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인간이 희귀종인 세상에서
개념글 모음

"얘, 너 이쪽으로 와보렴. 확인해볼 게 있어서."


"…안 가면 안 됩니까?"


"내가 직접 가는 수가 있으니 순순히 내 쪽으로 오는 게 좋을 거란다."


두 눈에서 흉흉한 기운이 느껴진다.


여차하면 뭔 짓을 저지르겠다는 그 눈빛에 약간 겁을 먹었지만, 괜찮았다.


내게는 청하가 준 복주머니가 있었으니까. 혹시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주머니에 집어넣은 복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아무리 봐도 저런 옷을 어떻게 입고 다니는 건지 궁금해질 정도로 노출이 과한 옷을 입은 여성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여성의 앞에 도착하니 벤치에 앉아있던 여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 몸 주위를 한 바퀴를 돌고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이상하네. 이 안으로 들어올만한 통행증도 안 보이고, 그렇다고 몸에 마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만히 있는 내 신체 이곳저곳을 만져보는 것에 놀라면서 손을 쳐내려고 해봤지만, 나보다 힘이 강한 건지 쳐내기는 커녕 내 손이 잡혀버렸다.


이건 좀, 위험할지도 모르겠는데.


아직, 복주머니를 잡은 손은 멀쩡하다지만 남은 손이 잡혀버린 상태라 제압당하면 청하를 부르지도 못할 것이었다.


그런 내 심정은 신경도 쓰지 않는 여성은 내 손을 잡고 주물럭거리면서 무언가를 느껴보는 것 같더니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몸에 마력도 없는 데 어떻게 들어온거야, 얘는."


"혹시, 취미가 야외에서 노출하시는 것이라면 모르는 척 드릴테니 보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 이건 나도 좋아서 입는 게 아니거든! 마녀라면 입어야하는 정통 복장이란 말…야…."


뒤로 갈수록 점점 말소리가 작아지는 걸 보면 본인도 노출이 꽤 많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챙이 넓은 모자를 앞으로 쭉 내려서 붉어지는 얼굴을 가리며, 내 손을 놓았다.


"어떻게 들어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공원에 안 가는게 좋을거야. 성질 나쁜 도마뱀이랑 뱀이 싸우고 있으니까."


"성질이 나쁜 도마뱀이랑, 뱀입니까?"


"아주 성질이 나쁘지. 툭하면 싸우는 데다가, 이번에는 뭔 사진 때문에 아주 난리도 아니라니까. 나만 매번 치여서 고생이지."


사진하니까 갑자기 머릿속에서 청하와 금향이 떠올랐지만, 설마 성질 나쁜 도마뱀과 뱀이 그 두 명일리는 없…었다.


확신하지는 못하겠다.


혹시 모르니까 마녀에게 어떻게 생겼는 지에 대해서만 물어보는 게 좋겠다.


"그 두 명이 혹시, 머리부터 발끝까지 푸른색인, 가슴만 큰 꼬마애에 한 명은 황금색 머리카락에 두툼한 뿔이랑 꼬리가 인상적인 여성인가요?"


"너, 어떻게 알고 있… 아. 너구나. 청하랑 금향이 그렇게나 말하던 인간이."


앞으로 내렸던 챙을 다시 위로 올리며, 나를 쳐다보는 마녀의 눈빛에는 호기심이 깃들어있었다.


"어떻게 생겼나 궁금했는데, 생각보다는 평범하게 생겼네. 인간이라 그런가. …묘하게 귀여워보이기도 하고."


"제가 귀엽습니까? 그럴 리가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겉모습은 피로에 찌든 현대인의 모습이었는데 왜 귀엽다는 건지.


그렇게 말하는 저의를 파악하지 못해서 나 또한 고개를 기우뚱거리며 마녀를 쳐다봤더니, 마녀는 갑자기 손으로 코를 막고는 고개를 돌렸다.


"…방금 그건 반칙이니까. 난 인정 못 해!"


"뭐가 반칙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음부터는 안 하겠습니다."


"아니야! 괜찮으니까 해도 돼!"


태도가 순식간에 휙 휙 바뀌는 여성의 모습에 뭐라 표현할 말을 잊어버리고 빤히 쳐다본다.


내가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 그제서야 자신이 무슨 말실수를 했나 깨달은 모양이었는 지 아까보다도 더 빨갛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냥 공원에 가고싶었을 뿐이었는데, 어쩌다가 금향과 청하의 지인을 만나게 되었나.


아마, 눈 앞에 보이는 마녀 복장의 옷을 입은 여성이 금향이 말하던 '아미야' 라는 여성일 가능성이 높았다.


청하는 마녀라고 불렀지만, 그냥 이름을 기억하기 귀찮으니까 그런 게 아닐까. 적어도 몇번이나 만나본 사람이라면 이름은 기억하는 편이 좋을 텐데.


