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 화재

소비에트 리포트

송고 02/03_17:15 


//패트릭 프린//

AP 모스크바 특파원


모스크바발(AP)


 러시아의 시베리아 서부지역에서 '중대한 화재'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타스통신에 의해 오늘 확인되었다. 소련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의 2면 기사가 이 화재에 대해 언급하고 '영웅적인 소화대'가 우수한 기능과 헌신으로 무수한 인명을 구하고 아울러 가까운 중요 석유시설에 손해가 미치는 것을 방지했다고 밝혔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화재는 정유시설의 자동 컨트롤 시스템의 '기술적 실수'로 시작되어 급속히 확대되었지만 신속히 진화됐다. '화재에 대처한 전술한 용감한 사람들과 동지들에게 협력하기 위해 영웅적으로 달려온 용기 있는 작업자들 사이에 피해가 없지는 않았다.'고 한다.


  서방 보도와 약간 차이가 있었지만 이 지역의 화재는 뜻밖에 빨리 진화되었다. 지금 서방의 정보당국에서는 유고마셉코예 정유시설의 상당히 복잡한 소화 시스템에 대해 억측을 하고 있는 것 같다.



1985년 2월 2일 06:49 GMT, 모스크바 크렘린


 40대에 접어든 젊은 정치국 후보위원이자 소비에트 연방의 석유산업을 이끄는 과업을 맡은 알렉세이 블라디미로비치 밀러로서는 서방이나 <프라우다>의 보도 같은 것을 읽을 계제가 아니었다.


 모스크바를 둘러싼 숲속에 자리잡은 고관용 별장으로부터 호출돼 곧바로 유고마셉스코예로 날아간 지 불과 열 시간 만에 보고서를 들고 모스크바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Tu-154 여객기 안의 텅 빈 객실에 앉아서 그는 생각했다.


 자리에 앉은 지 3개월 만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밀러의 보좌관인 2명의 젊은 엔지니어는 현지에 남았다. 그는 오늘 정치국 회의에서 보고하기 위한 노트를 재검토하고 있는 동안에도 혼란의 의미를 이해하고 가능한 많은 것을 구하기 위해 노력중이었다. 이 화재로 3백 명이 죽은 것으로 추산되었다. 


 유고마셉스코예 시민 가운데 사망자는 기적적으로 2백 명 이하로 그쳤다. 불행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사망한 숙련자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다른 큰 정유시설의 숙련자를 차출해야 한다는 골치아픈 일을 별도로 한다면 그다지 중대한 문제는 아니었다.


 정유시설은 거의 전소됐다. 재건하려면 최소한 2, 3년이 필요하며, 스틸파이프 생산량 가운데 상당량을 복구사업에 돌려야 했다. 


 이런 종류의 시설에는 여러가지 품목이 필요하므로 150억 루블은 들어갈 것이다. 더욱이 특수한 기재는 외국으로부터 구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귀중한 외화와 자금을 얼마나 낭비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정도는 그래도 괜찮은 것이다.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든 것은 유정 상부가 완전히 파괴된 것이다. 복구에 소요되는 시간은 적어도 36개월!


 36개월. 밀러는 암담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그것도 가능한 자원을 모두 동원하여 화재를 입은 모든 유정을 다시 파내고 동시에 EOR(석유회수증진법)시스템을 재건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서다. 최소한 18개월간 소련은 석유생산량이 크게 부족하게 될 것이다. 아니, 30개월이 넘어설 공산이 더 크다. 그렇다면 나라의 경제는 파탄날 것인가?


 그는 종이를 꺼내 계산하기 시작했다. 조종사가 공항에 내리고도 그의 자리에서 나와 착륙했음을 말해주기 전까지 그는 시간의 흐름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3시간의 여행이었다.


 밀러는 어깨를 들썩했다. 앞으로 겪어야 할 일은 그의 장래를 결정할 것이다. 어쩌면 조국의 장래까지도.


 밀러가 탄 자동차는 레닌그라드 가를 지나갔다. 그 길은 고리키 가에 이른다. 내무성 요원들이 일반 차의 통행을 막고 요인 전용으로 비워둔 중앙차선으로 차는 달려 나갔다. 호텔과 백화점들을 지나 붉은광장으로 들어서 마침내 크렘린으로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밀러는 인사를 한 다음 코트와 중절모를 보좌관에게 건넸다. 보좌관은 곧바로 물러나서 문을 닫았다. 밀러도 오른쪽 중간 정도에 있는 자기 자리에 앉았다.

