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다행이에요. 천안아산역까지 안드로이드랑 마주치지 않아서."
진심이었다. 아산 공장에서 버스를 타고 1호선으로 갈아타서 천안아산역에 도착하기까지 한 치도 방심할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서 안드로이드가 나타날 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천 슈어 단장님이 레볼루시아는 민간인을 건들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에 인파가 많은 곳 위주로 다녔는데 이것이 효과를 본 것 같았다.
"계속 이렇게만 가면 좋겠구만."
옆자리에 앉은 최은준이 답했다. 최은준도 다른 사람들처럼 안드로이드 레이더를 꺼내놓고 있었다.

그리고 정적이 흘렀다. 천안아산역부터 수서역까지 걸리는 시간은 33분. 침묵이 지루해져 오랜 침묵을 깰 겸 긴장도 풀 겸 말을 꺼냈다. 북한에서는 이름 대신 직책으로 많이 쓴다기에 교수님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런데 최 교수님, 리와인더에는 어떻게 들어오셨어요?"
"어떻게 들어왔냐라. 나도 아니 알아. 왜 들어오라고 했는 지도 의문이다야. 단장 동지가 비밀이 워낙 많으시잖아."
여기도인가. 시즈오카 히카리에게 같은 질문을 했을 때도 이 대답이었다. 이 쯤되면 천 슈어 단장님은 대체 뭐하는 사람인 걸까.
"그래도 짐작가는 건 있다우."
"뭔데요?"
"예전에 단장 동지가 신포자동화도시에 대해 자료 좀 달라고 하더라고. 그거랑 연관은 있을 것 같다우."
"신포자동화도시요? 그게 뭔데요?"
"2047년 리진청 정권 때 4차산업혁명의 혁신을 보여주겠다며 신포시 전체의 모든 행정을 콤퓨타에 맡기는 사업을 했다우. 이 때 교수였던 내가 총괄 책임자로 임명되었지비."
"오오, 대단한 분이셨네요. 그럼 그거랑 리와인더랑 무슨 상관일까요?"
"몰라. 뭔가 있겠지비."
"거기 사건 같은 거 없었어요?"
"내 생각에는 테러 한 건이 다였을 거라우."
"테러요?"
"건설현장에서 테러 사건이 있었다우. 이 사건으로 중국인이 다수 죽었지비."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일단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아, 그리고 제가 그쪽에서 세나칼 회장이랬죠? 그러면 혹시 제가 세나칼 안드로이드 만났을 때 무력화시킨다거나 파괴시킨다거나 할 수 있는 방법 뭐 없나요?"
"글쎄 어디보자..."
최은준이 가방에서 USB를 꺼내 스마트폰에 연동시켰다. 그리고 스마트폰에서 자료를 찾았다.
"하나 있네. '최고관리자 명의로 포멧하기'."
"진짜요? 어떻게 쓰는데요?"
"안드로이드와 눈을 마주쳐서 홍채인식 한 다음 '관리자 모드 활성화'라고 말해서 음성인식하면 관리자 모드가 강제로 활성화. 세나칼에서는 이 방법이랑 리모컨으로 조작하는 거랑 중앙컨트롤센터에서 강제로 셧다운시키는 거 등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우. 그런데 제2차 해킹대란 이후로 그 방법은 다 막혀버리고 홍채인식과 음성인식한 다음 관리자 모드로 들어가는 방법밖에 아니 남았지비."
제2차 해킹대란. 2060년 1월 1일 모종의 해커가 CIA 및 전 세계의 안드로이드를 해킹한 사건이라고 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동유럽 등으로 IP을 잔뜩 우회해서 범인을 아직도 잡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천 슈어 단장님이 말하길 해킹의 범인이 레볼루시아라고 했다.
"그럼 뭐뭐 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포멧'이라고 말하면 포멧되고 그렇다우. 자세한 건 이 USB 받으라우."
최은준 교수가 USB를 다시 뽑아서 내게 건넸다.
"그렇다고 무대포로 안드로이드한테 홍채인식 시험하면 위험하다우. 일단 슈트의 헬멧을 벗어야 하는데 그 때 총 쏘면 바로 죽으니까."

