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인간이 희귀종인 세상에서

저 멀리서 이쪽을 향해 한 마리의 백호처럼 두다다다 달려오는 백호연의 모습은 위엄이 넘치지도 않았고, 위협적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순종적인 개과에 가까운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백호라는 이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건 종족 차별적인 발언같은 느낌이 들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아무튼, 달려오는 백호연의 모습이 점점 가까워지는 게 보였다.


지금은 잘 안 보이지만 근처에 온다면 귀나 꼬리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귀랑 꼬리가 달린 종족들은 생각보다 감정을 감추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까 봤던 편의점의 알바생은 제외하더라도.


그건 새가 아니라 새의 모습을 했을 뿐인 개에 가깝지 않았나. 아니, 그것보다 방금 생각도 위험한 생각아닌가.


내게 달려오고 있는 백호연의 모습도 백호라기 보다는 개에 가까운….


"…오."


생각을 끝마치기도 전에 난데없이 시야가 어두워졌길래 고개를 올려보니 어느샌가 가까이 다가와서는 나를 내려다보는 백호연이 보였다.


흥분한 것 처럼 보이는 표정에, 등 뒤로 보이는 하얀 꼬리는 미친듯이 흔들리고 있었고, 귀는 부채처럼 위 아래로 연신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틀 전에 봤을 때에는 몰랐는데 지금 와서 보니까 콧김을 잔뜩 내뿜으면서 웃는 모습이 꽤 무섭게 느껴진다.


…저런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하는 행동은 껴안으면 안 된다고 물어본다거나, 멋대로 껴안고 다녔지만.


잔뜩 흥분한 모습을 보여주던 백호연은 눈 앞에서 심호흡을 몇번 내쉬고는, 나를 내려다봤다.


"이틀 만에 보는 군요."


"…예."


나를 만난 게 뭐가 그리 신난 건지 등 뒤로 잘 보이지도 않을 꼬리가 양옆으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나저나, 올려다보니 느낀 건데 생각보다 목이 아프다.


왠만해서는 별 말을 안 하고 참으려고 했는데, 거의 직각으로 꺾다시피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가까이에 붙어있던 탓에 슬금슬금 척추를 타고 목에 고통이 느껴졌다.


이 정도로 키가 차이나면 올려다볼때 목이 아프구나.


"저기, 조금 떨어져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조금씩 아파오는 목을 만지작거리며 백호연에게 물어보니 울상을 지으며 내게서 황급히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흥분했던 표정이 금세 사라지고, 불안함에 떠는 백호연이 보였다.


"호, 혹시 제 몸에서 냄새라도 나셔서 그런 겁니까? 아니면, 제가 뭔가 잘못이라도…?"


분홍색의 줄무늬가 인상적인 하얀색 체육복을 입은 제 몸을 이리저리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거나, 옷매무새를 만지작거리며 나를 쳐다보는 백호연의 모습에 당황하며 말을 이었다.


"그게 아니라, 가까이서 올려다보니 목이 아파서 그렇습니다."


"아…."


백호연은 탄식을 내뱉으며, 자기 몸 여기저기서 냄새를 맡는 것을 멈추고 나를 살펴봤다.


그제서야 내가 목을 주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백호연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사실, 백호연의 몸에서 그렇게 나쁜 냄새는 나지 않았다.


인간이 아니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주변의 공기가 좋아서 그런 건지 생각보다 따뜻하다고 해야하나.


어렸을 적의 어렷품이 떠오르는 기억 사이를 뒤적거리면 저것과 비슷한 냄새가 났었던 것이 떠올랐다.


시골에서 키웠던 개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흙밭에서 이리저리 뒹군 탓에 흙냄새가 나면서도 구수한 냄새가 났던.


…그렇다고 백호연이 그런 냄새가 난다는 건 아니었다. 그런 느낌이 났다. 묘하게 따뜻해지는, 포근해진다는 말이 어울렸다.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종족 차별적이라던가 하는 발언이지 않나.


백호연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는 것도 말하지는 않겠지만. 백호에게 개처럼 행동한다는 말이 어떤 의미로 들릴 련지.


아무튼, 두 걸음 뒤에 떨어져서야 겨우 목이 편안한 각도로 백호연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빨갛게 물든 얼굴 사이로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은 건지 입꼬리는 여전히 올라가있었고, 귀는 부끄러운 지 머리카락에 파묻혀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이제 보니 등 뒤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던 꼬리도 축 늘어져서는 진짜로 백호가 아니라 어디 개과가 더 맞는 종족이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였다.


…아니, 백호가 개과였던가? 나중에 검색이나 해 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전에 보았던 시무룩해진 모습을 보여주는 백호연을 쳐다봤다.


"그… 몸에서 땀 냄새가 나지는 않습니까?"