 

 금테 안경을 쓰고 머리가 벗어진 서기장이 개회를 선언했다. 그의 목소리는-당에서 제일가는 테크노크라트 출신답게-착 가라앉아 있었으며 사무적이었다.

"밀러 동지, 보고를 시작해 주시오. 먼저 정확하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당신의 설명을 듣고 싶소.“


"GMT...로 어제 20시 경, 에... 그러니까 모스크바 시간으로 어제 23시 경, 무장한 3명의 사나이가 유고마셉스코예 석유 콤비나트의 중앙통제실에 침입하여 실로 가공할 만한 파괴공작을 했습니다. 신원이 판명된 자는 2명입니다. 악당 가운데 하나는 상근 전기기사입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은......"

밀러는 카드형 신분증명서를 주머니에서 꺼내어 테이블에 던졌다.


 "아제르바이잔 출신, 내무성 요원으로 근무했던 석유시설 엔지니어인 A. 이브라힘이었습니다. 그가 익힌 컴퓨터 컨트롤 시스템 지식을 통해 대화재를 발생시킨 것이 틀림없으며, 불은 그 지역에 불던 강풍을 만나 급속도로 확산했습니다. 화재가 발생하자 통제실이 침입당한 것을 알아차린 KGB 경비대원들이 즉각 응했습니다. 그들은 몇 분도 안 되어 반역자들을 처치했지만 정유시설과 유전 양쪽이 완전히 파괴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국방장관은 드러내놓고 눈가의 근육이 경련될 정도로 화를 내며 사진이 박힌 통행증을 들여다보며 투덜대듯 말했다.

"그래서, 이 고약한 아제르바이잔인 이슬람교도의 업무는 무엇이었소?"


"동지, 시베리아 유전에서의 업무는 꽤 까다로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쪽 부서에 인원을 충당하는 일 또한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저의 전임자는 바쿠 유전으로부터 숙련노동자를 모으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것이 실수였습니다. 지난해에 제가 제출한 최초의 권고가 그 정책의 변경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상기해 주십시오."


"우리들은 그 사실에 주목하고 있었소, 알렉세이 블라디미로비치."

서기장이 말했다.


"계속하시오."


"유감스럽게도 KGB 요원들이 악당들의 진입을 막을 만 했던 초소는 규정대로 통제실 건물과 KGB 경비대 건물에 인접해 있지 않았습니다. 6년 전에 서방으로부터 컴퓨터 컨트롤 장치를 새로 수입했을 때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현재의 통제실 건물이 세워졌던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원래 있던 곳에 박혀있던 중앙통제실 경비 초소는... 그래서 통제실에서도, 시설 입구에서도 제법 떨어져 있던 곳이었던 것입니다. 2년 전에 그 문제가 지적되었고, 초소를 새로 건축하기로 하여 적당한 자재가 할당되었지만 그 건축자재는 콤비나트 소장과 지방 당 서기장이 수킬로미터 떨어진 강가에 별장을 세울 목적으로 착복했습니다. 그 두 사람 모두 국가에 대한 범죄혐의로 체포하도록 조치했습니다."


침묵 속에서 그 두 사람은 이미 사형이 확정된 셈이었다. 형식적 절차는 합당한 선에서 갖출 것이다.


"하지만 놈들이 컨트롤 자치를 몽땅 파괴한 뒤였기 때문에 KGB 요원이 엔지니어를 데리고 갔더라도 아무것도 구하지 못했을 겁니다. KGB 대원들은 건물로부터 대피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런 다음 건물은 불타고 말았습니다. 속수무책이었던 것입니다."

밀러는 온통 화상을 입은 얼굴에 눈물을 흘리던 상사의 얼굴을 상기했다.


"소방대는 어떻게 되었소?"

서기장이 물었다.


"화재와의 싸움으로 절반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밀러가 대답했다.


"그밖에 콤비나트를 구하는 싸움에 참가한 인민들도 1백 명 정도 사망했고......"

실내의 조용한 분위기가 한동안 이어졌다. 밀러는 이런 조용한 분위기에 놀랐다. 그들은 이미 회합을 개최하고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마친 듯이 보였다.


"테러범인 아부 이브라힘은 지식이 훌륭하고 충성심이 강하다고 평가되어 특별 훈련을 받아 NVD에 선발된 아제르바이잔인입니다. 모스크바 대학 시절 우등생이었으며 지방 당에서도 평판이 좋은 당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엉뚱한 배신행위를 할 수도 있는 종교적 광신자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통제실에서 살해당한 자는 모두 그의 동료들인 셈입니다. 그는 입당한 지 15년 됐으며 상당한 급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동료로부터는 전문적 능력을 존경받았으며 자가용까지 지닌 신분이었는데, 마지막 말은 알라에 대한 절규였다고 합니다."


