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인간이 희귀종인 세상에서

"옛날이었으면 하루 종일 껴안고 다녀도 모자를 일이었는데…."


"어쩌겠나. 시간이 너무 지나버려서 이제는 그런 짓을 했다가는 잡혀간다네."


"너는 그래도 실컷 껴안아봤겠지만, 나는 그럴 시간도 없었고 인간도 별로 보지 못했단말야!"


"그건 본인의 잘못이 아닌가. 일단 내 잘못은 아닌 듯 하네."


내 웃음소리를 듣고도 여전히 말싸움을 계속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서로 친구에 가까운 모습보다는 악우에 가까운 모습으로 보였다.


문제라면, 겉으로 보이는 외모만으로 따진다면 굉장히 예쁜 두 사람이었지만, 그게 키 차이때문에 어른과 아이가 싸우는 걸로도 보이기도 했고….


…뭘 그렇게 움직이면서 말로 다투는 건지 서로의 가슴이 이리저리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에 시선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아니, 보통 사람은 가슴이 저렇게 움직이면 아파서 하루종일 끙끙대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서 울어도 이상하지 않을 고통을 느낄 텐데.


가끔 저런 모습을 볼 때에는 여자의 몸은 참 불편한 점이 많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닫는다.


남자였을 때에는… 이제 와서는 별 의미도 없는 말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가 남자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아무튼, 이대로 가다가는 아침을 먹기는 커녕 말싸움으로 점심을 지나서 저녁까지 이러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아까부터 들고 있었다.


서로의 시간이 시간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들이 아무래도 평범한 사람의 기준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보니 지금의 말싸움도 아마 잠깐이라는 느낌으로 하는 것이겠지.


내 입장에서는 잠깐이 아니라 거의 하루의 절반을 날리거나, 하루를 거의 날려버리는 행동이지만.


이제는 아예 카운터 위로 올라가서 사장님과 가슴을 맞대면서 말싸움을 하는 청하를 보고 있자니 그렇게 잘 아는 사이도 아닌건만 왜 이렇게 부끄럽게 느껴지는 건지 모르겠다.


슬쩍, 고개를 뒤로 돌려서 누가 카페를 보지는 않나 살펴봤지만 아무도 카페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기에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고 있었다는 말이 맞겠지만.


사장님의 마법이 강력해서 다행이었다.


누군가가 카페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당장에라도 카페 밖으로 나가서 나는 모르는 종족들입니다. 하고 도망칠 자신이 있었다.


그런 내 속은 여전히 모르는 채로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말싸움을 멈추기 위해 오른손을 천장을 향해 높이 치켜세웠다.


"…저기, 아침은 언제 주십니까?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만…."


"어, 어머. 내 정신 좀 봐. 이러고 있을 시간이 아니었는데."


"…나도 사과하겠네. 옆에 인간이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싸움에 몰입하게 될 줄은…."


"싸움에 몰입하게 된 건 전적으로 네 탓이잖아!"


"내 탓이 아니라 네 녀석의 탓 아니냐! 할 줄 아는 게 식빵밖에 없는 게 뭐가 어때서 그런가!"


"나도 할 줄 아는 게 볶음밥 밖에 없는데 뭐가 어때서!"


"…계속 싸우시면 그냥, 나가서 먹겠습니다."


""미안해요(하네).""


서로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사과를 건네오는 모습에 헛웃음이 실실 나오려고 했지만, 어떻게든 입꼬리를 내리려고 입을 움찔거렸다.


카운터 위에 올라가서 싸워대던 청하는 다시 카운터 아래로 내려와 의자 위에 앉았고, 사장님은 카운터에서 벗어나 뒤쪽으로 향했다.


여기까지 들릴 정도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가져온 재료들을 손을 쓰지 않고 다지는 모습과 함께, 옆에서는 공중에 뜬 냄비 안으로 쌀알들이 들어간다.


한 번도 보지 못했고, 볼 수도 없었던 광경이라 신기함에 옆에서 청하가 뭐라 말을 건네오는 것도 무시하고 그걸 보고 있었다.


꾹.


"으극…?!"


"저쪽에만 너무 집중하는 거 아닌가. 옆에 나도 있다네."


"그, 그렇다고 그렇게 세게 찌르시면 아픕니다…."


옆구리에서 알싸하게 올라오는 통증에 화를 내지도 못하고 찔린 옆구리를 손으로 매만졌다.


…화낼 타이밍을 못 잡았다는 것도 있었지만, 그…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에게 이래도 되는 거냐고 화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도 정신이 살짝, 어린애에 가까운 어르신에게는 더더욱.


이런 실례되는 생각을 혹시나 싶어 읽고 있나 옆의 청하의 얼굴을 봤지만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를 표정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노려보는 것을 보며 웃고 있었다.


"불만이라도 말하고 싶은 표정이군."


