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인간이 희귀종인 세상에서

갑자기 머리를 쓰다듬어달라 부탁을 받으면 어떤 반응을 보여야하는 걸까.


한번 쓰다듬으면 그만인 부탁이니까 테이블에 물건을 갖다놓고 가서 쓰다듬어주고 오면 되는 건가?


아니면, 아무리 그래도 처음보는 사람인데 난데없이 머리를 쓰다듬었다가 나중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잖아?


이걸 어떻게 해야되는 건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테이블에 물건을 내려놓는 것도 잊어버린 채 계산대 밖으로 상반신을 내밀고 쓰다듬기만을 기다리는 알바생을 눈만 껌뻑 거리며 보다가 겨우 입을 뗐다.


"…물건만 테이블에 내려 놓겠습니다."


"네! 기다릴게요!"


원래 놓으려고 생각했던 테이블이 아니라 근처에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 물건을 내려놓고, 계산대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동안 어떻게 머리를 쓰다듬어야 하는 건지 생각을 해봤지만, 적어도 겉모습은 사람이랑 비슷하니까 사람처럼 쓰다듬어도 문제가 없는 건지, 아니면 종족이 다르니까 그에 맞춰서 쓰다듬어야 하는 건지 결정을 못 내렸다.


…애초에, 새 종류를 어떻게 쓰다듬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도착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었지만, 바램은 바램이었을 뿐이었고 계산대에 도착했다.


기대감을 품고 나를 바라보는 알바생의 모습에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말을 어떻게든 꾸역꾸역 틀어막으며, 알바생을 쳐다봤다.


"그, 어떻게 쓰다듬으면 되겠습니까?"


"편하신대로 쓰다듬어주세요!"


아, 네. 그러시군요.


딱히 바라는 것도 없이 머리를 쓰다듬으라는 알바생의 요구에 한달동안 입에 담아본 적이 없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말들을 목구멍 안으로 삼키며, 편안한 자세도 아닐 텐데 꿋꿋이 상반신을 내민 채로 유지하는 알바생의 모습에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떠올렸지만, 별 의미는 없었다.


어쩌고 자시고 간에 새벽에 자다가 깨서 잠도 안 오니 편의점에 와서 아침이라도 먹자고 왔을 뿐이었는데.


이 시간에 문을 연 식당은 24시간동안 열리는 곳인데 이 근처에는 없었기에 여기에 온 것 뿐이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천천히, 위험물질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처럼 알바생의 머리로 뻗었다.


잔뜩 기대감을 품고 나를 보는 모습이 새가 아니라 개를 보는 느낌이었지만, 개라고 해도 지금의 상황이 이상하고 어색한 게 아니라는 건 아니었다.


알바생의 종족이 새가 아니라 개였든 고양이였든간에, 지금의 상황은 내 기준으로는 충분히 이상한 상황이다.


머리를 쓰다듬었다가 갑자기 알바생이 이게 아니라며 난동을 부린다거나 내게 짜증만 내지 않는다면 좋겠다.


부디 이상한 일만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라며 알바생의 머리카락 양쪽 위로 튀어나온 깃털의 사이로 손이 닿는다.


머리카락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깃털이 아니라 평범한 머리카락의 느낌이었다.


나름대로 세심하게 관리를 하고 있는 것인지 일단은, 손에 닿는 부분에서 거친 느낌이 든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것보다는 묘하게 따뜻한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손을 타고 올라오는 따뜻한 머리카락의 촉감에 살짝 놀라서 손이 멈췄지만,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알바생의 모습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헤, 흐."


머리에 손이 닿자마자 이상한 소리를 내는 알바생은 무시하고, 어떻게 쓰다듬어야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개나 고양이처럼 쓰다듬어도 문제 없는 건가? 아니, 그건 그래도 사람의 형태가 아니라 동물의 형태일 때의 쓰다듬는 방법이지 사람을 쓰다듬는 방법이 아니잖아.


이렇다, 저렇다 머리속에 온갖 것들이 떠오르기는 하지만 도움되는 것들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고 머리에 손을 올려놓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으니 손이 올라간 정수리에서 뒤통수까지 머리카락을 만지다는 느낌으로 손을 움직였다.


손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에 이게 정말로 머리카락이 맞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후헤헤…."


뭐가 그렇게 좋은 건지 만족했다는 듯한 느낌의 얼굴로 웃는 알바생의 모습에 이게 정말로 맞나 의구심이 들었지만, 어쨌든 쓰다듬기는 했으니 머리에서 손을 뗐다.


아쉽다는 듯이 내 손을 쳐다보던 알바생의 시선에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감사합니다!"


"아, 네."


뭐가 감사하다는 건지 모르겠다. 나 말고 다른 종족이 쓰다듬어도 비슷한 반응이지 않을까 싶기는 한데.


어쨌든, 더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반쯤 졸던 정신이 확실하게 깨버렸으니 사온 것들이나 빨리 먹어치우고 편의점을 나가야 겠다.


