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인간이 희귀종인 세상에서

안으로 들어가니 카운터 뒤에 서 계시는 사장님과, 그런 카운터 앞에 앉아 있는 어제랑 똑같이 푸른색인 청하의 뒷모습이 보였다.


청하의 허리 뒤로 꼬리가 살랑거리며 움직이는 것에 잠깐 시선을 빼았겼지만, 갑자기 오싹한 느낌이 들어 사장님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사장님이 나를 보며 방긋 웃고있었다.


웃고 있었는데, 왜 무섭게 느껴지는 걸까.


웃는 사장님이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두렵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사장님의 반응을 보고 청하는 몸을 뒤로 돌려 나를 봤다.


"왔는가, 학생."


"어서오세요, 학…생."


청하가 나를 보며 학생이라고 말한 게 뭐가 그렇게 불만인 건지 뚱한 표정으로 청하를 쳐다보는 사장님.


청하는 사장님의 반응은 전혀 신경쓰지도 않고 나를 보며 입꼬리를 잔뜩 올리며 웃고 있었다.


"그래서, 어제의 제안은 생각해봤나?"


"예?"


"방금 예라고 답한 거지? 그렇지?"


"아닙니다."


"…안 당해주는구나. 어제 말했던 제자 말이다, 제자."


"생각 없습니다."


청하의 제자로 살다가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끝마치기도 전에 강제로 연장을 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저렇게나 사람에게 집착하는 청하인데, 과연 내 삶이 끝나기를 바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자연스레 사장님에게로 시선이 돌아갔다.


사장님은 청하를 보며 뚱한 표정을 짓다가도 내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황급히 입꼬리를 올려 억지로 웃는 표정을 지었다.


"아, 아하하.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 지 저도 좀 궁금하네요, 학생. 혹시, 물어봐도 괜찮나요?"


"별 일은 없었습니다."


"어허! 그건 우리 둘 만의 비밀이니라!"


"비밀이고 자시고, 직원 분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직원 분은 왜 빼십니까."


"그 아이는 내 밑에서 일하고 있으니 입 다물라 하면 입 다물지 않겠느냐!"


"…여전히 생각하는 건 똑같네."


"똑같을 수 밖에. 너 또한 여전히 똑같지 않나."


"그건… 그렇네."


그렇게 서로를 보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중간에 끼어들기도 힘들었고, 끼어들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였다.


카페 사장님도, 청하도 안 지 얼마 안 되는 나로서는 참 어색한 공간이었다.


카페 안은 서로가 서로를 아는 곳에서 나만이 둘 다 모르는 곳이었고, 둘은 서로를 알 지만 나를 모르는 곳으로 바뀌었다.


사장님과 청하는 서로간의 안부를 물어보거나, 이곳에 오기 전에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 지 같은 개인사를 물어보았고, 그러다가 이야기의 주제가 어제로 넘어갔다.


"어제는 참으로 좋았었지. 오랜만에 옛 기분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느니라."


"어라, 그건 생각하지도 못했던 말인걸."


"왜 그렇겠느냐. 저기, 뒤에서 가만히 서서 기다리고 있는 인… 아."


"아… 아. 미안해요, 학생. 거기 서계시지 말고 청하 옆에 앉아계시지."


"옆에 가서 앉기에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계셔서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사장님이 나에게 청하의 옆을 가리키자 거기로 향해서 의자를 뒤로 빼고 앉았다.


"어제 드셨던 허니브레드라도? 아니면, 제가 추천하는 메뉴라도 드릴까요?"


"허니… 아무튼, 그런 빵보다는 역시 밥이지 않느냐 밥!"


"너에게 물어본 것 아니니까 조용히 해! 아. 아까부터 미안해요, 학생. 시끄럽죠?"


"괜찮습니다."


내게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는 사장님에게 그렇게까지 사과할 필요 없다고 손사래를 치자 매우 미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사장님이 보인다.


괜히 왔나 싶기도 하지만, 무료 밥은 참을 수 없었다. 밥이라기 보다는 빵을 먹겠지만.


옆에서 청하는 빵보다는 밥을 달라며 사장님에게 항의를 하고 있었지만, 사장님은 그런 청하의 모습은 신경도 쓰지 않고 나에게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여기서 뭐라고 말 해야 사장님의 기분을 해치지 않고 뭔가, 적당히 먹을 만한 무언가를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카운터 위쪽에 적힌 메뉴판을 하나씩 살펴본다.


커피 쪽은 넘겨버리고, 디저트 쪽은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거나 단 종류일 것이니 마찬가지로 넘겨버리고, 그렇게 넘기니 찾던 빵들이 적힌 메뉴판이 나왔지만.


여전히 하나도 모르겠다. 디저트도 모르는 데 빵이라고 뭔가 알 리가 있겠는가.


대체 뭘 시켜야 하는 건지.


메뉴판을 보면서 곰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내 모습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 지 청하가 내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찔렀다.


"윽… 옆구리는 찌르지 말아주시죠."


"호. 옆구리는 약한가? 그런가? 역시 인간은 특이하군."


"그만. 아파하는 걸지도 모르잖아."


