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인간이 희귀종인 세상에서

사장님이 내어준 황금색 차를 입으로 마시는 건지 아니면 코로 마시는 건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사장님의 모습은 신선하게 다가왔지만, 한편으로는 새벽부터 시작해서 공원에서 있었던 일까지면 충분히 많은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카페에서는 그것보다도 더한 일을 겪게 되니 어지럽다.


지금도 내 머릿속에 청하라는 이름을 남기고 카페를 떠난 푸른 여성이 카운터 위에 놓은 황금색 금화를 만지작거리며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한 사장님의 모습을 잠깐 보다가, 어느샌가 다 마신 컵을 사장님에게 내밀었다.


"잘 마셨습니다."


"…응? 아, 고마워요."


생각에서 깨어나 내가 내민 컵을 받아들고 카운터 뒤로 걸어가는 사장님을 보다가, 계산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아까 청하라는 여성이 저걸로 계산은 다 되었다고 말했으니 그냥 나가도 되지 않을까.


…아니, 잠깐만. 계산을 대신 해준다고 내게 이야기는 했지만, 그건 나에게만 이야기했지 사장님에게는 이야기를 한 게 아니지 않나?


자기것만 먹고 계산을 한 게 맞다고 보는 게 옳지 않나?


머릿속에서 이걸 계산을 하고 가는 게 맞나, 아니면 그냥 나가도 되는 건가 고민하고 있을 쯤에 사장님이 내게 다가왔다.


"계산은 아까 그 망… 아니, 여성분이 했으니 그냥 나가셔도 되요, 학생."


"그렇습니까. 나중에, 다시 오신다면 감사한다고 전해주시죠."


"글쎄요… 학생이 여기에 올 때 쯤이면 알아서 다시 올 것 같은데 말이에요."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콧잔등을 주무르는 사장님의 모습을 보아하니 어지간히 친한 사이인 모양이었다. 친하지 않았다면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화를 낸다거나 아니면 진작에 쫓아냈을 것처럼 보였으니.


아무튼, 계산은 다 되었다고 하셨으니 돈을 아낀 내 입장으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카운터 밑으로 집어넣고, 몸을 뒤로 돌려 출입문으로 향했다.


"그, 혹시 학생…."


"예?"


"진짜, 정말로 시급 잘 쳐줄테니까… 일도 그렇게 많이 안 시킬테니까 알바 해볼 생각 없나요…?"


뭐때문에 이렇게 끈질기게 알바해볼 생각 없냐고 물어보는 걸까, 이 사장님은.


내가 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이렇게 부탁하듯이 말하다보면 들어주겠지 하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러고보니 여기 카페에는 손님이 그렇게 많이 오는 것 같지는 않았고, 사장님도 취미로 하는 것 같았으니 알바를 해보는 것도 꽤 생각해볼만한 일일지도 모른다.


사장님이 직접 걸어놓은 마법을 뚫을 정도가 아니라면 어지간해서는 들어올 수도 없고, 찾아볼 수도 없는 것 같으니까.


시급도 잘 쳐준다는 점이 꽤 마음에 들었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할 말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하나밖에 없었다.


"생각 없습니다."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조금 쌀쌀했던 아침과는 다르게 어느덧, 점심 무렵의 시간이 된 덕인지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볕이 포근하게 느껴졌다.


점심을 먹을 예정이었기는 했지만, 커피라던가 서비스로 먹었던 허니브레드라던가 그리고, 추가로 먹었던 황금색 차 두 잔 덕분에 그렇게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오히려 배가 불러서 점심 시간을 어떻게 보낼 지 고민해야 될 정도로.


이대로 집에 돌아가기에는 나와서 한 것이라고는 카페에서 먹고 마신 것 밖에 없어서 뭔가 아쉽다.


…본래의 목적이었던 다른 종족들을 관찰하는 건 까맣게 잊어버리고 잊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된거, 어차피 점심시간이니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것도 꽤 괜찮은 목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상가쪽으로 옮기려고 했지만.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하나의 생각에 발걸음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여자의 몸이 되고 나서 한번도 도서관에 가본 적이 없었다.


남자였을 때에는 종이로 된 책의 질감이라던가 손으로 한장 한장 넘겼을 때의 그 느낌이 마음에 들어 종종 찾아갔음에도.


마침 계절도 가을이고 하니 오랜만에 도서관에 가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일 것 같았다.


근처에 도서관이 있는 지부터 확인해야겠지만.


주머니의 스마트폰을 꺼내서 이 근처에 도서관이 있는 지 검색을 해본다.