"예. 저번에 왔을 때에도 그랬지만, 나무가 뭔지는 몰라도 좋은 향기만 납니다."


나무 뿐만 아니라 꽃도 어느정도 영향이 있기야 하겠지만, 내 생각에는 나무가 차지하는 지분이 더 높을 것 같았다.


그런 내 대답에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것 처럼 행동하던 백호연은 그제서야 안심한 듯 싶었다.


"그렇습니까…."


백호연은 냄새가 안 난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한편으로는 시선이 어딘가로 쏠려있었다.


그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 지 따라가니 내 오른손에 붙어있었다.


"오른손에 뭐 없습니다."


쫘악 하고 오른손을 펼쳐서 백호연에게 보여줬지만, 뭔가 집중하는 듯한 표정으로 한 걸음 다가온 백호연이 얼굴을 내 오른손에 들이밀고는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몇번 맡아보고는 이상함을 느꼈는 지 얼굴을 미미하게 찌푸리는 듯 싶었지만, 금새 풀어버렸다.


"흐음… 별 문제는 없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그렇습니까?"


"네. 다른 종족들보다 인간… 아, 기분이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백호연의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사람이 사람이지 그럼 뭐, 다른 종족이겠는가.


전에도 했었던 말 같지만 나를 인간이라고 표현하는 건 전혀, 기분이 나쁜 표현이 아니었다.


인간이나 사람이나, 결국에는 같은 종족을 표현하는 말에 불과한데.


그런 내 반응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인 백호연이 이어서 말하기 시작했다.


"사람같은 경우에는 다른 종족분들보다도 수가 적은 경우에 속하다보니 많은 관심을 받기 마련입니다."


그거는 나름대로 검색을 해본 덕에 알고 있던 부분이었다.


인간의 수가 어지간한 종족보다 더 적어서 거의 멸종위기종에 가깝다고 하던가.


한달 동안 주변을 돌아보기도 했고, 여기보다 더 많은 종족이 사는 도시로 전철을 타고 가도 나와 같은 인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이 어떤 심정인지 뼈저리게 느끼기도 했지만, 지금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정말, 말씀드리기 힘든 특징입니다만…."


힐끗, 내 눈치를 몇번이고 보기 시작한 백호연에게 계속하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의 근처에 있거나, 쓰다듬을 받는 등의 행동들은 다른 종족들에게 있어서 굉장히 기분 좋은 느낌을 준다고 합니다…."


…쓰다듬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주변에 있는 것 만으로도 흥분이 된다고?


아니, 아니. 그럴 리가 없다. 흥분이 아니라 뭔가, 적당히 기분이 좋아진다거나 하는 부류겠지.


…살아있는 마약인가 뭔가인가.


쓰다듬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내용만 봤었던 나로서는 청천벽력이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는 소리였다.


"…혹시, 공원에 앉아있을 뿐인데도 주변에 다른 종족분들이 가까이 다가온다거나, 쓰다듬어달라는 요청을 하는 이유가…."


"…네."


천천히, 내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는 백호연의 모습에 오늘, 두번째로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소음 문제로 새벽에 일어난 것도 억울했지만.


편의점에서 알바생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도 느낌이 좋지는 않았지만.


이번에 듣는 말은 정말로 내 정신을 우주로 보내버리고 있었다.


…잠깐만. 그럼, 지금 눈 앞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백호연은 지금 어떤 기분인거지?


근처에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내 손바닥의 냄새를 맡았는데 그것도 영향을 끼치는건가?


뒤늦은 깨달음에 어느샌가 아까처럼 올려다봐야할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백호연을 쳐다봤다.


"…실례가 안 된다면, 껴안아도 괜찮겠습니까?"


"…안 됩니다."


그래도 정신을 놓지는 않았는 지 내게 물어오는 백호연에게 그리 답하니, 처음 봤을 때처럼 백호연의 귀랑 꼬리가 축 늘어졌다.


저런 말을 했어도, 전의 일을 떠올려보면 아마 내가 거절하더라도 멋대로 품에 안거나 하겠지만.


이 뒤에 있을 일이 머릿속으로 저절로 그려지면서, 내게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한 백호연의 모습이 보였다.


슬쩍, 한 걸음 물러나니 나를 따라서 한 걸음 옮기는 백호연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며 쳐다봤다.


"그렇게 보셔도 안 되는 건 안 됩니다."


"정말로, 안 되는 겁니까?"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나를 쳐다보는 백호연이 보였지만,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안 됩니다."


그런 내 태도에, 안타깝다는 듯이 숨을 몰아쉬고는 천천히 내게서 물러나 내가 보기 편하도록 만들어주는 백호연이었다.


"알겠습니다."


…저렇게 말해도, 아마 멋대로 껴안으려 하겠지만.


백호연과 만난 시점에서 어느정도 예견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