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인간이 희귀종인 세상에서

사장님이 해주신 볶음밥은 맛있게 먹었다.


어지간한 중국집보다 더 잘하는 것 같았다. 여기에 중국집이 있기는 한 건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다른 종족으로 다 바뀌어버린 모양이던데, 그렇다면 중국이라는 나라에 어떤 요리가 있을까.


많이 궁금했다. 기름으로 튀기듯이 볶는 요리일까, 아니면 아예 다른 무언가의 요리가 되었을까.


사장님이 먹은 것들을 치우러 뒤쪽으로 가는 동안, 청하는 놀랍게도 볶음밥을 먹는 동안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묵묵히 먹기만 했다.


청하가 말하기를, 원래 밥 먹을 때에는 개도 안 건드린다면서 조용히 먹는 게 예의란다.


…밥 먹을 때 보통은 이야기를 꺼내면서 먹는 것도 일반적인 경우가 아닌가 싶었지만, 굉장히 오래 산 청하의 말이니까 아마 여기서는 맞는 말이겠지.


아니면 어쩔 수 없고. 내가 여기에서 어떻게든 적응하려고 노력은 해봤지만, 아직까지도 상식에 대해서는 많이 부족한 편이었으니.


밥 먹을 때에는 조용히 했던 것처럼 지금도 조용했으면 참 좋았으련만. 아니, 조용하기는 한데 왜 내 품에 들어와서는 조용히 있는 건지 모르겠다.


지금은 카운터 앞에 의자에 앉아있는 게 아니라 카페 한 켠에 놓여진 소파에 앉아있는데, 그런 내 앞에 청하가 내 몸에 기댄 상태로 앉아있었다.


가슴이 없는 건 아니라서 청하에게 눌리다 보니 드는 느낌이 참 묘하면서도 답답했다.


원래도 똑바로 누워서 자는 것보다는 옆으로 누워서 자는 걸 선호하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똑바로 누워서 자는 것 말고는 다른 방식으로 자는 게 더 불편했다.


아무튼, 약간의 불편함에 몸을 뒤척거리지만 청하는 그런 내 반응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로 내 몸에 기댄채 뭘 그리 생각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숨만 쉬며 조용히 하고 있었다.


말이라도 걸어볼 까 싶었지만, 그럴때 마다 청하가 검지손가락을 위로 치켜세우면서 가만히 있으라는 손짓을 보냈기에 그만 뒀지만.


설거지하는 동안만 이러고 있기래 했는데 사장님의 설거지가 언제쯤이면 끝나실까.


그런 생각을 하며 카운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바로 청하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런 부분에서는 감이 매우 좋았던 청하였기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서 본 것이었지만, 청하는 가만히 앞을 보는 중이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종족들을 보는 것인지, 아니면 창에 흐릿하게 비치는 내 모습과 스스로의 모습을 보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설거지 끝났어! 오래 기다렸니?"


한 손에는 쟁반을, 그리고 다른 손에는 컵 세 잔을 들고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사장님이 보였다.


소파 앞에 놓인 탁자에 쟁반을 먼저 내려놓고, 컵 세 잔중에서 두 잔을 우리 쪽으로 내려놓고는 사장님은 그런 내 옆에 잔을 놓더니 내 옆 자리에 앉았다.


뭐지, 왜 옆에 앉으시지.


옆에 앉는 사장님의 의도를 알 수가 없어서 머릿속에 물음표만 띄우면서 사장님을 쳐다보는 데, 나를 보고는 빙긋 웃음을 지었지만 청하를 보는 순간 웃음이 사라졌다.


…아, 이거. 아까랑 비슷한 분위기 아니었던가.


폭풍전야. 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침묵만이 카페 안을 가득 채운다.


밖을 지나다니는 종족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너무나도 조용한 사장님과 청하의 모습에 긴장이 될 정도로 침묵만이 가득한 카페 속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열은 사람은 청하였다.


"이렇게 있는 게 그렇게나 불만인게냐?"


"불만이고 말고. 나도 해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자존심때문에 알바해달라는 말 밖에 안 했으니까."


사장님이 꾹, 하고 검지 손가락으로 내 뺨을 가볍게 눌렀다.


그렇게 부드럽거나 아니면 어린애들처럼 말랑거리는 느낌도 아닐 텐데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드시는 건지 만족했다는 듯한 표정이면서도 계속 누른다.


뺨이 눌리면서 입 안에 닿는 느낌이 약간 묘했지만, 어제의 일을 겪고 나니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싶었다.