"그 지역 사람들은 완전히 믿을 수 없다. 아제르바이잔인이 다 그렇지 뭐."

국방장관이 끄덕였다.


"그건 그렇다치고, 이번 화재가 석유생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요?"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절반 정도가 밀러의 대답을 듣기 위해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정확하게 산출할 수는 없습니다만 적게 잡아도 1년, 아마 3년간은 우리나라 전체 원유생산량 가운데 34퍼센트를 잃게 됩니다. 게다가 시베리아의 석유는 '유황가루를 포함한' 원유입니다. 거기에 반해 사고가 터진 이곳의 원유는 가장 귀중한 휘발유나 등유, 디젤유 등을 만들 수 있는 성분을 상당히 많이 함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 분야에 있어서 손해는 에... 어쩌면...”

밀러는 자기가 비행기에서 계산한 알아볼 수 없는 글씨를 읽어나가고 있었다. 


“우리나라 전체 휘발유 생산의 44퍼센트, 등유의 48퍼센트, 그리고 디젤유의 50퍼센트에 달하는 겁니다.”

밀러는 메모로부터 얼굴을 들었다. 회의실 안의 사람들은 모두 넋을 잃은 듯이 굳어져 있었다.


"절반이라는 말이오?"

서기장이 조용히 물었다.


"그렇습니다."

밀러가 대답했다.


"복구하는 데는 얼마나 걸리겠소?"


"서기장님, 모든 굴삭기와 자원을 투입하여 24시간 계속 가동시킨다고 가정할 때 1년 안에 생산을 회복시킬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완전히 복구하기까지는 다시 2년이 걸릴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작업을 추진하면서 EOR 시스템도 교환해야만......"


"EOR 시스템이란 뭘 말하는 것이오?"

국방장관이 물었다.


"3차 채취 시스템을 말하는 겁니다, 장관님. 우리는 그 시스템을 통해 생산량을 증대시키려 유정에 물이나 계면활성제를 펌프로 주입해 왔습니다. 그것은 석유를 더욱 잘 나오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번 화재에서는 전력이 끊어지자 원유를 지하에서 밀어낼 힘이 없어져 원유 분출이 중지되었기 때문에 불이 급속히 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화재가 빨리 끊겼으니 잘된 일 아니오? 무엇이 문제라는 말입니까, 동지?"

내무장관이 물었고, 몇몇 사람들이 다시 머리를 끄덕였다.


"지하의 원유가 소실되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원유를 밀어올리는 힘이 부족해 EOR 시스템의 재설치 없이는 앞으로 3년 후에도 생산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정치국원들의 얼굴이 굳었다. 더러 얼굴을 손에 가져다 대고 한숨을 내쉬는 사람도 있었다.


"여러분, 이 화재가 우리나라 경제에 전례없는 영향을 끼치게 될 대재앙이라는 사실은 확인하셨을 겁니다."

서기장이 일어섰다.


"나는 여러분들이 이런 것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고픈 배를 부둥켜안고 추위에 떠는 사람들 가슴 속에서 사회주의의 연대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인민들은 시베리아 숲속에 배치된 탄도미사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인가? 매년 생산되는 몇천 대의 T-80 전차는? 그들은 살류트 우주정거장이 궤도비행하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자랑스러워 할 것인가, 혹은 엘리트가 어떤 음식을 먹고 있는지 궁금해 할 것인가. 그렇다면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될 것입니까? 58년 전, 제정 러시아가 붕괴할 때, 그 악독한 니콜라이 2세는 이것을 알지 못했을 겁니다."


"석유를 좀 더 획득해야 합니다. 간단명료한 일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경제는 파탄나고, 인민은 굶게 되며, 서방에 맞설 우리와 동맹국의 장대한 국방력은 약해집니다. 그런 결과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국방장관이 말했다. 정치국원들의 눈길이 그에게로 쏠렸다.


"우리들은 석유를 구입할 외화가 없지 않습니까?"

한 젊은 정치국원 후보가 지적했다.


"그렇다면 빼앗아야지."



[극지의 폭풍]

1부

1화 도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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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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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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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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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사냥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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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1화 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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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급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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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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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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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나이트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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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붉은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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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라인의 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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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사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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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사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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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1화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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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노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