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을 내딛는다.
"또각"
"...또각, 또각"
그녀의 뒤로 문이 닫힌다.
"지잉"
"하아~"
가녀린 한숨을 내쉰다. 그녀의 얇은 손목만큼 가녀린 한숨을.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의미하는 한숨이자 모든 것으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하는 한숨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는 것일까. 
"이제 어떻게든 되겠지"
중얼거리듯 아직까지 입언저리를 맴돌고 있는 한 마디.

 

모든 것은 준비가 되어있는 듯하다. 며칠동안 버틸 수 있는 음식들과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의 공간. 사실 먹을 것과 자는 것만 마련되어있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해왔다. 혼자라는 외로움과 고독은 지금까지의 훈련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미 익숙해져있었으니. 어쩌면 훈련 중에 외로움과 고독이 해질무렵의 그림자처럼 갑자기 커져 그녀를 삼켜버렸을지도 모른다. 외로움과 고독에 사로잡혀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지금 이곳에 오기로 자원했다는 것을 그녀 역시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외계(外界)로부터의 단절은 내계(內界)의 자유를 뜻한다. 그녀 주위의 많은 눈들이 그녀를 지켜보고 있지만 겉보기일 뿐이다. 그녀가 안에서 무슨 일은 하는지 알 수 없다. 단지 짐작만 할 뿐. 
'지금 낮인가 밤인가?'
어두컴컴한 그곳에서 밤과 낮의 구분은 필요가 없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아 임무가 있었지.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갑자기 밀려오는 전신을 싸고 도는 피로감에 그녀의 다리는 중력에 복종하고 말았다. 그렇게 우주인으로서의 하루가 지나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허리의 고통을 느낄 정도로 많은 잠을 잤다. 눈을 떴지만  아직 꿈 속에 있는 것 같다.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 정신 또한 몽롱하다. 반쯤 취한 상태로 일어나 의무적으로 배를 채우기 시작한다. 각종 인스턴트 식품들은 단지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열량을 공급해주는 도구일 뿐이지 미각을 만족시키는 음식이 아닌 것만 같다. 한 번 맛 보고 내동댕이쳐버릴 음식을 그녀는 잘도 먹는다. 먹는다기 보다 기계적으로 입속으로 밀어넣는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녀야 말로 이곳 생활에 잘 트레이닝된 최적의 적합자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다.

 

음식 밀어넣기를 마치고 임무 수행을 위해 컴퓨터 앞으로 힘겹게 기어간다. 컴퓨터 앞에 앉자 부여받은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한다. 잠도 잊고 음식도 잊은 채 임무 수행에 여념이 없다. 모니터를 응시하는 그녀의 눈은 점점 생기를 잃어간다.

 

임무와 잠의 반복이 수 십일 동안 계속되었다.
"됐어..."
임무완수를 의미하는 힘 없는 한 마디. 임무완수의 기쁨보다는 완수시기가 생각보다 늦어진 데서 오는 자책이 더 강했다. 어쨌든 임무를 완수한 그녀는 잠시동안의 기쁨을 만끽하고 오랜만에 찾아오는 감정의 변화를 즐겼다. 긴장감이 풀리자 그녀의 뇌와 연결된 모든 것들이 현실을 인지하기 시작했고 그러자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한다.

 

'찌이잉~'
그녀의 귀에서 낮은 주파수의 소리가 계속 들리기 시작한다. 동시에 현기증을 느끼고 그녀의 몸은 부웅 떠올랐다. 주위의 물체들도 그녀를 따라 주위를 도는 것만 같다. 정신은 있었지만 지금 보고 있는 것들을 모두 믿을 수는 없다. 건전지로 동작하는 장남감 강아지가 기계음을 내며 그녀에게 다가간다.
'이건 왜 여기 있는 거지'
고개를 뒤로 쳐들자 커다란 시계가 보인다. 거꾸로 보이는 시계는 소용돌이처럼 일그러지고 초침소리만이 그녀의 귀를 따갑게 자극한다. 귀를 자극하는 낮은 주파수의 소리, 장난감 개소리, 한치의 오차도 없는 시계 초침 소리, 어딘가에선 귀에 익은 팝송 Vangelis의 one More Kiss, Dear가 들려오고 이 모든 소리들이 한데 뒤섞이자 굉장한 아늑함을 느낀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데...'
벗어날 수 없는 아늑함에 무기력한 그녀는 자신의 몸을 놓는다. 복귀 대신 영원한 우주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


'쿵!'
'...쿵! 쿵!'
문이 부서진다.
'후우~'
마치 모든 것이 해결됐다는 듯한 한 숨.

어두컴컴한 방안에 머리를 잔뜩 늘어뜨리고 쓰러져있는 K앞에 119 구조대원과 어머니가 함께 서있다. 먹다 만 인스턴트 음식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장난감 강아지는 K옆에 누운 채 허공에서 발을 구르고 있다. 

등교거부 29일 째. 어두운 방안에 컴퓨터 모니터 화면만이 방안을 밝히고 있다. K가 키운 온라인 게임 캐릭터가 무표정하게 그녀를 응시하고 있다. 
"이제 어떻게든 되겠죠?"


히키꼬모리의 다른 이름 그녀는 우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