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인간이 희귀종인 세상에서

청하가 언제쯤에야 말을 꺼내나 생각할 쯤에야 상념에서 벗어난 듯, 내 품에 기댄 사장님을 보고는 깔깔 웃어대는 청하였다.


그런 청하의 모습에 부끄러우신 건지 청하가 보지 말라는 듯이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며 내 앞에서 일어나시고는 원래 앉았던 자리로 돌아가신 사장님.


"그 모습이 어딜 봐서 드높은 황금의 드래곤이느냐! 그냥, 인간에게 푹 빠져버린 드래곤이잖나!"


"그런 너도 인간에게 푹 빠져버린 용이잖아!"


"물론, 나는 인간을 너무나도 좋아한다!"


"나, 나는… 아니, 왜 그렇게 부끄러운 발언을 당당하게 하는 건데!"


"전혀 부끄럽지 않다!"


키에 맞지 않는 가슴을 앞으로 당당하게 내밀며 말하는 청하의 모습에 오히려 사장님이 더 부끄러우신 건지 누군가가 볼 세라 창밖의 종족들을 둘러봤다.


아무도 이쪽을 보지 않는데도 두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시는 모습을 보니 마법이라도 쓰시려는 모양이었다.


사장님의 두 손의 궤적을 따라 형이상적인 문양이 나타나고, 그것이 허공에 녹아내리듯이 사리지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셨다.


"하아."


"누가 보지도 않건만,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게냐."


"누, 누가 볼 수도 있잖아! 아니면, 너 말고 다른 친구가 올 수도 있고!"


"아. 그 마녀말이냐?"


"마녀라고 부르지마! 엄연히 '아미야' 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마녀 라는 말도 엄연히 종족에 포함되지 않나."


"조, 종족에 포함되는 하지만…."


"그럼 뭐가 문제느냐."


사장님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청하의 시선에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냥, 너도 이제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어서."


"나도 기억하는 이름들은 많다. 네 녀석도 있지 않느냐."


"그럼, 내 이름은 뭔데?"


"황금의… 뭐였는가. 지금의 금향이라는 이름이 더 좋아서 기억나지를 않는군."


"그, 그건 이름이 아니라 남들이 멋대로 붙인 거잖아!"


부끄러움에 청하에게 화를 내는 사장님의 모습을 보며 앞의 황금의 뭐시기는 아마 게임에서 흔히 보던 칭호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런 칭호를 현실에서 실제로 붙였다고 생각하면 부끄러워서 자다가도 이불을 뻥 뻥 발로 찰 자신이 있었다.


"아무튼. 생각보다 기억은 잘 하고 있네."


"물론이라네. 마녀의 이름도 잘 기억하고 있지. 다만, 내게는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었기에 종족으로 부를 뿐."


"그것도 이제는 고치는 게 좋지 않아?"


"언젠가는 바꾸겠지만, 지금은 아니네."


"…그래서, 내가 학생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따라서 부르는 거고?"


"그건 어느 의미로 네 녀석을 놀리기 위해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니라."


"야!"


빽! 하고 큰소리로 청하에게 따지는 사장님의 목청은 카페 안을 가득 채울 정도로 커다랬고, 그에 따라 내 귀는 당연하게도 섬광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삑─ 하는 소리와 함께 의도하지 않은 침묵만이 카페를 채웠다.


잠깐 앞도 안 보였던 걸 보면 귀가 너무 아파서 눈도 감았던 것 같다.


조심스레 눈을 떠보니 내 앞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는 청하와 아까 금향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사장님이 나를 살펴본다.


"괜찮아요? 귀는 멀쩡하고? 마법으로 급하게 치유를 걸기는 했는데…."


"괜찮습니다. 잠깐 아팠던 것을 빼면 지금은 고통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소리가 잘 들리나 확인은 해보는 게 좋겠군."


눈을 감게나.


머릿속으로 건네진 말에 두 눈을 감고 조용히 기다리자, 오른쪽에서 손가락을 딱, 딱 하고 튕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오른쪽입니다."


오른쪽에서 딱 하고 손가락을 튕기던 소리가 사라지고, 이번에는 왼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왼쪽입니다."


"양 쪽 다 멀쩡하군. 다행이니라."


"…인간은 내 생각보다 훨씬 약한 편이구나…."


"강화 마법은 여전히 걸린 채였는가?"


"카페 안에 들어섰을 때부터 걸린 상태였으니까."


"…이 정도로 약할 줄은 나도 몰랐느니라. 다음부터는 조심해야겠군."


사장님은 휴. 하고 폐에서 남은 공기를 빼낸 뒤에야 자기 앞에 놓인 커피를 손에 들고 한 모금 마셨다.


나도 내 몫으로 놓인 커피를 입 안으로 털넣어듯이 한 번에 다 마셔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당히 식어있는 게 생각보다 오랫동안 카페에 있었던 것 같다.


