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인간이 희귀종인 세상에서

공원에 앉아서 다른 종족들을 관찰하러 온 게 잘못이었는 지, 아니면 그냥 주말인 게 잘못인 것인지 모르겠다.


몇 분동안 여기서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었던 건지.


이제는 다 쓰다듬어서 각자의 가족에게 돌아가거나 아니면 친구처럼 보이는 애들끼리 모여서 놀러 떠난 지 오래였다.


벤치에 남은 것이라고는 쓰다듬는 것에 지쳐버린 나만 남아있을 뿐.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 어제부터 계속해서 드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되뇌어진다.


등받이에 늘어지듯이 몸을 기대고, 나뭇가지 위에 앉아서 떠드는 고양이 종족과 새 종족의 모습을 보다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본다.


잔디 위에 드러누워서 햇살을 받으며 자는 종족들도 보이고, 저 쪽에서는 목마타기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도 보였다.


여러모로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흘낏거리며 이쪽을 쳐다보는 종족도 몇몇 보였다는 것만 빼고.


뭐가 그렇게 신기한 건지 아까부터 눈빛을 보내고 있었는데, 어떤 의미로 보내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원래 그런 눈빛을 잘 알아채지도 못했고,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으니.


그저 벤치에 늘어져서 햇살이나 받으며 잠깐의 여유나 즐기고 싶었다.


아, 그리고 손도 닦고 싶었다.


아무래도 털이 많은 종족들도 있다보니 바지에 계속 문질러가며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손에 털이나 이것저것, 뭐라 표현해야 할 지 모르는 것들도 묻어있다 보니 기분이 좀 찝찝하다.


손에서 냄새는 안 나는 것 같은데….


화장실이 있나 주변을 둘러보니 공용 화장실이 보였다.


남 여로 나뉘어서 원래라면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야 했지만, 이제는 여자의 몸이니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야 했다.


…지금도 솔직한 심정으로는 남자 화장실이 더 편했다. 여자 화장실은 아무래도, 이성의 것이라 여겨져 조금 꺼림칙하다고 해야하나.


그렇다고 손을 이 상태로 둘 수는 없었으니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걸어가는 동안 주변에서 나를 귀찮게 하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의 일과 오늘 카페에 있었던 일로 내 위험한 일에 대한 위기감이 너무 치솟아있던 걸지도 모른다.


화장실에 들어와서 세면대 뒤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한번 살펴본다.


어제보다 조금 더 수척하게 느껴지는 얼굴과, 조금 더 피곤해 보이는 눈, 그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입이 보였다.


확실히 피곤한 모양이었다. 피곤한 탓에 남들의 시선을 더 크게 느끼는 걸지도 모르고, 실상은 별달리 관심이 없는 걸 수도 있었다.


…인터넷에서 봤던, 그리고 백호연에게서 들었던 인간의 특징을 생각해보면 절대 그럴 리가 없었겠지만.


짝, 짝. 하고 가볍게 양 뺨을 치며 정신을 현실로 되돌렸다가, 손에 털 같은 이물질이 묻어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바보같은 짓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괜한 짓을 해버렸구나.


수도꼭지를 찬 물이 나오는 쪽으로 돌려 나오는 물을 손으로 한번 만져보니 차갑다 못해 얼굴에 닿지도 않았음에도 정신이 차려지는 느낌이 든다.


이 정도는 되어야 정신을 차리겠지. 하며 시리도록 차가운 물로 먼저 두 손을 닦은 뒤, 손을 모아 물을 모으고 얼굴을 닦았다.


얼굴에도 혹시 모를 이물질이 묻었을 지도 모르니 꼼꼼하게 닦고, 옆의 한장씩 뽑아서 쓰는 휴지를 이용해 얼굴과 손의 물기를 닦아냈다.


그리고 거울을 보니 그제서야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한 내 모습이 보인다.


수척해보였던 얼굴은 조금이나마 멀쩡하게 보였고, 피곤해보이는 눈은 사라져있었다.


어쩌면… 애들은 내가 머리를 다 쓰다듬어서 돌아간 게 아니라 내가 피곤해보여서 돌아간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방금 전의 내 모습을 떠올려보면 그럴 지도 모른다. 내 입장으로서는 빨리 편해질 수 있었으니 괜찮았지만.


혹시나 싶어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꼼꼼히 살펴보면서 어딘가 이상한 부분은 없는 지 확인했지만 별 달리 이상한 곳은 안 보였다.


그제서야 화장실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햇살이 내리쬐고 있는 공원의 모습이 보였다. 아까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여전히 공원에서 노는 아이들과, 햇빛을 받으며 자는 종족들과, 그리고 다른 나무보다 훨씬 큰 나무 아래에서 다른 종족들과 대화하고 있는, 머리와 어깨에 새가 올라간 귀가 뾰족한 녹발의 여성 한…명?