"아… 그건 생각을 못 했군. 미안하네, 학생."


"아닙니다. 그냥, 간지러워서 그렇습니다."


아까는 사장님이 그러더니 이번에는 청하가 아주 많이,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표정만으로도 느껴지는 미안함에 또 괜찮다고 말하며 청하를 봤다가 다시 메뉴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돌렸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대체 뭘 먹어야 하는 걸까.


뭘 먹을 지 정하지 못했다면, 차라리 밥이라도 달라고 하는 게 어떤가.


그런 내 머릿속으로 청하의 말이 들려온다.


카페에서 밥을 달라고 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 고개를 옆으로 돌려 청하의 얼굴을 보았지만, 아까 봤던 미안한 표정은 어느샌가 사라지고 큭 큭 거리며 웃는 청하가 보였다.


그런 청하의 모습에 사장님은 화가 조금씩 나시는 건지 머리카락이라던가 꼬리가 조금씩 하늘을 향해 치솟는 게 보인다.


"…그, 어제 먹었던 허…."


"인간은 소화를 잘 못하니 밥을 주는 게 맞지 않는가."


"…그, 그런가?"


"당연하지 않느냐. 어째서 인간들의 주식이 밥이라고 생각하나. 소화가 잘 되기 때문이지!"


"믿음은 잘 안 가지만, 너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그렇겠지."


거짓말이면, 그때는 진짜로 한 대 때릴거야.


그 말만을 남기고 카운터 뒤쪽의, 여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사장님.


저것도 마법으로 안 보이게 한 걸까. 생각보다 마법이라는 게 유용한 걸지도. 아니, 실제로도 방음에 사용되는 걸로 보였으니까 꽤 유용하다 못해 좋은 게 맞겠지.


사장님이 문 뒤로 들어가고는 모습이 아예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아마 저 안 쪽을 볼 수 없게 따로 마법이라도 걸린 게 아닐까.


툭, 하고 아까보다는 약하게 옆구리를 찌르는 게 느껴져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면 청하가 옆구리를 찌른 채 나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신기한가?"


"신기합니다."


"저런 마법에도 신기해하는 걸 보면 내가 쓰는 주문이나 녀석이 진심으로 쓰는 마법을 보면 놀라서 까무러치겠군."


"…그 정도로 차이가 납니까?"


"그럼, 그럼. 차이가 날 정도가 아니라 하늘이 두 개로 나뉠 정도로 다르지."


피노키오처럼 콧대를 높이 세우고 자랑하는 청하의 모습을 보아하니 하루 이틀 자랑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마법이나 주문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렇구나. 하는 시큰둥한 반응만 내 보일 뿐이었지만.


"…좀 더 놀라는 게 어떤가?"


"제가 그렇게 자세히는 알지 못합니다."


"그렇겠지. 인간이니까 그렇게 자세히 알 방법이 없겠지."


아무 생각없이 청하의 말을 그렇구나 하며 듣다가 문득, 궁금한 점이 하나 떠올랐다.


마침 마법이나 주문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있었으니 이건 물어봐도 괜찮다고 생각되어 입을 열었다.


"인간, 그러니까 사람은 마법이나 주문을 사용할 수 없습니까?"


그런 내 질문에 오늘 처음으로, 청하가 미간을 찌푸렸다.


"사용하지 못하는 건 아니네. 다만, 조건이 필요할 뿐."


"조건입니까?"


"인간은 스스로 마력을 만들어내지 못하니 마력을 모으는 도구를 이용하거나, 아니면 심장 쪽에 마력을 모으는 기관을 만들거나."


"그, 심장 쪽에 기관을 만든다는 건?"


"말 그대로 마력을 사용할 줄 아는 종족이 자신의 마력을 이용하여 인간의 심장 쪽에 기관을 만드는 것일세."


내가 어제 말했던 자신의 일부를 건네준다는 게 그런 의미이기도 하고.


청하의 말에 어제 제자로 삼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 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일부에 마력도 포함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청하는 자신의 일부인 마력을 이용하여 내 심장 쪽에 마력을 모으는 기관을 만들어준다는 뜻이었나.


생각보다 더 굉장한 일을 당할 뻔 했다. 아니, 아직 당하지는 않았고 당할 생각도 하지 않았으니 별 문제는 없었지만.


"내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방법은 두 번째지만, 심장에 무언가를 만든다는 게 거북한 인간도 여럿 있었기에 만들어진 방법이 마력을 모으는 도구였지."


"자신의 몸 내부에 알지 못하는 기관이 생긴다는 건 생각보다 기분이 이상하겠죠."


"그렇다보니 예전에도, 지금도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종족들은 마력을 모으는 도구를 이용한다네."


이런 식으로. 하고 청하는 자기 가슴 사이에서 파란색 복주머니를 꺼냈다. 그리고는 그걸 내게 내밀었다.


"여기 안에 마력을 모은 내 비늘이 있느니라. 아, 물론 그렇게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건 순전히 선의로 건네주는 물건이니."


"…정말로 받아도 되는 겁니까?"


"우리에겐 비늘 한 장 정도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네. 한, 한 뭉텅이는 되어야 화를 낼 정도의 의미는 되겠지."


