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성배전쟁이 시작된지 사흘 째의 아침 오리에가 향한 곳은 미야마쵸 외곽의 숲이었다.
 흰색 니트 위에 청자켓을 걸치고 검은색 바지를 입은 그녀의 허리춤에는 평상시와 달리 한자루의 검이 메여있었다.
 이름이 없는 그 검이 집행자인 오리에의 손에 들어오고부터 베여 넘긴 사람이 아니 마술사였던 자가 몇인지는 더 이상 셀 수도 없었다.

 "동이 튼 순간 출발했는데 벌써 9시라니 엄청 걸리네"

 신토의 호텔부터 숲의 입구까지 보통 사람이라면 쉬지않고 걸어 3시간이 걸릴 거리에 있는 울창한 숲지대.
 그 곳을 단 1시간만에 걸어온 오리에는 숲의 결계를 해제하는데 또 1시간의 시간을 허비해 9시가 되어서야 숲에 들어섰다.

 "이중결계인가. 꽤나 신경 좀 썼네. 어라?"

 중간쯤 걸어가다가 발견한 결계를 해제할 생각에 조금이지만 짜증이 나려고 했던 오리에였다.
 그런 그녀의 기분을 파악한 것일까, 숲의 주인은 그 결계를 해제했다.

 "헤에, 들어오란 소립니까? 뭐, 시간낭비 하지 않아도 되어서 고맙네요"

 오리에는 나무가 무성한 숲을 걸어나간다.
 대기의 마력 농도는 너무나도 짙었다.


 ◇


 해가 쨍쨍한 아침이라고 하기엔 좀 늦은 오전 11시경 토오사카 저택의 벨이 울렸다.
 토오사카의 저택에 사는 사람은 본래 5년전부터 토오사카 엔 한명일터이나 집 안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두명의 것이었다.
 거실에는 홍차 두잔과 여러 과자봉투들이 놓여있었다.

 "어라? 누구지? 랜서, 잠시만 기다려. 금방 갔다올테니까 다 먹으면 안돼. 닭[Gallo]녀석이 보내온 희귀한거란 말야"

 빨간색을 좋아하는지 몸 부분은 흰색에 팔 부분이 빨간색인 나그랑티에 빨간 면바지를 입고 있는 엔이 벨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가기 전 과자를 하나 집어들며 말했다.

 "뭐든지 빠른 사람의 것이라 하지 않나. 늦으면 얄짤없다, 엔. 빨리 돌아오도록 해라"

 경쟁을 좋아하는 남자는 간식에서도 그 긴장을 놓지 않은 듯 하다.
 그러나 상대가 없어서야 재미도 없는 법.
 말은 야박했지만 엔을 기다리는 랜서였다.

 "누구세요?"

 문을 연 엔의 앞에는 한명의 외국인 여성이 서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금빛 머리칼을 앞머리를 남긴채 뒤로 넘겨 머리끈 하나로 묶었으며, 갈색 자켓을 입고 청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흰색 머플러를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단화를 신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키는 엔과 비슷했다.

 "누구...?"

 "하이. 너가 토오사카 엔?"

 외국인 여성이 영어로 질문하자 엔은 한순간 벙 떴지만 순식간에 머리의 회로를 바꿨는지 영어로 대답했다.

 "아.. 아 네, 그런데요. 누구시죠?"

 "맞게 찾아왔네. 그런데 일본에선 누군가가 방문하면 차를 내온다고 들었는데 나 안 들여보내줘?"

 꽤나 유창한 영어의 대답을 한 엔.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어째선지 유창한 일본어였다.
 엔은 또 다시 당황했지만 이내 질문에 대답했다.

 "엥? 아- 네, 들어오세요"

 얼떨결에 여성을 불러들인 엔은 거실까지 안내했다.
 거기엔 꽤나 맘에 들었는지 따뜻한 실내에서도 표범무늬의 자켓을 입고있는 적발의 남자가 앉아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꽤 이상한 표범무늬 자켓이나 오른손에 들려있는 홍차잔이 아닌, 왼손에 들려있는 황금의 창이었다.

 "아! 잊고있었다! 랜서, 창 숨겨! 창!"

 손님을 들여보내고 나서 깨달았는지 엔이 뛰어들어오며 말했다.
 그러나 그 때엔 이미 늦어 그것을 본 여성의 손님은 웃으며 말했다.

