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이 굼벵이 같은 놈들을 언제까지 기다려야 되냐. 만나면 점심값이나 전부 내라고 찔러대야 정신을—


“여어~ 낙하산이~~! 예정대로 일찍도 내려왔구만ㅋ”

“뭐? 누가 들으면 구리게 입사한 놈인 줄 알겠네. 늦게 와가지고 드립치는 배짱만은 인정해준다.”

“뭘 그런걸 갖고 그러냐~! 우리 산산 형제 사이에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

“내가 왜 너 같이 암내 나는 백수하고 형제냐, 소름끼치게. 고작 이름의 뒷글자 하나 같다고 아직까지 들먹이다니, 진짜 딴사람 앞에서 했다간 죽는다. 두산아.”

“ㅋㅋ 짜식. 꼴 주제에 가오 잡긴. 야, 라산아. 또또 약속시간 조금 늦게왔다고 투덜거리는 가본데. 하여튼간에 정시 출근, 칼 퇴근하는 비즈니스 맨들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너 같이 띵가띵가 노는 놈보다야 훨배 낫지. 하아, 넌 진짜 대학 동기만 아니었으면 여태까지 안 만났다. 창피해서.”

“어허! 띵가띵가 놀다니, 그런 무례한 말을! 이 형님이 너희 같은 월급쟁이보다 더 야망이 커서, 크게···.”

“야, 너희들 사람 다 쳐다보니까 좀 조용히 해라. 쪽팔리거든. (안경테를 올리며 = 쓱)”

“오올~ 철면피 안경잡이, 우리 일락이~! 이름하고 안 맞게 놀 줄은 1도 모르고, 클럽 가서 외간 여자에게 앞에서 오줌이나 지리다 나온 영원한 범생이~ㅋ”

“(울컥) 너 자꾸 남의 흑역사 들춰내지 마라. 이 빨갱이 새끼야.”

“워워~ 진정해. 누가 듣다가 정말로 오해하면 어쩌려고 그러냐. 난 대한 사랑, 대한으로 큰 자랑스러운 한국 사람—“

“둘다 닥치고. 둘이 점심값 반띵해서 가담해라. 지각한 벌이야.”

“으잉~? 이상하다~? 우리 청년 사업의 선두자이신 비즈니스 상사맨께서 월급 나올 날이 됐을 텐데~? (씨익)”

“(뜨끔)”

“꼭 이맘때면 친구 불러서 술 한잔씩 꺾던 동무끼리, 섭섭하게♥

“제길슨. 그래도 더치페이야. 피해가지 말라고.”

“쳇, 딱딱하게 굴긴. 알겠네요, 이 사람아ㅋㅋ”

“아, 난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으니까, 지불액의 15%만 때서 줄게. 돈 별로 없거든.”


보다시피 이게 오늘 만나기로 한 왈가닥하는 웬수놈들이다. 얘네들을 그냥 사업상, 업무상으로 만났다면 한달도 이틀도 하루도 아닌 같이 숨쉬던 그 순간부터 찢어졌겠지만, 어쩌다 같은 대학 같은 기숙사에서 나온 쪽팔린 대목이지만, 기쁠 땐 돈 뜯어내고, 슬플 땐 실컷 비웃어주지만, 진짜 힘들 땐 같이 다독여주던 생전수전 함께 해온 대학 졸업 후에도 만나고 있는 몇 안되는 친구들이었다. 이정도면 절친이라고들 하겠지만 이런 별종들을 두고 친구라고 내세워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해줘야 된다. 어쨌든 각자의 일(아까 그 백수놈만 제외하고)들을 마치고 오랜만에 메신저 상이 아닌 현장에서 만나 서로 낯짝들도 확인할 겸 대낮에 털난 솔로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앉아 희희덕 거리기로 한 날. 물론 내가 먼저 만나자고 했긴 했지만, 지들이 OK했으면서 정작 사람 세워놓고 목줄 풀어둔 개를 기다리는 것 마냥 하염없이 기다리게 만들다니···· 특히 더 얄미운 건 저 두산 곰탱이. 덩치는 산만해가지고 얌채처럼 남의 봉급 나오는 건 어떻게 딱딱 맞춰—


“? 뭔 안좋은 일이라도 있냐? 소태 씹은 상판대기를 하고선ㅋㅋ”

“(네 놈 때문에 그런다. 이 미련 곰탱아)”

“역시 기분이 꾸리꾸리할 땐 국밥만 한 게 없지! 그런 의미에서 주모오! 여기 국밥 한 그릇 추가요! 고기 왕창~!”

“야야. 쪽팔리게 소리지르지마. 여기 김밥집이야, 쫌. (쓱)”

“그래. 먹어라. 먹어라. 쳐 먹어라, 얌. (우물우물) 아, 그러고보니 일락아. 한 3-4주 정도인가 기사떴는데 울 대학에서 뭔 화재가 났다던데, 정말이냐.”

“뭐업! 화재애~! 그거 정말이얍! (타다다)”

“윽, 입에 담고 있는 거 삼키고 떠들어대! 다 튀기잖아, 임마!”