"할 말이 참 많습니다만… 하지는 않겠습니다."


"뭐라고 하든 받아들일테니 하게나."


"…나이많은 어르신에게 어떻게 심한 말을 하겠습니까."


"뭐… 뭣?!"


탕! 하고 카운터를 손바닥으로 내려치며 나는 소리에 몸이 움찔거렸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도 뭔가 화라도 난 건지 이번에는 나를 노려보는 청하의 모습에 살짝이지만 겁을 먹었다.


아, 내가 말 실수를 했구나. 나보다 강하고 나이도 많은 어르신에게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그런 생각을 하며 어떤 일이 벌어질지 머릿속에서 멋대로 돌아가는 상상을 어떻게든 멈춰보려고 노력했지만, 그것보다 먼저 청하의 분노가 먼저였다.


"나, 나는 노인네가 아니야! 이래보여도 젊은 편이라네!"


"하지만, 하시는 말씀들은 전부…."


"어쩔 수 없잖나! 주위에 어른들은 전부 이런 말투를 사용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느니라!"


청하는 이젠 아예 두 손으로 내 양 어깨를 잡고는 앞뒤로 흔든다.


목과 머리가 감당하지 못할 속도로 흔들리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부러질 것 같다거나 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아마 사장님이나 청하가 나름대로 배려를 해주고 있는 것이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흔들리는 와중에도 부러질 것 같다는 위기감을 안 느낄리가 없었다.


"난 노인네가 아니야! 그리고, 어르신이라고 부르지도 말게! 청하라고 불러주게나! 청하라고 불러!"


"지, 진정하시고…."


"진정이고 나발이고, 나는 노인네가 아니… 악!"


딱! 하고 청하의 이마를 은색으로 빛나는 숟가락이 때리고 돌아간다.


그걸 양 어깨를 붙잡힌 채로 고개만 돌려서 어디로 향하는 건지 보자 카운터 뒤쪽의 사장님 손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밥하는 데 집중 안 되니까 조용히해!"


"미, 미안하다네."


"그리고, 노인네가 아니기는 뭐가 노인네가 아니야. 우리 나이를 생각해보면 학생의 기준으론 터무니없을 정도로 나이많다고!"


"하지만, 자네도 노인네 취급 받고 싶지는 않지 않은가!"


"그건 그렇지만, 그렇게 반응하면 반응할 수록 노인네라고 할 가능성이 더 커지는 건 생각 못 해봤어?"


"허?"


"아무튼,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해. 그리고, 학생… 아니, 주빈씨 몸도 적당히 흔들고. 카페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혹시 몰라서 신체에 강화 마법은 걸어놨으니까."


"아까부터 목이 이상할 정도로 튼튼하다 생각하셨는데 사장님이 하신 것입니까. 감사합니다."


"감사는 됐어요. 그것보다는 옆에서 청하가 시끄럽지 않게 잘 감시해주세요."


"나는 어린애가 아니… 아니, 어린애 취급이 차라리 나은가…."


카운터에 와서는 어린애가 나은 건지, 아니면 노인네 취급이 더 나은지 쓰잘데기 없는 고민을 시작한 청하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던 사장님은 다시 뒤로 돌아갔다.


돌아가서 요리 재료를 손을 쓰지 않고 손질하는 것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청하를 보니, 어떤 생각에 빠져서 조용히 있는 것을 보고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여기에 밥을 먹으러 온 게 맞은 판단이었나 의심이 된다.


아마도 청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두 분의 반응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 굉장한 나머지 혼이 쏙 빠질 것 같은 느낌이다.


아, 그러고보니 여기서는 영혼이라는 게 존재하는 걸까.


궁금한 것이 생겼지만 생각에 빠진 청하에게 물어보기에는 좀 그렇고, 아직 요리를 하고 계시는 사장님에게 물어보기에도 좀 그랬으니 이건 나중으로 미뤄두자.


그나저나, 신체 강화 마법이라고 하셨던가.


아까 미친듯이 흔들렸던 목 부분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평소랑 다르지 않은 감각이 느껴졌다.


정말로 강화된 것 같기는 한데, 내 입장에서는 어떻게 강화된 건지 체감이 되지를 않는다.


조금 더 눈에 띄는 효과라던가 있었다면 아마 손 쉽게 알아볼 수 있었겠지만, 그건 마력을 사용할 줄 알아야 볼 수 있겠지.


아마 마력을 사용할 줄 아는 종족이 내 모습을 본다면 사장님의 마력에 휩싸인 모습이 아닐까. 사장님의 몸에서 황금색 기운같은 게 넘실거렸으니 아마 내 몸도 그렇겠지.


…조금 멋있기는 했지만, 내게 그런 기운이 있어도 제대로 다스릴 수 없었을 테니 참으로 아쉬운 일이었다.


