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인간이 희귀종인 세상에서
개념글 모음

언제쯤이면 둘의 싸움이 멈추려나.


카운터에 턱을 괴고서 아직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주먹 다짐을 구경한다.


아까까지는 서로 주먹과 발을 휘두르며 난리를 부리더니, 이제는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거나 깨물거나 하여튼, 삿된 말로 개싸움이 되어버렸다.


나보다 나이를 많이 먹은 두 종족의 추한 싸움을 보고 있자니 저렇게 살지는 말아야겠다는 다짐하며, 끝날 기미가 보이지를 않는 싸움에서 시선을 뗐다.


딸랑, 하고 카페의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둘의 싸움도 소리가 들려옴에 따라 멈췄고, 카페 안의 나를 포함한 셋은 짜기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출입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검은 피부에 보라색의 챙이 넓은 모자와 과도할 정도로 노출이 심한 보라색 옷을 입은, 금향과 청하의 지인인 마녀 아미야가 보였다.


아미야는 나를 보며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네왔기에, 나 또한 손을 흔들어 받아주었다.


그리고는, 카페 가운데에서 드러누운 금향과 그 위에 올라탄 청하를 보고는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너네는 변하지를 않네."


고개를 내저으며 말하는 아미야의 모습에, 둘은 서로를 한번 쳐다보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연스럽게 금향은 카운터 안으로 걸어갔고, 청하는 카운터 앞에 놓인, 자기 지정석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 옆 자리에 앉았다.


그런 둘의 모습에 한번 더 한숨을 내쉰 아미야는 또각 하고 카페 내부에 울려퍼지는 구두 소리와 함께, 내 옆의 빈 자리에 앉았다.


"…반갑습니다."


"그래. 나도 반가워. 그리고, 너네 둘은 전혀 반갑지 않고."


"어흠, 에흠. 우린 아무 일도 없었느니라. 그렇지 않느냐?"


"그, 그렇고 말고. 우린 아무 일도 없었어. 그렇죠, 주빈?"


"…그런 것으로 합시다."


이제는 뭐라 할 기력도 모잘랐기에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거의, 카페에 올 때마다 서로 싸우는 모습을 봤던 것 같은데.


그런 내 모습을 본 아미야는 나를 동정하는 듯한 시선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 눈빛이, 이상할 정도로 내게 아프게 다가왔기에 슬쩍, 고개를 돌려 피했지만.


나 말고도 내 앞과 옆의 두 명은 휘, 휘 하고 어색한 휘파람 소리를 나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돌려 피하고 있었다.


"…하아아아. 너도 물들지 않게 조심해. 너도 저렇게 변해버리면 진짜로 마음이 아플 것 같으니까."


"…조심하겠습니다."


"잠깐 기다리거라 마녀, 우리가 뭔가 잘못한 것처럼 취급하지말거라!"


"우린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거든!"


"…인간 앞에서 그런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었고, 그런 모습을 익숙하다는 듯이 보고 있었는 데 그게 잘못이 아니라고?"


아미야의 말에 둘은 반박을 하려다가도,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개를 내저으며 부정하지 말라는 표현을 보냈다.


그 표현에 배신이라도 당한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둘의 모습이 보였지만 알게 뭐람.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내가 시킨 것도 아니었고, 그냥 자기들끼리 마음에 안 들어서 싸우기 시작한 것을.


"주, 주빈. 이러면 안 되지 않느냐. 내가 준 것도 있는데!"


"저, 저는 잘못하지 않았어요, 주빈! 왜 몰라주는 거에요!"


"저 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이야기이니 빼주셨으면 합니다."


둘에게 선을 딱 그어 잘라서 말하니 머리 위로 쟁반이 떨어진 것처럼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아니. 실제로 쟁반이 둘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터엉! 하고 둘의 뿔에 부딪쳐 구멍이 뚫려버린 스테인리스 쟁반의 모습에 저게 구멍이 뚫리기는 하는 구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저 둘의 뿔은 대체 얼마나 강한 건지 궁금증이 생겼다.


저 쟁반을 가볍게 뚫어버릴 정도라면 사람의 피부정도는 가볍게… 아, 이런 생각은 하면 안 됐다.


내 옆 자리에서 아마도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용이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스테인리스 쟁반을 떨어뜨린 것은 누구인가.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옆의 아미야에게로 고개를 돌리니 나를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빙긋 웃는 모습이 보인다.


검지 손가락만을 세운 채로, 위에서 아래로 휙 하고 그으니 구멍이 뚫린 쟁반이 사라지고, 다시 말끔한 모습의 쟁반이 나타나 둘의 머리 위로 또 떨어졌다.


"내가 잘못했다는 건 충분히 알았으니, 그만하거라!"


"나, 나도 잘못했으니까!"


"그게 어딜 봐서 잘못을 인정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너는, 진짜로 저렇게 물들지 말았으면 좋겠네."