“아아, 별일 아니야. 우리 랩실에서 어떤 복학생 몇명이 실험 과제 한답시고 부적절한 가연성 물질을 알코올 램프에다 갖다대는데 실수로 램프를 엎질러 버리는 바람에 한바탕 교내가 시끌벅적 했지.”

“알코올 램프, 가연, 뭐? 내사랑 아꼬올만 간신히 알아듣겠네.”

“역시, 그 짜잘짜잘하게 써져있던 부적절한 가연성 물질이란 게···.”

“ㅇㅇ맞음.”

“아오 ㅁㅊ놈들. 그냥 바깥에서 피지. 뭔 알코올 램프에다 대고 피냐? 저 곰탱처럼 꼴초에 술고래도 있었나. 술기운 받는다고 뚜껑 연 ㅁㅊ놈들.”

“야이, 친구야. 내가 아무리 뭐 가염— 뭐 그딴 쪼잔하게 술냄새 맡고 끝낼 사람으로 보여! 한턱사면 크게 내는 사내대장부인 이 내가! (얌)”

“주식한다고 지 아비 등골 빼먹는 강 건너온 불효자는 빠져라. 아직도 용돈 받아먹고 사는 주제.”

“흡! 그어시마마은! (쩝쩝)”

“그래서 걔네들 전부 깨져서 우리 교수님께 불려갔지. 다행히 강제 퇴학 정돈 면한 것 같다만, 학점은 날라갔겠지 뭐.”

“넌 정말 남의 일엔 무덤덤 한 건 여전하구나.”

“어차피 거기엔 내가 없었으니까. 조교인 내가 뭘 어쩌겠어. 간신히 비위 맞추며 정착하는데.”

"쩝, 너도 힘들었겠네. 하긴 학교 측도 그걸 곧이곧대로 제보하긴 싫었겠지. '담배피고 뽕 받으려 잔기부리다가 실수로 화재를 일으—' 야야, 그딴게 실렸다면 학교 이미지 제대로 구겼지. 나름 이름 있는데니까 그렇게 신문에도 나오지."

"거 듣다보니까. 아꼬올 말인데."

"혀도 네 X지만큼 작은 걸로 혀 굴리려 하지마라. 빙신 같으니까."

"알겠으니까 들어봐. 전에 우리도 한번 그거 갖고 ㅁㅊ짓 하지 않았냐? 그 신입생 신고식 한답시고,"

"남자 신입 바지 까고 소주 묻힌 장갑으로 X꼬 팠던 거 말이지. (쓱)"


"맞아! 그거그거! 캬~ 그때 대학 살맛났는데ㅋㅋ"

"그딴 추잡스런 잊혀진 과거 회상은 도로 쳐놓고 밥이나 쳐먹어. 입맛 떨어지게, 쫌!"

"그때 가장 열정적이게 선동했던 게 그 뭐냐, 실험실의 알래스카 허스키?"

"ㄴㄴ 실험실의 코카스 파니엘."

"아! 그 지랄견! 걔하고 같이 콤비 맺은게 너잖아, 임마."

"그런 개 쌉소리 싸물고, 밥알이나 곱씹어라."

"뭐래. 너네 둘이서 신입생 반 이상을 51킬(한 횟수) 17데스(뜻밖에 희생자)로 네놈의 손가락을 거치면 전부 쓰러져 갔던, 전설의 3 : 1 황금 똥가락지ㅋ. 아깝게도 교수들에게 대통 깨졌지만, 만약 기사에 실렸으면 너도 꽤나 유명해졌을 걸? 지금 생각해도 웃기넼ㅋㅋ"

"기억 안 나는 사람 앞에서 지껄이는 대로 지어내지 마라. 니는 학과도 달랐는데 무슨—"

"그때는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참여했지. 그 뭐시기냐, 오징어 심리학 다니다 경영학과로 옮긴 거라며ㅋㅋㅋ"

"그래. 지금도 북한산 오징어랑 대화하니까 헛말은 아니겠네. 역시 알아둬서 나쁜 건 없다 그래."

"풉!(쓱)"

"넌 뭐가 좋다고 웃냐. 생긴 건 꼭 꼴뚜기 같은 게."

"읍! 야, 깜빡이;; [주: 쭈꾸미를 더 좋아함]"

"와아···· 갑분사····. 그리고 북한 드립 치지 말라니까. 예민한 부분이라고. 울 아버지한테 이빨 깠다간 강냉이 날라갈 수 있다, 너."

"너희 아버님 빈정 상하게 한 말이 아니잖냐. 진지빨고 오늘을 직시하자. 두산아. 이제 정신차리고 반듯한 직장 못 구해도, 짱개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냐. 친구로서 하는 말이니까, 새겨들어."

