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인간이 희귀종인 세상에서

얼마나 주변에 사람이라는 종족이 없길래 저런 반응들을 보이는 건지.


미간을 손으로 꾹 꾹 누르면서, 아까 봤던 시청자들의 글들을 잠깐 떠올려봤는데 머리가 잠깐 지끈거리는 두통이 올 정도로 머리가 아파왔다.


남자였을 때에는 주변이 전부 사람이어서 문제가 없었는데 여기서는 사람이니까 문제가 발생하니 원.


사람이 그렇게나 희귀해서 문제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옆집의 방송인께서 방음에 문제가 생기게 만든 원인이라는 것도 머리가 아파죽겠는데.


머리에서 지끈거리는 느낌이 점차 심해지는 것에 머리라도 식힐겸 아파트 밖으로 걸어 나갔다.


밖으로 나오니 오늘은 그렇게 덥지도 않고 적당히 시원한 느낌이 드는 것이 머리를 식혀주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어디로 향하는 게 좋을까 생각을 하면서, 아파트 부지내에 있는 정자 밑의 벤치에 앉았다.


PC방, 코인 노래방, 카페.


그나마 떠오른 곳이 이 세곳밖에 없었다. 나도 어지간히 밖에 나가서 노는 편은 아니라는 사실을 여실히 느끼며,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을 주머니에서 꺼내려다가 멈춘다.


아까 봤던 것들이 떠올라서 뭔가 검색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을 뿐더러, 이 세상에서 그다지 맘에 드는 게임도 없었고, 노래도 마찬가지로 마음에 드는 게 없다.


뭘 하면 좋을까. 긴 머리카락이 바람을 맞아 내 몸을 이리저리 달라붙는 걸 무시하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결국에는 저 세 곳 중의 하나를 정해서 간다는 결론밖에 안 떠올랐다.


…카페에 가서 커피라도 마실까.


내가 갈만한 다른 카페가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아는 카페라고는 맛이 좋은, 병원에 가기 전에 들렀던 그곳말고는 없었다.


그리고, 카페에 가서 할 것이라고는 하나밖에 없었다.


이 세상에서 그나마 취미라고 할만한 무언가가 생겼다면, 그것은 주변을 돌아다니는 여러 종족들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알록달록한 머리카락은 물론이고 본 적도 없는 꼬리라던가 머리에 달린 뿔이라던가 귀라던가, 사람과는 다른 점이 무수히 많은 종족들을 보는 건 생삭보다 즐거웠다.


이런 내 생각을 다른 종족들이 안다면 무슨 애완동물이라도 살펴보는 것이냐고 따질지도 모르겠지만, 알게 뭔가.


내 생각을 읽어볼 종족이 있기라도 한가. 아니, 애초에 남의 생각을 멋대로 살펴보는 건 범죄에 속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벤치에서 일어나 카페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음. 생각해보니 카페 사장님도 그렇게 평범하게 생기지는 않았구나.


햇빛이나 조명을 받으면 머리카락이 반짝거리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진한 금빛 머리카락에 머리 양옆으로 둥글게 말린 금색 뿔에, 파충류의 눈처럼 생긴 금색 눈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특징이었지만 이거다! 하는 동물은 딱히 떠오르지가 않았다.


등을 가릴 정도로 긴 머리카락의 뒤로 뭔가 살랑거리는 두툼한 꼬리같은 게 보였던 것 같기도 하지만, 그걸 사장님이 의도적으로 보여주려고 하지를 않아서 잘 모르겠다.


여기서는 다들 자기 종족의 특징이라고 해야하나, 그런 부분들을 가리고 다니지를 않아서 살짝 특이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아무렇지 않게 내놓고 다니는 종족도 있는가 하면 어떤 종족은 가리고 싶어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내게는 없는 것들이라 그런 것들을 가린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부끄러워서 그런다거나 하는 게 아닐까.


수치스럽다거나 하는 거였다면 수술이라던가 아니면 뭐, 따로 조치를 취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카페를 향해 걸어가면서 주변을 둘러보면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나왔는 지 여기저기서 출근을 하거나 등교하는 종족들이 보였다.


그 중에서도 교복을 입은, 다른 종족임에도 친하게 지내는 학생들로 보이는 애들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참 묘하다.


물론, 거기서도 가장 인상적인 학생은 180이 충분히 넘어보이는 머리에 소의 뿔같은 게 달린 여학생이었지만.


키만 인상적인 게 아니라 특정 부위도… 아니, 이런 생각은 그만두자.


나도 모르게 실례가 되는 생각을 해버릴 정도로, 신체 전체가 대단한 모습이었다.


제자리에 서서 가만히 보고 있었을 정도로 인상적인 모습에 억지로 시선을 떼어내고, 다시 카페를 향해 걸었다.


…주변에서 나를 쳐다본다는 느낌을 평생 모를거라고 생각했는데, 방송을 잠깐 본 것만으로 이런 느낌을 생생히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여러모로 한숨이 절로 흘러나올 것 같은, 주변의 시선을 느끼며 걷다가 카페 앞에 도착해서 누군가가 볼 새라 급하게 안으로 들어간다.


