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광반조 5장 보러가기


"날씨가 참 화창하다."

"맨날 가게에 있을려니 답답하지?"

"아니 뭐..."

"어디 좀 놀러 다녀오지 그래?"

"당신 배달 가면 누가 가게 보고 있어."

"누구 데려다 놓고 보라고 하면 되지. 당신, 늙어서 놀러 다닐 생각하지 말고 지금 놀러 다녀."

"에휴..."


"연희야."

"어. 어서 와. 쌀 줘?"

"아이다. 그게 아이라..."

"왜 그래? 오늘 표정이 좀 이상하네?"

"순화식당 주인 아지매 말이다."

"응. 왜?"

"어젯밤에 돌아가싰단다."

"어머? 얼마 전에 우리 집에 며느리 데리고 왔었어."

"남편 일찍 잃고 아들 넷을 그 고생을 해가 키우다가 며느리 보고나서부터 맨날 내는 인자 곧 죽어도 여한이 없다카시드만 진짜로 얼마 안 있어가 돌아가시네."

"아이고... 순화식당은 인자 문 닫는거야?"

"아이다. 아지매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매느리한테 다 물리주싰단다. 그래가 인자부터 그 매느리가 할 기라."


덕이 많은 어른이었고, 동네 사람들이 많이 의지했던 분이었다. 당신 인생이 고달파도 항상 누군가를 도우려 애쓰셨다. 어느 날 구 사장 모친이 형편도 좋지 않으면서 어째서 그러느냐고 물으니, "내가 이렇게 덕을 쌓아 놔야 나는 누구 덕을 못 보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내 생각해서 우리 자식들을 도울 것이 아니냐"고 하셨단다. 그런 그 분의 인생을 잘 알고 있기에 큰 탄식에 잠길 수 밖에 없었다.


생전에 고인에게 은의를 받은 사근동 사람들은 모두 상가(喪家)를 찾았다. 다들 넉넉치 않은 형편이었지만 십시일반 부조금을 냈다.


"아주머니 오셨어요."

눈이 퉁퉁 부은 순화식당 집 며느리가 맞는다.


"성인이 따로 있나. 아주머니 같이 사신 분이 성인이지. 나도 아주머니 덕을 많이 봤어. 새댁, 우리 집에 자주 와. 아주머니 생각해서 우리도 많이 도울게."

"고맙습니다."


고인은 남긴 재산은 얼마 없었지만 사근동 사람들의 마음 속에 베푸는 마음을 남겼고, 다른 인생들을 구제할 은인들을 만들었다. 한 사람의 사랑은 다른 이들에게 여유를 만들고 여유 있는 사람은 사랑을 베풀기 마련이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 그리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따뜻한 마음이 역사를 만든다.






"아주머니, 안녕하셨어요?"

"어. 상은 잘 치렀어?"

"네. 동네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여기 사근동 참 살기 좋은 곳 같아요."

"아하하. 다 자기 어머니가 남기신 유산이지. 어, 참. 식당 일을 이어서 하게 됐다고?"

"네... 저도 시집 와서 갑자기 이런 중책을 맡게 돼서 많이 곤란해요. 하하. 쌀도 얼마나 시켜야 할지도 모르겠구..."

"어. 내가 알아. 쌀은 10포대 정도 가져다 놓고 일주일 간격으로 보고 쓰면 돼. 이따가 우리 연희 아버지가 가져다 줄 거야."

"고맙습니다."






세민쌀집은 홀로서기 초년생들의 보금자리 같은 곳이 되기도 했다.


"아주머니, 밥은 어떻게 하면 돼요?"

"집에 압력밥솥 있지? 학생은 혼자 사니까, 한 홉 정도 넣구 물은 손등에 약간 못 미치게. 좀 질은 밥 좋아하면 손등까지 오게 해도 돼. 연기 나기 시작하면 불 좀 줄이고 그 뚜껑에 연기 구멍 막는 거 잠깐 빼면 돼."


"저번에 아주머니가 알려주신대로 했는데 밥이 다 탔어요."

"으이구. 지금 같이 집에 가자. 내가 알려줄게."


"아주머니. 죄송하지만 저 딱 한 번만 외상 해주시면 안 돼요? 봉급 들어오면 바로 가져다 드릴게요."

"원래는 내가 외상 안 해주는데, 학생은 내가 믿으니까 외상 해주는 거야. 젊은 나이부터 외상값 떼먹고 그러면 나중에 될 일도 안 된다? 알았지?"


