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인간이 희귀종인 세상에서

"학생, 카페에서 알바해볼 생각 없어요?"


"없습니다."


주문했던 커피를 내게 내밀면서 물어오는 사장님에게 고개를 흔들어 거부의 의사를 표현하고, 내민 커피를 받아서 카페 밖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모습을 보지 않아도 아쉽다는 듯이 쳐다보는 사장님의 모습이 언듯 보이는 듯 것 같았다.


"힝… 시급도 많이 줄테니까."


"생각 없습니다."


매번 올 때마다 저러는 데 지치지도 않나.


여전히 알바에 대한 생각을 버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직도 아쉬움을 거두지 못하고 재차 물어오는 사장님을 뒤로하고, 유리로 된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슬슬 겨울에 다가서는 날씨라 그런 지 쌀쌀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추운 날씨는 아니었다.


길 옆에 조경으로 놓인 가로수들의 푸른 나뭇잎은 어느샌가 빨갛게 물들어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있었고, 그 아래를 거니는 사람들은 옆에 제각각의 짝들과 함께였다.


사람이라기엔 생김새들이 다들 독특하게 생겼지만.


누구는 머리 위에 뿔이 달려있었고, 누구는 사람의 귀 대신에 동물의 귀가 달려있었고, 누구는 둥글고 납작한 사람의 귀가 아니라 길쭉한, 흔히들 말하는 엘프라는 종족과 비슷한 귀를.


귀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부분들도 마찬가지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눈에 띄는 건 머리카락이었다.


어쩜 저렇게 머리색깔이 오색빛깔인건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온갖 색으로 뒤덮인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해진다.


내 알바는 아니었지만.


커피에 꽂힌 빨대를 한 모금 쭙 빨아마셨다.


얼음이 뒤섞여 시원한 커피의 씁쓸한 맛과 동시에 초콜릿의 맛, 그리고 휘핑 크림이었던가 하는 것의 맛이 혀를 타고 느껴졌다.


알바할 생각이 없는데도 여전히 귀찮게 달라붙는 이곳에 와서 커피를 마시는 이유였다.


다른 곳에서도 똑같은 것을 마셔봤지만 여기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맛있지만 않았으면…."


약간의 아쉬움을 담아 주절거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에 온 지 한달이나 됐지만 주위의 풍경들은 여전히 익숙하지가 않았다.


사람들의 모습은 물론이고 조경용 가로수들도 전에 봐왔던 것들이랑은 다르게 생긴 데다가, 가까이 다가가면 뭔지는 모르겠지만 기분 좋은 향기가 난다.


지금도 주변에 있는 나무에 가서 냄새를 맡아보면 똑같은 냄새가 나겠지. 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가로수에서 눈을 떼고, 주변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높이 솟아오른 아파트 사이로 나무로 만들어진 아파트라던가, 저 멀리서도 눈에 띄일 정도로 크게 자라난 나무 한 그루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공원이 보였다.


바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해보면 만나기로 했던 장소의 사진과 똑닮았다.


사진 밑으로 뭐라뭐라 긴 주소가 있기는 했지만, 내 언어 능력으로는 말하는 것도 힘든데다가 이게 대체 뭔 뜻인데 라는 감상밖에 안 떠오른다.


아무튼, 문자로 지정했던 장소에 어떻게든 도착했으니 된 것 아닌가.


거창한 주소와는 별개로 집 밖으로 걸어서 10분 정도면 도착하는 장소였기는 했지만.


굉장히 큰 나무가 특징적인 뭐시기 공원에 도착하고 난 뒤, 주변에 보이는 벤치에 앉아서 주변을 둘러봤다.


주말이라고 부모님이랑 같이 나온 애들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거나, 연인으로 보이는 사람들 여럿이 보였다.


커피를 마시면서 사람들 모습을 관찰하고 있자니 발 밑으로 둥근 무언가가 굴러왔다.


이게 뭐냐, 하면서 빈 손으로 잡으니 한 손에 적당히 들어오면서도 푹신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딱하지는 않은, 고양이들이 좋아할 법한 공이었다.


이런 공도 쓴다는 사실에 신기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곳으로 누군가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 저기…."


검은 머리카락 위로 삐죽 솟아오른 검은 고양이 귀와 등 뒤로 보이는 고양이 꼬리가 참으로 인상적인 어린아이가 내게 두 손을 내밀고 있었다.


"공, 주세요…."


이거로 뭘 하고싶다는 생각도 없었으니 나를 빤히 바라보는 고양이 소녀의 손에 공을 돌려줬다.


"감사합니다, 언니!"


그렇게 제 할 말만 하고 떠나는 소녀의 뒤를 잠깐 바라보다가 방금 들었던 언니라는 말이 떠올랐다.


언니. 흔히들 말하는, 여성이 자기 보다 나이 많은 여성에게 부르는 호칭.


어느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을 했었지만, 그렇게 익숙해지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아직까지도 언니라는 호칭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은.