"야···· 당연히 일할 곳 정돈 수소문하고 있던 중이지; 나, 진짜 이번 해만 지나면 딱 끊을 거야. 진짜 주식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봐. 왜 날이 갈수록 땅으로 곤두박질 치냐. 무슨 지하 땅굴 팔 기세로ㅎㅎ 나도 라산이 너처럼 일확천금 해보는게 소원이야~"

"그깟 돈 몇푼 가지고. 아아 됐고, 너 딱 빚진 액수의 반만 쓰고 나머진 네 힘으로 갚아. 공동 계좌라도 명의는 내 앞으로 날라온다. 경고했어. (째릿)"

"그 귀한걸 감히 어떻게 건드냐. 천하의 독불장군 일락이도 거들어준 건데. 너네 없었음, 진심 이런 결론에 못 도달했을 걸. 나중에 일락이도 이 꼴 나면 그때 전부 쓰자고ㅋㅋㅋ"

"내가 너냐. 주면 더 줬지, 흥."

"어? 그거 헛 말 아니지! 이야~ 친구들아~! (덥썩)"

"아우씨, 깜짝이야! 육덕진 몸뚱아리 좀 치워, 느닷없이 곰이 덮쳐!"

"윽, 누가 그러겠데. 그냥 비유법으로— 읍! (쓱)"

"진짜 친구 남 부러울 거 없다, 하하! 급 술 땡기네! 오랜만에 내가 다 쏜다! 주모오~ 여기 계사안! (쩌렁쩌렁)"


저자식은 겨울잠만 쳐자다 깨어났나. 변한 게 하나도 없어. 그래도 제 입으로 관두겠다니 많이 선전한 거지만 또 모르지. 하루만 지나면 앞 다르고 뒤 다른 놈이니까. 하지만, 지금했던 말들 중에 거짓말은 하나도 없었다. (당근 오징어 심리···· 그딴건 빼고) 우리는 같은 대학, 같은 기숙사에서 동거했지만 각기 다르게 살아왔다. 저 곰탱이, 두산이를 만나기 전에 일락이와 같이 '사회 심리학과'를 다녔고 이때는 서로 친하지 않았고 기숙사도 다니지 않았다. 사실 수도권 대학에 입학을 목적으로만 턱이 맞는 곳을 고르다가 들어가게 된 학과라서 안전하게 비집고 들어온 것까진 좋아라 했었는데···· 정작 수업을 듣다 보니까 그저 같은 학과생과 노닥거리기만 할 뿐인 전혀 안 맞는 수업인 동시에 갑자기 암담한 줄을 타는 건 아닌가 하는 현타가 와서 (맞다.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수업이 오징어···· 어쩌구 였지) 다시 큰 맘 먹고 공부해서 겨우겨우 경영학과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첫 수업에 들어갔을 때, 일락이가 보였을 때 쟤도 전과했구나, 하고 알게 됐다. 그런뒤 별다른 접촉이 없다가 조별 발표 때 랜덤으로 일락이와 팀을 이룸과 동시에, 곰탱이를 만나게 된 것이다. 나이대도 동일했고, 조별 활동을 한 계기로 어찌저찌 친해지게 된 건데 일락이의 내면의 모습들을 지금에서도 매번 새롭게 느껴지지만, 저 두산 곰탱이는 여전하다. 어떻게 저 빠가가 경영학과에 들어온 건지도 의문인데, 풀기도 전에 그 놈한테서 의외의 사실들을 듣게 됐다. 응. 북한에서 넘어온 탈북민이었던 것. 하지만 두산이가 갓난 아기 시절때, 38선을 넘어와서 억양은 물씬 나지만, 한국에서 자란 덕에 아무도 탈북인이라고 인지하지 못했다. 그걸 들었던 우리도 마찬가지고. 자주 장난 섞어서 하기는 하는데 나쁜 의도는 아니었다. 알고 받아주는 눈치였고. 그렇게 나름은 즐겁던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려던 그 순간, 전화 한 통이 들려왔다.


아버지께서 폐암으로 돌아가셨다고.

그리고 아버지가 남기고 간 빚을 편찮으신 어머니와 함께 갚아나가야 한다고. 그때가 가장 내 인생의 고비였을 거다. 아직 사회의 진출도 못한 풋내기가 부업으로 간신히 연명하던 늙은 어미를 모시고 갚아나가야 한다는 막막함. 그 빚이 주식 폭락으로 받은 수해의 액수도 무시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난 이곳저곳 원서를 돌리며 취업하길 바랬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냉혹한 세계에 지쳐갈 때 쯤에 나타나준 게 이녀석들이다. 정확히는 아는 인맥한테 돈만 꾸려고 전화한 건데, 와준 건 얘네들 뿐이었다. 물론 돈을 넉살좋게 준 건 아니었다. 로또를 하라고 시켰다.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정작 방안이 없던 내겐 잡은 밧줄을 놓치고 싶지 않아 죽기살기로 부딪혔다. 만약 아직까지 그딴 데에 썼다면 걔네들은 ‘진짜’ 원수가 됐겠지만, 정말 벼락이라도 맞았는지 당첨을, 그것도 무려 2등에 당첨됐다. 덕에 빚도 청산하고, 어머니께 용돈도 넉넉하게 드리면서, 나머지 돈을 그 웬수들과 함께 비상시에 꺼내 쓸 공동 계좌를 만들었다. 역시나 내 제안. 허나 일락이는 단칼에 거절하려 했으나, 나중에는 마지못해 해줬다. 물론 이리 될 거란 예상은 못했겠지만 어찌됐든 여기까지 오게 된 ‘은인’인 셈이다. 그렇게 회사에 별탈없이 다니며 일락이는 또 생명과학과로 전과해 본교의 조교로 들어갔고, 두산이는 뭐— 지금 요 꼴 났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도와주는 게 어디더냐. 이젠 보여줄 건 다 보여준 사이니. 그리고 우리가 모인 진짜 이유가 있으니까.


