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르르르르....


 정적을 깬 것은 리돌의 주머니였다. 리돌은 갑작스러운 알람에 놀라 잠시 허둥대다, 주머니에서 원자 분해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선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시간이야.”


 마치 홍콩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마치 진짜로 권총을 쥐듯이, 리돌은 양 손으로 원자 분해기를 꼭 쥐고서는 자신이 만들어 둔 장치를 향해서 조준하였다. 

 그런데, 리돌의 모습이 좀 이상하다. 지금까지 저 뭐든지 분해해 버리는 권총을 쓸 때 리돌이 보이는 표정은 딱 하나였다. 그것은 세상의 절반을 날릴 수 있다는 광기에 찬 자신감도 아니요, 내가 이 힘을 제어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아니었다. 단지 빗자루를 든 환경미화원 아저씨의 표정. 그 권태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언가를 무서워하듯, 벌벌 떠는 모양새로 총을 쥐고 있었다.


 “리돌, 왜? 뭐 잘못 됐어?”


 리돌은 마치 태엽인형이 움직이듯, 딱,딱 소리가 날듯이 각을 맞추어 고개를 나에게로 돌렸다. 그리고서는 굉장히 떨리는 입술을 움직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차분하기 그지 없었다.


 “다음 번 경고가 울리면 총이 자동으로 발사됩니다.”


 “뭐, 시간을 정확하게 맞추려면 그러겠지.”


 “과학자는 모든 보안상의 이유로 계산했다고 말했지만, 이 총으로 뭔가를 날려 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래, 편지를 달까지 날린다는 거 아냐.”


 “아닙니다. 폭발. 아.”


 갑자기 리돌이 아프다는 듯 비명을 질렀다. 나비 놈이 갑자기 리돌의 어깨를 차고 뛰어 내렸기 때문이었다. 나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어라 소리를 치며 계단으로 뛰어 내려갔다. 


 “주군! 그런 일이 있으면 얘기를 먼저 해 주십시오오오....”


 목소리는 계속해서 멀어지고 있었다. 마치 자연재해 앞에 동물들이 대피하는 걸 보는 것 같군. 왜 저래? 나는 일단 리돌이 무슨 말을 하는 지를 더 파악해 보기로 했다. 


 “폭발?”


 “네, 폭발.”


 잠깐만.

 

 “자, 다시 정리해보자. 지금 저 쇠공을, 우리 집 옥상에서, 폭발로 달까지 날린다는 거야?”


 리돌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어렸을 때 다큐멘터리로 보았던 아폴로 11호의 이륙장면, 지구로 날아오는  오는 운석을 폭파시키기 위한 시추공 양반들의 여정, 2차 세계대전 당시 미사일 제조과정 등등이 주마등처럼 펼쳐졌다. 그 모든 상황이 순간적으로 떠오르고 난 뒤,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왜 그걸 이제서야 말해!!”


 “나도 지금을 알았습니다.”

 

 리돌도 마치 절규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언제나 그렇듯 목소리는 평화롭기 그지 없었다. 뭘 어쩌자는 거야, 지그음! 지금 여기 있는 사람도 모두 통째로 날아가 버릴 수 있다는 거잖아! 나도 나비놈처럼 뛰어 내려가야 되나? 아니, 벌써 늦은 거 아냐?! 어떻게 해야 되는 건데!!!


 그리고 리돌은 어찌할 줄 모르고 총을 들고 있을 뿐이었던 그 때,


 뜨르르르르....


 알람이 울렸다.

 

 상이하게 다른 반응이지만, 나와 리돌의 시선은 동일한 곳으로 향했다. 리돌의 총 끝에서 나오는 광선이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보인다. 그 궤적은 정확하게 공중에 떠 있는 쇠공 아랫단으로 뻗어 나갔다. 나는 광선에 그 받침대가 닿는 그 순간, 본능적으로 몸을 보호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팔로 내 앞을 막았다.


 “이...”