흙 투성이는 아니었지만 바닥을 이리저리 굴러다녔을 공을 만졌던 손을 바지에 대충 문질러서 닦아내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남자였던 내가 어째서 여자가 되었나를 다시 떠올려봤지만 이유가 없었다.


그냥, 눈 떠보니까 여자였다.


신분증도 여자에 옷장에 들어간 옷들은 남자였을 때 입었던 것들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었지만 여성의 신체에 맞춰져 있었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인터넷에 검색해봤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드디어 내가 정신이 나갔나 싶었지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으니 상대방이 설명하기를.


나 말고도 다른 분들에게도 문제가 발생하였으며 몸에 이상이 없는 지 확인하기 위해 검사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거기까지는 음, 그래. 아무튼 설명은 받아야겠지 하고 넘겼다.


여성용으로 사이즈로 바뀌어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평소에 입던 옷이랑 별다른 차이가 없어서 옷을 갈아입는 건 문제가 없었다.


지정된 병원의 앞까지 가는 것과, 도착하고 나서가 문제였지만.


가는 도중에 나를 보던 시선들이 동물원의 동물을 보던 시선 비스무리한 점, 도착하고 나서 보인 나와 같은 피해자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하나같이 사람의 것과는 동떨어져 있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여기로 불러낸 당사자였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보고는 당황하더니 인간이냐고 물어보더라. 인간이 인간이지 아니면 뭐겠는가.


아무튼, 이것저것 검사를 받아봤지만 아무런 문제도 없다더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한달 동안 상태를 보다가 좀 더 정밀하게 검사를 하겠다고 한 지가 한달 전이었고, 지금이 재검사를 받을 날이었다.


여기까지 불러낸 당사자는 코 하나도 안 보였지만.


커피를 마시면서, 공을 가지고 노는 고양이 소녀에게서 눈을 떼고 연인끼리 닭살돋는 연애행각도 잠깐 봤지만 팔에 소름이 우수수 돋아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햇살을 느끼면서 잔디인지 뭔지 모를 풀 위에 드러누워있는 강아지 귀랑 꼬리가 달린 금발 여성이라던가, 공원 가운데에 있는 나무의 나뭇가지 위에 올라간, 새로 생각되는 날개를 가진 여성이라던가.


일반적인 사람들의 모습만 보며 살아왔던 내게는 기묘하다 못해 정신이 아득해지는 광경이었다.


정신이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려는 기미에 커피를 한 모금 마시려고 했지만 그것보다 눈 앞에 누군가가 서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가 앞에 서있는 건지 고개를 올릴려고 했지만 그전에, 내 겨드랑이 사이로 손이 들어오더니 그대로 공중에 몸이 떴다.


그렇게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눈 앞의 대상을 마주하게 되자 누가 이랬는 지 알 수 있었다.


"…자기보다 작다고 이래도 되는 겁니까?"


"아, 음.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더 귀엽게 생기셔서 그만…."


자기보다 아래로 보이면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지. 당사자인 나는 내가 귀엽다는 말이 미묘하게 들리지만.


나를 여기로 불러낸 당사자는 하얀 머리카락 위로 보이는 흰색과 검은색의 무늬의 호랑이 귀가 인상적인, 160cm의 나보다 40cm나 더 큰 장신의 정장을 입은 여성 '백호연' 이었다.


"…껴안아봐도 괜찮습니까?"


"안 됩니다."


머리 위로 보이는 호랑이 귀가 저렇게 축 늘어지기도 하는구나. 하는 약간의 감상을 떠올리며, 얼마 없던 커피의 내용물을 마셔서 비워버렸다.


백호연의 뒤를 따라서 병원으로 가는 동안, 백호연은 내게 이것저것 이야기를 걸어왔지만 그다지 관심이 가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왜 이렇게 친절하게 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까칠한 것보다는 친절한 게 더 낫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아까부터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흔들리는 백호연의 꼬리를 피해 조금 더 뒤로 떨어져서 따라갔다.


아. 백호연의 꼬리랑 귀가 눈에 띄일 정도로 아래로 내려가며, 어깨도 축 쳐져서는 시무룩해진 것 처럼 보였다.


안타깝게도 내게 시무룩해진 사람을 달래는 말은 잘 몰랐기에 그저 말 없이 따라갈 뿐이었다.


그래도, 알아서 스스로의 감정을 추슬렀는 지 아까처럼 빠르지는 않았지만, 적당한 속도로 흔들리는 꼬리의 모습에 안심하며 조금 더 앞에 붙어서 따라갔다.


…붙자마자 바로 빠르게 흔들리기 시작한 모습에 놀라서 방금처럼 뒤로 살짝 빠져서 따라가자마자, 꼿꼿이 서버리는 꼬리의 모습은 조금 인상적이었다.


아까와는 다르게 다른 종족들의 눈에 띄일 정도로 시무룩해진 백호연이 보였지만, 일부러 무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