“근데 이번엔 못 갈지도 모르겠네. 워낙 교수가 깐깐해서.”



*
“오늘은 일찍도 오네. 평소에도 그래봐라.”
“어이~ 이번건 놓치면 안되는 날이잖아. 그런데 이번에도 이 시간에 사람이 꽤 있네. 역시 찐들은 못 이기겄다.”
“그런데 일락이는. 역시 못 온데?”
“그런가봐. 그놈의 대학이 잡고는 놓아주지 않는댄다. 불쌍한 시키ㅋㅋ 이 형님들이 부러워서 어쩌냐.”
“공석 남겠네. 그래도 간만에 휴가도 냈으니, 일락이 몫까지 대신해서 즐기자고. 5시간 정도 텀 있으니까, 근처에서 뭐라도 사먹자. 거르고 나와서. (꼬르르)”
“콜! 라면이나 끓여먹어자.”

해도 제대로 뜨지 않은 이른 시각. 저 앞으로 뛰어가는 돼지 자식을 보내놓고, 꽤나 긴 대기줄을 서서 시간이 다 되가길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렇게 서서 먹고, 싸고, 폰질 하면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나니, 드디어 유의미한 때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앞으로 길게 뒤로는 더 길게 늘어선 줄이 천천히 전진해 나간다. 앞으로 나아가자 드디어 눈앞에 마주하게 된 거대한 행사장. 숨막히는 인파에 무릅쓰고 헤쳐나가는 손놀림은 흡사 초특급 바겐세일 상품에 전력으로 달려드는 주부들의 전장 같았다. 굳이 예매까지 해놓고선 어떻게서든 빨리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처음엔 왜저래 하고 느껴졌지만 여러번 입구에 들어서니까 저들과 동화되어 같다. 매번 공연장이 바뀌기에, 치밀한 사전조사를 더불어 건물 내부의 동선, 출입시 빠른 경로를 파악, 특히나 이 절차가 종연시 운명을 좌지우지 한다. 또한 예매 좌석에서 무대 거리를 측량해 우리가 들고온 물품이 멀리서도 보일수 있게 설치 및 점검. 또한 주변 관람석의 상황의 고려해서 미리 배변 처리를 하고, 음식 및 식수 확보, 매너있게 뒷처리도 딱딱 갖춰놓는다. 하지만 여기서 끝내면 경력이 무색하지.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가만히 앉아있는 것보다 공연장 안팎 구조를 익혀두는 것이 중요. 혹시나 언젠간 방문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 순서를 짧은 시간내 처리해야 하므로, 속전속결하게 이행해야 된다. 원래 이런 건 일락이가 전문인데, 부득이한 사유로 대신 배워둔 나라도 해야됐다. 곰탱인 느려터져서 뭘 맡길수가 있어야지 원.

“야, 어딜 갔다 이제 오냐. 곧 시작한다고. 왜 전화는 안 받는 건데.”
“미안미안ㅎㅎ 매너모드로 해놓고 있어서 못들었네. 대신 주전부리 몇개하고, 이것도 고르느라 미처ㅎ (쓱)”
“책임지고 보관해놔. 아이템 훼손 되거나 도난 당하면 안되니까. 끝까지 잘 간수해. 알아들었지. (째릿)”
“저번에 잃어버린 것 같고 그래? 에이, 절대 그럴 일 없으니 기우ㄴㄴ”
“기우는 무슨 놈의 기우. 넌 진짜 일 벌리니까—“

촤아아
그렇게 말을 섞을 틈에 어느덧 밝게 비추던 관객 측 조명이 하나둘씩 꺼져가고, 저만치 떨어진 스테이지 선상으로 점점 헤드 라이트가 비추기에 이른다. 이제 곧 열리려는 모양이다. 이번에도 예정됐던 전개에 가슴은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끄으으~ 올만에 바다 건너 같이 떠나갔던 빠심도 같이 돌아온 느낌이네! 진짜 목 빠지게 기다려 왔다고!”
“당분간은 한국에서 활동하겠지만, 첫 컴백 무대는 빼놓을 순 없지. 안그럼 엄청 여운 남을 테니까.”
“근데 진짜 걔는 불쌍하닼ㅋ 항상 이거에 달고 사던 놈인데, 여기에 있었으면 이렇게 말하겠지. ㄱ”
“공연 시작하는데 조용히 해라, 쫌. (쓰윽)”
“바로 이렇게ㅋㅋㅋㅋㅋㅋ······으잉!? 일락이!?!? (화들짝)”
“(깜짝) 우씨! 너 언제 왔어!?”
“아, 팬클럽 회원 권한으로 직통해서 겨우 도착했음. 불만 있냐?”
“아니; 그보다 너 대학 업무땜에 못 온다 하지 않았냐??”
“몰래 빠져나옴ㅇㅇ”
“몰래? 그래도 되냐? 학교 막 빠져나와도?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
“그런 철부지 대학보다 (쓱) 엄청난 정보를 입수하고 오는 길이거든, 후후. 막 입수한 신규 정본데, 오늘!”


