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인간이 희귀종인 세상에서

변태같은 동족에 청하도 포함되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라는 고민을 계속 하는 동안, 청하와 직원은 내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로 속닥거리고 있었다.


무슨 내용을 말하는 걸까 궁금하기는 했지만, 내게 안 들리게 말하는 걸 직접 들으러 가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지 않을까.


이 호기심을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어느순간부터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무서울 정도로 조용한 도서관에서 청하의 한복소리만 들려오기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청하와 직원이 함께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직원의 한 손에 든 책을 내 쪽으로 내밀면서.


뭐지. 어떻게 해달라는 거지. 읽어달라는 건가? 아니, 내가 읽을 수 있는 언어가 아닐텐데?


이게 대체 뭔 뜻인가 이해할 수가 없어서 멀뚱멀뚱 청하와 직원과 책만 번갈아가며 보다가 그제서야 직원이 깨달았는 지 아, 하는 소리를 냈다.


"그게, 이 책의 봉인을 해제하는 데 도움을 주셨으면 해요. 해제하는 방법도 그냥 손만 갖다대면 된답니다?"


직원은 이렇게 따라하면 된다는 듯이 책을 들지 않은 손으로 책 표면에 탁. 하고 손을 올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하고 싶지는 않았다. 저 책이 일단, 청하가 같은 동족이라고 말했던 시점부터 불안하기 짝이 없었던 데다가, 아무리 봐도 수상할 정도로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보는 둘의 시선이 심상치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참으로 불편하기 짝이 없었지만, 하나였다.


"그… 만지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리 봐도 불안하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책 표면은 평범한 가죽같은 재질로 보였고, 낱장들도 그렇게 특별해보이지는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옛날 방식의 아주 오래된, 낡았지만 이상하리만큼 깨끗한 책이었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제가 직접 문제가 생길만한 마법들은 다 해제한데다가, 봉인을 풀어도 손님께는 아무런 피해가 가지 않으니까!"


"내가 이렇게 부탁하네. 보답은 할테니 한번만 만져주면 되니까 봉인을 풀어주게."


직원이 두 손으로 책을 잡고 내게 고개를 숙였고, 청하는 실시간으로 반짝거리는 듯한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면, 정말로, 정말로 만지기가 싫었다.


아무런 피해가 없다거나 겉이 깨끗하다던가 하는 것들은 둘째 치고, 청하랑 같은 동족들이 만들었다는 점에서 뭐라 말하기가 힘들 정도로 거부감이 든다.


방금 있었던 일들이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데 과연, 정말로 안전한게 맞는 걸까? 하는 의심이 절로 생긴다.


그렇지만 저렇게 부탁하는 데 거부하는 것도 꽤 힘들어 보였다.


…거부하겠지만.


도저히 못 만지겠다. 어떻게 만지려고 생각을 돌려보려고 해도 이상할 정도의 거부감이 계속 들었다.


저것의 봉인을 풀었다가는 아주 귀찮은 일에 엮일 것이라는.


"저기."


겨우겨우,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어떻게든 열어 첫마디를 내뱉자 청하와 직원이 나를 동시에 쳐다봤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말했을 것이지만, 저렇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 시선에 몸이 움츠러들 것 같았지만, 할 말은 해야 한다.


"저는 그 책을 만지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도와주신… 네?"


직원이 당황하여 손에서 책이 미끄러져 떨어질 뻔 했지만, 옆에 있던 청하가 꼬리로 책을 감싸서 떨어지지 않았다.


청하는 꼬리에 감싸인 책을 직원의 손에 도로 돌려주면서 급격하게 어두운 표정이 되어 나를 보고 있었다.


"이유를 물어봐도 괜찮겠느냐?"


"간단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안전할 것 같지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 제가 보증할게요! 옆의 사장님도 안전하다고 보장할테니까요! 그렇죠, 사장님?!"


"그, 그야 당연하지 않느냐. 안전은 할 것이다. 안전은…."


"사장님?"


"…솔직히 말해주겠네. 저 책의 봉인을 풀어도 안전하다네. 다만, 인간의 의복을 대가로 해제되는 것이라네."


"옷… 말입니까?"


"나도 우리 동족들의 말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 편에 속하지만, 동족들 중에서도 가끔이지만 부르는 명칭이나 언어가 꼬여있는 경우도 있네."


지금의 경우는 그 언어와 동시에 명칭이 꼬여있는 것이지.


"의복, 그러니까 옷이 대가로 걸려있는 것은 맞지만 어떤 식으로 대가를 치르는 건지는 모르는겁니까?"


"지금으로서는 알기 힘들군. 적어도, 신체는 물론이고 정신이나 영혼에 피해를 주는 방식은 아니라는 건 확신하느니라."


…거기까지 설명을 들으니 봉인을 해제하고 싶지 않다는 내 생각이 더 확고해진다.


슬쩍, 내게서 고개를 돌리는 청하의 모습에 직원이 당황하며 나와 청하를 번갈아가며 보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어쨌든, 봉인을 해제하실 생각은 없으신거군요?"