어쩌면, 어제의 일 때문에 내게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던 건지도.


원래람련 이런 스킨십… 이라고 해야 하나, 몸에 손을 대는 행동을 했다면 뭐라고 했겠지만, 청하와 사장님의 일을 겪고나니 심적으로 무언가가 조금 닳아없어진 느낌이었다.


그게 꼭 나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사장님과 청하의 겉모습은 미인이었으니. …겉모습만.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은 변태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엄청난 종족들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기미를 보여주고 있지는 않았으니 괜찮았다.


보여주는 순간 바로 집으로 도망가겠지만. 도망갈 수는 있으려나.


"흠. 이만하면 됐겠지. 너도 품 안에 들어가보겠느냐?"


"물론… 아니, 학생에게 먼저 물어보는 게 맞지 않아?"


"난 품에 들어가도 뭐라고 하지 않아서 그냥 품에 있었다만."


"뭐?! 학생, 왜 나한테는 그런 거 안 해주는거에요!"


"청하님이 말을 많이하시는 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하여 가만히 있었습니다."


"아… 그런 면이 있기는 하죠."


"뭣! 아니, 그 전에. 청하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청하라고 부르게!"


"저 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에게 어떻게 그렇게 말하겠습니까."


"청하라고 불러달라고! 청하라고 불러!"


"청하. 됐지? 그러니까 이제 조용히 해."


"네 녀석에게 부탁한 적 없다!"


"…귀 아프니까 조용히 해주셨으면 합니다."


""미안하네(해요).""


두 손으로 귀를 막을 자세를 취하자 순식간에 태도가 급변하여 내게 사과를 해오는 두 명의 모습에 올리던 손을 도로 내려놨다.


슬쩍, 탁자 위에 놓인 쟁반을 보니 어제 먹었던 허니브레드와 함께 내가 자주 마시던 커피가 놓여있었고, 청하의 몫이라 생각되는 잔에는 청하가 자주 마시던 커피로 보였다.


그리고 사장님의 잔을 보니, 색이 아주 시꺼멓다 못해 이게 정말 먹어도 괜찮은 건가 싶을 정도로 검은 물이 보였다.


"에스프레소 랍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저는 마실 맛이 나더라구요."


"…저런 걸 어째서 먹는 건지는 나는 모르겠느니라."


"이것도 나름대로 맛이 있으니까 먹는 거야. 아니면, 너가 너무 어린애라서 그런 게 아니고?"


"어린애 아니다! …아니, 어린애 취급을 받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군."


"어린애라고 말하기에는 그, 나이가… 많지 않으십니까."


여기서 어린애라고 주장할 수 있는 나이가 되는 종족이 없을 텐데 왜 굳이 어린애라고 주장하시는 걸까.


어린애라는 말을 부정당한 청하는 기르던 개가 다른 사람을 더 따르는 모습에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 난 어린애란 말이다!"


"어린애라고 하기에는 몸매도 그렇고 말투도 그렇고, 좀 그렇지?"


"동의하겠습니다."


"…네 녀석은 나중에 한번 보겠다. 그리고, 학생…."


"예."


"어제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오늘은 왜 그러는게냐…."


"어제는 청하도 그렇고 사장님에 대해서도 잘 몰랐었는데, 오늘은 조금이나마 알지 않습니까."


"그게 이런 식으로 태도를 바꿀 일인가?"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나를 보는 청하였지만, 그런다고 내게 별다른 감정을 느끼게 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저 표정을 어제도 봤었고, 저 안에 든 게 변태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런 내 태도에 칫, 하고 짧게 혀를 찬 청하는 금세 울먹거리는 표정을 얼굴에서 지워버렸다.


"이제는 이것도 잘 안 통하는구나."


"너무 자주 쓰니까 그렇지. …아, 그렇지. 너도 이제 거기서 나와. 학생도 많이 참아줬잖아?"


"알겠느니라. 예전이었으면……."


"예전은 무슨, 예전이야. 발언이 너무 구시대적인 용이잖아."


"구, 구시대의 용이 맞기는 하잖느냐."


청하는 나랑 비슷한 나이면서… 라고 꿍얼거리며 내 품에서 벗어나 사장님이 앉지 않는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제서야 몸이 편해진 것에 숨을 한번 길게 내쉬면서 기지개를 켰다가 소파에 등을 기댔다.


푹신한 게 내 침대보다 더 푹신한 것 같았다. 이대로 눈을 감았다가는 그대로 잠들 것 처럼.


