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인간이 희귀종인 세상에서
개념글 모음

인터넷을 떠도는 지식들은 생각보다 별 것 없었다. 고작해야 용과 드래곤이 가까운 친척사이에 비슷하다거나, 용의 색은 다 비슷비슷하지만 드래곤은 색깔 별로 성격도 가지각색이라는 것.


그 외에 혹시나 싶어 역사에 대해 검색을 해봤지만, 역사에 대해 자세히 적힌 것은 없었다.


마치 검열이라도 당한 것처럼,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찾은 것도 중요한 부분들이 드문드문 빠져있는, 일부로 빼놓은 듯한 느낌이 잔뜩 드는 현대에 살아가는 용과 드래곤의 이야기를 잠깐 적어놓은 것이었다.


이렇다보니 스마트폰으로 용과 드래곤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포기하는게 낫겠다.


이다지도 많은 종족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니 용과 드래곤말고도 다른 종족들의 역사에 대해서도 궁금하기는 했지만, 그 경우에는 역사가 어마어마한 수준을 넘어서서 읽으려면 사람의 한 평생을 걸어야 할 정도로 너무나도 막대한 양이다.


아니, 단순히 엘프 종족의 역사에 대해 검색해봤더니 수백을 넘어 수천, 수만이나 될 정도로 길면 어떻게 읽으라는 건지.


그나마 다행이라면, 수명이 짧은 종족들을 위해 역사를 요약해놓은 내용들도 있기는 했지만 그것도 어지간히도 길었다.


엘프들은 자기들의 역사에 대해 자부심이 굉장히 강한 모양인지 특정 부분에 대한 내용은 빠지지가 않아서 그 내용만으로도 사람은 5년을 넘게 읽어야 겨우 파악이 될 정도였으니.


사람이랑 비슷한 수명의 종족이 남긴 리뷰로는 역사학자가 될 생각이라면 단명종은 읽지 말 것 이었다.


단명종이라니, 아니. 확실히 엘프나 수명이 긴 종족들에 비하면 수명이 짧은 종족들을 단명종이라고 표현을 하겠지만, 이것도 종족 차별적인 발언이 아닐까.


리뷰를 쓴 종족에 대한 악감정이 약간이나마 샘솟았지만, 이내 촛불이 꺼지듯이 사그라들었다.


이런 곳에 심력을 낭비해봐야 쓸모없는 일이니까. 이런 곳에 시간을 쓸 바에 내가 아는 사람, 아니. 종족들과 대화를 하거나 아니면 내가 원하는 정보를 찾는 편이었다.


…그나저나, 언제쯤이면 금향이 나올련지.


카운터 앞의 내 멋대로 가져온 의자에 앉아서 기다린 지도 꽤 된 것 같았는데, 아직까지도 금향은 보이지가 않았다.


어쩌면, 내가 멋대로 카페 안으로 들어온 걸지도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도로 밖으로 나가서 갈만한 다른 곳을 찾아보는 게 나을지도….


그런 생각을 하며, 슬슬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할 때 쯤, 카운터 뒤쪽에서 평소의 유니폼이 아닌 사복을 입은 금향이 보였다.


하얀색 와이셔츠에 검은색 바지를 입은 금향의 모습은 마치 사회인이나 겉옷을 벗은 바텐더같은 느낌이 났다.


저 쪽의 부서진 곳들을 보며 어떻게 고칠 지 고민하는 건지 턱을 쓰다듬으면서 손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손짓을 따라 부서진 것들이 한 곳에 모여서는, 알 수 없는 강력한 힘에 압축이라도 되는 것처럼 꾸깃꾸깃 구겨지고는, 작은 공모양의 쓰레기로 변했다.


그것을 보며 금향이 화를 내면 대체 얼마나 대단한 일이 벌어지는 건지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렇게 금향이 화낼 정도의 일이 있기는 한 건가 싶었다.


…나도 금향이 화를 내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지만.


아무튼, 여전히 금향은 나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기에 카운터를 손가락으로 두번 두들겼다.


톡, 톡.


"…어머, 미안해요. 손님이 온 걸 몰랐…네?"


"바쁘십니까?"


"아, 아뇨. 그렇게 바쁘지는 않아요. 그나저나, 여기에는 왜 오셨나요?"


"도서관에 갔는데 청하가 멀쩡한 모습이 아니길래 금향은 괜찮은 건지 보러 왔습니다."


"저는 괜찮답니다. 안 그래도 여기는 제 공간이니까요."


금향은 내게 방긋 웃어보이면서 공으로 뭉쳐진 부셔진 가구들을 휙 하고 손짓하니 카운터 뒤쪽의 공간으로 날아갔다.


날아간 뒤에 우당탕, 쿠당탕 같은 물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금향은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있는 걸 보면 큰 문제가 발생한 건 아닌 듯 싶었다.


…괜찮은 건지 금향을 봤지만, 금향의 와이셔츠 밑으로 튀어나와 있는 꼬리는 기분이 좋은 지 살랑거리며 천천히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


"…제 꼬리를 그렇게 보시면 저도 부끄럽답니다, 주빈."


