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이 분다. 목을 간지럽히는 기침을 참기 어렵다. 최대한 짧게 콜록였다. 찬바람으로 코에 물이 고인 것인지, 허파가 적정한 온도 유지를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겨울마다 별다른 증상없이 기침을 하곤 했으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저쪽 부두에는 세 척의 고기잡이 배가 정박해 있다. 지금은 출어기가 아닌가? 한 척은 수리를 위해서든 본격적인 출어를 대비해서든 장기간 묶여 있는 듯, 나머지 두 척은 주로 낚시꾼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듯하다.  부두를 감싸는 방파제를 거닐며 먼 바다를 보고 싶었다. 

싸구려 운동화라 탄력성이 떨어지므로 터벅터벅 걷게 된다. 방파제의 끝에 있는 등대까지는 대략 300미터쯤 걷거나 뛰거나 하면 되겠다. 무리하지 않고 등대를 목표 삼지만 고개를 돌려 먼 바다 끝에 보이는 선을 주시한다. 이 조그만 어항으로 다가오는 움직이는 점은 없다.  이럴 때는 옆에서 귀를 간지럽혀 주는 말벗이 있으면 좋겠지만, 고독한 체하면서 홀로 생각에 잠기는 것도 좋다. 조금 걸으니 운동화의 저렴한 가격이 먼저 떠오른다.

나는 요즘 메이커 운동화보다는 인터넷에서 가장 값싼 것을 주로 골라 신게 되었다. 어차피 메이커라고 해서 질리도록 오래 신을 수 있다거나 구름위를 걷는 것 같은 착용감을 주지는 않는다. 돈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왠지 메이커는 속는 느낌이 들어서 싫다. 시간이 나면 운동화의 탄성을 보강할 깔창을 집 근처 다이소에서 사면 될 것이다. 


언젠가 나는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겨울 해수욕장의 모래밭을 걸었다. 밀려오는 바닷물이 더 전진해 들어오지 못하는 곳까지 다가가 평밀이한 듯 평평한 모래톱에 군데군데 박힌 조개 껍질을 밟았다. 잊고 싶은 기억으로 혼돈과 정돈의 사이를 오가는 머리를 갸웃거렸다. 거센 바람도 내 몸을 차갑게 하지 못했다. 나는 왜 이리 어리석은 것일까? 모래톱에 찍히는 신발 자국을 바라보면서 수없이 되뇌었다. 결론에 도달할 수 없는 문제를 고민할 이유는 없었다. 아니 이미 결론은 내려진 것일 뿐, 내가 그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가 아직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시간이 아무리 많이 흘러갔다고 해도 머리와 달리 마음으로는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해 인식의 뒤켠으로 밀쳐두고 있는 사안이 있기 마련이다. 과거 혼란으로 이끌던 괴로움이 지금은 다 사라졌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찝찝함으로 남아 있는 문제.


이제 방파제 끝의 등대까지 왔다. 등대에 들어가는 방법을 탐색했으나 역시 등대의 철제 출입문은 묵직한 자물쇠로 단단히 잠겨 있다. 모터 소리와 함께 쾌속으로 달려오는 낚싯배가 보인다. 배에 탄 사람들은 기분 좋은 듯 나에게 두 손을 화짝 펴 흔든다. 나도 답례로 한 손을 높이 치켜 들었다. 배는 방파제 안쪽으로 들어가 정박하고 낚시꾼은 양동이에 담긴 물고기를 들어올려 둘러보고 재보고 할 것이다.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농부처럼 낚시꾼은 자기 솜씨의 산물에 흐뭇한 웃음을 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