우와아아아아아—!!!!!


“야, 나왔다! 나왔어! 나왔다고! (흥분)”
“어디어디;! 빡씨! 너땜에 첫 타자를 못 봤잖아. 아놔!”
“이제 시작이니까, 정신줄이나 놓치말라고. (쓱)”

곳곳에서 울려퍼지는 어마무시한 환호성을 뒷받침해주는 듯이 무대 위로 서서히 모습을 들어내는 누군가. 원래 정식대로 가면······ 꿀꺽. 이번에도 첫번째 장식은····!

“니코니코팅~♪ 당신의 가슴속에 니코니코팅~♫ 니코팅은 어른들 만의 것이 아니라고? 날 사랑해주는 모두의 것이야~!”

“끄아아아, 나왔어—!!!! 스모키 걸즈의 메인 센터, 니코팅!!! 니코리잉—!!!!”
“오빠랑 결혼해줘, 니코링짱!!!! 여길 봐줘—!!!!”
“으아아앙!!! 눈 마주쳤어ㅠㅠㅠ!!! 평생 이 눈, 씻지 않을 테야!!!!”

『스모키 걸즈』, 자칭 피어오르는 대세 아이돌 그룹.
대한민국에서 짙은 영향력을 호소하고 청소년, 직장인, 노인등 남녀노소 상관없이 열광하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 앞날이 창창한 전세대 유망주이자, 우리들의 영원한 여친으로 자리매김한 3인조 걸그룹이다. 원래 스모키 걸즈 소속사가 여러 아이돌을 대폭 배출한 회사로 유명한데, 정부의 따가운 눈초리로 인해 ‘문란’하다는 어처구니 없는 명목하에 내려진 압력 땜에 아이돌 그룹이 해체된 사건도 수두룩했던 회사로도 알려져있다. 거기서 살아남은 사측 최장수 아이돌 그룹인 스모키 걸즈가 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떳떳이 우리들 앞에 서서 대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소속사의 밥줄이자 팬들에겐 산소 공급원 같은 존재. 
소개가 길어지니 이쯤하고 방금전 모에한 대사를 외치며 등자한 1번째 맴버는, ‘싱글벙글 니코팅’! 언제나 당당히 앞에서 무대의 스타트를 끊어주는 누님격 아이돌이자, 그룹의 센터를 맡는다. 참고로···· 내 최애다. 아씨 존예····.

“야야, 저기저기! 저 실루엣은!!!”
“야, 라산아! 라산아! 어떡해, 어떡해! (퍽퍽)”
“야! 알겠으니까 그만 때려! (이제 나오겠군. 곰탱이 특)”

“타르링~ 타르링~ 비켜가세요~♪ 타르링이 나갑니다, 타르리링링~♫ 앞에 있는 팬분들은 조심하세요~♪ 숨막힐지 모릅니다, 타르리링링~♫”

“차라리 날 치여줘, 타르리잉—!!!! 네 자전거에 치여 숨져도 여한이 없어억—!!!!”
“아조씨랑 비.밀.친.구.하.자! 타르링—!!!”
“에헤헤~ 타르링 생각에 온몸이 젖어버렸어~ 나쁜아이 우후훗~ 군더더기 없는 그 페로페로한 몸매도 구욷~!”

다음으로 꼬마 삼륜 자전거를 타고 등장한 2번째 맴버, ‘따르릉 타르링’! 맴버들 가운데 가장 어리고, 몸도 언행도 어린애에 가깝다. 아니, 그 컨셉이 타르링의 주 매력 포인트이다. 업계 용어로 로리 포지션. 그 앙증맞은 말과 행동에 늙어빠진 아저씨들의 팬심을 사로잡는데에 이른다. 나는 처음에 등장한 니코팅외에 다른 맴버는 비교적 관심이 적지만, 곰탱이 즉 두산이의 최애 아이돌이다. 등치는 산만해가지고 조그마한 꼬마애를 좋아하다니, 취존 취존. 여하튼 팬들의 열기는 과히 엄청나다. 준비해가지고 온 야광봉은 여러 물결들 중 하나에 불과했고, 위로 높게 치켜들은 피켓도 마찬가지로 역시나 주위에도 이미 더했으면 더했지, 관심을 끌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본 무대가 곧 열리려고 할때는 그런 건 아무 상관없었다. 또 아까부터 시끄럽게 소리지르는 괴성들은 우리가 낸 게 아니니 참고.

