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인간이 희귀종인 세상에서

겨울이 아닌데도 쌩쌩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카페로 향하니, 카운터 뒤쪽에서 바삐 움직이는 금향의 뒷모습과 그 모습을 보며 깔깔 웃는 청하가 보인다.


청하는 평소처럼 카운터 앞의 의자를 빼서는 카운터 위에 몸을 누이듯이 상체를 대고 있었는데, 가슴때문에 붕 떠있는 것 처럼 보였다.


카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그제서야 웃는 것을 멈추고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청하가 보였다.


"왔느…냐?"


청하는 기름칠이 덜 된 기계처럼 덜컥, 하고 움직임을 멈춰버렸고, 그런 청하의 모습에 이상함을 느낀 금향이 카운터 뒤쪽에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서와…요?"


금향도 청하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모습에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이해를 못하고 내 몸을 훑어본다.


…음. 지금의 내 상태를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입고 나온 외투 겉부분에 별에별 나뭇잎이 붙어있었고, 뒤통수로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만져보니 머리카락에서도 나뭇잎이나 아니면 자잘한 나뭇가지가 만져지는 걸 보면 그렇게 좋은 모습은 아닌 듯 싶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청하는 황급히 의자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다가오며 소매 안에서 부적 한 장을 꺼내들었다.


금향도 금방이라도 내게 다가올 것처럼 보였지만, 청하가 더 가까운 것을 깨닫고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가만히 있거라. 괜히 움직였다가는 얼굴도 젖을 테니."


"…예?"


청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여 되물었지만, 청하는 입을 꾹 다물고는 머리카락 끝에 부적을 갖다대었다.


갖다댄 부적의 끝이 천천히 물에 젖듯이 축축해졌다.


그리고, 부적을 타고 올라오듯이 부적에 닿은 머리카락이 축축해지며 점점 무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느냐."


"바람이 강하게 불다보니 그렇습니다."


"…이게? 아니, 인간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군."


대체 청하가 봐왔던 사람들은 어떤 곳에서 살았던 걸까. 이런 바람도 아무렇지 않게 견디며 살았나.


의문이 들었지만, 이제는 보지도 못하는 사람들이었기에 점점 젖어드는 머리카락만 만졌다.


이게, 그냥 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만지는 느낌이 아니라 샴푸라던가 린스가 섞인 듯한 촉감이 난다.


손가락을 타고 올라오는 부드러움에 이게 내가 평소에 만지던 머리카락이 맞나 싶었지만, 슬쩍 한 가닥을 잡아당기니 정수리가 아파오는 것을 보면 내 머리카락이 맞았다.


청하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뭐 하는 게냐, 주빈."


"그냥, 머리카락의 촉감이 신기합니다. 평소랑은 다른 느낌입니다."


"그렇겠지. 내가 나름대로 개발한 주문이니라. …뭣하면 몇 장 정도는 줄 수 있… 아니, 이건 나중에 이야기하겠다."


잠깐 고개좀 숙여보거라.


그렇게 전해오는 청하의 말에 고개를 숙이니, 머리카락 끝부분부터 정수리까지 한번 만져본 청하는 그제서야 만족했는 지 내 머리에서 손을 뗐다.


부적은 어떻게 되었나 확인하기 위해 아까 붙었던 위치를 보니 거기에는 파란색 불꽃으로 휩싸인 부적이 있었다.


불이 붙었음에도 화재경보기가 울리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내 머리카락으로 옮겨붙지도 않는 신기한 불꽃이.


"그렇게 신기하느냐? 내게는 별 것 아닌 주술이다만."


"여전히 신기합니다. …별 것 아닌 것이라고 하셔도, 저는 처음 보는 것들이라."


재도 남기지 않고 불타 사라지는 부적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완전히 불타 사라졌을 쯔음에는 청하가 소매에서 새로운 부적을 한장 꺼내어 내 정수리에 붙였다.


이번에는 정수리에서 따뜻한 바람같은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까까지 쌩쌩 불던 바람을 맞으며 와서 그런 지 살짝 추운 감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정수리가 따뜻해지는 느낌이 참 좋았다.


정수리를 시작으로 젖은 머리카락쪽으로 따뜻한 바람이 옮겨갔고, 천천히 마르기 시작하는 머리카락에게서 무게가 줄어들었다.


그렇게, 머리카락이 마를 때 쯔음에는 금향이 하던 요리도 완성이 되었다.