 "이미 늦었어, 바보. 숨길 생각이 있는건지 모르겠네"

 그에 랜서는 손에 든 홍차를 한모금 마시더니 내방한 여성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후에 뛰어들어온 엔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배짱이 있는건지 멍청한건지 모르겠군, 엔. 적의 마스터를 들여보내다니"

 "분명 후자 아니야?"

 여자가 입고 있던 자켓을 벗어 옷걸이를 찾아 돌아다니며 마치 방금까지 대화하고 있었던 사람 마냥 말했다.
 이에 랜서가 어이없는 듯 그녀를 쳐다보더니 다시 홍차에 눈을 돌리며 말했다.

 "뭐, 확실히 그렇다만. 서번트도 없이 적진에 들어올 녀석이 할 말은 아니군"

 "어머, 아처는 밖에 있는데 잘도 알아챘네? 랜서"

 엔은 긴장감 없이 홍차를 마시는 랜서와 적의 본거지에 왔다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편안하게 의자에 앉는 그녀를 보고 경악했다.

 "에... 그래서? 여기 찾아온 이유가 뭡니까? 아니 어..."

 "리노야, 리노 에델펠트. 이게 내 이름"

 "에델펠트?! 토오사카를 천적으로 생각한다는 핀란드의?"

 엔이 에델펠트라는 이름을 듣고 놀란 것은 당연했다.
 북유럽 핀란드의 마술사 명문인 에델펠트[Edelfelt].
 그들은 제 3차 성배전쟁에 두 명의 자매를 출전시켰다.
 그러나 그들 중 동생쪽이 토오사카의 후계자에게 반해 언니를 배반해 결국 성배전쟁에서 패배.
 그 후로 에델펠트는 토오사카를 천적으로 여긴 것이다.
 
 그러나 리노는 엔의 말을 듣고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바보네- 언제적 이야기를 하고 있는거야. 두 가문의 후계자가 결혼해서 애를 낳은게 벌써 26년 전이야"

 27년 전 리노 에델펠트의 부모인 에미야[衛宮]와 에델펠트는 결혼을 했다.
 그러나 에미야라는 성을 가진 남자쪽은 사실 토오사카의 후계를 토오사카 사쿠라[遠阪桜]의 아이에게 넘긴 후에 가진 토오사카 린[遠阪凛]과 에미야 시로[衛宮士郎] 사이의 아들이다.
 물론 그들의 결혼을 반대했던 자들은 많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그들의 모친인 토오사카 린과 루비아젤리타 에델펠트[Luviagelita Edelfelt]의 반대가 심했지만 정의의 사자, 에미야 시로의 설득으로 어떻게든 평화적으로 해결되었다.
 그리하여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에미야와 에델펠트가 맺어짐으로써 두 가문은 평화를 체결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그녀, 리노 에델펠트다.
 그녀는 본래 시계탑에 유학 중인 몸이다.
 그러나 에미야 시로로부터 성배전쟁에 대해 듣고 휴학계를 내고 후유키시로 날아왔다.
 그녀는 생각한 것을 바로 실천하는 타입으로 어떻게 보자면 엔과 같은 타입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토오사카 엔이 아무 생각 없이 떠오르는 착상으로만 행동하는 반면 그녀, 리노 에델펠트는 계획을 세워 그것이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정해질 때만 행동한다는 것이다.

 "응? 잠깐 그럼 뭐야"

 "뭐기는. 그쪽과 내가 육촌이란거지"

 담담하게 사실을 전하는 리노의 말에 엔은 놀라며 말했다.

 "잠깐! 그럼 그 마녀의 손녀란거야?!"

 엔이 마녀라 칭하는 사람은 딱히 말해주지 않아도 되겠지.

 "마녀라니 너무하네 일러바친다?"

 엔의 말에 리노는 당장이라도 전화라도 하려는 듯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것을 보고 덜덜 떠는 엔.
 그에 리노는 엔을 바라보며 웃다가 웃음이 그칠 때 쯤 과자를 먹고 있는 랜서쪽을 바라보았다.

 "아- 웃었다. 참, 그래서 이야기가 잠시 빗나갔는데 다시 돌아와서 단도직입으로 묻겠는데 버서커를 잡는데 협력하지 않겠어? 랜서"

 리노의 말을 들은 랜서는 과자를 집어 들던 손을 내려 과자를 내려놓더니 리노를 쳐다보았다.
 그의 빨간 눈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불태울 듯 뜨거웠다.
 그 눈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면서도 대답을 바라는 듯 웃는 리노를 향해 입을 열었다.