내가 잠깐, 뭔가 이상한 걸 보는 게 아닐까 싶어 두 눈을 비비적거리며 다시 봤지만 머리 위와 어깨에 새가 올라간 여성이 있었다.


"인간 누나 저기 있어요!"


내가 머리를 쓰다듬어준 아이중의 한명이 나를 손짓으로 가리키며 누군가에게 말했다.


그게 누구인걸까, 하며 말한 대상을 찾아보는 데 저 멀리 나무에서 다른 종족들과 대화하던 귀가 뾰족한 여성이 나를 보고는 환하게 웃으며 이쪽으로 걸어온다.


매우 귀찮은 일이 생길 예감이 들어 집으로 돌아갈 까 싶었지만, 왜 저렇게 환하게 웃고있는 건지 궁금했다.


그렇게 귀가 뾰족한, 어깨와 머리에 새가 올라간 여성이 내 앞으로 오기까지 기다렸더니, 새들이 갑자기 나를 향해서 날아왔다.


새똥이라도 뿌리려는 건가 싶어서 움직이려다가 그 새들이 이번에는 내 어깨랑 머리에 앉는다.


갑자기 머리와 어깨에서 감당해야 할 무게가 늘어난 것에 당황하며 눈 앞의 여성을 쳐다본다.


"…혹시, 새 주인 되십니까?"


"제 새가 아닌데요!"


여성은 환하게 웃으며 내 말을 부정했다. 아니, 그럼 이 새들은 대체 어디서 왔다는 건가.


새 좀 어떻게 치워달라는 의미로 여성을 봤지만, 여성은 그냥 방긋방긋 웃으면서 나를 봤을 뿐이었다.


다만, 웃는 모습이 수상할 정도로 수상했기에 도망이라도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수상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복장도… 뭔가, 뭔가 판타지에서나 볼 법한 짙은 녹색의 로브를 입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런 내 시선을 눈치챈 것인지 여성은 자기 옷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아… 이게, 국가에서 일하는 마법사들은 전부 로브를 입어야하는 게 예의라서요. 그렇지 않으면 민간에서 일하는 마법사들이랑 구분이 안 된다고…."


그렇게 말하는 여성의 뺨은 조금이지만 붉은 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로브가 국가에서 지정한 복장이라니. 아니, 그전에 마법사가 도대체 무슨 볼 일이 있어 나한테 왔는 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혹시 연락 못 받으셨나요?"


"연락말입니까?"


"네. 호연이가 연락 준다고 했는데…."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어 전원을 켜보기도 전에, 스마트폰의 좌상단에 있는 문자가 오면 알려주는 불빛이 파란빛으로 점멸하고 있었다.


전원을 켜서 잠금화면을 풀어보니 백호연에게서 세 통의 전화가 와 있었고, 그리고 문자 하나가 보였다.


문자에 여기로 오면 제가 아는 마법사를 소개시켜줄테니 집으로 가주시면 감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아마 내 방음 문제를 이틀 내로 해결해줄 종족이 눈 앞의 여성인 듯 싶었다.


"죄송합니다. 아침에 일이 있어서 연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뇨, 괜찮아요. 저도 방금 막 도착한거라."


그렇게 말하며 옆머리를 만지작거리며 품 안을 뒤적거리던 여성은 무언가를 꺼냈다.


펜과 한 손에 들기 편한 메모장. 이게 뭔가 싶어서 여성을 쳐다보니 쑥스럽다는 듯이 메모장을 든 손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 그게 인간, 아니. 사람인 분을 만나는 게 이번이 처음이라서… 사인 가능할까…요?"


그리고는 두 손에 든 것을 내게 내밀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품에 껴안기고, 이제는 아예 사인까지 하게 생겼다.


하지만 두 눈을 빛내며 나를 쳐다보는 모습에 뭐라 거부하기도 힘들었고, 아주 약간 불편한 심정으로 메모장과 고급스러워 보이는 펜을 들고 메모장에 내 이름을 휘갈기듯이 적었다.


그렇게 적힌 내 이름을 보고 있자니 여기서는 드문 이름이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어쩌면 많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휘갈기듯이 적은 이름을 보다가 메모장과 펜을 여성에게 도로 넘겨드렸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내게 감사를 표한 여성은 품 안에 도로 집어넣으면서도, 앗! 하는 소리와 함께 나를 쳐다봤다.


"죄송합니다! 이름을 안 알려드렸네요. 저는 '아리센' 이라고 해요!"