아침도 먹었고, 커피도 마셨으니 이제 카페에서 나가도 괜찮지 않을까. 허니브레드는 살짝 아쉽기는 한데, 그게 들어갈 정도로 많이 먹는 편은 아니었다.


슬쩍, 옆 자리에 앉은 청하의 모습을 살펴보니 두 다리를 앞뒤로 흔들면서 자기 몫으로 놓인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학생, 혹시… 앞으로 이름으로 불러도 괜찮을까요?"


옆에서 들려온 사장님의 목소리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부끄러움이 반, 그리고 걱정이 반으로 섞인 표정의 사장님이 보였다.


사장님을 봐왔던 시간을 떠올려본다면 이름으로 불러도 괜찮겠지.


"예. 아, 저도 이름으로 불러도 괜찮습니까?"


"네, 네! 제 이름은 금향이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금향님."


"…부탁이니 님은 빼주시면 안 될까요?"


"…저보다 나이 많으신 분을 어떻게…."


"금향이라고 불러주세요! 금향이에요!"


어떻게 된 게 어제의 청하랑 똑같은 반응을 보이시는 건지.


이쯤되면 확실히, 용이랑 드래곤이랑 모습이랑 이름만 좀 다를 뿐이지 같은 종족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푸하핫! 네 녀석도 결국, 나랑 똑같지 않느냐!"


"실제로 님이라는 단어가 붙으니까 기분이 이상해지는 걸 어떻게 하는데!"


"나 또한 마찬가지였느니라!"


"…그럼, 금향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슬쩍, 옆에 앉은 청하의 얼굴을 살펴보니 나라를 잃은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청하는… 안타깝게도, 님이라는 말을 붙이는 편이 더 편했다.


청하라고 편하게 불렀다가는 밑도 끝도 없이 내게 달라붙을 지도 몰랐기에.


그런 점에서 사장님, 아니. 금향은 청하보다는 편했고, 어느정도 선을 나눴던 것도 있는 데다가 청하와는 다르게 내게 좋은 이미지가 많았다는 점도 있었다.


어제랑 오늘 있었던 일로 어느정도 깎아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청하보다는 훨씬 높다. 훨씬.


꼬리가 바닥에 닿은 청하와는 다르게 하늘을 향해 솟아오를 정도로 높이 치켜세워진 금향의 꼬리는 제 기분을 감추지 못하듯이 좌우로 흔들렸다.


"고마워요, 학생! 아니… 주빈."


"뭣! 어떻게 이름을 알고 있는 게냐!"


"그거야 어제 물어봤으니까!"


"나에게는 이름을 안 알려주면서, 왜 저 녀석에게는 알려줬느냐!"


"말 그대로 이름을 안 물어보시지 않았습니까."


"그, 그거야 당연히 알아서 알려주겠거니…."


"이름을 먼저 안 건 나라는 소리네?"


사장님은 훗훗훗, 하고 기분나쁘게 웃으면서 청하에게 다가가더니 메롱 하고 혀를 내밀었다.


"네, 네 녀서어어억!"


자리에서 팍! 하고 일어난 청하는 사장님을 째려봤지만, 그런 청하의 시선을 아무렇지 않게 넘겨버린 사장님은 내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오늘 와줘서 고마워요, 주빈. 나중에 또 봤으면 좋겠네요."


"아침이랑 커피 고맙습니다. 저는 그럼 가보겠습니다."


"어딜 가느냐! 나는 좀 더…!"


"어허. 오늘 할 이야기가 조금 있지 않아, 청하?"


"…아."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청하가 살짝, 불쌍하기는 했지만 내 알 바는 아니었으니 그냥 무시했다.


나보고 살려달라는 듯이 쳐다보는 청하의 시선을 무시하고, 카페 출입문으로 향하니 뒤에서 청하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 이 일은 기억할 것이다, 주빈!""


"나는 이름을 불러도 된다고 했는데, 너는 언제부터 이름을 불러도 된다고 했지?"


…아무래도 한동안은 카페가 시끄러울 예정으로 보인다.


카페의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동안, 안에서 우당탕 쿠당탕 하고 물건이 넘어지는 소리와 함께 사장님과 청하가 한바탕 뒹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싹 다 무시하고 밖으로 나간 뒤, 출입문이 닫히는 걸 확인하고 어디로 갈 까 뇌를 굴려본다.


도서관은 예외고, 근처에 갈 만한 노래방같은 곳은 있지만 지금은 가고 싶지는 않았고.


흠… 하며 고민을 하다가 결국, 남은 선택지는 공원밖에 없었다. 마침 기온도 괜찮았고, 공원 주변의 풍경도 괜찮았으니 가만히 앉아서 배가 꺼질 때까지 느긋하게 앉아있으면 딱이었다.


설렁설렁, 체하지 않도록 천천히 공원을 향해 걸어가며 주변의 풍경을 본다.