 "흥, 목숨을 한번 구해준 대가로 협력하라는 것인가?"

 "아니, 잠깐 기다려. 랜-"

 랜서가 당장이라도 공격할 듯이 리노를 쳐다보자 말리려는 엔을 무시하고 리노는 입을 열었다.

 "에에, 뭐 말하자면 그런거지"

 리노를 무서운 기세로 쳐다보던 랜서는 겁먹지 않는 리노가 재미없다는 듯 다시 시선을 홍차로 돌렸다.
 그러더니 홍차를 마시고 잔을 내려놓더니 리노를 바라보았다.

 "거절하지. 아처의 마스터여"

 "에엣?! 어째서 거절하는거야, 랜서. 우리쪽에선 좋은-"

 랜서는 재차 끼어든 엔의 말을 잘라먹고 말을 이었다.

 "그 괴물녀석은 이 몸이 알아서 처리할테니 아처의 마스터 너희들의 협력따위 불필요하다. 하지만 뭐, 굳이 이쪽을 돕는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그럼 이 몸은 잠시 쉬도록 하지"

 그 말을 끝으로 랜서는 영체화하여 모습을 감췄다.
 그것은 아무래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랜서의 마지막 자존심인 듯 했다.

 "에, 뭐야? 츤데레?"

 "으악! 내 과자가! 랜서녀석 내꺼까지 다 먹다니! 하나 남았잖아!"

 랜서의 반응에 놀란 리노가 엔의 큰 소리에 과자가 놓여져 있던 식탁을 보았다.
 거기엔 비어있는 홍차잔과 외국의 과자인 듯한 과자가 하나 남아있었다.
 리노는 그것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손을 뻗어 마지막 과자를 집어들더니 자신의 입에 넣었다.
 그 후에 토오사카 저택에서 들린 괴성은 누구의 것인지 말할 필요도 없겠지.


 ◇


 태양의 위치가 정오를 알리는 시각에 숲을 벗어나자 그곳에는 하나의 성이 있었다.
 그 성은 동화 속 이야기에서나 나올 법한 거대한 고성이었다.
 주변의 풍경과는 이질인 그것은 독일에서 직접 땅을 포함해 통째로 떼어내온 것이다.

 "우와, 엘멜로이 할아범한테 들었지만 이거 진짜 장난 아니잖아"

 오리에는 두리번 거리며 성의 입구를 찾아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시죠? 협회의 마술사가 이런 곳까지"

 문을 열고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성의 크기에 맞게 넓은 홀과 높은 천장이었다.
 거대한 샹들리에가 메달린 천장의 아래에 한 소녀가 서 있었다.
 하얀 드레스와 같은 옷 입은 소녀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백발의 생머리에 그 피부는 머리색과 같이 하얬으나 눈동자만은 피와 같이 새빨간색이었다.

 "아, 당신이 버서커의 마스터, 레이야스필 폰 아인츠베른이죠?"

 오리에는 가녀린 그녀를 보고 잠시 정신이 팔렸었다.
 그러다 이내 제정신을 찾았는지 확인하듯 물었고 이에 소녀는 대답했다.

 "이미 알고 찾아온게 아닙니까? 카라코우지 오리에"

 "헤에- 내 이름도 알고 있군요. 시계탑놈들은 정보관리를 어떻게 하는건지"

 소녀는 오리에의 이름을 알고있었다.
 이에 오리에가 가볍게 런던의 시계탑을 비난하자 어째선지 그녀가 그들을 감쌌다.

 "그들을 탓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쪽의 정보탐색자가 뛰어났을 뿐입니다"

 "아, 그래?"

 그러면서 이어지는 탐색자에 대한 이야기에 오리에는 어찌됐든 좋다는 듯 대답했다.
 그러나 오리에의 말투에서 아무것도 읽어내지 못했는지 소녀는 그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네, 그라면 분명 시계탑의 지하, 거울의 방에 갇힌 굴절[屈折]이라도 꺼내오겠죠"

 자랑하는 듯 하면서도 무표정하게 말하는 소녀였다.
 오리에는 간접적인 어투가 나빴다고 생각했는지 직접적으로 말을 꺼냈다.