“풉, 라산아. 안경잡이 얼굴 꼬라지 봐봐ㅋㅋㅋ”
“(머엉)”
“응? 그게 뭐?”
“그게 뭐라니? 얌마, 앞을 봐, 앞을. 너 오랜만에 티켓팅해서 감각이 무뎌졌냐. 나왔잖아, 일락이 특.”
“아.”

“····”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정말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저런 눈치 제로 곰탱이 눈에도 보인 걸 내가 알아채지 못하다니, 큭 수치심! 저편에 무대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매우 조심스레 나머지 위치에 조용히 나와서 지키는 마지막 3번째 아이돌 맴버.
“시오짱···· 읍! 커엽···! (쓱쓱쓱)”
그렇다. 철면피 일락이의 최애. ‘부끄부끄 시오짱’. 맴버들 가운데 유달리 노래를 제외하면 말수가 적은 편이며, 유일하게 등장 대사가 없어 가끔씩 그대로 진행해서 언제 나왔는지 뒤늦게 알 정도로 소리소문 없이 등장한다. 존재감은 그다지 과시하지 않아서 상대적으론 인기도 그닥이지만, 그런 조신한 이미지와 청초한 매력 덕에 적지않은 팬층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이것으로 3명의 맴버들이 전장에 서있는 지금. 꿈의 향연이 펼쳐지려 한

“그전에 잠깐! 오라버니들께 한가지, 전달할 소식이 있어요~☆”

(웅성웅성)

“음? 뭐지?”
“후후후, 이제야 들을 수 있겠어. 언젠간 이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부들부들)”
“어? 우리 일락이가 알고있는 눈친가 보네.”
“그야 당연하지. 겉핧기에 불과한 너희같은 아마추어들이 뭘 알겠어. 그러니 잘 들으라고. (쓱) 빠르게 입수한 엄청난 소식을! 발단은 우리 골수팬들이 보낸 무수한 팬레터에 의해 일으킨 기적! 드디어 말이지. (쓱쓱) 공연하기에 앞서—!”

“시오짱이 오라버니들께 용기내서 ‘자기소개’를 한다고 합니다~☆”

허걱! 이거 보통 일이 아니잖아. 진짜란 말이야!? 나는 크게 놀랬다. 그리고 진정하려 노력해도 놀람을 금치 못했다. 얼마나 기이한 광경이었냐면 앞서 언급한대로 시오짱은 말수가 적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 말수가 적다는 의미는 그냥 소심하단 뜻만이 아닌, 단 한번도 생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그렇기에 현재 공연장은 시오 팬들의 환호성 뿐만이 아니라 다른 맴버 팬들까지 눈이 커진 전무후무한 대사건이었다. 많은 팬들 가운데 ‘시오짱의 목소리만이라도 들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텐데.’라는 말들이 오고갈 정도로 그만큼 목소리를 들을 일이 손에 꼽을래야 꼽을 수 없었는데, 자기소개라니···. 기네스 북에 등단할, 아니 광신도인 일락이가 무단 외출한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그렇게 모두의 관심은 오직 시오짱에게로 향한다.

“정말이지. 해냈다고···! (울컥)”
“오오, 마침 나도 목소릴 듣고 싶던 참이었는데, 이거 완전 기사꺼린데. 욜ㅋ”
“자, 시오짱! 팬분들이 애타게 기다리시잖아☆”
“타르링도 시오짱의 목소리, 듣고 싶어! 듣고 싶어! 너희들도 그렇지!”
“들려줘—!!!! 들려줘—!!!! (일동)”
“····”
“(정말로 들을 수 있는 건가? 진짜?)”
“긴장 풀고 팬분들께 시오짱의 귀여운 목소리, 잔뜩 들려주고 오렴. 자기소개 시작!”
“자기소개—!!! 시작해—!!!!”
“···”
“이야, 이게 뭔데 이렇게 두근거리냐. 그치? (두근두근)”
“으응; (두근두근)”
“으··· 으읅···· 으급···! (쓱쓱쓱)”
“···”
“어서 해줘. 타르링, 궁금해! 궁금해!”
“(이거 녹음해야 겠다. 세기의 순간이니까)”
“자, 어서 해보렴.”
“어서—!!!”
“으긁··· 으그븝····!! (쓱쓱쓱쓱)”
“시오짱—!!! 빨리 들려줘—!!! 오빠들 지쳐간다—!!!!”
“궁금해! 궁금해!”
“어서—!!!! 어서—!!!!”
“(꿀꺽)”
“그긁급급급···!!! (쓱쓱쓱쓱쓱쓱)”
“어서☆”
“어서어—!!!!!”
“······”
“····부”


“부끄러워서 못하겠어···요///“


“끄아아앍아아아아——!!!!!”


