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인간이 희귀종인 세상에서

분명, 나는 거부의사를 밝혔는데 또, 어째서 오늘도 백호연의 품 안에 안겨있는 걸까.


백호연의 품에 안긴 채로 벤치에 앉아 있으려니 다리로 느껴지는 허벅지의 감촉이라던가 체육복 상의로도 느껴지는 푹신한 느낌이 드는 가슴이라던가….


아니, 가슴에서 느껴지는 감촉은 브라를 차고있음에도 풍만하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면, 운동할 때는 스포츠 브라같은 걸 차고 있어야 정상이 아닐까.


어떻게든 가슴에서 생각을 떼어내려고 노력해보지만, 아까부터 닿고 있다는 사실에 전혀 떼어내지를 못하고 가슴에 생각이 가버렸다.


얼굴 뒤로 계속해서 느껴지는 부분들이 내 정신을 앗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닫고 있었기에,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려고 해봤지만 공원이라 그런지 그래봤자 나무라던가, 운동기구라던가 하는 것들 밖에 없었다.


내 머리에 얼굴을 박고는 습 하고 숨을 몰아쉬는 모습에 기겁하며 입을 뗐다.


"습─ 하─."


"…변태같으니까 그만두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품 안에 껴안고 있으려니 느낌이 애착인형같단 말이죠."


좋은 냄새도 나고─ 라는 말을 조용히 덧붙였지만, 충분히 가까이 있던 탓에 그것도 들렸다.


내 몸에서 나는 냄새라고는 오늘 먹었던 컵라면 냄새나 삼각김밥의 냄새밖에 없지 않나.


생각해보니 오늘 씻고 나오지도 않아서 몸에서 충분히 냄새가 나기는 하겠구나. 땀냄새라던가 하는 것들이.


꼬리가 얼마나 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허리를 한 바퀴 돌려는 것을 손으로 막아내며 내 정수리에 얼굴을 박고 냄새를 맡아대는 백호연을 한 방 때려주고 싶었지만, 상식적으로 운동하는 사람이 운동 안 하는 사람보다 강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백호연 본인이 말했던 애착인형처럼 가만히 있기에는 껴안는 힘을 조절하고 있다지만, 생각보다 강하게 압박되는 느낌이 들어서 편하게 있을 수도 없었다.


뭐라 항의를 했지만 그것도 껴안는 힘을 살짝 풀어줄 뿐이었고, 껴안는 건 변하지 않았기에 몇십분 가량을 이대로 있었던 것 같다.


벤치에 앉았음에도 다리가 땅에 닿아 있지 않는다는 게 생각보다 이상한 느낌이라 나도 모르게 백호연에게 말을 걸었다.


"…다리 아프지도 않으십니까?"


"안 아픕니다. 전에도 그랬지만, 생각보다 더 가벼우시군요. 저랑 같이 운동이라도 하지 않으시렵니까?"


"방구석 생활이 더 편한지라, 거부하겠습니다."


"안타깝네요."


또, 또 허리를 한 바퀴 감으려고 드는 꼬리를 손으로 툭툭 쳐내서 막아낸다.


동물의 귀랑 꼬리를 갖고있는 종족들은 진짜로 자기 감정을 감추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표출된다는 건 생각보다 짜증나는 일이기도 했고, 자기 몸인데도 자기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도 생각보다 짜증나는 일이다.


근데, 그 대상이 하필이면 나라는 점이 문제였지.


그나저나,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는 지는 시간을 못 봐서 모르겠지만 꽤 오래 있었던 탓에 다리가 아파온다.


몸만 껴안고 있었으니 자유로웠던 팔로 내 허벅지를 주물거리고 있었더니, 그걸 본 백호연이 내 정수리에 붙이고 있던 얼굴을 들자 따뜻하게 뎁혀진 정수리를 바람이 지나가면서 식혔다.


"다리가 아프십니까?"


"예."


"그럼, 더 붙잡아 둘 수는 없겠군요."


읏, 차. 하고 나를 품 안에 껴안은 채로 일어나고는 팔을 쭉 뻗은 뒤, 나를 반 바퀴 돌려서 바라보게 한 채로 바닥에 내려놓은 힘에 감탄해야 하는 건지, 애착인형, 아니면 애완동물 비스무리한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에 화를 내야하는 건지 감을 못잡겠다.


아마도 내 표정을 내가 볼 수 있었다면, 뚱한 표정으로 백호연을 보고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만족했다는 듯한 표정의 백호연이 보였다.


"이 정도면 일주일은 버틸 수 있겠습니다."


"…제가 무슨, 영양분이나 뭐 그런 것이라도 된 답니까?"


"그런 건 아니지만, 살아가는 데 도움은 되지 않겠습니까."


그것 참 신박한 생각일세.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갈 뻔 했던 말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말을 꾸욱, 눌러 삼키며 제자리에서 가볍게 스트레칭이라도 할 겸 기지개를 켜려고 두 팔을 위로 뻗었다.


"…뭐하십니까?"


"네? 아, 잡아달라는 뜻이 아니었군요."


백호연은 기지개를 켜는 내 모습을 보고는 무언가 깨달았다는 것처럼 보더니, 내 두 손을 잡아채고는 나를 공중에 띄웠다.