"그러면 레볼루시아가 제2차 해킹 대란으로 얻은 안드로이드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면 진짜 안드로이드 없앨 다른 방법은 없어요?"
"없다우. 레볼루시아가 안드로이드의 랜선을 전부 끊어버렸으니."
"아, 그 저번에 소날 셧다우너인가 뭔가 그거 있잖아요. 주파수로 원격조종해서 실시간으로 코딩한다는 원리. 그건 또 못 만들어요?"
"그거? 만들기 힘들어야. 북한 대학교들이 연합으로 만든 교육용 안드로이드밖에 못 조종하고. 그러게 왜 기존 자료를 토대로 만들어서 제니퍼한테 줬는데 하필 그 때 테네시 사건이 일어나가지고..."
테네시 사건은 제니퍼 킴이 죽은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유혜림이 PTSD에 빠진 거라 익숙했다.
"지금도 제니퍼의 USB에 있는데 제니퍼가 죽어서 생체인식이 안 되서 지금도 못 연다우."
"혹시 혜림이의 목에 있는 그거요?"
"그거지비."
유혜림가 항상 목걸이삼아 목에 메고 다니는 USB가 떠올랐다. 예전에 궁금해서 뭔지 물어봤다가 그녀가 정신을 잃은 적이 있었다. 그 때 시즈오카가 따로 불러내서 조근조근 제니퍼의 USB라고 얘기해줬다. 그 안에 그런 것도 있었구나 싶었다.
"그 때 백업을 안 해놓은게 천추의 한이다우."


그 때였다. 갑자기 안드로이드 레이더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안드로이드의 출몰이었다.
어디서 안드로이드가 나타날 지 몰라 긴장했다. 서로서로 가방에서 무기를 꺼내려 했다.
안드로이드가 어디에서 올까 하며 두리번거렸다. 이곳은 SRT 마지막 객실인 8호차. 그래도 분명 다른 승객이 있을 텐데 이렇게 갑자기 나타난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들은 안드로이드가 다른 승객이 있을 객실에 어떻게 공격하려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방식에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달리는 열차의 8호차 뒤에 갑자기 섬광이 일더니 SRT의 7호차와 8호차의 접합부분을 기점으로 열차가 두동강났다. 잠깐 몸이 중심을 잃었다. 8호차의 일반 승객들이 놀라 비명을 질렀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SRT 열차는 이 사실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유유히 앞으로 앞으로 가고 있었다. SRT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여기가 어디인지 확인했다. 지제역에서 동탄역으로 가는 구간 중 지하 구간으로 들어가기 바로 직전이었다.
레이더를 들여다보았다. 주변에 있는 안드로이드는 1대. 이런 무식하게 큰 스케일 치고는 의외로 적은 숫자였다.
아까 공격은 모양새를 보아하니 레이저 공격 같았다. 이런 공격을 열차 한복판에서 벌인다니 상식이란 게 있나 싶었다.

총으로 무장한 안드로이드가 열차 위로 올라왔다. 민간인들이 비상식적인 상황에 겁에 질려있었다.
"민간인은 공격하지 않습니다. 민간인은 모두 여기서 나가주십시오."
열차에 있던 사람들이 안드로이드의 이 말에 다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일단 생명에 위협은 없으니 다행이라며 안도하는 듯 했다.
안드로이드가 일단 총을 한 발 쐈다. 다행히 천 슈어가 좌석 밑으로 숨어서 다치지 않았다.

나는 그 사이에 바로 여기서 슈트를 챙겨입었다. 긴급상황이라 다급해서 입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그 때 내 옆으로 안드로이드가 왔다. 바로 무기를 챙기려고 했다. 그러나 그러기도 전에 안드로이드가 내 머리통 오른쪽에 총구를 겨누었다. 움직이지 말라는 뜻이었다.
헬멧을 이미 쓴 상태이기 때문에 총에 맞아도 죽지는 않을 것이었다. 다만 이렇게까지 빠를 수 있나 하고 등골이 오싹했다.
"쏘실 거에요?"
"특별지정대상 회의 결과 당신은 특별지정확보대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ENE-201104-1-D에서 ENE-201104-1-A로 격상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제거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니 여기서 나가주십시오."
"못 나가요. 제거대상이 되어도 안 나갈 거에요."
이것은 은혜보다는 이타심에 가까웠다.

