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인간이 희귀종인 세상에서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한 결과는 생각보다는 없었다.


원인 불명의 병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알고보니 어떤 마법이 내게 작용한 결과 남성의 몸에서 여성의 몸이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신체 내부에 잔류한 마나를 수술로 제거한다면 원래의 몸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지만, 나처럼 소수, 아니. 거의 희귀한 종족은 어떤 결과가 일어날 지 모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운이 좋다면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겠지만, 운이 나쁘다면 어떤 결과가 복합적으로 발생할 지도 모르고, 마나를 제거하더라도 여성의 몸 그대로일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도.


그 말을 듣고는 생각보다는 별거 없겠네,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한달 동안 생활하면서 느낀 것이라고는 여성의 몸이라고 하더라도 지금까지와 다른 게 없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남자의 몸이었을 때보다 더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체감이 가장 크게 들었던 부분은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찌뿌둥하던 몸이 지금은 그런 것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딘가가 불편하게 느껴지던 몸의 불편한 부분들이 사라지니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수월한데다가 욕실의 거울을 볼 때마다 예전에는 아저씨가 보였지만, 지금은 미소녀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외모가 좋은 여성이 보인다는 점이었다.


아침마다 이런 모습을 보는 데 기분이 안 좋을리가.


다만,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집에 가는 동안 옆에 붙어있는 백호연이라는 사람… 수인? 아무튼, 호위처럼 붙어있는 여성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키도 나보다 커서 고개를 위로 올려봐야하는 것도 그렇지만, 머리를 쓰다듬어달라고 요구하거나 실례합니다 라고 말하면서 인형처럼 품에 껴안고 간다거나 하는 행동들.


마치 어린애처럼 취급하는 듯한 행동에 기분이 미묘해졌다.


자기보다 어려보인다지만, 이래보여도 어린애가 아니라 성인인데.


등 뒤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나쁘지는 않았지만, 여자의 몸이 되었다고는 해도 남자였으니 이런 행동들이 부끄러웠다.


생각해보면 여자끼리도 몸을 만지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었으니, 남자에서 여자가 되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슬슬 입구에 다 왔는데 내려주지 않겠습니까."


저 멀리서 아파트 부지가 보이기 시작했기에 백호연을 올려다보았다.


껴안은 팔이 아프지도 않은지 꽤 오랫동안 이러고 온 것 같은데 한결같이 품에 안고 온 백호연을 향해 그렇게 내 의견을 물어보니 걸음을 멈추고는 나를 내려다봤다.


"조금만, 조금만 더 이러고 가면 안… 됩니까?"


"안 됩니다."


머리 위로 보이는 호랑이 귀가 추욱 늘어지는 모습을 보니 동물의 귀를 가진 사람은 자기 감정을 숨기는 것도 꽤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귀가 저렇게 늘어질 정도니 꼬리는 어떤 상태일지 보지 않아도 충분히 상상이 되었다.


다른 사람이 봐도 시무룩해졌다는 반응을 몸으로 보여주는 백호연은 아주 조심스럽게, 내가 툭 하면 깨지는 물건도 아닐 텐데도 아주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나를 바닥에 내렸다.


여태까지 백호연의 품 안에 안겨 허공을 맴돌던 다리가 땅에 닿는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역시 사람이라면 자기 발로 걸어다녀야지.


아파트 입구까지 걸어가며 옆에서 이것저것 말을 걸어오는 백호연에게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다가 도착하고 난 뒤, 문제가 생긴다면 언제든지 연락을 주라며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실제로 쓰게될 일은 아마도 없지 않을까 싶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


병원에 갔을 때에도 머리에 뿔이 달렸던 의사가 전화번호를 건넸던 걸 보면 확실히 신경을 쓰고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너무 과하게 신경을 쓰고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아무튼, 아파트에 도착했으니 엘리베이터가 몇층에 있나 흘끗 보니 1층이랑 멀지 않은 위치에 있길래 계단을 올라갈 생각은 고이 접어두고, 버튼을 눌렀다.


관리가 잘 안 되는 엘리베이터는 내려오거나 올라갈 때 소리가 들릴 법도 했지만, 여기는 뭔가 다른 지 소리가 하나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누르자마자 빠르게 내려오는 모습에 한달을 봤지만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 속도에 감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빠르긴 정말 빠르네."


이거 안전에 문제는 없는거겠지? 아니, 문제 없으니까 괜찮겠지.


한달이라는 시간동안 한 번도 문제가 발생했던 적은 없었으니 안심하고,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선 뒤, 뒤로 돌아서 문을 보며 옆의 9층이라 적힌 버튼을 누르고 빨리 닫히는 버튼을…


"저, 잠시만요!"