24살에 서울에 시집 와서 아는 사람 없이 외롭게 살림을 꾸려가야 했던 젊은 날의 자신이 생각나서였다. 물가에 나온 새끼 오리들 같은 그 청춘들에게 기대줄 버팀목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에게 기댈 곳을 만들어준 어른들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해 가을 사근동에는 또 다른 어른이 돌아가셨다.


"아이고... 아이고..."


쌀가게 바로 뒤로 난 큰 대문에 상등이 걸렸다. 구 사장의 모친이 돌아가신 것이었다. 친척 당고모이기 전에 서울에서의 어머니였기에 명자의 상실감은 더욱 컸다.


"아니,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연희네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아이고..."


요 근래 2년 간 겪어온 풍파가, 아니 서울 생활 14년의 고단함이 한 순간에 눈물이 되어 쏟아졌다.




"육개장 차려놨어요. 좀 드세요."

두 부부는 말 없이 육개장을 먹는다.


"가게를 너무 오래 비워둔 것 같아. 당신은 여기서 좀 추스르고 나와. 나 먼저 가게에 가 있을게."

"응."






"아! 아... 이거 왜 이러지 갑자기..."

가게에 있던 연희 아버지는 갑작스레 배를 움켜쥔다.


"아이고! 아악!"


때마침 학교에서 하교하며 가게 앞을 지나치던 연희가 가게 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아버지를 발견하고 뛰어 들어온다.


"아빠! 갑자기 왜 이래!"

"엄마... 니네 엄마 좀..."

"엄마 어딨어? 응?"

"구 사장 댁에... 빨리..."

"금방 데려올게!"


"엄마! 엄마!"

육개장을 천천히 먹고 있던 명자는 갑자기 울면서 들어오는 연희를 보며 놀란다.


"왜, 왜 그래?"

"아빠가 죽을라 그래! 빨리!"

"뭐?"


가게로 뛰쳐나온 명자는 바닥에서 실신 지경인 남편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뒤따라 나온 구 사장이 상복을 입은 채 연희 아버지를 업고 자기 차로 간다.


"사장님! 상주가 자리 비워도 되겠어요?"

"아,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지금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빨리 타요!"


'당고모님, 하늘에서 우리 연희 아버지 좀 지켜주세요.'

명자는 떠나는 차 안에서 상등이 달린 대문을 보면서 돌아가신 구 사장의 모친에게 기도를 올렸다.








"맹장염입니다. 맹장은 잘 제거했구요. 회복만 잘 하시면 됩니다."

"아이고, 그냥 이 양반 때문에 간이 뒤집혔네!"

"아, 그래도 최 사장 무사해서 다행 아니요."

"감사합니다. 이거 저희 때문에 상갓집을 너무 오래 비워둔 게 아닌지..."

"아녀요. 이제 돌아가 봐야겠어요."

"저, 사실 아까 차 탈 때 당고모님한테 기도했어요. 우리 연희 아버지 지켜달라구. 그랬드니 이렇게 별 일 없이 끝났나 봐요.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어머니께 꼭 전해 드릴게요."




"끝으로 동양방송의 호출부호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알려드리겠습니다. 여기는 639 키로헤르츠, HLKC 동양라디오입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동양방송이 사라졌다. 대통령이 바뀔 때도 한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체감하지 못하던 사람들이었지만 동양방송의 폐국은 정말로 60년대, 그리고 70년대와의 완전한 작별처럼 다가왔다.


70년대에서 80년대로 넘어가면서 많은 것이 끝났고, 또 많은 것이 시작되었다. 운명의 갈림길 속에서 누군가는 역사의 뒤안길로 들어갔고, 누군가는 머나먼 곳에서부터 내 곁으로 오기도 했다. 그들 역시 언젠가는 이 무대에서 퇴장하겠지만 1980년에서 1981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그들은 변함 없이, 그리고 굳건하게 걸어나갔다. 끝은 시작으로 연결된다. 우리는 계속되는 끝과 시작에서 무던해질 뿐이다.




"윤석아. 우리 봄이 오면 꽃놀이나 가지 않을래?"

"니가 웬 일이고? 어데 놀러 가자고를 다 하고?"

"그냥. 나도 이렇게 가게만 지키고 있다가 늙는 게 아닌가 싶어서. 이제 우리도 곧 마흔이잖아."

"니, 순화식당 아지매 보고 그래 생각하는 기제? 하모. 영훈이네도 같이 가자."

"좋지. 많이 불러."


회광반조 7장 이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