유리로 된 출입문에 달린 풍경이 딸랑 하고 울리며 내가 들어온 것을 알렸다.


사장님은 아무도 없는 카페 내부에서 카운터에 상체를 기대고 있었는데, 내가 들어오는 것에 황급히 상체를 일으켜세우는 모습이 보였다.


"어서오세요… 어라, 또 와줬네요 학생?"


"…반갑습니다."


이상할 정도로 친절한 사장님에게 딱딱한 반응을 보이며, 카운터로 향했다.


옛날 느낌을 내겠다고 이곳저곳이 나무재질로 된 카페는 놀랍게도 사장님에게 가서 카운터 위쪽에 메뉴판을 보고 직접 주문을 해야됐다.


사람… 아니, 다른 종족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게 훨씬 편했지만 어쩌겠는가. 사장님이 이게 마음에 든다는데.


아무튼, 그런 내 반응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건지 방긋 웃어보이는 사장님을 잠깐 쳐다보다가 머리 위로 시선을 돌렸다.


메뉴판에 이런저런 메뉴가 박혀있었지만, 어차피 그중에서 고르는 건 많아봤자 두 종류에서 세 종류가 끝이었다.


좋아하는 디저트도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 여기에서 주문한 적도 없었다.


커피 하나를 고를 때마다 사장님이 이것저것 추천하기는 했지만 먹을 생각도 없었고.


그리고, 메뉴판을 보다가 슬쩍, 곁눈질로 사장님의 모습을 보니 방긋 웃으면서 나를 보고 계셨다.


부담이 될 정도로 웃으면서 보는 모습에, 괜히 카페에 왔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늘도 같은 메뉴로? 아니면, 저번에 마셨던 메뉴로 해줄까?"


"…같은 메뉴로 부탁드립니다."


"네~ 아, 오늘도 같이 먹을 건 필요없니? 추천하는 게 있는데…."


"없습니다."


"그래…."


시무룩해졌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추욱 하고 어깨가 내려간 사장님의 뒷모습을 보다가 아무 곳이나 가서 적당히 앉으려다가, 문득 꼬리가 떠올랐다.


자리로 걸어가는 것을 멈추고 사장님의 뒷모습을 잠깐 살펴보니 도마뱀처럼 두툼하지만 특이한 비늘같은 게 박혀있는 꼬리가 강아지처럼 양 옆으로 살랑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어깨가 축 내려간 것과는 별개로 꼬리가 움직이는 걸 눈으로 따라가다가, 무의식적으로 얼굴로 시선이 올라가니 하던 행동도 멈추고 나를 쳐다보던 사장님과 눈이 마주친다.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사장님의 모습에 놀라기는 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행동했다.


"…그, 혹시 봤니?"


"예?"


"아니, 아니구나. 적당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렴. 아니면, 카운터 앞에 앉겠니?"


"…예."


원래는 카운터 앞에 앉을 생각이 없었는데, 저 꼬리가 살랑거리는 걸 보고 있자니 궁금한 점이 몇가지가 생겨 카운터 앞의 의자로 향했다.


나무로 된 의자를 뒤로 빼서 앉으니 의자에 놓인 쿠션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푹신해서 자연스레 몸이 늘어려는 것을 자제하며, 커피를 만드는 걸 구경했다.


뭔지 모를 도구와 커피를 뽑아내는 기계를 이용해서 이것저것 하고 있는 걸 보고있자니 생각보다 흥미가 돋았지만, 그렇다고 직접 해보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기서 일했다가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온갖 종족들이 모여들어서 바쁘게 일해야 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하는 내 모습에 으─ 하고 머릿속으로 진절머리를 치며 역시 알바는 관둬야겠다고 다짐할 무렵, 어느샌가 다 됐는지 전의 것과 같은 메뉴인 카페모카가 나왔다.


물론 전과는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담겨나왔던 그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유리 잔에 빨대가 꽂혀서 내 앞으로 놓였다.


사장님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을 건넸다.


"주문하신 커피 나왔어요."


"감사합니다."


빨대로 휘핑 크림과 커피 밑에 빨린 초콜릿이 잘 섞이도록 휘휘 잘 젓고 한 모금 마시려고 할 때, 커피 옆으로 그릇 하나가 놓인다.


구운 빵 위로 크림과 시럽, 그리고 아몬드가 올라간 허니브레드가 보였다.


"…이건 뭔가요?"


"서비스랍니다, 학생."


방긋방긋 웃으면서 여전히 넉살좋은 반응을 보여주는 사장님의 모습과, 서비스라고 주문도 하지 않았던 허니브레드를 보며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그래도 서비스라고 주기는 했으니까 다 먹는게 예의겠지.


오늘 아침으로 먹었던 것들을 떠올리며, 일단 먼저 나온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허니브레드 옆에 같이 놓인 포크를 손에 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