힘 조절을 하고는 있는 지 그렇게 손이 아프지는 않았지만, 위로 쭉 뻗은 팔이 땡겼다.


덤으로 바닥에 닿지 않아서 공중에 좀 뜬 상태의 발이 불안감이 넘쳐나서 발 끝이라도 땅에 닿게 하려고 아래로 쭉 눌러보지만 닿지 않았다.


발을 아무리 흔들어도 땅에 닿지 않았기에 포기하고, 백호연을 빤히 쳐다본다.


"흠, 흠."


본인이 생각해도 무안한 짓을 했다는 건 아는 지 헛기침을 내며 도로 땅에 내려놓는 백호연의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려다가 참을 인 세번이면 살인도 참는다는 생각으로 눌렀다.


…죽이려고 덤벼들어도 한 손으로 제지당하고는 품 안에 껴안겨서 애착인형처럼 다닐 것 같다는 생각만 들었지만.


이러나저러나 손해를 보는 건 나였기에 그토록 참고 참았던 한숨이 나와버린다.


"…하아."


아침부터 이게 뭔 일이람.


정확히 말하자면, 이틀 전에 생겼던 일 이후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느낌밖에 안 든다.


그래도 방송으로 먹고산다니 불만을 갖고 있어도 제대로 풀 수도 없었고, 며칠 내로 해결된다는 말도 들었으니 꾹 참는 수밖에.


"…그러고보니, 이 시간에는 어쩐 일로 나와계신겁니까?"


"…개인 사정이라고 합시다."


백호연 개인이야 인간 페로몬인지 뭐시긴지로 나에 대한 호감같은 게 높을 지도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저 안면만 익혔을 뿐인 백호연에게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이야기를 하라고는 했지만, 그게 집에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혹시나 했을 지도 모르는 차별이라던가, 아니면 나에 대한 차별에 관련된 도움을 말하라는 게 아니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굳이 말해줄 필요가 없었다.


"음… 그래도, 희귀종인 분들에게는 개인적인 문제도 어느정도 융통성을 발휘해서 해결해주는 편이기는 합니다만."


"그건 처음 듣습니다."


"그게, '주빈' 씨가 문제가 발생한다면 알아서 해결하시겠다고, 본인도 어느정도 혼자 살아본 경험이 있으니 저희도 추가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은 부분입니다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중요했던 이야기를 못 들었던 모양이었다.


거기까지 도와줄 필요가 있기는 한 가? 싶기는 한데, 그래도 본인들이 도와주겠다고 지금이라도 말했으니 설명을 해도 아마… 아마도 나쁘지는 않겠지.


"주거 관련해서 문제가 발생해서 그렇습니다."


"주거라면, 저희가 관리하는 곳으로 옮겨드릴 수는 있습니다. 여러모로, 희귀종인 분들에게는 많은 관심이 쏠리는 데다가 특히나 사람같은 경우라면 더더욱, 문제가 발생하기 쉬운 편이니까요."


"그렇습니까. …지금, 제가 살고있는 곳이 여기입니다."


스마트폰을 꺼내어 내가 살고있는 집의 위치를 백호연에게 보여줬더니 얼굴이 살짝 미묘하게 바뀌었다.


뭐라고 해야할 까,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까 하는 듯한 표정?


가만히 스마트폰에 떠 있는 내 집의 위치를 쳐다보던 백호연은,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걸 몇번 반복하더니 겨우 입을 뗐다.


"어… 여기라면 지금, 저희가 관리하는 곳이라 어떻게 해드릴 수 없겠네요."


"…예?"


"지금, 여기에 살고계신 분들의 대부분이 희귀종인 분들이라… 물론, 주빈씨 같은 극 소수의 희귀종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 분홍 흡혈귀가 희귀종이라고?


이건 또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게다가, 몇년 전부터 살고 있던 곳이 언제부터인가 희귀종이 사는 곳이 되었다고? 정말 이상한 부분에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구만.


이틀 전의 문제 말고는 별 문제가 없었길래 여기는 원래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더니, 이렇게 바뀌었을 줄은.


"혹시, 어느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지 알 수 있을까요? 집의 문제라면 다른 곳으로 바꿔드릴 수는 있습니다."


"아, 그게. 방음이 잘 안 되서 옆 집의 소리가 그대로 들려와서 그렇습니다."


"…예? 어… 원래라면 안 들리는 게 정상일텐데요?"


"근데, 이틀 전부터 옆 집에서 소리가 다 들려와서 말입니다. 새벽부터 시끄러워서 자다가도 깹니다. 제가 아침 일…찍부터 밖에 나온 이유가 그거때문이기도 하고요."


"잠시만요. 혹시, 집 안에서는 들리는 데 밖으로 나오면 안 들립니까?"


"예."


백호연에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여기부터 저기까지는 들린다, 그 외에는 안 들린다고 설명을 해주니 심각한 표정으로 듣던 백호연이 츄리닝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고는 어딘가에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옆 집의 흡혈귀 씨가 방음부스를 준비하는 데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린다고도 얘기했다는 소리죠?"


"예."


"…일주일이 아니라 이틀 내로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틀 만 기다려주세요."


굳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백호연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