원래는 조금 더 느긋하게 먹으면서 나갈 예정이었는데, 생각보다 더 빠르게 나갈 이유가 생겨버렸다.


…새벽에 편의점 오는 건 앞으로 고민을 좀, 많이 해보는 편이 좋겠네.


엘프가 주로 먹는다는 컵라면의 비닐을 뜯고, 전자렌지에 돌려도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봉투도 뜯어버리고 안의 스프들을 탈탈 털어넣었다.


하얀색이라던가 아니면 초록색일 것이라 예상했었지만 의외로 빨간색이 섞인 초록색이었다.


겉표지에는 빨간 색이 없었기에 이게 어떤 맛을 낼지 궁금해진다.


컵라면을 들고 편의점 구석에 마련된 온수기로 걸어가 표기된 선까지 물을 부어넣고, 옆의 전자렌지에 집어 넣고 2분을 눌렀다.


2분이라는 시간 동안 뭘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아까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지만.


주머니의 스마트폰을 꺼내서 인터넷창을 켠 뒤, 인간이라는 단어를 쓰고 그 뒤에 쓰다듬이라는 말을 추가로 넣고 검색했다.


정말 놀랍게도, 여기서는 인간이 쓰다듬으면 다른 종족이 쓰다듬는 것보다 기분이 좋다는 결과라고 해야할 지, 경험들이 세세하게 적힌 글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나로서는 전혀 알고 싶지 않았던 정보였지만!


한달 동안 공원에서 멍하니 앉아 있어도 모르는 종족들이 계속 다가와서 쓰다듬어달라고 요구했던 게 그런 이유였나.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인간이 쓰다듬는 것과 다른 종족이 쓰다듬는 건 뭐가 다르기라도 한 걸까.


스마트폰을 보며 이런 일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에 놀랐지만, 어느새 전자렌지가 다 돌아갔다고 알리고 있었기에 도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전자렌지를 열고, 안의 컵라면을 꺼내어 냄새를 맡으니 흙냄새라고 해야할 까, 채소의 냄새같은 게 났다.


이상하게 어렸을 적에는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던 냄새였는데 성인이 되고 나선 왜 이렇게 마음에 드는 건지.


이걸 고른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느끼며 원래 있던 테이블로 돌아가서 컵라면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나무젓가락을 반으로 뜯어서 컵라면 안을 휘휘 저으니 국물이 설렁탕에 고춧가루를 뿌린 듯한 색으로 변했다.


생각보다 먹음직스러운 모습의 컵라면을 보고 있자니 식욕이 절로 솟구쳤다.


"잘 먹겠습니다."


…먹은 것들을 정리하면서 가끔 드는 생각이지만, 이곳에 떨어지고 나서 편의점에서 밥을 떼우는 경우가 더 건강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대체 뭘 하면 삼각김밥에 밥보다 고기가 더 많은 건지, 컵라면은 왜 이렇게 건강한 느낌이 들면서도 맛은 왜 이렇게 좋은 건지 모르겠다.


내가 직접 밥을 해먹어도 이런 맛은 안 나올 것 같은데. 내가 단순히 요리 실력이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또 오세요~"


편의점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갈 까 생각은 해봤지만, 아직 그렇게 추운 날씨는 아니라서 밖에서 시간을 보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집에 돌아가도 아마 흡혈귀가 방송하고 있어서 제대로 쉬지도 못할테고.


공원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7시나 8시까지 스마트폰이나 만지작거리면서 기다리다가 집에 돌아가면 자고 있지 않을까.


지금이 5시를 조금 넘은 시간이었으니 두시간정도야 뭐….


혹시나 싶어 스마트폰의 전원을 켜 배터리를 확인해보니 90% 넘게 들어와있었다. 이거면 됐다.


주머니에 도로 집어넣고, 공원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걷는 동안 몸을 스쳐가는 바람은 적당히 시원했고, 나무의 기분 좋은 향기는 여전했다.


여기도 차량이 돌아다니기는 한데 왜 이렇게 바람이라고 해야 할까, 냄새가 좋은 건지 모르겠다.


기분 좋은 냄새를 맡으며, 점점 더 붉게 물들어가는 나뭇잎을 살펴도 보면서 공원으로 5분 정도 걸으니 도착했다.


새벽에 가까운 아침이니까 아무도 없겠거니 했지만 예상외로 선객이 있었다.


저 멀리서도 눈에 띄는 키와 하얀 머리카락, 그리고 호랑이 귀와 꼬리가 인상적인 백호연이 달리는 중이었다.


여기서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안면은 익힌 관계였으니 손을 높이 세우고 흔들었다.


내 모습을 봤는 지 백호연의 귀는 보이지 않았지만, 꼬리가 하늘을 향해 꼿꼿이 선 모습은 똑똑히 보였다.


"…멈췄네."


그러자 못 볼 것이라도 본 것처럼 달리기를 멈추고는, 눈을 한번 비비는 듯한 동작을 하고는 이내 이쪽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