미 정상적인 학교 생활은 물건너 갔다. A는 모든 것을 잃은 표정으로 랑이에게 다가왔다. 

 

“죽을까?”

 

 랑이는 화들짝 놀랐다.

 

“너 미쳤어?”

 

“그럼 안 미쳐?”

 

 랑이는 어떻게 해야할까란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저 깨달을 뿐이었다. 자신은 너무나 나약하다. 자신은 학생이다. 자신의 본분은 학생답게 행동하는 것 뿐이었다. 그리곤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A를 피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 A는 기숙사에서 수차례 쓰러진 채로 발견되었다. 스스로 벽에 머리를 박는다던지 손목을 긋는다던지 등의 일로 말이다. 학교는 A를 걱정하기 보단 소문이 새 나가지 않도록 A의 부모님에게 뒷돈을 주어 입을 막았다. 정말 웃기게도 이것은 현실적으로 대다수의 학교가 택하는 방법이다. 또한 모든 치료도 학교 양호실 선에서 해결되거나 주말에 부모님이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오는 것 뿐이었다. 구급차를 못부르게 학교에서 막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자살예방교육을 실시했다. 급하게 예정되어 싸구려 강사로 배정해서 그런지 강사의 말은 너무나 뻔하고 쓰잘데기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학생들은 자습이 부족하다. 이 행사니, 저 행사니 모두 다 열심히 듣기엔 학교에 행사가 너무 많다. 그거 다 듣고 나면 공부 못한다. 그러니 학생들은 대학에 필요한, 중요한 행사만 열심히 참여하고 나머지는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아니, 그냥 자습할 책을 가져와 강사는 떠들라고 하고 공부한다. 그리고 이걸 모든 교사들이 그저 방관한다.

 

 A의 상태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져 가던 어느날, 시덥잖은 학교 행사에 A가 불참하는 일이 발생한다. 아이들은 그냥 째고서 교실가서 공부하나 보다 생각했다. 랑이는 뭔가 낌새가 이상해서 기숙사로 가보았다. 자습실에 있는 A의 자리에는 A의 교복이 곱게 개어져 있었다. 그리곤 자습실 서랍장을 열었더니 약간 축축한 종이쪼가리가 나왔다. 그리고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다음 생에는 대학이란게 없었으면 좋겠어.’

 

랑이는 서둘러 기숙사 옥상으로 뛰어올라갔다. 그리고 속으로 다음의 계획을 세웠다.

 

첫째, A를 난간에서 잡아 내린다. 정신차리라고 얼굴에 한방 먹인다.

둘째, ‘시발, 정신차려 이 새끼야! 대학이 그렇게 인생에 존나 중요해? 그거 결국 좆도 아냐!’ 라고 말하고 한방 더 먹인다.

셋째, ‘빡돌지 씹새끼야? 뛰어내릴 생각 말고 빨리 나한테 갈겨!’ 라고 말하며 다시 한방 더 갈긴다.

 

계획은 놀랍도록 완벽했다. 랑이는 천재였다. 훌륭한 배움아닌가.

 

옥상문이 열렸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 랑이는 놀랐다. 그저 난간앞에 A의 말끔한 실내화가 있었다. 랑이는 그대로 털썩 주저 앉았다. 머릿속에는 A의 그 말이 떠올랐을 뿐이었다.

 

‘대학 못가면 어떡해’

‘대학 못가면 어떡해’

‘대학 못가면 어떡해’

 

시간이 지나 A의 장례식이었다. 거기서도 여전히 랑이는 교복을 입어야 했다. 장례식장의 TV서는 정치인들의 토론방송이 진행 중이었다. 랑이는 잠깐 그 앞에 앉았다.

 

‘후보님, 이번 용인 학생 자살 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한민국 학생들의 학업스트레스는 이해합니다. 허나, 이번 정부에서 추진하는 수시 활성화 방안들은 입시를 더욱 공정하게 만들것이며, 더불어 학생들의 공교육에 대한 신뢰 향상과... 학생 자살 예방교육이 효과를... 또한 적재적소라는 교육의 최고 목표를 달성시키기 위하여...’

 

랑이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고, 세상을 살아가는 나약한 학생일 뿐이었다. 감정은 있지만 냉철하기를 강요받았고, 교복을 입고있었다. 분노 할 수도, 울 수도 없었다.

 

그 뒤로 결국 공부를 붙잡을 수 없었다. 성적은 떨어져 갔지만 전처럼 위기감을 못느꼈다. 사실 위기감은 항상 도처에 있지만 그 위기감 보다도 훨씬 더 큰 감정이 랑이를 움켜쥐고 있었다. 하지만 랑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저 감정을 가질뿐이고,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 까지 선생들은 터치할 수 없다. 그저 뻔한 상담 몇 분이나 도움이 되지도 않는 교육 프로그램에 보내는 것 뿐이다.

 

 

난간이었다. 몇일이나 잠을 못잔 건지 얼굴은 송장이나 다름없었다. 랑이는 A를 떠올렸다. 랑이는 처음으로 날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다. 어딘가를 날아가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저 살기 위해서다. 태어날 때 누구나 날개란 건 가지고 태어나는 법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웃긴이야기로만 들릴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날개가 없다고 배우게 된다. 랑이 또한 그랬다. 하지만 랑이는 이러한 사실을 지금은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자신의 상상이 만들어낸 착각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전에, 랑이는 실험을 강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