아미야… 일 가능성이 높은 여성은, 한숨을 내쉬고는 공원을 가리키며 입을 뗐다.


"아무튼, 저 쪽으로 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둘이서 아주 신나게 치고박고 난리도 아니거든. 그 뒷처리는 내가 해야된다는 게 문제지만."


여성은 자기들도 할 줄 알면서 왜 나만 불러서… 둘에 대해 불만이 많은 건지 꿍얼꿍얼거리며 다시 벤치로 돌아가서 털썩 하고 앉았다.


청하의 주술은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금향의 마법이라면 공원의 복구도 쉬울 텐데 어째서 눈 앞의 여성에게 맡긴 것일까.


머리를 긁적거리며 나보다 더 피곤에 찌든 여성의 모습을 살펴보다가 공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얘! 가지 말라니까! …어휴. 그 두 명을 알아서 그런가, 인간이면서도 고집이 세네."


"사진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면 어느정도 제 책임도 있으니 가는 것입니다."


"그래? …아, 잠깐만. 거기 집사복을 입은 인간이 너였어? 어쩐지, 비슷하게 생겼더니."


"금향이 입어달라고 부탁하길래 한번 입었을 뿐입니다만… 어쩌다가 청하랑 저렇게 치고박는 겁니까?"


"뭐겠니. 맨날 청하에게 긁히던 금향이 이번에 긁을 건수가 생겨서 청하를 긁었다가, 매번 치고박는 공원에 와서 또 저러는 거지. 한 두번도 아니란다."


그렇게 말하며 가슴 안쪽에서 담배곽을 꺼내고는 담배 한개피를 입에 물고, 검지 손가락을 담배에 갖다대니 그 끝에서 자그마한 불꽃이 피어올랐다.


"후우. 아, 이거 담배 아니니까. 그렇게 생겼어도 일단 마력초란다."


"마력초가 뭡니까?"


"…이것도 모르는 걸 보면 진짜 마력이 없어서 모르는 거구나. 마력초는, 그러니까. 마력이 부족할 때에 생으로 먹거나, 달여서 먹거나, 아니면 이렇게 피는 식으로 보충할 수 있는 약초야."


"여기서도 흔하게 볼 수 있습니까?"


"흔하지는 않지. 가끔 볼 수는 있어도, 그렇게 질이 좋은 편은 아니고. 저쪽에서 싸우는 도마뱀이랑 뱀이 사는 곳 근처라면 품질이 좋아."


"금향은 카페에서 사는 게 아니었군요."


"걔도 자기 집이 있는데 거기에만 머물 리가 없잖니? 청하는 자기 책방에서 살지만."


후우… 하고 하얀 연기를 뿜어내는 여성의 얼굴은 약간이나마 피곤이 가신 듯한 느낌이었다.


"룬을 유지하는 것도 꽤 피곤한 일인데다가, 다른 마법도 유지하는 중이라 이런 식으로 채워주지 않으면 금방 소란이 일어나니까."


"…고생하십니다."


"고생은 무슨. 앞으로 네가 겪을 일에 비하면 그렇게 고생도 아닐 텐데."


"예?"


"청하에게 엮인 인간은 네가 처음은 아니겠지만, 금향에게 있어서 네가 처음으로 엮인 인간이니까 아마… 좀, 귀찮은 일이 많아질걸."


"금향과 엮인 인간은 제가 처음인겁니까?"


"처음이지. 왜냐하면, 매번 자기를 노리던 인간들만 상대해본 금향이었으니까. 그것도 황금의 드래곤이니 뭐니 하면서 부를 노리고 찾아온 인간들도 수두룩했고."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어떻게 되기는. 그런 시대였다지만 죽이지는 않고 적당히 밖으로 쫓아냈단다."


"…죽이지는 않습니까?"


"왜 죽이니, 인간을. 안 그래도 소수에 보기도 힘든 종족인데. 아마 지나가던 종족들이 보살핀다면서 데려갔겠지."


"그렇습니까…."


"아무튼, 금향은 그렇다쳐도. 저기, 파란뱀은 진짜로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그건 어느정도 깨닫고는 있습니다."


"어느정도로는 안 되는거야."


그렇게 말하며 마녀는 검지손가락을 내게 가리켰다.


"너, 주머니에 청하의 비늘이 담긴 복주머니를 받았지?"


"…예."


"그게 용에게 있어 어떤 의미인지는 아니?"


"모릅니다."


"…그건, 용이 너를 점찍었다는 소리란다. 다른 의미로 말하자면, 용만큼 강한 종족이 아니라면 손도 대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고."


생각보다 더 엄청난 물건이다못해, 거의 저주랑 비슷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용도가 수상한 물건을 받아버린 모양이었다.


이걸 당장에라도 주변에 보이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공원에 가는 것도 포기한 채 도망가는 게 맞지 않나 싶었지만,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마녀는 킥, 하고 웃었다.