긴급상황 발생. 여기저기서 죽어나가는 목소리가 혼란스럽게 일고, 단말마에 공연장이 떠내려갈 정도로 이미 초토화된 상태. 고막은 먹먹해지고, 목에 모터 단 것 마냥 터져라 외쳐대니, 확실한건 순간 녹음을 못했다. 그야 넋이 나갔으니까···· 사람이 저렇게 귀여운 목소릴 낼 수 있구나, 와아. 그나저나 정작 옆에 있는 일락이는 아무런 소리가, 어?

콰당!

“(!) 일락아!”
“우···· 욹····!”
“야, 정신차려! 정신차리라고!”
“스으으으···. (정신이 이미 날아간 상태)”
“얘가 갑자기 왜 이래. 고작 목소리 하나 들었다고, 픽픽 쓰러지냐. 이봐! 정신차려!”
“시···· 시····.”
“힉, 눈까지 뒤집혔어;; 야야, 죽지마;; 자꾸 이상한 신음 소리 내지 말—“
“시오짱을 향한··· 내 러브 바이브레이터가 고장나서····”

“저 세상으로···· 가버려엇····. (띠이)”

그녀로 하여금 일락이를 포함한 사상자들이 속출해나가는 와중에도 공연은 이제서야 막이 올렸다. 모두가 목소리의 실체를 잊어버린 것 마냥 자연스레 공연에 녹아들어간다. 첫번째 선곡 『Trigger Impotence』를 시작으로, 『Birth of Deformed Child』, 그 다음엔 『Skin Aging』. 그리고 내 소장곡 『내일과 세계』까지. 정말이지. 뭐하나 흠잡을 데 없이 뽑아대는 노랫가락에 심취한 전부가 야밤까지 광란의 파티를 즐겼다. 얼마나 심취했는지 이성까지 날아가선 회식을 4차까지 올인한 것 마냥, 눈을 떠보니 저벅저벅 길한복판을 배회하고 있었다. 나와 두산이, 아직까지도 거기에 헤어나오지 못한 일락이를 가운데 질질 끌고 각자의 집으로 향한다. 한밤의 부른 택시를 타고가면서 창밖으로 보인 거리의 야경은 아직도 무대를 비추고 있다.

번쩍이는 조명들과 따가운 레이저, 흔들거리는 야광봉, 그리고····.


*
세상이 미쳐돌아간다. 아니 진짜, 어떻게 이럴수 있지. 난 잠시동안 꿈을 꾼 것일까. 믿을수 없다. 갑작스러운 극전개에,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어찌 이럴수 있지. 정말 한밤의 꿈이었던 걸까. 도대체, 어째서···.

“어이~ 파산이~ 오늘은 왜이리 늦게 걸어와. 너답지 않게.”
“말 시키지마. 그럴 기분 아니야.”
“알아. 안다고, 짜샤~ 나도 너도 상심이 큰 건 매한가지니까. 그러니 술이나 땡기러 가자! 21도수 반병 콜? (딱)”
“····.”

저놈은 생각이 있는 놈일까 없는 놈일까. 별로 감흥이 없는 걸까. 나만큼 감정이입이 되지 않아서? 왜 저리 멀쩡한 걸까. 자기도 처음엔 난리쳤으면서 지금 와서 성인군자 마냥···· 됐다. 남 까서 뭐가 남겠냐. 그냥 위로나 받으러 가야지. 이 밝은 대낮부터, 단 둘이. 원래는 주말 아침에 나서지 않지만, 통 잠이 오지 않았다. 이런 사단이 난 원인은 일이 하나 크게 터졌기에, 그리고 그 일이라 하면 되먹지 못한 짓이었다. 바로 『스모키 걸즈의 해체 선언』. 갑작스러운 속보였다. 난 이걸 저번주 일요일 뉴스에서 아래 기사줄에 자잘하게 지나가는 걸 보고야 말았다. 난 잘못 본 걸 줄만 알고 딴데로 틀었는데 이번엔 대문짝만하게 뉴스 보도가 떠있었다.
‘3인조 인기 걸그룹 스모키 걸즈의 해체 의사 밝혀....’ 그걸 제대로 본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고 유일한 낙이었던 취미 생활을 접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그날은 밤을 설쳤다. 이를 계기로 오늘 와서 기분을 풀고자 친구들을 불러 자주가던 술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일락이는 사정이 있다며 오지못한다고 하였다. 어찌보면 걔가 제일 타격 엄청 받았을 텐데····. 됐고, 우선은 나 먼저 챙기자. 한심하긴 해도 지금은—(!)

“어? 어이이! 헤헤헤~”
“(화들짝) 야. 너 왜 여기있어!”

