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광반조 3장 보러가기


"오늘 박 대통령은,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을 찾아 충청도 지역 농민들의 노고를 치하하시고ー"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장롱에서 이불을 꺼내어 바닥에 깐다. 아이들은 먼저 방 안에 이부자리를 깔고 잠들었고, 나머지 남는 공간이 두 명 이부자리를 깔고 나니 방 안에 꽉 찬다.


"여보. 불 끄고 잡시다."


탁ー


"연희 아버지, 오늘 수고했어요."

"고생은 당신이 했지, 뭘."


"참. 이 방도 이제는 애들이 크니까 이렇게 부대끼네. 여기로 이사 온지 3년도 안 됐는데도 이렇게 금방 좁아졌어. 다음 이사 가서 사는 집은 여기보다는 커야 할텐데."


"..."

"당신 자요?"

"아니."


"아이들은 저 속도로 금세 커서 또 결혼해서 애 낳는다고 요란이겠지. 그 때 가서 저희들도 부모가 되고 나면 우리가 이렇게 고생해서 키웠다고 알아주기나 할까?"

"..."

"응? 연희 아버지."

"그럴지 안 그럴지는 모르지. 아마 쟤들이 그걸 알 나이가 되면 우리는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는걸. 우리야 살아 생전에는 철 없는 애들 모습이나 보다가 갈지도 모르지."

"그럴까나..."


"그래도 연희 아버지, 우리 열심히 살아봅시다. 우리는 못 먹고 못 입고 학교도 국민학교 밖에 못 나왔어도 아이들은 번듯하게 대학도 다니고 책상에 앉아서 편하게 일하게 해야지 않겠어요?"

"그래... 그래 보자구. 피곤하다. 이만 자자."








"박정희 대통령 서거에 대한 자세한 소식은 잠시 후 여덟시 뉴스전망대 시간에 전해드리겠습니다. 동양라디오입니다. 동양라디오의 시보가 곧 여덟시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뭐라구?"


라디오에서 나온 짤막한 소식에 식구들은 어리둥절할 뿐이다.


"여보, 저 라디오에서 방금 뭐라고 한 거야? 저게 맞는 말이야?"

"오보인지 진짜인지는 낸들 아나."


명자는 급히 밖으로 나가 신문을 가져와 본다.


'朴正熙 大統領 逝去...전국에 非常戒嚴'


한문을 읽을지는 모르지만 대충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한자 정도는 알고 있었고, 박정희 대통령 사진이 신문에 박혀 있고, 특히나 '어제 저녁 7시 50분 운명'이라는 글은 한글로 써져 있어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긴 했다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가게 처음 연 것이 어제인데...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는다.


"괜찮아. 설마 별 일이야 있을려구."






계엄령이 떨어진 곳은 주택가라도 예외 없이 참 삼엄했다. 집 밖으로 나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조용한 것이었다. 그것도 그럴 테지만 대통령이 죽었다는데 어느 누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웃음소리를 내면서 떠들 수 있었을까. 계엄령의 그림자는 서울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동네에도 드리워졌다.


"오늘 장사는 망쳤구나. 개시부터 이러면 어쩐담."


"연희야."

윤석 엄마가 종종걸음으로 걸어온다.


"어. 왔어?"

"오늘 장사 잘 안 돼제?"

"길에 나다니는 사람 없는 것 좀 봐라. 장사 잘 되게 생겼나."

"이런 날 밖에 나왔다가 무신 일이 날 줄 알고."

"너는 장 보러 가는 길이야?"

"아이 마 집에 먹을 거리는 많은데 하필 이런 날 아침 먹고 나니까 쌀이 다 떨어짔네."

"쌀 한 되 줘?"

"오야."

"뭐 커피나 좀 타줄까?"

"응. 좋제. 방 안에 연희 아버지 계신가?"

"배달 갔어."

"자전거도 없이 배달을 갔나?"

"어떡하겠어. 이번 한 달만 고생하고 졸라매서 다음 달에는 자전거 사야지."






"장사 괜히 한다고 했나 봐."