적당히 마른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청하를 쳐다보니, 소매에서 아까 젖어들게 만들었던 부적 몇 장을 꺼내어 내 손에 쥐어줬다.


"나중에 필요하면 내게 더 달라고 요청하거라. 그런 주술은 얼마든지 손 쉽게 만들 수 있으니."


"아, 그럼 나도 줘."


"싫느니라. 너는 마법을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


"귀찮으니까 그렇지! 매번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일이란 말이야!"


"싫다! 나보다 편하게 사용할 수 있으면서 불만이 많구나!"


"귀찮아!"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버려서 별 관심도 들지 않는 둘의 싸움에서 신경을 끄고, 금향이 내온 음식을 먹었다.


그런 내 모습에 둘은 무안해졌는 지 얌전히 식기를 들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어떤 종류의 음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서양쪽의 요리인지 토마토가 들어가있었다.


…내가 그렇게 맛을 잘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금향의 요리는 역시 어지간한 요리사보다 훨씬 맛있는 맛이었다.


카페가 아니라 레스토랑이나 음식점을 열었다면 충분히 잘 팔리고도 남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금향의 요리는 훌륭했다.


입 밖으로 트름 소리를 내는 청하의 모습에, 금향은 더럽다는 듯이 쳐다봤지만 청하는 개의치도 않고 금향이 요리와 함께 가져온 차를 마셨다.


색깔이 황금색이었던 것을 보니 전에 마셨던 티로 보였다.


청하는 맛을 음미하는 것 같으면서도, 입을 헹구는 것처럼 입 안에서 오물오물거리며 꿀꺽 하고 삼키는 모습에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금향이 쟁반을 들고와서는 청하의 머리를 내리쳤다.


"꾸엑! 뭐, 뭐하는 겐가!"


"더럽게 뭐 하는거야! 옆에 주빈이 있는데!"


"…핫! 미, 미안하느니라!"


내게 사과를 해오는 청하에게 괜찮다는 의미로 손을 내저었지만, 둘의 시선이 내 손가락 끝으로 향해있었다.


왜 그러는 걸까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거의 새벽녘에 흡혈귀, 필리아의 집에 가서 송곳니에 손가락 끝을 찌르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슬쩍, 반창고를 붙인 손가락을 오른쪽으로 움직이니 둘의 시선이 그걸 따라간다.


이번에는 왼쪽으로 움직이니 또 둘의 시선이 따라가다가도, 청하의 꼬리가 내 허리를 휘감았다.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느냐?"


"별 일 아닙니다. 굳이 신경쓰지 않으셔도…."


"별 일 아니기는! 아무리봐도 일부러 낸 상처로 보이는데!"


"무슨 일이 있던거에요, 주빈? 혹시, 말 못하는 사정이라도 있나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둘의 시선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릴 뻔 했지만 바로 잡았다.


여기서 시선을 피했다가는 내가 말 못할 짓을 했다는 사실을 밝히는 일이었다.


그걸 눈치챈 둘은 각자 내 옆으로 와서는 팔을 자기 품안에 껴안았다.


"말하기 전까지는 보내주지 않겠느니라!"


"저도 지금은 청하의 말에 동의해요."


결연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청하와 금향의 모습에, 이걸 말해야하는 건가 아니면 입 다물고 넘어가주기를 바라야하는 건가 고민이 들었지만, 점차 팔을 껴안은 힘이 세지는 것에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말해드릴테니, 풀어주셨으면 합니다."


"팔은 풀어줄테니, 도망가지 못하게 허리는 냅두겠다."


"앗. 그, 그럼 저도…."


천천히, 내 허리를 휘감는 금향의 꼬리에 옆구리를 간지럽혀서 웃음이 나올 뻔 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그렇게 엇갈려서 꼬리에 휘감긴 허리를 내려다보다가, 금향과 청하의 얼굴을 한 번씩 번갈아본다.


"정말로, 이렇게까지 하셔야 됩니까?"


"안 하면, 이야기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내가 보기에도 그러하느니라."


동시에 고개를 끄덕 하고 움직이는 둘의 모습에 다시 한번 한숨이 터져나왔지만, 도망갈 방법도 없었고 도망갈 생각도 없었기에 반창고를 붙인 손가락 끝을 가리켰다.


"이건…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입니다."


둘에게 내 집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 설명을 시작하니, 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당장이라도 옆 집에 잘 자고 있는 흡혈귀에게 쳐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헤에… 그렇다고 해도, 그런 실수를…."