"그만두는 게 좋을걸. 저래보여도 저 뱀은…."


"금향!!"


"…질투심이 빨간색 드래곤에 비견될 정도로 강하니까."


공원쪽에서 우르릉, 쾅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날벼락이 하늘에서 누군가를 향해 떨어진다.


귀가 아플 정도로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벼락을 향해 황금색 비늘이 인상적인 드래곤이 입에서 황금색 불을 뿜어낸다.


그리고, 하늘 위에서 푸른색 비늘이 인상적인 용이 그런 드래곤을 향해 마찬가지로 푸른색 불을 뿜어내어 대응한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일이 저 멀리서 벌어지고 있었다.


저렇게 큰 소란이 일어나면 밖에서도 난리가 났을 텐데, 그걸 억제하고 있는 여성도 생각보다 대단한 종족인 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여성을 쳐다보니, 피곤해보이는 얼굴이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보이는 얼굴이 되었다.


"적당히 날뛰라니까, 왜 매번 내 말을 안 들어주는 걸까. 둘 다 드래곤과 용이라서 그런가. 철천지원수도 아니면서 맨날…."


그렇게 투덜거리며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무언가를 조작하는 듯 싶더니, 공원 전체에서 무언가가 끼릭끼릭 하고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기름칠이 덜 된 톱니바퀴가 움직이는 듯한 소리에 놀라 여성을 보니, 곧 죽을 것 같은 표정이면서도 씨익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안 죽으니까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말아줄래? 이런 일을 한 두번 겪어본 것도 아니란다."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있으면 누가 걱정을 안 하겠습니까."


"그것도 그렇네. 아무튼, 공원으로 갈거면 지금 가는 게 좋을 거야. 둘 다 어느정도 진정이 된 상태일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가는 길에 혹시 모르니까 방벽이라도 걸어줄게."


여성은 이리저리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내게 다가오더니 내 이마를 툭 하고 건들였다.


"이걸로 떨어지는 벼락이나, 지나가던 마법에 맞아서 죽을 걱정은 안 해도 될거야. 나도, 나름대로 칭호를 받은 마녀니까."


"마녀…입니까. 혹시, 금향이 말하던 분이?"


"아마 내가 맞을걸. '아미야' 라는 이름도 말했니?"


"말하셨습니다. 청하님에게 매번 이름좀 기억하라고 따지시면서."


"걔는 인간 말고는 잘 기억도 안 하는 편이니까. 뭐, 기억은 하고 있겠지만."


"그렇습니까. …마녀는 인간이 아닌 겁니까?"


"인간이랑 비슷하게 생겼지만, 인간은 아니지. 인간에게는 마력이란 게 없지만, 마녀에게는 마력이 있으니."


그렇게 말하며 여성, 아미야는 내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잠깐 손을 내밀어주지 않을래? 간단하게 확인하는 방법이 있단다."


"알겠습니다."


여성, 금향의 지인이라는 점을 믿고 아미야가 내밀은 손을 마주잡으니, 마주잡은 손을 통해서 무언가가 내게 흘러들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혈관과 핏줄을 타고 무언가가 타고 올라가는 느낌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기에, 아미야를 쳐다보니 아까보다는 나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햐. 인간의 몸을 통해서 나오는 마력이란 게, 이런 느낌이었구나. 생각보다 더 좋은데?"


"…그게 마력이었습니까?"


"마력이었지. 내가 확인해보니 확실히 너는 인간이 맞아. 몸에 마력이 없으면서도 마력이 다니는 통로가 있는 걸 보면."


"그렇습니까. …생각보다 그렇게 좋은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그럴 수 밖에. 마력이 있는 종족들도 남의 마력이 자기 몸에 들어온다면 기분이 이상하니까. 치료를 위해 몸에 마력을 넣는 것도 거부하는 종족도 꽤 있단다?"


아미야는 입에 물던 담배, 아니. 마력초를 쓰레기통을 향해 뱉으니 그 안으로 날아간다.


저렇게도 사용할 수 있구나. 약간 지식이 늘어난 기분이다.


"자, 자. 갈거라면 지금 가렴. 곧 있으면 그 망할 사진때문에 한참을 싸울 테니까. 나도 이제는 지친다구."


"얼마나 싸웠길래 그렇습니까?"


"…아마, 너가 카페에서 나가자마자 바로?"


"알겠습니다."


사진때문에 싸우는 것이라면 내 책임도 있었으니, 빨리 가야할 이유가 생겼다.


설명을 해준 아미야에게 감사의 의미로 고개를 꾸벅 숙이니, 아미야는 챙을 약간 아래로 움직여 감사를 받아줬다.


…뛰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지.


이대로 걸어가는 것 보다는 뛰어가는 게 더 빠르게 도착할 테니 어쩔 수 없었다.


한동안 가슴이 아프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