"와? 이제 이틀 해놓고."

"비 오면 비 온다고 손님 없지, 바람 불면 바람 분다고 손님 없지. 이래서 괜찮을까 싶고."

"생각해 봐라. 조선팔도에 밥 안 먹고 사는 집도 있나. 좀 지나모 어차피 쌀 산다고 다 나올긴데. 요 며칠만 참아봐라."


흐린 가을 하늘 아래 어느 쌀가게에 철모 머리를 한 아낙네 둘이 믹스커피를 마시며 의자에 앉아 있다. 앞 쪽으로는 청계천까지 탁 트인 밭이 있어서 가게 안으로 바람이 든다.


"아주머니 오셨어요?"

"배달 가는 거 힘드시지예?"

"아닙니다. 요 앞이라 괜찮아요."

"연희야. 최 사장님 저러다 허리 다치실라. 이따가 얼음 찜질이나 좀 해도라. 고마, 내는 간다."

"그래."


"힘들지?"

"이 정도 갖고 뭘."


손님도 없는 날, 의자에 앉아 그저 저 멀리 보이는 차량기지에 열차가 드나드는 모습만 보고 있을 뿐이다.


'이런 날도 전철은 다니는구나.'


평소보다 조용하긴 했지만 결국 그 날이 그 날이다. 세상은 그래도 돌아가고 있다. 시대가 지나가는 건 그저 먼 하늘에 뜬 구름 같다.








"저, 아주머니. 하루치 밥 해먹을려면 쌀은 어느 정도 사가야 해요?"

어린 학생이 우산을 접으며 쌀가게 처마로 들어온다.


"일단 두 홉만 가져가."

명자는 비닐봉지에 두 홉 어치의 쌀을 담고 반 홉 정도 더 퍼담아준다.


"저... 어째서 더 넣으시는지..."

"반 홉은 덤이야. 남겨놨다가 내일 아침에 먹어."

"가, 감사합니다."

"아이고. 옷이 다 젖었네. 여기서 비 좀 피하고 가."

"네. 감사합니다."


"한양대 다녀?"

"네..."

"자취하나 보네?"

"네..."

"자취방이 어디야?"

"저기 동사무소 앞쪽이요."

"여기서는 한참 가야겠네."


"고향은 어디야?"

"충청도 홍성이예요."

"홍성? 나는 바로 옆에 청양인데. 올해 올라왔어?"

"네. 저 혼자 살아요."

"엄마가 걱정이 많으시겠다. 올라온지는 얼마 안 됐어도 얼마나 엄마 생각이 날까."

"..."

"엄마 보고 싶지 않아?"

"보고 싶어요. 아직은 엄마랑 떨어져 지내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나는 서울에 올라온지 14년째야. 우리 엄마는 내가 서울로 시집 온지 5년만에 돌아가셨지. 돌아가시기 전까지 2년 동안은 아예 얼굴도 못 뵀어. 나중에 엄마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도 차비가 없어서 며칠동안 발만 동동 구르다가 급하게 주인집에서 돈을 꿔다가 내려갔는데 벌써 엄마는 사흘 전에 돌아가시고 관 속에 누워 계시더라구. 오빠들이 잠깐 관 뚜껑 열어줘서 겨우 엄마 마지막 얼굴을 봤는데, 그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

"부모님이 걱정 많이 되실 거야. 연락 자주 해드려."

"네."

"서울 생활이라는 거 나 같은 시골 사람은 처음 올라와서 정말 힘들었어. 자취하다가 어떻게 할지 모르는 게 있으면 여기로 찾아 와. 나는 거의 매일 여기에 있거든."

"감사합니다. 자주 올게요."

"그래."


1980년 7월, 비가 정말 많이 오는 날이었다.


"현재 한강 수위는 크게 늘어나, 정부는 서울 지역에 홍수주의보를 발령하고..."








"여보! 얘들아!"

명자의 다급한 비명이 식구들을 깨운다. 


"사근국민학교로 대피하세요!"

바깥에서는 대피하라는 동사무소 직원의 고함이 들려온다.