그 정도로 가져가기 전에 죽… 아, 미안하네.


내 머릿속으로 흉흉한 말을 하려다가 그제서야 내게 들린다는 사실을 깨달은 청하가 사과하는 걸 받아줬다.


멋대로 전달하라고 화를 낼 생각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저 가슴 사이로 무언가를 꺼냈다는 게 너무 큰 충격이었다.


저런 식으로 물건을 넣어둘 수도 있겠구나. 하는 별 의미 없는 깨달음은 덤이었고.


나도 저렇게 가슴이 커진 걸 상상을 해보았지만, 역시 지금이 가장 낫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도 뛰면 가슴이 아프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느껴볼 수 있는데 저렇게나 크면 아마 일상생활은 고사하고 자는 것도 힘들지 않을까.


가슴의 무게때문에 숨을 못 쉬는 느낌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신체에 불편함을 느껴본 적은 없으십니까?"


그래서 그런 지, 나도 모르게 그런 질문을 청하에게 하고 말았다.


청하는 내가 어떤 의미로 그렇게 물어온 것인지 잠깐 이해를 못하고 흔히 삿된 말로 멍청해보이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불편함? 내가? …아. 그렇군. 인간이니까 이렇게 크면 불편함이 있지 않나 그런 질문이었나?"


"그렇습니다."


"안타깝지만 우리에게는 신체적 불편함이 그렇게 크지 않다네."


…불편하더라도 인간의 형태를 하기는 했겠지만.


그렇게 내 머릿속으로 전해오는 청하의 말에 어제 이미 충분히 설명을 들었음에도 왜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를 않는다.


그 의문을 청하에게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 전에, 카운터 뒤쪽의 문으로 사라졌던 사장님이 돌아왔다.


"미안! 안에 들어가서 볶음밥 재료를 찾고 있었어."


"밥은 밥인데, 볶음밥이라니… 자네, 설마 아직도 밥 종류는 잘 못하는 건가?"


"윽… 어쩔 수 없잖아. 주로 먹어왔던 것들이 다 빵 종류인데."


"시간도 많을 텐데 어째서 밥은 볶음밥밖에 못하는 지 이해를 못하겠군."


"너도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라고 하면 못 하면서 말이 많아!"


"하! 나는 빵도 할 수 있다네!"


"고작해야 식빵이면서!"


"시, 시끄럽네! 자네도 볶음밥이 끝 아닌가!"


왁! 왁! 하고 서로 시끄럽게 말다툼하는 소리에 귀가 아파온다.


아니, 나도 어지간히 큰 소리는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편이었지만, 사람이 아니라 다른 종족이라서 그런 걸까, 목청이 되게 큰 편에 속했다.


잠깐 듣고있었던 것 뿐인데도 귀를 막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잠깐. 여기 인간이 있지 않은가."


"그게 왜?"


"너무 크게 말하면 인간에게 피해가 가지 않겠는가. 생각해보게."


"…그것도 그렇네. …아까부터 되게, 자주 사과하는 것 같은데 미안해요, 학생."


"괜…찮습니다."


"전혀 안 괜찮아 보인다만… 어쩔 수 없군. 밥이나 빨리 먹도록 하지."


"내가 밥을 준다고 한 건 학생밖에 없었는데!"


"어허! 모처럼 찾아와준 손님에게 이런 반응을 보여주다니! 그냥 넘어갈 수 없군!"


"손님은 무슨 손님! 어제 준 그걸로 여태까지 해온 것들을 다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또 다시 왁! 왁! 하고 싸우려는 모습에 조용히, 손을 들어올려 귀를 막고 싸움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귀를 막고 언제까지 싸우나 둘을 쳐다보는데, 갑자기 서로 말싸움을 멈추고는 동시에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아직 말싸움이 끝난 것 같지는 않아서 귀에서 손을 떼지 않고 가만히 보고 있었는데, 옆에서 청하가 나를 보며 귀에서 손을 떼라는 손짓을 보내왔다.


그것에 또 싸움이 일어나면 바로 귀를 막을 수 있도록 카운터 위로 손을 내놓았다.


"그… 우리가 작은 목소리로 싸운 것 같네만, 여전히 컸는가?"


"그, 예. 컸습니다. 역시 다른 종족이라 그런 건지 제 생각보다 훨씬 컸습니다."


"…우리가 봤던 인간들보다 훨씬 약하지 않아?"


"이게 정상이라네. 보통, 그 정도로 강한 인간들은 단련해서 그렇게 된 것이고."


"그런가?"


"그렇다네."


삿된 말이기는 하지만, 참 어울리다고 생각되는 멍청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는 모습에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기미가 보였다.


웃으면 안 된다. 웃으면 안 된다. 웃으면 안 된다.


그 생각만으로 슬픈 생각, 슬픈 생각 하며 어떻게든 웃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풋."


안타깝게도 내게 웃지 않는 방법은 그렇게 잘 통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내가 웃는 소리에 서로를 쳐다보던 두 명은 또 동시에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그 모습에 나는 고개를 돌려서 둘의 시선을 피할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