"이건 용납하기 힘들군."


"어쩔 수 없는데다가, 내 쫓기면 달리 갈 곳도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그걸 봐줄 필요가 있느냐?"


그렇게 물어오는 청하의 물음에,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지만 내게도 양심과 동정심은 남아있었기에 그렇게 행동할 수는 없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힘든 상황에 처한 분을 무시하기에는 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나나 금향 녀석이 가서 방음 마법을 고치는 건 어떻겠나?"


"안 될걸. 너나 내가 고치면 금방이라도 그 엘프 마법사가 눈치챌 거야."


"그런가."


금향의 말에 담담히 수긍하는 청하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는 허리에 감은 꼬리를 풀었다.


"그렇다면, 이걸로 봐주겠느니라."


"뭘, 봐주신다는…?!"


청하의 꼬리가 내 옆구리를 간지럽힌다.


으힉 하고 평소에 나오지 않던 목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내 몸이 배배 꼬이는 게 느껴졌지만 뭘 할 수가 없었다.


청하가 간지럽히는 대로 반응하는 몸이라 일분가량을 그렇게, 몸을 배배 꼬았다.


강제로 웃는 걸로도 생각보다 지친다는 사실은 알고 싶지 않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카운터에 누워 호흡을 가다듬고 있으려니 옆에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청하가 보인다.


"…호. 생각보다 꽤 괜찮은 반응이잖나."


"또, 또 뭘 하려고 하십니까…?"


"아무것도 안 하느니라. 오늘은 충분히 즐겼으니."


"…나도 나중에 한번 해보고 싶다."


그렇게 중얼거리는 금향의 목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고 금향에게 입을 열었다.


"안 됩니다."


"어째서?!"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금향에게 안 된다는 의미로 고개를 내저었다.


"처, 청하는 하게 해줬잖아요!"


"저도 당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에잉. 이걸로 봐준 걸 다행으로 여기거라. 예전이었으면 아주…."


"…아주?"


"주빈은 듣지 않는 게 좋아요. 옛날에는 청하도 한 성깔했으니까요."


"어허. 누가 들으면 내가 천방지축인 줄 알겠느니라."


"천방지축이 아니라 세상에 둘도 없을 괴짜겠지."


"그 둘에 너도 포함되는 것 아니냐?"


"…그러니까 하는 소리지."


금향은 한숨을 푹 내쉬며, 먹은 음식들을 마법으로 공중에 띄우고는 카운터 뒤쪽에 싱크대로 날렸다.


소리도 없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하는 그릇의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다가도, 후우 하고 귀에 바람을 부는 청하의 행동에 황급히 청하에게서 떨어졌다.


"…그런 반응 보여주지 말거라. 울고 싶어지니라."


"…부담되는 행동을 하시니 그런 것 아닙니까."


"오늘따라 까칠하구나."


"제 옆구리를 간지럽히신 건 생각나지 않으십니까?"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런 내 모습에 청하는 안타깝다는 듯이 내 옆구리를 한번 보고는 소매 안에서 부적 몇장을 꺼내었다.


"복주머니는 가지고 있느냐?"


"갖고 있습니다."


"그럼 거기에다 넣고 다니거라. 내가 직접 만든 복주머니라 어지간해서는 부적이 찢어지거나, 고장나는 일이 없을 것이니라."


"…감사히 받겠습니다."


청하가 내민 부적을 받아서 주머니의 복주머니를 꺼내어 그 안에 집어넣었다.


간지럽혔던 것은 간지럽힌 것이었고, 받을 건 받아야했다.


머리를 감는 게 귀찮았는데 이게 있다면 머리만 말리면 끝이었으니 아주 편리한 물건, 아니. 부적이었다.


"…저도 뭔가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금향에게는 이미 많이 받고 있지 않습니까."


주로 음식이라던가, 마법을 시연하는 모습이라던가 하는 것들.


그런 내 대답에 얼굴이 새빨개진 금향은 내가 보지말라는 듯이 얼굴을 가렸다.


청하는 금향의 모습에 아까처럼 깔깔 웃으며 놀렸고.


금향은 청하의 웃음에 얼굴을 가렸던 두 손을 내리고는 청하에게 달려들었다.


…오늘도 카페 안을 엉망진창으로 만들 예정인 듯 싶었다.


서로의 꼬리가 엉키고, 머리카락도 엉키며 주먹다짐을 시작하는 둘의 모습에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한숨이 끊이지를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