한참 지속된 장마로 결국 사근동에도 물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여보! 집에 있는 짐은 우리가 챙길테니까 가게부터! 빨리!"


연희 아버지는 허겁지겁 옷을 입고 가게로 나간다.


"빨리 챙겨!"


문을 여니 마당까지 물이 들어찼다.


"엄마! 어떡해!"

"뭘 어떡해! 빨리 나가!"

"앗 차거!"


집은 잠겨도 가게에 있는 쌀들은 잠겨선 안 됐다.


"연희 아버지! 어떡해요!"

"차도 없는데 이 쌀들을 어떻게 옮겨!"


"연희야! 우리 왔어!"

고개를 돌려보니 성덕상회가 용달차를 끌고 골목으로 들어온다.


"자기들 짐은 다 옮겼어? 자기들 짐은 어쩌구 이리로 왔어?"

"세민쌀집 쌀 없으면 사근동 사람들 밥 못 먹어! 연희 아버지! 빨리 뒤칸에다 실어요!"

"고맙네! 정말 고맙네!"


빵빵ー


"거 좀 지나갑시다!"

"여기 쌀부터 다 실어야 가지! 빨리 지나가고 싶으면 이것 좀 도와줘요!"


쌀가게 앞 골목은 사근국민학교 올라가는 유일한 차도였기에 사근국민학교로 피난 가는 사람들은 모두 이 길로 몰려들었다. 그런 덕분에 차를 비키게 하기 위해선 차에 쌀 옮기는 작업을 빨리 끝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남자들이 달라붙어서 쌀 담은 초대형 대야를 낑낑대면서 들어올렸다.


"하나, 둘! 영차!"


"자, 출발합니다."

"다들 고마워요!"






물난리에는 부자와 서민이 없었다. 북새통을 이룬 사근국민학교의 교실 안에 구 사장 가족이 보였다.


"어, 연희네 왔구나. 가게는?"

"쌀을 그냥 놔두고 오려고 했더니 성덕상회 형님이 용달차 끌고 쌀을 실으려고 와서 간신히 가져왔어요."

"아이고, 봉덕상회한테 고맙다고 해야겠구나."

"당고모님도 참. 제가 고맙다고 나중에 쌀 세 포대는 공짜로 준다고 해도 그냥 됐다고 하더라구요."


처음 시골에서 상경해 의지할 곳 없던 사람들은 의지할 곳을 찾았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씩 친구가 되고 마침내 가족이 되었다. 너의 일이 곧 나의 일이었고, 모두에게 닥친 고난은 함께 헤쳐갔다. 모든 것이 부족하던 그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살아갈 수 있었던 건 서울에서 만난 또 다른 가족들 덕분이었다.


"연희야. 너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가 라면 받아놔라. 엄마 잠깐 바깥에 다녀올테니까."


각자 가게에서 가져온 먹을 것들은 있었지만 학교 안에는 조리도구가 없었기 때문에 무언가를 조리해서 먹을 수가 없었다.


옥상에서 본 사근동은 바다가 되어 있었다. 가게는 간판 윗부분만 보일 정도였고, 그보다 조금 지대가 높았던 집도 1m 정도 잠긴 것 같았다. 물난리는 이전에도 몇 번 났던 것이었지만 익숙해질래야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갑자기 닥친 이 엄청난 재난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슬프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저 정신이 아득해져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것을 잊어버렸을 뿐이다.


"연희야, 라면 나왔..."


새벽부터 피난 나오느라 피곤했는지 연희는 책상 위에 담요를 덮고 잠들어 있었다. 라면 배급이 이미 끝나서 사람들은 다 라면을 받았지만 연희네만 받지 못했다.


"얘가 진짜! 너는 이런 상황에서도 태평하게 잠을 자냐? 엄마가 라면 받아놓으라고 했잖아! 너 때문에 우리 아주 오늘 쫄딱 굶게 생겼다. 이따가 엄마한테 배가 고프네 어쩌네 했다간 입을 그냥 찢어놓을 줄 알어!"


회광반조 5장 이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