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한을 침공한 이래 몇 달이 지났다. 인민군은 쾌속으로 한국군을 밀어내었고 결국 한국군은 낙동강까지 후퇴하고 말았다. 영토의 대다수가 적에게 넘어갔고 한국군은 이대로 가다가는 공산주의에 완전히 넘어갈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 장점이 있다면, 그것은 역으로 인민군의 상태였다. 길어지는 보급로와 계속되는 전투, 그리고 여기에 우리 연합군 측이 우레같이 쏟아부은 폭격으로 인민군은 전투력을 어마어마하게 상실했다. 지금 낙동강 전선에 투입된 인민군은 채 10만명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들의 연합군의 참전 덕분에 그 이상의 병력을 확보하여 전쟁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기기는 무리다. 우리들은 낙동강을 방어선으로 잡았다. 방어에 유리하다지만 그렇다고 공격하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도강하여 공격한다면 바로 적에게 들킬 것이기에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했다. 실제로 이 방법대로면 38선까지 도달하는 데만 10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나올 터였다.
그러므로 답은 상륙밖에 없었다. 뒤에서 보급로를 끊으머 적 후방으로 들어가야 끝낼 수 있었다. 열차와 도로가 통하는 서울을 점령할 수만 있다면 안 그래도 힘겨운 인민군은 그대로 무너질 것이 확실했다.

"군산으로 갑시다. 이곳이 상륙조건이 좋기 때문에 이곳에 상륙해야 합니다."

참모들의 말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틀렸다. 우리는 인천으로 가야만 했다. 지금으로서 확실하게 적의 보급로를 끊을 수 있는 상륙 지점은 그곳밖에 없었다.

"안 된다. 인천으로 가야 이긴다. 그곳밖에는 답이 없다."
"그렇지만 인천은 조수간만의 차가 너무 큽니다. 최대 9m이고 최소라고 해도 7m입니다. 밀물 때 상륙하지 않으면 엄폐물도 없이 적을 마주하는 꼴이 됩니다. 그리고 썰물이 되면 수백 미터 이상의 갯벌이 펼쳐질 겁니다."
"하지만 군산에 상륙해봤자 큰 영향을 줄 수 없다. 적의 보급로를 하나라도 절단하거나 적을 조금이라도 포위시킬 수 없을 거다."
"그러나 그곳으로 가는 통로는 비어수로입니다. 좁은 탓에 표적이 되기 쉬울 뿐 아니라 유속이 매우 빨라서 자칫하면 떠밀려가기 쉽상입니다. 인천은 상륙하기 힘든 특징이란 특징은 전부 가지고 있는 험지입니다. 그런 인천으로 들어가는 것은 자살이나 다름없습니다. 여길 갈 바에는 차라리 평택군 포승면 앞바다가 낫습니다."
"포승면? 거기는 인천보다 더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곳이다. 게다가 수도와의 거리도 부적절하다."
"하지만 방어시설이 잘 갖춰져있는 항구를 직접 점령하는 것은 너무 위험합니다. 디에프 상륙작전에서 영국군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잘 아시잖습니까. 성공률은 5000분의 1. 성사할 수 없습니다."
"맥아더는(주:맥아더는 3인칭을 썼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사시켰다. 이번 일도 잘 될 것이다. 그리고 5000분의 1이라고? 인민군은 낙동강 전선에 투입시키기 위해 경기도의 군대를 다수 이동시켰다. 5000분의 1보다는 높을 것이다."
적 후방의 완전 단결.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곳은 인천밖에 없었다. 그 어떤 말도 나 맥아더를 흔들 수 없었다. 이 작전이 5000대 1의 도박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지만 나는 가런 모험에 익숙해져 있었다. 우리는 인천에 상륙할 것이며 적을 분쇄할 것이다.

그렇게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리고 훗날 인천상륙작전이라고 불릴, 일명 크로마이트 작전이 시작되었다.



*


"팔미도 점령 완료!"
유진 클라크 대위와 KLO 부대와 연합작전팀이 인민군과의 치열한 교전 끝에 마침내 인천 앞바다의 팔미도를 점령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팔미도 등대의 조명이 켜졌다. 그 등대의 빛은 승리의 빛이자 희망의 빛이었다.

8개국 261개척이 등대를 길잡이 삼아 월미도, 인천항, 경인가도를 향해 상륙하여 점거하였다. 페이크 정보와 장사 상륙 작전 등으로 인해 군사들이 대다수 빠진 인천에서 인민군들은 열심히 교전했으나 이내 진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마침내 연합군은 인천을 장악하였다.

그렇게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