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인간이 희귀종인 세상에서

사장님의 머리카락 끝부분부터 시작해서 점차 높게 붕 떠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건 착각이 아니겠지.


실시간으로 사장님의 머리카락과 앞치마같은 옷 끝자락들이 천천히, 황금색 기류에 휩싸여 떠오른다.


그 와중에도 내 머리위에 느껴지는 무게감의 주인께서는 별 흥미를 갖지도 않은 채 나를 내려다보는… 내려다보는 게 맞나 싶지만, 일단 시선이 느껴지는 것을 봐서는 그런 것 같다.


머리 한쪽에서 삐용삐용 하고 위기 신호를 미친듯이 보내고 있었지만, 머리의 반응과는 다르게 나는 크게 신경쓰고 있지 않았다.


어쨌든간에 사장님이 나까지 피해를 입히지 않을 것이라는 불확실한 믿음을 갖고 있었고, 그리고 어째선지는 모르겠지만 머리의 무게감께서 막아주겠지 하는 헛된 희망도 살짝은 품고 있었다.


그렇게 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신경을 끈 채로 컵 안에 남은 것들을 입에 털어넣는다.


입 안으로 커피의 맛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작금의 상황이 상황이라 그런 것들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당장, 지금도 나를 신경쓰지 않고 머리 위의 주인을 노려보는 사장님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잘 마셨습니다."


사장님에게 그리 말하며 텅빈 컵을 내밀자, 아직도 내 머리 위에서 움직이지를 않는 무게감을 죽일 듯이 쳐다보던 사장님이 한숨과 함께 컵을 받아들고는 카운터 뒤쪽의 싱크대로 향했다.


그 몸습을 웃기다는 듯이 푸하하 하고 웃으며 지켜보던 머리 위의 주인께서는 그제서야 내 머리위에서 가슴을 떼어내고는 내 옆자리의 의자를 뒤로 빼어 앉았다.


앉은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아까까지는 사장님을 쳐다보던 시선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듯이, 정확히는 무언가를 살펴보듯이 내 신체 위아래를 살펴 본다.


관찰을 당한다는 게 썩 좋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상대방의 눈에 비치는 내 모습또한 그렇게 썩 좋지는 않겠지.


아까도 말했다싶이 입은 한복이 폭발할 것처럼 툭 튀어나온 가슴에 눈을 안 붙이려고 노력해도 간간히 시선이 닿는다.


아니, 저 정도로 크면 내가 의도한 게 아니어도 시선이 무의식적으로 향해버리니 곤란하네.


상대방도 그걸 알고 있는 지 아까처럼 푸하하 하고 웃지은 않고 큭, 큭 하고 작은 소리로 웃었다.


"뭘 그렇게 찔끔찔금 보느냐. 아까부터 계속 이것에 시선이 머물고 있는데."


"…그, 죄송합니다. 보고 싶어서 보는 게 아니라…."


"나도 안다. 이 정도로 크면 원하지 않아도 시선이 가는 법이지. 너처럼 말이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 저는 전혀 모르겠는데요.


라고 무심결에 말하고 싶었지만, 계속 시선이 갔던 것은 사실이었으니 입이 열 개여도 할 말이 없었다.


…아니, 생각해보면 여기에는 입이 여럿 달린 종족이 있을지도 모르니 이런 말을 떠올리는 건 실례가 아닐까.


그런 내 모습이 뭐가 그리 웃긴 지 쿡쿡 거리며 소매로 입을 가리고 웃는 여성의 가슴에 또 다시 붙어버린 시선을 위로 올려보니, 머리 위로 툭 튀어나온 나뭇가지, 아니면 사슴의 뿔과 비슷하게 생긴 것이 눈에 띄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파란색 일색이듯이 뿔도 마찬가지로 파란색이었는데, 그 색이 마치 깊은 바다의 물이 투영된 색처럼 보인다.


계속 쳐다보다가는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끌려가는 느낌이 든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심해 깊은 곳의 색으로 변하는 것 같기도 하고, 방금 전보다는 좀 더 연한 색으로 바뀌는 것 같기도 하고.


참 묘한 느낌으로 색이 바뀌는 뿔의 색깔을 보고 있자니 눈 앞으로 머리를 쑥 내미는 여성의 얼굴이 보였다.


"뭐 그리 재밌는 걸 보느냐? 내 뿔이더냐?"


"…색이 변하는 것이 신기해서 그렇습니다… 아, 이거 혹시 문제가 되는 발언입니까?"


"전혀! 오히려 썩 유쾌한 느낌이구나. 나를 보고도 그런 감상을 품은 녀석을 본 게 꽤 오래되었으니."


내게 얼굴을 들이민 채로 내 얼굴 이곳저곳을 살펴보던 여성은 뭔가 만족했다는 듯이 그제서야 얼굴을 뒤로 쭉 뺐다.


나로서는 왜 만족했는 지도 모르겠고, 왜 그런 표정을 하고 있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카운터 위로 탕! 하고 쟁반 내려놓는 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어차피 주문할 것도 언제나와 같은 것이겠지?"


"물론! 그나저나, 꽤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구나."


"뭐를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만."


"뭐긴 뭐겠느냐! 이 '인간'말이…."