 내 입에선 어떤 말이 튀어 나오려 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반응은 순식간이었다.


 우웅! 챙그랑! 와장창!


 엄청난 충격파가 터져나왔다. 뒤에서 유리창이 깨지고, 무언가 날아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 온다. 하지만 나는 등 뒤의 아비규환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 역시 날아간 무언가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등에서 느껴지는 둔탁한 통증과 함께, 나는 정신을 잃었다.



 “민재.”


 나를 부르는 리돌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대답을 하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아직 눈을 뜨지도 않고 있었다. 감은 눈꺼풀을 띄우려 노력하다 보니, 의문점 하나가 떠오른다.

 내가 언제 잠에 들었더라?

 머릿 속에서 '생각' 이라는 도화선이 터지고 나자,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기억이 마지막으로 나는 구간은, 리돌이 기계를 가동시킨 충격파에 날아간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몇 시? 난 도대체 얼마 동안 정신을 잃고 있었던 거지? 우리 집은? 

 해저에 갇혀 있던 공기방울이  순식간에 물 위로 솟구치듯이, 제정신은 순식간에 몸을 지배했다. 그와 동시에, 떠지지 않던 눈꺼풀도 내 말을 듣기 시작했다. 


 눈을 뜨자, 그렇게 밝지는 않은 빛이 눈동자 안에 가득 찼다. 태양빛 같지는 않았다. 아마도 나는 방 안에 있는 것 같았고, 저 빛은 방 안의 형광등인 듯 해 보였다. 그것은 정신이 돌아오고 내 팔에 느껴지는 이불의 감촉이나, 몸에 느껴지는 따듯한 온도로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 있었다. 왜 유추를 할 수 밖에 없었냐면,  내가 눈을 떴다는 것을 확인하자 마자 무언가가 나에게 안겨 들었기 때문이었다.

 

 “민재.”


 리돌은 침대에 누워 있는 내 위로 자신의 상반신을 포개었다. 언제나처럼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하지만 그 반응은 절대로 건조하지 않았다. 

 리돌은 울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내 잘못입니다. 내가 !@#^%$^@#$@”


 리돌의 목소리는 뜻이 아닌 감정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감정이 복받쳐 이야기를 쏟아내려 하다 보니, 번역기에 고장이 온 모양이었다. 오늘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리돌은 그러거나 말거나 끝없이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 일단 리돌을 진정시키기 위해 몸을 뺐다. 움직일 때마다 아까 부딛혔던 등짝에서 무거운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참고 움직일 만은 했다.

 나는 조금 자유로워진 오른팔로 나를 껴안고 있는 리돌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려 주었다. 그녀는 끝없이 내뱉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멈추고서는, 눈물과 놀라움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괜찮아.”


 긴 말은 필요 없었다. 리돌은 나의 짧은 대답을 듣고서는, 그대로 다시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아까까지 폭발하던 감정의 화산은 아까보다는 많이 누그러진 듯해 보였다. 그래도 여전히 내 손은 리돌을 다독이고 있었다.

 리돌은 곧 돌아갈 것이다. 

 내 앞에서 울고 있는 소녀는, 그저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뿐인데. 

 그렇게 생각하니, 못 해주었던 것들만이 머릿속을 맴돈다. 지금까지 화를 냈던 것들이 왠지 우습게 느껴졌다. 이 녀석이 무엇을 잘못했겠는가. 나는 다시 한 번 확인하듯, 리돌에게 말해 주었다.


 “괜찮아.”


 리돌의 울음소리는, 그렇게 천천히 줄어들고 있었다. 마치 그 소리는 자장가처럼 내 귀로 들어왔다. 오늘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쌓았던 피로를 달래듯, 리돌이 내 품안에서 내는 숨소리는 나의 눈꺼풀을 닫아 주었다.  그렇게 리돌도, 나도, 서로를 엮은 팔을 풀지 않은 채 눈을 감았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기로 하면서. 

 너무, 너무도 긴 하루였다. 이제는 좀 쉬어야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