그렇지만 잠들 수는 없었다. 옆 자리에 앉은 청하가 내 손을 가지고 놀고 있었기에.


"…뭐하십니까?"


"심심해서 점이라도 보려고 한다. 물론, 진심으로 하는 것도 아니니 그런 눈으로 보지 않아도 괜찮다. 제대로 점 치는 것도 아니고 장난으로 보는 것이니."


"이왕이면 좋게 가능합니까?"


"물론이니라. 그러니 손바닥을 보여주거라."


청하의 말에 약간의 불안을 느끼기는 했지만, 시키는 대로 손바닥을 펴 청하에게 보여주니 청하가 내 손을 붙잡고는 여기저기 보기 시작했다.


손바닥에 여러 갈래로 나뉜 선들을 보다가도 손가락 마디와 끝을 보기도 하면서 무언가를 하는 것처럼 보이던 청하는 갑자기, 내 손바닥 한가운데를 손가락으로 스윽 문질렀다.


문지르자마자 손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간지러움에 반사적으로 청하에게서 손을 빼려고 했지만, 청하에게 꽉 잡혀있는 손은 빠지지 않았다.


"읏!"


"아, 미안하구나. 인간의 손바닥을 보는 게 참으로 오랜만이라 나도 모르게 만져버렸구나."


청하가 순순히, 내 손을 놓아주는 모습에 청하에게 별다른 의도가 없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약간의 미안함이 담긴 표정으로 나를 보는 청하의 모습에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여 그저 청하에게 향했던 손을 주머니로 집어넣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와서 그런 행동을 해야겠어?"


"미안하군. 이것도 꽤 오래된 버릇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


"…버릇이 어떻게 인간의 손바닥을 만지는 거야."


"가끔, 인간들이 점을 봐달라면서 손바닥을 내민 적이 있었다."


그렇게 말하고는 무언가 생각이라도 하듯이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쳐다보는 청하를, 사장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쳐다보다가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학생, 앞에 후식으로 어제 먹었던 것들을 가져왔으니 먹으셔도 좋아요."


"감사히 먹겠습니다."


"그, 그리고…."


"뭐 부탁하실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저, 저도 품 안에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내 몫으로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가 사레가 들려서 뿜을 뻔 했지만, 어떻게든 참아냈다.


"쿨럭, 쿨럭."


급하게 휴지로 입을 막고 기침을 하면서,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며 사장님을 쳐다봤지만, 사장님도 부끄러운 부탁이라는 건 알고 계시는 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서는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사랑에 빠진 듯한 소녀처럼 보여서 내게는 난데없이 날벼락이 떨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사장님의 부탁을 거부할 까 생각은 해봤지만, 아침으로 먹었던 볶음밥과 내게 먹으라고 내준 허니브레드와 커피를 본다.


적어도 청하처럼 막무가내로 달라붙지는 않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괘, 괜찮습니다."


아마도.


그런 내 발언에 기뻤는지 옆에 청하가 있는 것도 무시한 채 사장님이 나를 껴안는다.


"고마워요, 학생! 나도 한번은 인간의 품에 안긴다는 게 어떤 느낌인 지 궁금했거든요!"


"그러게, 내 인간들이랑 같이 살자고 몇 번을 말했는데도 안 듣더니 에잉."


"내가 바란 건 인간들이랑 같이 살아가는 거였지, 그렇게 높으신 분처럼 취급받는 게 아니었거든!"


"이것도 나름대로 재밌다. 너무 오랫동안 해서 질리는 게 문제였느니라."


"아무튼, 잠깐이지만 잘 부탁드릴게요, 학생."


"…예에."


뭘 잘 부탁드린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쭈볏쭈볏거리며 소파에서 일어나 내 앞으로 다가오는 사장님.


사장님이 앉기 편하시도록 두 다리를 옆으로 살짝 벌리니 그 사이로 사장님이 앉는다.


"그, 기대도 괜찮을까요?"


"기대셔도 됩니다."


사장님은 천천히, 내가 깨지기 쉬운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내게 기대었다. 청하랑은 다르게 나를 배려해주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내 몸을 배려해주고 계신 건지 청하가 품에 있었을 때보다는 훨씬 편했다.


…호흡이 너무 불안정한 게 아니었나 싶었지만, 그래도 드래곤이니까 사람의 몸이랑은 다르게 문제가 생기지는 않으시겠지.


그렇게 품에서 사장님이 내게 기대시는 동안, 청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