…누르기 전에 열리는 버튼을 재빨리 눌렀다.


저 멀리 입구에서부터 허리까지 닿는 연한 핑크색 머리카락에 피처럼 붉은 눈, 핏기하나 없는 새하얀 피부가 인상적인 소녀가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헤엑, 헤엑 하고 가쁜 숨을 내쉬며 호흡을 가라않히는 소녀가 작은 목소리로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에 별 거 아닙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렇게 닫히는 버튼을 누르고, 옆의 소녀가 몇층에서 내리려나 생각하며 엘리베이터가 9층에 도달하며 문이 천천히 열렸다.


정밀검사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큰 문제는 없었네.


병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몸에 큰 문제는 없는 지 엘리베이터 안에서 팔을 만져보거나 다리를 만져보았지 언제나의 몸 상태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서는 순간, 동시에 옆에서 소녀도 밖으로 향했다.


음, 뭐. 같은 층일수도 있지.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다. 같은 층에 사는 사람이 없지는 않을테니까.


오른쪽으로 돌아서 내가 사는 곳인 903호로 향하니 우연처럼 옆의 소녀도 똑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거겠지?


혹시, 옆의 소녀가 범죄자라던가 스토커라던가 하는 불쾌한 생각들이 들었지만 머리를 가볍게 좌우로 흔드는 것으로 지워버리고, 문 앞으로 향했다.


문 앞에서 서서 비밀번호를 입력하기 전, 옆에 있던 소녀가 어디로 갔나 고개를 돌리니 오른 편의 문에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엣, 아. 옆에서 사시는 분이셨구나."


"…처음 뵙겠습니다."


"저, 저도 처음 뵙겠습니다…."


옆에 사는 이웃의 모습을 처음본다는 것에 서로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나누고, 고개를 돌려 문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까 인사하면서 잠깐 봤던 모습이었지만, 입가에 송곳니가 조금 길게 나있었던 것 같았지만… 아마, 착각은 아니겠지.


머리색깔이 오색빛깔에 뿔이 달려있다던가 아니면 동물의 귀나 꼬리가 달렸거나 같은 특징들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와중에 송곳니가 긴 것 정도야.


머리카락 사이로 보였던 귀가 살짝 길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더 신경쓸 필요는 없나.


그렇게 자주 볼 사이도 아닐테고, 그냥 좀 과신경하게 반응했던 것이라고 여기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옆집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버티고 버티다 참지 못하고 옆 집의 문을 두들겼다.


똑 똑 똑


참을 인 세번이면 살인을 면하느니. 마음속으로 참을 인을 새기며 문을 세 번 두들기고, 안에서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안에서 끼약! 하는 소리와 함께 우당탕 쿠당탕 시끄러운 소리가 나더니 문 앞으로 달려오는 소리가 났다.


"…저, 저… 왜, 그러시나요?"


"…저 옆집에서 사는 건 알고 계시죠?"


"네, 네…."


"…지금이 몇시라고 생각하십니까?"


"어… 밤 11시요!'


"잠 좀 잡시다."


여태까지는 조용했으면서, 왜 오늘와서 잠을 못 자게 떠드는 거냐고.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웠더니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베개로 얼굴을 덮어도 소리가 들려오는 것에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내 말에 눈을 돟그랗게 뜬 소녀는 엣, 아니. 저, 그게… 같은 말이 되지 못한 단어만을 입 밖으로 흘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제가 흡혈귀라서, 밤에 일하다보니…."


인터넷에서 보던 흡혈귀가 주로 밤에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사실은 알고는 있었지만, 여태까지 조용했던 걸 보면 뭔가 이상했다.


"무슨 일을 하시길래 그렇게 크게 떠드시는 건지 여쭈어봐도?"


"…스, 스트리… 아니. 방송인입니다…."


"여태까지는 조용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지금 방음부스에 문제가 생겨서 문의를 보냈더니 거기도 바쁘다고 해서…."


"…며칠이나 걸리죠?"


"일주일…."


일주일. 앞으로 일주일이나 밤에 옆집에서 떠드는 소리를 참아야하는 기간이었다.


방송때문에 말을 멈출 수도 없을 텐데, 그때까지 소음을 참아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로, 일주일이란 시간은 꽤 긴 기간이었다.


생각해보면 일주일 내에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공사때문에 시끄러울 것이었고, 흡혈귀 소녀는 밤에 주로 활동하니 아마도 밤에 부를 것을 생각해보면 임시로 다른 곳에 가서 사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닌 것 같다.


앞에서 우물쭈물거리며 햄스터처럼 몸을 움츠리며 내 눈치를 보는 흡혈귀 소녀의 모습에 머리가 아파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