그 때 안드로이드의 머리에 총알이 한 발 날아갔다. 팡 씬이가 쏜 것이었다. 안드로이드가 그걸 감지하고 왼팔을 올렸다. 화학탄이 안드로이드의 피부를 녹여 내부 회로를 손상시켰다. 성능은 제대로 입증되었지만 생각보다 고어한 게 끔찍했다.
그러나 왼팔의 회로만 손상되고 전체 회로는 손상되지 않았다. 공격 실패였다.
팡 씬이가 그걸 보고 한 발 다시 쏘았다. 그러나 안드로이드는 전부 다 왼팔로 막아내었다. 소를 내어 대를 취하겠다는 것 같았다.
안드로이드가 팡 씬이에게 역공했다. 팡 씬이를 향해 자동권총을 쏘았다. 그러나 팡 씬이는 이미 슈트를 다 입은 지라 전부 다 막아내었다. 총알이 어깨를 맞고 그대로 밑으로 떨어졌다. 안드로이드가 그제서야 방탄임을 알아챈듯 했다.
팡 씬이가 총을 다시 쏘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빗나갈 뿐이었다. 일부 화학탄은 SRT 바닥으로 떨어져 열차 바닥을 녹였다.
"대표이사 동무 비키라우."
창가 쪽 자리에 있던 최은준 교수가 말했다. 그는 슈트를 입은 채로 접착총을 들고 있었다.
최은준이 접착탄을 안드로이드를 향해 쏘았다. 그러자 안드로이드가 점프해서 접착탄을 피했다. 뛰어서 앞좌석에 착지하는 게 사람이 아니라 메뚜기 같았다.
안드로이드가 총을 한 발 더 쏘았다. 총알이 최은준을 빗나가  크리스 이스트우드의 슈트를 맞추었다. 방탄이라 큰 피해는 없었다.
이 기세를 몰아 계속 총을 쏘았다. 한 발 한 발 쏠 때마다 소수인 안드로이드가 더 열세였다. 안드로이드가 계속 피했지만 우리들 쪽에서 공격하는 수가 한 명 한 명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최은준이 접착탄으로 안드로이드의 왼팔을 저격하는 데 성공했다. 왼팔이 열차 벽에 딱 달라붙었다. 크리스 이스트우드가 막타로 화학탄을 머리에 저격해 얼굴을 녹였다.
안드로이드가 치지직하며 맥없이 왼팔이 벽에 고정된 채 기능을 정지했다. 얼굴 부분의 메인회로가 손상된 것이었다.

"끝났다!"
팡 씬이가 총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레이더로 주변에 안드로이드가 있나 확인했다. 다행히 없었다. 이번에는 이걸로 끝인 것이었다.
모두 슈트를 벗었다. 무기도 다시 안 보이게 넣었다.
반으로 두동강난 SRT 8호차를 보니 소름이 돋았다. 앞으로 이런 일을 많이 겪겠구나 하며 앞길이 걱정되었다.
"혜림아 괜찮아, 괜찮아."
시즈오카 히카리아 유혜림을 달래고 있었다. 린장에서의 습격 이후 어느 정도 가라앉았던 유혜림의 PTSD가 부활해서 사실상 정신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시즈오카 히카리가 분주해졌다.
"이거 먹어."
이미 만들어놓은 정신과 약이었다. 생각해보니 시즈오카 히카리는 아까 싸우고 있을 때도 총을 쏘기보단 유혜림을 챙기고 있었다.

"하현일, 일단 슈트 벗고 아까 도망가던 일반인 분들과 합류하게. 정체는 감춰야 하지 않겠나."
최은준 단장님이 말했다. 하긴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럴게요."
내가 슈트를 가방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리고 우리랑 나중에 합류합세. 장소는 패러렐라인(리와인더 통신앱)으로 따로 알려줄 테니."
"따로요? 그럼 저 혼자 있어요?"
"자네 주변으로 돌아다닐 테니 걱정 말게나. 위험한 일이 있으면 합류하지."
"그럼 그러도록 하죠."
무기와 짐들을 챙겼다. 피가 안 난 것을 확인하고 열차의 두동강난 부분 바로 앞에 섰다.
"그럼 다음에 봅시다."
잠깐의 인사를 하고 내려서 아까 도망치던 사람들처럼 뛰었다. 한 쪽에 사람들이 몰려있길래 그 쪽으로 뛰어갔다.
뒤를 돌어보니 리와인더가 다른 쪽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어차피 나중에 만날 것이니 일단 지켜만 보았다.


*

"속보입니다. 오늘 오후 2시 20분 경 부산발 수서행 SRT 열차가 지제역~동탄역 구간에서 정체 모를 테러를 당했습니다. 열차의 후미칸이 무언가에 의해 절단되었으며 열차 내부에서 총격이 발생하였다고 조사 결과 밝혀졌습니다.
이번 사건의 용의자는 왼팔이 열차 벽에 정체 모를 끈적한 물질로 붙어있고 왼팔과 얼굴이 화학용액으로 녹아있는 상태로 열차 내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수사..."

뉴스에서 온통 SRT 테러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경찰과 언론과 시민사회 등이 이 사건으로 충격을 받았다. 일부 사람들은 최근에 나타난 의문의 조직인 리와인더와 이번 사건을 연결짓기도 했다.
한편 용의자 부검 결과 용의자가 안드로이드로 밝혀졌다는 소식도 더해지자 미래에서 온 조직을 자청하는 리와인더와 연관되어있다고 믿는 목소리가 커졌다.

나는 이 사건으로 피해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으며 지금은 조사가 끝나 경기남부지방경찰서 앞에 정처없이 서있는 상태이다. 사고가 일어난 평택에서 수원까지 참 멀리도 왔다 생각했다.

핸드폰을 초조하게 손 안에서 조물딱거렸다. 어디서 다시 만나야 할 지 몰라 은근히 전전긍긍했다.
그 때 문자 하나가 딱 왔다. 천 슈어 단장님의 문자였다.


내일(5월 12일) 오후 4시 강남역 신분당선 개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