이제와서 하기에는 조금 늦은 자기 소개가 아니었나 싶었지만, 그래도 이름을 밝혔으니 나도 내 이름을 말해주는 게 맞겠지.


"반갑습니다. '김주빈' 이라고 합니다. 혹시, 백호연씨랑은 어떤 사이십니까?"


"그… 호연이랑은 친구입니다!"


"그렇습니까."


문득, 문자에 이름이 남겨져 있지 않을까 싶어 아직 끄지 않은 상태로 냅뒀던 스마트폰의 문자를 확인해보니 확실히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무튼, 운이 좋았다고 해야할 지 어떻게 말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당사자와 만났으니 집으로 향해서 어떤게 문제인지 알아내면 되는 일이었다.


"바로 집으로 가도 괜찮습니까?"


"괜찮아요! 집에 마법식이 어떻게 문제가 발생했는 지 알아야 내일이나 모레쯤에 빠르게 고칠 수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가시죠."


공원에서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뒤에서 따라오리라 생각했던 여성, 아리센은 내 뒤가 아니라 옆에서 같이 걷고 있었다.


혹시 길을 아냐고 물어보니 이쪽에서 마법으로 발생하는 문제의 대다수는 자기가 해결하고 있다며,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모습이 생각보다는 보기 좋았다.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을 보면 자신의 실력에 대해 확실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리센과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며 아파트로 돌아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가 살고 있는 곳으로 도착하니 옆 집을 잠깐 살펴보는 아리센이 보였다.


"거기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아, 그게… 원래는 말하면 안 되는 거긴 한데."


"그럼 말하지 말아주시죠."


"…네."


힝, 사람이 매몰차. 라는 말을 중얼거린 아리센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렸지만, 그렇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매몰차기보다는 말하기 말아야하는 일이라면 안 말하는 게 정상이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며 문 비밀번호를 풀고 안으로 들어서니 필요한 것들만 있는 삭막한 집 내부가 보인다.


그리고 아리센은, 옆 집에서 소리가 다 들린다는 백호연의 설명을 들었는 지 아무 말도 없이 내 방 문 앞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들어가셔도 됩니다."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서는 아리센의 모습을 잠깐 봤다가, 현관 문을 닫고 거실에 있는 소파에 털썩 하고 앉았다.


…카페에서 앉았던 소파의 촉감이라던가 질감이 굉장히 좋았던 탓에, 지금 앉고 있는 소파가 싸구려처럼 느껴진다.


나름대로 비싸게 주고 산 소파였는데 이런 느낌이 들 정도라면 대체 카페에 있는 물건들은 얼마나 비싼 물건들인걸까. 감도 안 잡혔다.


소파에 앉아 어디가 문제이길래 옆 집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걸까 혼자서 생각을 해보며 아리센을 기다렸다.


방 문을 벌컥! 하고 연 아리센에게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네. 문제가 좀, 귀찮네요. 옆 집에게 뭔 짓을 한 건지 물어봐야겠는데요."


그렇게 말하는 아리센의 분위기는 조금 흉흉하게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느낌으로, 옆 집 쪽을 쳐다보는 아리센의 시선은 전혀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 옆 집은 아마 자고있을 시간이라 곤란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문제에요. …죄송해요. 빠르면 오늘이나 내일 끝낼 일이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리겠네요."


"며칠 정도 걸립니까?"


"며칠은 아니고 아마, 사흘에서 나흘정도 걸릴 것 같아요. 맨 몸으로 오다보니 필요한 게 없어서."


"알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찾아올 때에는 아마 밤이겠지만 괜찮으신가요?"


"괜찮습니다. 몇 시에 오실 지만 알려주시죠."


"네. 다음에 봐요."


그 말을 남기고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아리센은 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복도를 뛰어갔다.


그리고는 엘리베이터 열리는 소리가 아니라 계단을 뛰어 내려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소리가 울려퍼졌고.


그 정도로 심각한 건가 싶어서 아리센이 닫고 가지 않아 열린 채로 있는 내 방의 안을 들어가보니 옆 집이랑 연결된 벽에 형이상적인 문양이 빛을 내고 있었다.


다만, 내가 보기에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여기저기 지워지거나, 아니면 마법진을 구성하는 문장들에서도 다르게 그려진 것들이 보인다.


저게 아마 아리센이 말했던 귀찮은 문제같다.


…아마 청하나 금향에게 부탁한다면 금방 해결해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 둘에게 내 집을 알려주기는 싫었다. 툭 하면 청하가 찾아오거나 아니면 금향이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싸들고 찾아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둘이라면 틀림없이 그렇게 행동하겠지.


이미 내 안에서 둘에 대한 평가는 수직하락을 넘어 삿된 말로 떡락이라고 봐도 무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