다다다당 하고 공중에 뜬 칼이 스스로 재료를 다지는 소리에 생각에서 빠져나온다.


옆의 청하는 여전히 생각에 빠져 있는 모습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카운터 뒤쪽의 사장님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공중에 뜬 냄비의 밑으로 허공에서 만들어진 불꽃이 냄비를 뎁히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냄비 밑의 불꽃보다 더 큰 불꽃 위에 넓적한 후라이팬의 안으로 다져진 재료들이 쏟아졌다.


사장님이 두 손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나름대로 무언가를 하고 계신다는 점은 알겠지만, 정확히 뭘 하고 계시는 건지 모르는 게 좀 아쉽다.


조금이라도 아는 게 있었다면 저게 어떤 행동이고, 저기 스스로 움직이는 것들이 어떻게 움직이는 건지 알 수 있었을 텐데.


사람이라 마력이 없다는 게 참 아쉬웠다.


…그렇다고 청하의 도움을 받는다던가, 사장님의 도움을 받는다던가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물론 다른 종족의 도움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사람은 사람의 몸인 채로 있어야 편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나중에 사용하게 되는 일이 생긴다면 마력을 모으는 도구, 그러니까. 청하가 건네준 복주머니 안에 들어간 비늘을 사용하겠지.


얼마나 많은 마력이 들어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청하니까 적당히 넣어주지 않았을까.


…적당히 넣어준 게 맞겠지? 불현듯, 아주 큰 불안감이 쏟아진다.


이걸 생각에 빠진 청하에게 물어보는 게 맞기는 한데, 맞기는 하지만 굳이 생각을 깨우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에 아까같은 일이 또 생긴다면 나는 막을 수 없었으니까.


그러니 얌전히, 사장님이 마법을 쓰는 모습을 본다.


혼자서 움직이는 국자와 후라이팬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안의 내용물을 볶아내고 있었고, 옆에서 쌀을 넣은 지 얼마나 됐다고 밥솥의 뚜껑이 열리고는 안의 내용물인 밥의 모습이 보였다.


사장님은 열심히 움직이던 오른손을 잠깐 멈추고는, 밥솥 안의 밥을 손으로 조금 떼어내어 먹어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리며 휙 하고 검지 손가락을 움직여 후라이팬 안으로 밥을 집어넣었다.


여러모로 신기한 광경이었고,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은 광경이었다.


"저게 그렇게나 신기한가?"


"신기합니다. 저는 마법이나 주술을 보는 게 처음이니."


"흠. 나중에 내가 주술을 쓰는 걸 보면 놀라서 까무라치겠구나!"


"그럴지도 모릅니다. 저런 식으로 사용되는 마법도 지금도 놀라울 따름입니다."


"…사실, 나도 저건 좀 신기하다네. 내 주술은 저런 식으로 사용할 수 없다보니."


"주술은 마법처럼 사용할 수 없는 겁니까?"


"힘들지. 가능이야 하겠지만, 그럴 시간에 사역마를 이용하거나 부적을 이용한 식신으로 대신하는 게 더 빠르다네."


"그렇습니까."


"그렇지. 물론, 지금이라도 마법을 배운다면야 가능하겠지만…."


"무언가 마음에 걸리시는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엄연히 나도 용이니까, 마법을 사용하는 건 자존심에 걸린단 말일세. 저 녀석도 드래곤이니까 주술을 배우지 않았으니."


그렇게 말하는 청하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동경이라고 해야하나, 그런 느낌이 담겨있었다.


"볶음밥 다 됐으니까, 금방 갈게!"


"애초에 내게 주는 게 아니라 학생에게 주는 것 아니었나."


"…아, 그랬지."


"가끔 저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 빼면 참 괜찮은 녀석인데."


"너도 가끔 이상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 빼면 괜찮거든?"


서로의 모습에 대해 투덜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역시 친구보다는 악우에 가까운 게 아닌가.


청하와 내 자리 사이의 카운터 위로 바람에 날리듯이 날아온 나무로 된 냄비 받침대가 깔렸고, 그 위로 볶음밥이 담긴 후라이팬이 올라간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방금 막 만들어진 볶음밥에서는 굉장히 좋은 냄새가 풍겼다.


"볶음밥은 여전히 잘 만드는구나."


"이것말고도 다른 것도 할 줄 알거든!"


"빵이지 않나! 나는 밥을 원한다!"


"그러면 너가 직접 해먹던가!"


"주방을 빌려주면 다음엔 내가 해주겠느니라!"


"말로 된 약속도 약속이라는 건 알고 있겠지!"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겠다! 그러니까 주방이나 내놔!"


"내 주방인데 뭘 내놓으라는 거야! 싫어!"


"이야기가 다르잖나!"


빼애액! 하고 또 다시 말싸움을 시작하는 두 명의 모습에 머리가 지끈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