이제 가을의 중반쯤 온 탓인지 파랗게 남아있던 나뭇잎들이 어지간해서는 전부 빨갛게 물들었다.


그와 동시에 나무인지 아니면 나무와 함께 자라는 꽃에게서 나는 건지 모를 냄새도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향기로운 냄새들 사이로 천천히 걷고 있자니 아까까지 카페에서 겪었던 일들이 전부 꿈처럼 느껴진다.


사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스마트폰이 들어있지 않은 다른 주머니로 손을 옮겨보면 손에서 뭔지 모를 물건이 만져졌다.


언제 이런 걸 챙겨 왔었더라. 하며 꺼내보니 아까 청하가 보여줬던 복주머니가 어느새 내 주머니에 들어있었다.


손재주도 좋네. 언제 넣어둔거지.


복주머니 안을 뒤적거리니 안에 시시각각 온갖 푸른색으로 바뀌는 비늘이 보였다.


짙은 푸른색이었다가도 잠깐 눈을 깜빡이면 바다의 푸른색, 또 눈을 깜빡이면 맑은 하늘과 똑닮은 색.


생각보다 볼 맛이 있는 비늘이었다. …청하의 신체 일부니까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것이겠지만.


복주머니 입구를 조여서 안에 있는 비늘이 떨어지지 않게 하고, 도로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공원을 향해 멈췄던 걸음을 다시 옮기니 몇 분도 안 되어 공원에 도착했다.


아마 오늘이 주말이었는 지 어린아이들과 함께 같이 온 가족들도 보였고, 저 멀리 나무 위에 앉아있는 고양이의 귀와 꼬리를 가진 종족과 새처럼 보이는 종족이 보였다.


그리고 그런 나무들 사이로, 멀리서도 눈에 띄일 정도로 큰 나무 주변으로 다른 종족들이 눕거나 아니면 그 위에 올라타면서 놀고 있었다.


근처에 혼자 앉을 수 있는 벤치를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고 큰 나무 주변에 있는 벤치밖에 남지 않았다.


남들의 시선으로 주목받는 것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왕 공원에 왔으니 주변의 종족들이나 관찰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다.


하나 남은 벤치를 향해 걸어가 그 위에 앉고서 주변을 둘러본다.


내가 사람이라는 사실에 이쪽을 보는 종족들이 많이 보였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자기가 하는 일에 집중하는 종족들도 보였다.


막상 벤치에 앉으니 주목되는 시선이 너무 많다. 차라리 스마트폰이라도 꺼내어 뭐라도 할 까.


그렇게 생각하며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려다가, 눈 앞으로 다가온 다른 종족이 보였다.


키가 나보다 훨씬 작고 어려보이는, 고양이 귀와 꼬리가 달린 소녀가 고양이가 갖고 놀법한 공을 두 손으로 잡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뭐지. 뭘 의미하는 것이지. 여기가 원래 이 소녀의 자리였나.


날 올려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소녀의 모습에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이 계속될 무렵, 소녀가 입을 열었다.


"언니, 저번에 공 주워준 언니 맞죠?"


"…아마도?"


"부탁이 있는데요…."


"들어주기 힘든 것만 아니라면야."


"그, 애들이 그러는데요. 사람이 머리를 만져주면 기분이 좋다고 해서…."


정정한다. 공원에서 다른 종족을 관찰하는 게 아니라 집으로 도망가는 게 맞는 판단이었다.


머리를 쓰다듬어달라고 요청하는 고양이 소녀의 말에 당황해서 주변을 둘러보니, 이쪽으로 다가온 어린아이들이 보인다.


각각 머리에 뿔이 달리거나 꼬리가 특이하게 생겼거나, 아니면 얼굴에 비늘같은 게 붙어있거나.


제 각각의 생김새를 자랑하는 어린아이들이 어느샌가 내 주변에 모여있었다.


"머리, 만져주세요…."


내게 쑥스럽게 부탁하는 고양이 소녀의 말에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만 다물고 어버버거리다 한숨을 내쉬려다가, 아이들 앞에서 그러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냥, 하필 공원에 왔을 때가 주말이었다는 점이 문제였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고양이 소녀의 머리 위로 손을 조심스럽게 뻗은 뒤, 천천히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을 텐데, 고양이처럼 스스로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고양이 소녀.


대충 이 쯤이면 됐겠지. 하고 손을 떼니 아쉽다는 눈치로 내 손을 봤지만, 주변을 한번 보고는 뒤로 물러난다.


주변의 어린아이들이 부럽다는 눈빛으로 고양이 소녀를 보다가, 머리를 쓰다듬어준 내게로 시선을 옮기는 건 그리 멀지않은 일이었다.


"…머리 쓰다듬어지고 싶은 사람?"


"""저요!"""


나는 헛웃음을 속으로 삼키며 내 앞으로 줄을 서는 아이들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