"절대로 저렇게 안 될 겁니다."


아미야에게 단호하게 말하며 둘의 모습을 보니,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표정이 바뀌어서는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런 둘의 시선을 당당하게 받으며 쳐다보니, 자기 잘못을 숨기려는 것처럼 고개를 돌려 내 시선을 피한다.


잘못을 알면서도 왜 저러는 걸까.


"…손, 다쳤니?"


"아, 별 것 아닙니다."


"별 것 아니기는. 날카로운 물건에… 아니, 스스로 찔렀구나."


턱을 괴고 있던 손이 하필이면 송곳니에 찌른 손이어서 아미야의 눈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아미야는 반창고가 붙여진 내 손을 보더니, 자기 가슴 안쪽에서 작은 보라색 유리병을 꺼내고는 마개를 딴 뒤, 다친 손 쪽으로 내밀었다.


"손에 붙인 반창고를 떼주겠니? 금방 나을테니."


"…알겠습니다."


손가락 끝에 붙인 반창고를 뜯으니 약간의 쓰라림이 느껴지며, 고통에 얼굴이 찌푸려지기는 했지만 금방 풀렸다.


아미야에게 다친 손가락을 내미니 보라색 유리병을 살짝 기울여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을 아주 약간, 손가락 위로 한 방울을 떨어뜨리니 손가락 끝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부글부글 거품같은 게 일어나며, 대체 이게 어떻게 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고 아미야를 쳐다봤지만, 아미야는 아무런 말 없이 내 손가락을 보고 있었다.


"…마녀의 비약을 사용할 정도로, 그게 위험한 상처였나?"


"아니."


"왜 사용한 거야, 아미야?"


"어차피 사용하지도 않고 아끼고 있을 바에야 인간에게 쓰는 게 더 유용하지 않아? 우리에게 상처는 그렇게 큰 의미가 없지만, 인간에게는 다르니까."


그렇게 말하며 아미야는 청하와 금향을 보다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보라색 유리병의 마개를 닫고는,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집어넣었다.


…자기 가슴 안에 뭔가를 넣는 게 그렇게나 편한 건가 싶었지만.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름대로의 보관 방법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겨버렸다.


아무튼, 손가락 끝에서 일어나던 거품은 순식간에 꺼져버렸고, 거기에는 아무런 상처도 보이지 않는 손가락이 보였다.


흉터가 남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피가 좀 나왔을 정도의 상처였는데도, 아미야의 약을 한 방울 떨어뜨린 것으로 순식간에 나았다.


"…인간에게는 이런 식으로 적용이 되는 군."


"우리랑은 다르네."


"다르지. 아주, 많이 다르지. 우리같은 경우에는 그냥, 재생하면 그만이지만 인간은 그렇게까지 재생 능력이 좋지 않으니 저런 거품이 나오는 걸거야."


세 명은 내 손가락 끝에서 나온 거품을 보며 인간의 재생 능력에 대해 자기들끼리 토론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들과, 단어들이라 관심을 가질 래야 가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손가락 끝이 벌써 나았다는 게 신기해서 다른 손으로 상처가 난 부분을 만져보기도 하고, 눈에 가까이 대서 살펴보기도 했다.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는 듯이, 아주 말끔한 피부만이 남아있었다.


"신기하니?"


"신기합니다."


"흠… 인간의 상식이란, 우리와는 많이 다른가 보네."


"많이 다른 수준이 아니지. 주빈은, 마법이나 주술이 없는 곳에서 살다온 것인지 아예 거부 반응이 없느니라."


"…그렇네. 내가 마법을 시연했을 때에도, 보통이라면 마력의 흐름같은 걸 느낄 수 있었을 텐데, 전혀 느끼지 못했으니까."


"내가 친 결계에 아무렇지 않게 들어왔던 것만 보더라도 그럴 것 같기는 했어."


지그시, 나를 쳐다보기 시작한 세 명의 모습이 보인다.


마치, 설명을 해달라는 듯이 압박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알고 있는 지식도 없었을 뿐더러, 실제로도 마법이나 주술이 없는 곳에서 살았다.


여태까지 봐왔던 경우와는 다른 모양이었는 지, 세 명은 아무 말 없는 나를 한동안 쳐다보다가 내게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떠드는 내용이 처음에는 들렸지만, 아미야가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게 되었지만.


마치 내 주변의 소리만 차단한 것처럼, 정적인 공간이 되어버린 카페의 모습이 신기했다.


양 옆과 앞에서 나를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눈에 보였지만,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는다니.


이 정도로 완벽한 소음 차단이라면 다른 곳에서는 조심스럽게 나눠야할 이야기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매우 유용해보이는 마법… 마법? 잘 모르겠다. 마녀라고는 했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게 마법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일 가능성도 있었다.