"죄송합니다. 꼬리가 움직이는 모습이 신기하다보니."


"으음. 확실히, 사람에게는 꼬리가 없으니 이런 것들이 신기하겠네요. 저희들에게는 약간 곤란한 부위지만요."


"그렇습니까?"


"그럼요. 꼬리가 있어서 가능한 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경우도 많아요."


"…혹시, 지금은 어떤 기분인지 물어봐도 괜찮습니까?"


"그…."


말을 잇지 못하고 약간의 뜸을 들이며 고민하던 금향의 모습에 내가 물어보지 말아야할 것을 물어본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금향과, 말실수를 한 걸지도 모르겠다는 나의 침묵으로 카페 안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공간이 되었다.


어떤 말을 꺼내야 금향이 받아줄까. 아니, 처음부터 꼬리에 관련된 말을 하면 안 하는게 맞지 않았나.


이름으로 불러달라는 말과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는 금향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린 걸지도 모른다.


말 없이 꼬리만 흔들고 있는 금향을 보니 얼굴이 빨갛게 물든 게 보였다.


"…그, 저를 찾아와서 기쁘지만, 부끄럽답니다…."


"…그, 그렇습니까."


살랑살랑 움직이던 꼬리가 이제는 맹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속도로 좌우로 움직이는 꼬리에 맞으면 아마 멍이 들거나 뼈가 부러질 것 같다고 생각될 정도로.


금향도 본인의 꼬리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 건지는 아는 모양이었다.


자신의 꼬리를 품 안에 끌어안고는 움직이지 않게 두 손으로 꽉 껴안았다.


"그, 그러니까 부끄러운 말을 시키지는 말아주세요!"


"다음부터는, 주의하겠습니다…."


품 안을 열심히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꼬리의 모습을 보아하니 한동안은 꼬리를 품에 안은 채로 있을 것 같다.


"잠, 잠시만 기다려줄래요? 간단한 커피라도 내드릴테니까…."


"알겠습니다."


조금은 진정이 된 건지 아까보다는 덜 빨간 색으로 변한 얼굴이 된 채로 품 안의 꼬리를 놓자 방금 전의 속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빠른 속도로 좌우로 움직이는 꼬리가 보인다.


그래도 그 정도면 어느정도 제어가 되는 건지 금향은 다시 품에 안지는 않았고, 카운터 뒤로 가서 커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와이셔츠 밑으로 툭 튀어나온 꼬리를 보고 있자니 옷에 구멍을 뚫어놓은 걸까, 아니면 꼬리만 나오도록 따로 구멍이나 홈이 파인 걸까 궁금해진다.


물어보면 안 되는 종류겠지만. 저런 건 인터넷에 검색해보는 걸로 호기심을 해결하도록 하자.


콧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커피를 만들고 있는 금향의 뒷모습을 보며 스마트폰의 인터넷으로 꼬리가 달린 종족들의 의상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찾아보니, 생각했던 그대로였다.


아예 꼬리가 나오도록, 바지에 구멍이나 홈을 파서 나오는 경우거나, 아니면 옷에 구멍을 뚫어서 그쪽으로 나오게 만드는 경우.


그 외에도 몇 가지 경우가 더 있기는 했지만 이건 내 입으로 말하는 게 부끄러울 정도였다.


…생각보다 별에별 취향이라는 게 존재했다.


금향이 커피를 내올 때까지 스마트폰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카운터 위로 탁. 하고 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고, 그 쪽을 보니 평소에 먹던 커피의 색깔이 아니라 청하가 주로 마시던 커피의 색과 비슷한 게 보였다.


"청하가 주로 마시던 커피랍니다. 물론, 청하에게 맞춘 게 아니라 주빈에게 맞춘 거에요."


"그렇습니까. …혹시, 청하가 마시던 커피는?"


"지금 내준 것보다 세 배는 달답니다. 아니, 사람의 기준이라면… 달다 못해서 입맛이 사라질 정도라고 하는 게 맞을까요."


쓴웃음을 지으며, 사람에게는 먹을만한 것이 안 된다며 말하는 금향의 말에 확실히, 용의 입맛은 사람이랑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정도로 달면 한 모금 마시는 것도 힘들어보인다. 거의 벌칙 수준으로 단 맛이지 않을까.


스마트폰을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고, 눈 앞에 놓인 커피 잔을 잡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뜨거워 보였지만, 잔과 내용물은 차가웠다.


"아이스로 내왔어요. 아무래도, 청하가 마시던 대로 내오기에는 너무 뜨겁거나, 아니면 너무 차가울 것 같아서요."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뭘, 저야말로 자주 찾아와주셔서 고마워요."


짠. 하고 술 잔이라도 맞추듯이 잔을 내미는 금향의 모습에 금향의 잔에 살짝 부딪쳐 소리를 내고 한 모금 마셔본다.


주로 마시던 커피의 맛은 아니었지만, 어디선가 많이 마셔본 맛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믹스커피의 맛이라고 해야하나.


슬쩍, 금향을 쳐다보니 여전히 쓴웃음을 지은 채로 내 잔을 보고 있었다.