"그렇습니다. 옷이 어떻게 될 지 모르니까요. 게다가, 저는 도와주러 온 사람이 아니라 손님으로 온 것도 있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여기에 손님으로 와 계신걸 잊어먹었어요! 평소에 손님이 자주 오는 편이 아니라서. …오시더라도 도와주러 오신 분들이거나 사장님 지인분들이라…."


그렇게 중얼거리며 내밀었던 손을 도로 되돌리며 책을 품안에 껴안고는 어딘가를 향해 터덜터덜 걸어가는 직원의 뒷모습이, 조금 처량해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기 싫은 것은 싫은 것이니까.


그런 직원의 뒷모습을 청하도 보고 있었는 지 오늘은 보너스나 좀 넣어줘야겠구나. 하는 중얼거림이 들렸다.


"예상 외의 일도 있었지만, 아무튼… 보고 싶은 책이 있나?"


"…아까처럼 또 속이시려는 건 아닙니까?"


"아니다! 아까는 욕심… 아주 많은 사심이 들어있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진심이라네!"


"…알겠습니다. 그럼, 재차 부탁드리지만 현대의 언어로 된 용의 역사나 모습에 관한 책들을 부탁드립니다."


"…내 입으로 전해듣는 것은 싫은가?"


"제가 직접 읽는 것이 편합니다."


"힝… 그럼, 청하라고 한번만 더 불러주게."


"…왜 그렇게 이름에 집착하시는 겁니까?"


궁금해서 나도 모르게 물어본 질문이었다.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청하는 왜 그렇게 내 입으로 청하라는 이름을 부르는 것에 집착하는 걸까.


사람인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내 질문에 무언가 떠올리는 것처럼 어디 먼 곳을 보다가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뗐다.


"용에게 있어서 인간에게 이름을 불린다는 게 어떤 뜻인지 아느냐?"


"모릅니다."


"옛부터 용은 인간을 위해 존재했고, 시간이 지나서야 이종족들도 포함이 되었느니라."


"그렇습니까?"


"그렇다네. 하지만, 이종족들과는 다르게 용에게 있어 인간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는 영광이나, 축복에 가깝지."


이건, 나 말고도 다른 동족들이나 드래곤들에게도 포함되니 주의하게.


"왜 그렇게 되는 겁니까?"


"왜냐하면, 시초의 용께서는 이름이 없었지만, 이름을 붙여준 것이 인간이니라. 그렇기에 인간에게 이름을 불린다는 것은, 굉장히 큰 의미를 갖는다네."


이해 했는가?


"이해 했습니다."


이해는 했지만, 사람인 내 입장으로서는 그렇게 잘 와닿지는 않았다. 그건 아마, 내가 사람이기에 그렇겠지.


하지만, 청하는 용이기에 와닿는 느낌이 다른 모양이었다.


내가 이름을 불러준 것 만으로도 그렇게 기뻐했던 모습을 보면, 아마 카페 사장님도 그렇고 다른 동족들도 이름을 불러준다는 일이 그렇게나 기뻐할 만한 일이지 않을까.


그렇기에 한 가지 의문이 더 생겨난다.


왜 사람인가. 다른 종족들은 포함되지 않는 건가?


그런 내 의문을 어떻게 알았는 지 청하가 나를 본다.


아까까지 올라가있던 입꼬리가 어느샌가 내려가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하는, 그 어떤 감정도 포함되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본다.


"왜 인간에게만 그러느냐고? 간단하느니라."


인간은 우리를 지켜주었지만, 이종족들은 자기들만으로 충분하다면서 우리를 거부했지.


"거부… 입니까?"


"거부라고 하는 것도 사실 꽤 웃긴 이야기지. 사실, 인간과는 다르게 스스로를 지킬 능력들은 충분했으니."


"그런데 왜, 그런 표정이십니까."


"음… 내 입으로는 말하기 좀, 그렇군. 아마 책에서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을 것일세."


"예?"


"그게, 아주 오래된 일이라 책에서 찾을 수도 없을 것이고, 나도 자세히는 모르느니라."


나도 들었을 뿐이니.


청하의 표정이 어떤 감정인지,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없었다.


아무런 감정도 없는 건지, 아니면 어떤 감정을 느끼기에 겉으로 드러나는 표정이 저런 것인지.


그저 무감정한 느낌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사람의 기준으로도 충분한 설명이었는가?"


"예. 좀, 원하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 그럼 내가 직접 용의 역사를 알려줄 테니 경청하겠는가!?"


"거절하겠습니다."


그건 좀… 하고 청하에게 손사래를 치자 순식간에 우울해진 청하가 보인다.


아까 용이 자신의 지식을 직접 알려주거나 일부를 내어주는 것으로도 제자가 된다고 말했으면서 뭘… 아. 방금 전의 질문에 대한 답은 그 제자로 인정되는 것에 포함되지 않는 건가?


그렇다면 다행이겠지만, 잘 모르겠다. 아마 청하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다르지 않을까.


"그럼, 그럼 내 이름을 불러주게나!"


"알, 알겠으니 아까처럼 달라붙지는 말아주시죠."