퉁─ 하고 어디서 들린 것인지 모를 울림이 카페 안을 가득 채운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 건지 물어보기 위해 입을 떼려고 했지만, 무언가에 눌린 것처럼 입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입은 물론이고 신체 전부가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움직이지를 않는다.


그나마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는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려서 내 옆자리의 여성과 사장님을 번갈아가며 쳐다보는 것 말고는.


"말. 조심. 하는. 게. 좋을… 거야?"


"…아, 과연. 그 부분은 내가 사죄하네. 인간, 아니. 사람도 이제는 보기 힘든 종족이니."


푸른 여성이 사과를 하자마자 카페 안을 가득채운 울림이 사라진 뒤에야 몸이 움직여졌다.


평범한 카페라고 생각했는데, 여기도 평범하지는 않았구나.


방금까지 눈 앞에서 일어난 일들을 겪고 나니 한달이라는 시간동안 충분히 겪었다고 생각헀었지만, 아직까지도 이곳에 적응하기란 먼 이야기였다.


신체를 뒤덮은 황금색 기류가 가라앉으며 사장님의 하늘로 솟구치던 머리카락과 옷자락도 도로 내려오고, 옆자리의 푸른 여성도 신나게 입을 열던 것과는 다르게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자기 앞에 놓인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공백만이 카페 안을 가득 채워버린 상황속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해야 좋을 지 떠올려 본다.


…안타깝게도 내게 좋은 말솜씨가 있지는 않아서 떠올릴 수 없었다.


여기가 카페라는 점을 이용하여 사장님에게 겨우겨우 말을 꺼낸다.


"…방금 마신 차, 한 잔 더 됩니까?"


"…물론이에요, 학생!"


"이번에는 서비스 말고 계산도 하겠습니다."


"이번 것도 서비스…라고 하기에는 학생이 불편하겠죠?"


"예."


"혹시…."


"뭐 하실 말씀 더 있으십니까?"


"전에도 물어봤지만 학생, 알바할 생각 없어요? 시급 잘 줄테니까!"


"…풉!"


옆에서 커피를 마시던 여성의 입 밖으로 마시던 것들이 분출된다.


그 대상은 당연하게도 내가 아니라 사장님을 향했지만, 무언가에 가로막힌 것처럼 사장님에게 닿지 않고 아래로 흘러내렸다.


"…더럽게 뭐하는 짓이야?"


사장님의 목소리는 여태까지 들어본 목소리중에서 가장 낮은 목소리였지만, 그게 내 옆에서 웃고 있는 여성을 막기에는 그렇게 충분한 위협은 아닌 듯 싶었다.


"하, 하하하! 알바는 무슨 알바생! 이런 곳에 손님이 얼마나 온다고 알바생을…."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던 푸른 여성은 내 얼굴과 신체를 몇번 번갈아가며 살펴보고는 갑자기 자기 턱에 손을 올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충분히 알바생으로 끌어들일 만 하지 않아?'


"…그렇군. 네 카페에 관심이 없는 녀석들도 사람이라면 충분히 관심을 가질테니."


"그렇지? 좋은 생각이지?"


"그렇다고 네 녀석의 카페에 관심을 가지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고작해야 사람에게 빌붙어서 카페에 좀 더 많은 손님을 바라다니! 이쯤 되면 인정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


"시, 시끄러워! 그냥 취미로 하는 카페에 진심이 된 게 뭐가 나쁘다고!"


"너는 장사에 재능이 없다! 하다 못해 카페에 걸린 마법이라도 약화를 시키고 말을 꺼내거라!"


"그렇지만, 내가 직접하니까 적어도 저런 마법쯤은…."


"너무 오만한 것 아니냐?"


푸른 여성이 한심하다는 듯이 사장님을 쳐다보자 그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눈을 돌려서 나를 보는 사장님.


뭔가 도움을 바라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지만, 사장님에게 드릴 말이라고는 하나 밖에 없었다.


"주문은 언제 나옵니까?"


"…아. 금방 타드릴게요!"


호다닥 하고 카운터 뒤의 요리 기구로 종종 걸음으로 향하는 사장님의 뒷모습을 쳐다본다.


급하게 선반에서 컵을 꺼내고, 다른 곳에서 티백으로는 안 보이고 한약재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꺼내고는 주전자에 담았다.


보통은 티백을 이용하지 않나 싶었지만, 내가 차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었기에 묵묵히 보고 있었는데, 옆에서 푸른 여성이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입가가 찢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크게 미소를 지은 채로 나를 보고 있었다.


"꽤 즐거운 풍경을 보게 해줘서 고맙다, '학생'."


"…저는 그렇게 즐겁지는 않았습니다만."


"그건 어쩔 수 없지! 미안하니까 계산이라도 대신 해줄 테니 이걸로 눈 감아주게나."


컵에 남은 커피를 한 입에 털어마신 여성은 카운터 위로 황금색 금화를 하나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나마나 저 녀석은 부끄러워서 이름도 안 알려줬을 테니 이 기회에 내가 먼저 말해야 나중에 놀려먹기 좋겠군."


내 이름은 청하라고 하느니라.


직접 말한 것도 아닐 텐데 머릿속에 울려퍼지는 목소리와 함께,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푸른 여성, '청하'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봤다.


사장님이 내가 재주문했던 티가 나왔다고 말하기 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