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가는 접시를 유려하게 피한 종업원은 그의 앞에 하얀색 사발을 내려놓았다. 그와 동시에, 눈 앞을 가리듯이 새하얀 김이 가열차게 솟아올랐다. 방금 깨진 창문으로 찬 바람이 들어와서일까, 여하튼 고추기름의 알싸한 향은 순식간에 테이블에 앉아 있는 손님의 얼굴을 지배했다. 따듯한 기운 때문인지 맛있는 것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그의 얼굴에는 순식간에 안도의 표정이 떠올랐다. 정갈하게 국물 위를 덮은 것은 냉동하지 않은 해물들이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맨 위에 올라간, 다른 중화요리점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압도적인 크기의 깐새우가 그릇 안의 비주얼을 책임지고 있다. 그 외에도, 어디서나 쓰고 있는 가짜 홍합이 보이지 않는 것이 그에게는 더욱 더 맘에 드는 요소였다. 비죽비죽 솟아나와 있는 야채들의 사이로 샛노란 면에 그의 눈동자가 옮겨지자 마자,

 그릇 옆에 있는 젓가락을 들어 빨간 국물 안으로 힘차게 쑤셔 넣는다. 다른건 몰라도 그에게 짬뽕이라는 음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감이었다. 일단 면이 불기 전에, 가장 맛있는 타이밍에 면발을 모두 섭취하는 것이 당면한 음식에 대한 당연한 예의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같은 이유로, 그는 배달로는 절대 짬뽕을 먹지 않는다). 젓가락을 타고 급격히 상승하는 면발들과 함께 새우, 양배추 등 다양한 꾸미들이 국물을 헤치고 같이 딸려오다, 다시 국물 위에 살짝 떠 있는 기름으로 옷을 입고 입수한다. 일단 이 한입, 제일 처음에 가장 면의 탄성을 잘 느낄 수 있는 이 한입, 이것이 가장 중요했다. 누군가가 면상에 주먹을 맞고 바닥에 나뒹구는 아수라장 따위는 아예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그의 눈빛은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딸려오는 면발에 집중하고 있다.

 이윽고 그의 크게 벌린 입으로 대량의 면발이 흡입되었다. 뜨거운 기운에 방해받으며 가늘게 뜨고 집중하고 있었던 그의 눈이 지금 벌어진 입만큼이나 크게 확장되었다. 짬뽕을 찾아 이 전문점 저 전문점 모두 다녀왔던 그였지만, 지금까지 첫 젓가락질에 이만큼 짙게 느껴지는 맛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처음 이빨에 닿아오는 면발의 감촉은 지금까지 비교할 수 없는 탄력이 있었고, 그 면발을 코팅한 국물의 맛은 직접 국물을 떠먹지도 않았는데도, 마치 그 맛이 어디 가겠냐는듯한 당당함을 입 안에서 흩뿌리고 있었다. 혓바닥을 슬로모션으로 훑고 지나가는 육수의 진한 맛은, 씹을때 마다 입안 곳곳을 휘젓고 다니다 결국 아쉽게도 목구멍으로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서둘러 대접을 들고 국물을 맛보기로 한다. 그렇다. 지체할 시간 따위는 없는 것이다. 그의 식도를 타고 비강으로 역류하는 이 그윽한 풍미는 도저히 자제심이란 걸 찾을 수가 없게 만들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뜨거운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갈 때, 그는 다시 한 번 감탄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맛이란 말인가. 분명히 국물 안에 보이는 맛은 다 들어있는 것 처럼 보인다. 새우향도 분명히 들어 있고, 홍합 대신 넣은 바지락국물맛도 충분히 감칠맛을 살려주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눈 앞에 시각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굳이 집어서 구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깐새우, 바지락 뿐만 아니라 모든 재료의 향이 하나로, 너무나도 조화롭게 어우러져 단 하나의 묵직한 맛을 이끌어 냈다고 해야 하나, 정말 여기가 아니면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그런 맛이다.

 한입이 두입이 되고, 결국은 언제 먹었는지도 모르게 음식이 절단나 버리는 경우가 가끔씩 있다. 대부분의 경우 그럴 때는 주변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금 짬뽕국물보다 더 붉은 선혈이 그의 테이블 위를 꽃모양으로 수놓고, 날아다니는 이빨의 갯수가 눈에 띌 만큼 많아지는 이 상황에서도 짬뽕을 들이키는 그의 모습은 한 점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의 적수는 오로지 눈 앞에 있는 빨간 국물이 담긴 그릇이었다. 아삭거리는 야채와 함께 탱글탱글한 깐새우를 이빨로 밀듯이 씹어내는 그의 모습은, 인도주의적인 모습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현재 가게 안의 상황을 더욱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데 일조했다.

 빈 그릇이 테이블에 떨어질 때만 나는 청량한 음색이 가게 안에 조그맣게 울려퍼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는 뭐로 가격하는지도 모르는 타격음으로 그 소리를 신경쓸 수가 없었다. 그는 아무도 없는 계산대에 짬뽕값을 지불하고, ‘당기시오’라고 써져 있는 문을 밀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그가 방금 짬뽕을 먹은 그 가게는 마치 불꽃놀이 축제의 피날레를 장식하듯 화려하게 폭발했다. 형형색색의 불꽃이 천지사방으로 튀어나가는 와중에도,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눈 앞에 뜬 보름달을 응시하며 눈물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