"믹스커피 맞답니다. 아무래도 지금 상태로 제대로 된 커피를 내놓기에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서 말이죠."


"저는 믹스커피도 좋아하니 괜찮습니다."


"그런가요. 그건 기억해둬야겠어요."


내 말을 기억하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음, 음. 하고 소리를 내던 금향은 자기 손에 들린 커피를 입에 한 번에 전부 털어마셨다.


내 것과는 다르게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던 걸로 알고 있는데, 역시 드래곤이라 입 안이나 위장이 사람이랑은 다른 모양이었다.


"후우. 그럼, 원하는 만큼 쉬었다가 가셔도 좋아요. 저는 카페를 정리해야 되서요."


"…제가 방해라면, 이것만 마시고 금방 가겠습니다."


"아, 괜찮아요. 어차피 카운터 쪽은 특별히 신경써서 관리하는 곳이라 이미 정리가 끝났거든요. 아니면, 거기서 제가 어떻게 마법을 쓰는 건지 한번 보시겠나요?"


"보겠습니다."


아침을 먹을 때에 손짓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건 봤지만, 눈 앞에서 직접 보여주겠다는 건 이야기가 달랐다.


제대로 된 마법이 어떻게 사용되는 건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많이 궁금한 편이었다.


병원에서도 내게 진찰을 할 때 마법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간이로 쓴 것이라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그 전에 기계로 확인하는 게 더 빠르기는 했지만. 의사 말로는 기계와 마법, 둘 다 사용하는 게 신뢰성이 더 높다고는 하던데.


…상념에 너무 잠겨있었던 모양이다. 눈 앞에서 금향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쪽으로 다가와서는 이마를 만지고 있었다.


"괜찮으신가요? 몸에 문제가 있거나 아프신 건 아니죠?"


"괜찮습니다. 잠깐, 마법에 대해 생각을 하다보니."


"그렇군요. …이번에는 약간, 힘을 써서 해볼까요."


모처럼의 관객이니까 조금만, 아주 조금만 진지하게 가자.


자기딴에는 내게 안 들리게 중얼거린 것 같았지만, 사람의 기준으로는 충분히 목소리가 커서 다 들렸다.


드래곤의 약간 진지하게 사용하는 마법은 과연 얼마나 굉장할 까. 기대감을 품고 텅텅 비어버린 카페 내부의 가운데에 선 금향을 쳐다본다.


허공에 손을 뻗은 금향의 손 위로 검은색 선 하나가 그어지더니, 양 옆으로 쫙 하고 찢어지면서 금향의 색에 딱 맞춘 듯한 느낌의 황금색 지팡이가 튀어나온다.


끝에 달린 보석은 뭔지는 모르겠지만 파란빛을 내고 있었는데, 묘하게 빠져드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렇게 너무 주의 깊게 보지는 말아주세요."


"아, 죄송합니다. 위험한 물건입니까?"


"위험한 물건은… 맞긴 하겠네요. 저나 청하에겐 그렇게 큰 효과가 없겠지만, 아마 마력이 있는 종족들에겐 매우 위험할거에요. 아니, 주빈은 괜찮겠어요."


사람에게는 마력이 없으니까.


그렇게 여전히 내게 들릴 정도로 중얼거린 금향은 지팡이를 딱. 하고 바닥에 내리치자 금향을 중심으로 카페 내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카페 내부가 흔들렸지만, 카운터나 물건들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공간만이 떨린다.


카운터 위에 놓아둔 커피가 떨어질 것 같아 잡으려고 했지만, 커피는 아무런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 건지 금향을 쳐다보니, 입꼬리가 올라간 상태로 이번에는 내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그리고 빠른 속도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마 내게 들릴 정도로 목소리가 컸다고 하더라도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금향의 입 밖으로 나오는 소리는 내가 아는 언어가 아니었으니.


우우웅─ 하고 다른 물건들은 건드리지도 않는 카페 내부의 떨림이 계속되다가, 금향을 중심으로 아래부터 시작해서 형이상적인 문양 수십개가 원형을 그리며 금향의 머리 위까지 올라왔다.


문양의 중심에 선 금향이 지팡이를 살짝 들어올린 채로, 내 귀에 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로 외치고는 딱! 하고 다시 한번 지팡이의 끝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금향을 중심으로 둘러싼 문양들이 지팡이로 녹아들고, 지팡이를 따라 바닥으로 흘러간다.


하나 둘. 문양들이 바닥으로 흘러갈 수록 진동은 점점 더 거세졌고, 이거 괜찮은 건지 내가 걱정이 들 때에는 한순간에 진동이 사라지고, 언제나와 같은 카페 내부가 보였다.


부서진 물건들이 원상복귀라도 된 것처럼 텅텅 비어서 허전함을 느끼던 카페 내부에는 언제나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왜 가운데를 비워놨던 건지 몰랐던 카페의 가운데에서, 금향은 나를 보며 방긋 웃음을 지었다.


"드래곤의 마법, 충분히 즐거우셨나요?"


"무척이나, 즐거웠습니다."


청하가 말했던 것처럼, 드래곤의 마법은 굉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