여전히 알아보기도 힘들고 뭐라고 발음하는 건지도 모르는 도시의 위치를 이곳저곳 살펴본 결과, 여기서 좀 걸어가는 곳에 도서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겸사겸사 서점도 있나 찾아보니 남자였을 때에는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전자도서 같은 것들도 발달한 결과, 오프라인 서점들이 하나둘 망해가는 것과는 다르게 여기서는 꽤 많은 수의 서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돌아가는 길에 도서관에서 괜찮은 책을 발견하면 근처 서점에서 사가는 것도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도서관으로 발을 한걸음 옮겼다.


"나를 이렇게까지 길게 기다리게 할 줄은 상상도 못했느니라!"


순식간에 눈 앞에 나타난 푸른 여성, '청하'가 엣헴! 하고 여전히 폭발할 것 같은 가슴을 내밀었다.


아까 밖에 나가고는 다른 곳으로 간 게 아니었나 싶어서 두 눈을 비비적거리며 눈 앞의 현실을 부정해봤지만, 여전히 가슴을 내밀고 우쭐거리는 표정의 청하가 보였다.


"예전 같았으면 평생 보살펴주겠다며 납… 아니, 끌고 갔겠지만 시대가 시대이니 나와 함께 가줬으면 하는 곳이 있다!"


"…예?"


상상도 못한 발언이 청하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지만, 본인은 별로 개의치 않아하는 듯한 반응이었다. 오히려, 자기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듯한 행동에 가까웠다.


같이 가줬으면 하는 곳이 어디였든 간에, 딱히 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한 곳에 끌고간다거나 아니면 저 멀리, 산봉우리에 있는 옛날 한옥집에 끌려갈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든다.


당장 입고있는 옷도 한옥에 머리에 달린 뿔이라던가 허리 밑의 꼬리라던가 굉장히 신경쓰이는 부분이 많지 않은가.


내 입 밖으로 나올 말은 당연히 거절이었다.


"거부하겠습니다."


"미안하지만 거부권은 없느니라!"


"예?"


"먹은 것과 마신 것들의 계산을 내가 하지 않았느냐!"


"아니, 그게 어떻게 거부권이 없어집니까?"


"에잉! 인간… 아니지, 사람은 여전히 말이 많아! 용이 어딘가로 가자고 하면 그냥 순순히 가주면 되는 것을!"


순순히 가달라고 해서 가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런 내 생각과는 별개로, 내 행동에 불만이 많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는 나를 쳐다보는 청하. 팔짱을 낀 덕분에 안 그래도 부각되는 가슴이 더 부각된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갈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적어도 카페 사장님이랑 아는 사이니까 이상한 짓은 당하지 않겠지. 아마도.


확신은 할 수 없었다. 황금색 기류같은 게 사장님의 몸을 휩쌓이면서 일어난 일들을 생각해보면 눈 앞의 청하라고 부르는 존재도 아마 비슷한 행동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행동은 하지 않느니라. 하고 싶지도 않고, 사람은 우리에게 있어 꽤 애착적인 존재이니."


"…생각이라도 읽으셨습니까?"


"가능이야 하지만, 읽지는 않는다. 요즘 시대에는 그런 걸 불편해하는 종족들도 많고, 나도 굳이 읽고싶지 않다."


어떻게 알았냐면, 네 행동에서 알 수 있지.


행동에서 읽었다고 하니 딱히 할 말도 없었다. 그렇게 보일만한 행동들을 내가 했으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기도 할테고.


다만, 하나는 확실히 하고 싶었다.


"제게 이상한 짓은 하지 않는게 확실합니까?"


"물론!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 …아니, 내가 만든 곳으로 가긴 하니까 아무 짓도 안 하는 건 아니게 되는군."


"그렇다면, 믿고 가겠습니다."


"호. 생각보다 선택을 쉽게 하는군. 왜 그런 건지 물어봐도 괜찮느냐?"


"제가 알던 카페의 사장님의 친구분이라면 어느정도 믿어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상할 정도로 친근하게 굴던 사장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 사람이 내게 이상할 짓을 할 시간이라면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고, 행동또한 가능했겠지만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하나 있기는 한데, 알바 권유하는 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겨버리면 되는 부분이었고.


내가 이 '청하'라는 푸른 여성에 대해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사장님의 친구라는 것 하나만으로 어느정도의 신용은 보장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내 말에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던 청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음. 어째서 그 녀석이 알바를 권유하는 건지 충분히 알겠군…."


뭔가, 손으로 가려진 얼굴 위로 연기같은 게 보이는 것 같았지만 착각이겠지.


수십초가량 얼굴을 가리고 침묵하던 청하는, 그제서야 손을 내리고 얼굴을 내게 보일 수 있었다.


"흠흠, 미안하군. 갑자기 그런 말을 들어버리면 참을 수가 없어지니 나나 그 녀석말고는 그런 말을 하지 말게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알겠습니다."


"좋아! 이왕 이렇게 된 거, 갈 곳 정도는 알려주지."


내가 만든 도서관에 너를 초대하겠느니라,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