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에서는 수십톤의 콘크리트로 덮인 요새가 긴 포신을 겨누고 있었지만, 후방인 이곳 불송과는 크게 상관 없는 일이었다. 알프스 산맥 한가운데에 있는 이곳은 마지노 선과는 굉장히 멀리 떨어진 곳이었고, 그래서 전술적 가치는 거의 없다시피 한 곳이었다. 


그래도 어쨌거나 전운이 감돌고 있었으니 정부는 이곳에 제 55 보병 연대-라 쓰고 마을의 남자란 남자는 싹싹 긁어모은 예비군-를 창설해 배치했다. 연대장은 촌장이 맡았다. 그렇다면 그렇게 모인 이들의 전력은 어떠하였는가 하면-


"아들아, 이거 장전 어떻게 하는거냐?"


1차 대전이 끝난 후 새로 도입된 MAS-36를 처음 보는 참전 용사들은 자신들의 아들-혹은 손자에게 장전법을 묻고 있었으며,


"젠장, 이 고물은 왜 발사가 안돼? 어?"


"앙리네 지붕 날린 미친새끼는 누구야!"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박격포를 처음으로 다루는 젊은이-라 해봤자 30대지만-이웃의 지붕을 터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다른 어떤 군대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 사기였다. 나고자란 고향 땅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일어난 그들은 굉장히 의욕적으로 전쟁 준비에 임했다. 그러다 보니 그 부작용이 꽤 있었는데,


"아이고, 나이는 처먹을대로 처먹은 인간이 뭔 꼴을 볼라고 이런데, 참!"


평소 어깨가 약하던 소 키우는 장 할아버시는 사격 중에 어깨가 탈골 되었으며


"자네 이리 와보게. 히틀러 개새끼 해봐."


"히틀러 개새끼!"


"자네는 어디가? 이리 와서 비스마르크 씹새끼 해봐."


"예?"


"여기 스파이다!"


가끔 유제품을 사러 들어오는 상인들은 뜻 밖의 고초를 겪었다. 중간중간에 의도치 않은 사건사고가 있었으나, 어쨌든 그들의 전쟁준비는 나름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렇게 약 한 달이 지난 시점에, 적이 왔다. 


새벽의 마을은 고요했다. 유난히도 일찍이 일어나 홰를 치는 앙리씨네 수탉도 일어나기 전이었으니까. 그 고요 속으로 황급히 종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적이다! 모두 기상해!"


촌장의 외침과 함께 집에서 남자들이 꾸물거리며 나왔다. 


"자자, 총 준비했지? 2열 종대로 맞추고 간다!"


그렇게 조금을 걸어간 그들은, 말 그대로 얼어버렸다.


툭.


어디선가 총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무도 그에게 뭐라하지 못했다. 그들의 눈 앞에는, 10m에 달하는 길이에 약 5m는 족히 넘어보이는 높이를 가진 기계덩어리가 앞에 있는 까닭이었다.


"와암마, 저게 뭐시당가?"


"땅끄 아녀?"


"세상에 어떤 땅끄가 저렇게 크당가?"


사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그들이 본 탱크는 기껏해야 Mk 시리즈-길어봤자 3미터에 높이는 2미터 정도로 간당간당한-이었기 때문이었다. 웅성거림이 커지자, 촌장은 소리쳤다.


"어허어허! 조용조용! 신호하면 사격한다! 장전, 사격!"


타다다다당


물론,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몇 차례나 총탄을 쏟아 내었지만 탱크-라고 추정되는 기계는 꿈쩍도 안했다. 


"저거 뭐 총알이 들어가기는 하는감?"


"씨알도 안먹히는거 같은디..."


그 순간, 미동도 않고 있던 기계가 움직였다. 굉음과 함께 바퀴의 양 옆에서 다리같은 것이 튀어나왔고, 두 개의 포가 달린 머리는 길쭉한 모양으로 바뀌었다. 그리곤, 불을 뿜었다. 


콰과과과광!


"뭐여, 어디다 쏜거여?"


"그르게. 뵈도 않네. 즈거 그냥 불하고 소리만 나는거 아녀?"


남정네들이 웃고 떠드는 그때, 촌장이 다급하게 외쳤다.


"후퇴! 후퇴! 살고 싶으면 튀어라 이놈들아!"


"촌장, 아니 연대장님 낮술 하셨수? 그게 뭔 소리요?"


그러자 촌장은 그 말을 한 남자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며 말했다.


"모지란 놈아! 니 눈엔 저게 안보이냐?"


촌장이 가리킨 그 곳에는, 버섯모양의 구름과 함께 산봉우리 하나가 깨끗하게 지워져 있었다.


그렇게 불송 주둔 55 보병연대는 해체되었다.


* * *


......아직도 불송 지역의 제 55 보병연대가 왜 와해되었는가는 불명이다. 지역민들은 파괴할 수 없는 거대한 탱크가 나타나 전술적으로 후퇴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불송은 종전 시 까지 나치가 한 번도 접근한 적이 없는 지역이다. 그러나 지역민들이 증거로 제시하늗 산봉우리의 흔적을 조사한 결과 최근에 어떤 강력한 힘에 의해 사라진 것으로 나타나 의문을 더하고 있다. 한편, 사법당국은 군법 위반으로 기소된 촌장을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로 판단했다.


* * *


"젠장, 지원해준다던 시즈 탱크는 언제 오는거야?"


"워프 중에 좌표 오류로 이상한 데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씨발, 그게 말이 돼?"


"...지금 도착했답니다!"


"오! 이제 살았다! ......근데 저거 표면이 왜 저따구야? 골프공으로 존나게 때려논거 같이 생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