아직까지도 내게 이곳에서의 상식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달으며, 셋의 대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주머니의 스마트폰을 꺼내어 마녀는 어떤 것을 사용하는 가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마녀도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확히는, 마녀라는 종족에 맞추어 개조된 술식… 이라고 보는 게 맞았지만.


일반적인 마력을 사용하는 종족들과는 다르게 마녀는, 어떻게 보면 주술과도 비슷한 면이 있었다. 스스로의 마력보다는 주위의 마력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어떻게 사용하는 지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적힌 이론이 보였지만… 역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모르는 단어도 나왔을 뿐더러, 마력이 없는 곳에서 살아왔던 내 지식으로는 받아들일 수가 없는 내용이었다.


이게 대체 왜 되는 건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집에 설치된 방음 마법의 경우에도 그게 왜 되었던 건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사는 곳은 그런 것들이 당연한 곳이었으니 어떻게든 적응하고 살아야 했다. 적어도, 남자로 돌아가거나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둘 다 되었으면 좋겠지만, 인생이란 어떻게 흘러갈 지 전혀 모르는 것이니까.


어쩌면, 남자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여기에서 계속 살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그것은 그때 가서 생각해보면 되는 일이었다.


인생은 적당히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야 편하다. 그게 내가 살아가도록 만드는 방법이었다.


이것도, 예전의 그녀에게서 배웠던 것이었지만… 여기에는 없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마법이나 주술에 대해서 알았더라면 분명히 배우려고 했겠지.


그런 모습이 자연스럽게 상상이 될 정도로, 그녀는 활발했고, 활동적인 사람이었다.


…상념이 너무 길었다.


어느 순간부터 인지는 모르겠지만, 셋의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흠.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지."


"그렇느니라."


"…내가 가르쳐주는 것도 방법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드래곤의 마법은 조금…."


"내 주술은 아예 맞지도 않을 테니 예외로군."


"그럼, 남은 방법은 내 마법인데…."


옆에 앉은 아미야가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정확히는, 전에 보호 마법을 걸었던 내 이마를 보는 것 같았지만.


"거부 반응이 없는 것도 그렇고, 마법에 대한 거부감도 없는 것 같으니까 배울 수는 있겠네."


"…뭘, 말입니까?"


"마법. 혹시, 배워볼 생각 없어?"


그렇게 물어오는 아미야는, 마녀의 보라색 눈은 귀중한 보물이라도 본 것처럼 반짝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그 귀중한 보물이라는 게 나일 가능성이 크기는 했지만, 난데없이 그 이야기가 왜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다.


"갑자기 마법이라니, 무슨 소리십니까?"


"내가 직접, 그 흡혈귀에게 마법을 가르쳐주고 싶지는 않거든.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그럼, 남은 방법은 너가 가르쳐주는 것 말고는 없네?"


"주빈, 저도 도와주고 싶지만, 제 마법은 드래곤에게 맞춰진 것이라…."


"나 또한 마찬가지니라. 물론, 주빈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가르쳐줄 수 있느니라!"


"…나 놀리는 거니?"


"당연하지 않느냐! 드래곤의 마법을 배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


"너, 너. 공원으로 따라와! 다시 한판 붙자!"


"바라던 바다!"


"…적당히 하지 않으면, 국가에 신고할거야."


""미안하다(해요)!""


둘이 동시에 아미야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며, 마법을 배우면 내게 어떤 이점이 있는 지 떠올려본다.


일단,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아미야에게서 어떤 마법을 배우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쓸모있는 종류로 배우지 않을까.


"마법을 배운다면, 어떤 종류로 배웁니까?"


"그렇게 질문을 해올 줄이야. 당연히, 위험한 것들은 가르치지 않을거야. 가르칠 생각도 없고. 사는 데 적당히 도움을 주는 마법만 가르치고 끝낼 거야."


"그렇습니까."


"그렇지. …아, 혹시 이름으로 불러도 괜찮니?"


"괜찮습니다. 제 이름은 김주빈 이라고 합니다."


"내 이름은, 들어서 알고 있을거야. 앞의 성이라던가 뒤에 붙은 귀찮은 게 더 있기는 하지만, 너에게는 필요 없을 것 같네. 편안하게, 아미야라고 부르렴."


"알겠습니다, 아미야."


"…내게는 그렇게 편안하게 불러주지 않았으면서, 어째서 차별하는게냐!"


"…편안하게 부를 시간도 주지 않았으면서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청하."


내가 의도하고 그렇게 본 것은 아니었지만, 아미야와 동시에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청하를 보고 말았다.


그런 내 시선에 동공에 지진을 일으키던 청하는, 나중에 두고 보자는 악당이 할 법한 말과 함께 카페를 나갔다.


"…나중에 사과라도 해야겠습니다."


"안 하셔도 괜찮을걸요. 저래 보여도, 다 이해하고 있을 테니까."


"그럼, 마법을 배우는 데 동의하니?"


"동의하겠습니다."


아미야는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손을 마주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