당장이라도 내게 달려들 것처럼 행동하는 청하를 말리며, 주변에 누가 보는 것도 아닐텐데 주위를 둘러보며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번 내쉬고는, 청하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청하."


"흐히히…! 그 녀석은 이름도 못 불렸겠지! 처음은 나의 것이다!"


"누가 들으면 경찰에 신고할 지도 모릅니다."


"알게 뭔가! 이 근처에 나 말고는 아무도 없…을…."


청하의 말이 갑자기 멈춘다.


그것에 나 또한 주변을 둘러보니 아까 어디론가로 향했던 직원이 다른 책을 들고는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손에는 책을 들고 있었는데, 내가 보자마자 급하게 남은 손으로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어 어디론가로 전화를 걸려고 하고 있었다.


"자, 잠깐! 아무 짓도 안 했느니라!"


"설명은 서에 가서 해주시죠, 사장님! 아무리 그래도, 손님의 처음을 가져간다는 건!"


아, 이거. 또 둘이서 투닥거리겠군.


경찰에 연락하려는 직원과, 그걸 작은 몸으로 매달리며 막으려는 청하. 이 둘을 지켜보는 건 생각보다 즐거웠다.


청하가 자기 몸을 이용해서 직원을 깔고 뭉개는 동시에 한 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빼앗음으로서 끝났지만.


"후, 하하하! 이걸로 끝인가!"


"이러지 마세요, 사장님! 손님뿐만 아니라 저도 노리고 계셨나요?!"


"무슨 소린가! 난 아무런 짓도 안 했…느니라…?"


직원의 복부 위에 올라탄 청하는 그제서야 자기가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 건지 깨달은 모양이었다.


내가 있는 쪽을 한번, 그리고 직원의 얼굴을 한번. 그렇게 두 번을 번갈아서 보더니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두다다 달려왔다.


"자네는 아무것도 못 본거야. 자네는 아무것도 못 본 거라네. 자네는 아무것도 못 본거다!"


"알, 알겠으니 떨어지시죠!"


아까부터 배에 닿는 느낌이 심상치가 않다.


커다란 가슴이란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부드러웠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고, 그리고 이런 작은 키로도 이런 게 달리는 걸 보면 용이라는 건 다 이런 건가 싶었다.


…카페 사장님의 신체도 생각해보면 무언가로 가린 것 같았지만 꽤 크지 않았나?


순식간에 생각이 번뇌로 빠져버린다.


번뇌로 빠져버린 생각을 원래대로 되돌린 건 직원의 일갈이었다.


"그만 하세요, 사장님! 손님분이 불편해하세요!"


"…핫! 미, 미안하다네!"


직원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청하가 그제서야 내게서 몸을 떨어뜨리고, 자기 손에 들린 직원의 스마트폰을 보다가 직원에게 다가가 돌려줬다.


직원은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확인하며 손상된 부분이 없나 확인하고 있었고, 청하는 내게 고개를 숙였다.


"…괜찮습니다만, 적어도. 다음부터는 문제가 될 법한 말은 자제해주셨으면 합니다."


"기억하겠네…. 그러니, 나를 피하지는 말아주게…."


울먹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아까까지 높이 하늘로 치솟았던 청하의 꼬리도 땅에 박히려는 듯이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그런 청하의 모습에 천천히 걸어가니 움찔하고 몸을 떤 청하가 고개를 들자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는 어린애처럼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천천히 다가가, 청하의 머리에 손을 얹고 뒷목까지 천천히 쓸어내리듯이 쓰다듬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저보다는 직원분에게 사과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날 용서해주는게냐?"


"용서라기 보다는, 아무런 일도 없었고 아무런 피해도 없었으니."


물론, 아까 내게 기대듯이 달라붙었을 때에는 일이 발생할 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무런 일도 없었으니까.


아직도 불안해하는 청하의 머리를 한번 더 같은 방식으로 쓰다듬자 어느정도 진정이 된 것인지 내게 고맙다고 전함과 동시에 직원에게 사과하러 다가갔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 잠깐 생각을 해 봤지만, 내 머리로는 그냥 오늘의 운수가 없었다.


그냥 없는 것도 아니라 아주, 매우 많이 운수가 없었다. 삿된 말로 조졌다고 표현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아마도 크게 발생한 문제는 없었으니까 이걸로 다행이지 않을까.


…돌아가는 길에 커피라도 마시면서 머리라도 식힐 겸 당이라도 보충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청하와 직원의 사과가 끝나고, 청하가 사과의 의미로 아까 카페에서 보았던 황금색 동전 하나를 내게 건넸다.


직원은 이게 뭔지 아는 눈치라 좀 많이 놀란 것 같았지만, 청하는 아무렇지도 않아했던 걸 보면 잘 모르겠다.


"…혹시, 아까 청하와 함께 계셨나요? 몸에서 청하의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커피를 사러 들렀던 카페의 사장님이 청하랑 같은 동족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깨달았다.


내 몸에서 무슨 냄새가 나는 건지도 모르겠는데, 어떻게 청하랑 같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지.


용이나 드래곤이나, 머리에 뿔 달리고 꼬리달린 종족들은 다 이런 건가.


머리가 아파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