또르르르

작은 소주잔에 졸졸 담고 있는 일락이의 모습은 발갛게 달아오른 채로 우리를 앞에 두고 다 따른 술잔을 단숨에 들이킨다. 순식간에 비어진 잔. 하지만 일락이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담아댄다. 평소에 술 한 병도 제대로 못 마시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네가 이 시간에 술집이냐. 주말엔 대학 업무가 없나보지?”
“캬아~ 도는 없어! 대학이 이제서야 날 놓아줬거든. 짤렸어. 그것도 대차게ㅋㅋㅋ”

똑똑

이른 대낮에, 스티커 찌꺼기가 덕지덕지 묻은 창가에 들어온 햇살에 비친 입가에는 낯선 답문이 들려왔다. 내가 못 들을 걸 들었나 하고 환기를 시켜보지만, 하지만 어느정도 알고 띄운 질문이, 보기좋게 적중한 걸지도 모른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도 놀란 가슴의 후유증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때까지도 그 말많던 두산이도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으응~? 뭐야. 벌써 술이 다 떨어졌나? (탁탁) 거기 아주움마~! 여기 소주 한 병 추가요~~!”
“역시, 너도 피해갈 수 없었구나. 나참. 그리고 그켠에 술병 하나 남아있잖아. 정신 머리하곤. (딸그랑) 따라줄테니 마저 들이켜라, 친구야.”
“······미안하지만, 라산아. 우리가 들어놓은 계좌에 돈 좀, 조금만. 정말 조금만 쓸테니까····.
“어이구, 이런 융통성 없는 친구를 봤나. 일락아! 내가 폼으로 잔 따라주는 줄 아나. 술김에 저지른 짓들은 만취월장(滿醉越牆), 한밤의 꿈이라고. 너같은 잼병은 가능할거다, 자. (또르르르) 쭉 들이켜.”
“으··· 흐흐흐···· 흐흐흑···· 구질구질하게 굴어서 증말 미안헙, 쓰읍! 이게 나라냐. 나라냐고오!!! (버럭)”

그룹의 해체는 팬들의 마음을 후벼팠지만, 정작 진짜 피해는, 정부측이 거기다 한술 더 떠서 도를 넘어선 법안과 처벌을 차례로 공표하여 모두를 뒤흔들었다. 세금 인상. 한번이라도 『스모키 걸즈』의 공연을 본 대상자에 한에서 누적된 기간에 따라 적게는 10%, 많게는 최대 20%까지 인상한다는 법안이 통과됐다. 그러나 걸그룹의 위세는 이미 우리 사회에 깊게 녹아든지 오래기에, 풀어말하면 결국 대한민국 전국민 세금 인상을 돌려 말한 것일 뿐이다. 현장이든, 시청이든, 뭐든. 인정하기 싫지만, 그래. 예전부터 달갑게 보지 않던 정부가 내놓은 최소한의 실질적인 처벌은 여기서 끝이다. 사후에 일어나는 이외에 책임은 일절 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이외’에서 가려진 추상적인 처벌이 소수에게 너무나 가혹하게 적용 됐다.
사회매장. 이는 산하 아이돌 팬클럽 회원, 즉, 언급한 법에 의거해 빼도박도 못하고 적용되는, 전적이 확실한 적지않은 소수들이 받게 될 가중 처벌. 회사든, 학교든, 국내에 정부의 손이 타는 곳 어디든, 훗날에 올 법한 또다른 처벌안의 범례속에 잡히지 않은 위법자들과 무관한 자들 마저 피해를 입을까 전전긍긍하니. 적극적인 정부의 개입에 소수들은 암덩이로 바뀌어, 철저히 걸러내는 작업이 대규모로 빠르게 진행됐다. 물론 작업에 내비치지 않은 알갱이들도 결국 사측에 강요에 못 이겨 자진 사퇴를 하는 게 안 봐도 비디오. 하필이면 그 불순분자에 일락이도 끼어있어 뒤이어 강화된 취업 기준에 대역죄인 마냥 명함도 못 내밀고, 거리로 나앉게 생겼다. 분명 월셋방에 겨우 생활금 간신히 건져가며 버틴다는데.
고작 사람 좋다는 거 잡아낼 필요까지 있냐! 하고 일어나는 반발 세력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몇달 있다가 소속사하고의 극적 체결을 맺는다는데, 그건 해체 시기를 미루겠다는 반가운 소식을 인질 삼아, 반발 세력들을 미리부터 숙청시킨다.
와나, 이 부분에 빡돌아서 대낮부터 술이 땡긴 거였지 그래. 어떻게서든 받아내겠지. 더러운 세수(稅收), 압박! 걸리지 않은 나도 애지중지 모아온 아이돌 굿즈를 빠른 시일 내에 처분할 예정이다. 오늘날까지 함께 해온, 못난 추억들을 하나둘씩. 솔직히 우리가 고작 걸그룹 하나 빤다고 그밖에 무관한 시민들의 피해 사례를 몰라 뵈는 건 않지마는 아니 알아. 저울질 해도. 정녕 끊을 수 없잖아. 끊을수 있겠냐고! 니미럴!!
그당시 술자리에 한껏 만취한 일락이를 봤을때, 그래봤자 너네가 무어라 지껄이든 포기할 것 같냐! 하는 썩은 동태눈을 하고선 살그머니 자리에 일어선다. 하아····.

암흑가에는 오늘도, 조용히 피어오른다. 그들의 수명이 다 할 때까지····.

우리들도······ 계속····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