 "에- 그런건 어찌됐든 좋아요, 레이야"

 "레이야?"

 이상한 듯이 되묻는 그녀를 보고 오리에는 말을 이었다.

 "응? 이름이 길어서 줄였는데 기분 나쁜가요? 그러면-"

 오리에는 초면에 그녀의 이름을 줄여부른 것에 맘이 상했다고 생각했는지 정정하려고 했다.
 그러자 소녀는 오리에의 말을 도중에 끊었다.

 "아뇨, 그렇게 불린 적이 없어서 저를 부르는거라고 생각치 못했습니다. 레이야... 나쁘지 않네요"

 무표정하게 대답한 그녀는 맘에 들었는지 몇번이고 자신의 이름을 되뇌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지켜보던 오리에가 입을 열었다.

 "여기에 온것은 다름이 아니라 협력을 요청하러 왔어요"

 "협력입니까?"

 소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무표정으로 되묻자 오리에는 미소지었다.

 "네. 이쪽이 도움을 줄테니 함께 세이버를 쓰러뜨리지 않겠습니까?"


 ◇


 태양이 쨍쨍한 오후 3시 경, 신토의 어딘가의 방에서 두명의 남자가 마주보고 있었다.

 "무슨 일로 찾아왔습니까?"

 주인인 듯한 남자가 내방자를 향해 물었다.
 주인이 내뿜는 분위기로 봐서 내방자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인 듯 하였다.
 그 손님은 주인보단 약간 작은 키지만 꽤 큰 편에 속했으며 양복을 입고 있었다.

 "오호호호, 숨길 것은 없습니다, 어쌔신의 마스터. 모든 것을 알고 왔으니까요"

 "흠, 그런가. 그렇다면 다시 묻도록 하지. 무슨 일로 찾아왔나? 캐스터"

 캐스터가 웃으면서 말하자 주인은 약간 곤란한 듯이 되물었다.

 "심판역의 교회측 인물이 마스터라니 웃기는군요. 아, 그런것보다 용무였죠? 그렇군요, 어디서부터 이야기하면 될까요..."

 어쌔신의 마스터라 불린 남성은 신부복을 입고 있었다.
 그의 머리색은 자신의 신앙심과 같은 청렴한 백색으로 그 모양은 앞머리만을 제외하고 나머지 머리는 위로 올린듯 삐죽삐죽했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나쁘진 않다만 이왕이면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주면 감사하겠다. 다른 참가자한테 들키는건 꽤나 곤란해서 말이지"

 신부는 캐스터의 말이 길어질 것 같은지 미리 차단했다.
 이에 캐스터는 조롱하 듯 말하며, 반 정도 협박과 같은 소리를 꺼냈다.

 "오, 그랬습니다. 일단은 숨기고 있는거죠. 그렇다면 간단히 말하도록 하죠. 신부씨는 버서커가 쓰러져서는 곤란하겠죠?"

 버서커의 마스터와 협력관계라는 것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캐스터가 이를 입에 담았다.
 그러자 신부는 살짝 놀라는 듯 하더니 이내 신부 특유의 압도적인 분위기가 한층 짙어졌다.

 "호오, 어디까지 알고 있는가, 캐스터. 여차하면 여기서 쓰러져 주지 않으면 안되겠는데"

 주변의 공기를 짓누르는 압력.
 상대를 쳐다보는 것만으로 압도하는 시선.
 일반인이었으면 그 분위기에 눌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 터이나 썩어도 서번트인지 캐스터는 아무런 저항이 없었다.

 "그건 곤란하군요. 제가 쓰러지면 저의 마스터가 버서커를 쓰러뜨리고 신부씨의 승리는 막히게됩니다만, 제가 여기서 살아돌아간다면 신부씨가 이길 가능성이 높아질거라고요?"

 "흐음, 미래라도 보는 듯이 말하는군, 좋다. 이야기가 벗어났다만 용건을 듣도록 하지"

 캐스터는 자칫하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태연히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신부는 여기서 캐스터를 쓰러뜨리는 것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정했다.

 "뭐어,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이쪽에서 버서커를 도와 세이버를 처리할테니, 세이버가 쓰러질 때까지 어쌔신이 저와 마스터를 공격하지 않기를 부탁하는겁니다. 어때요? 간단하지 않습니까?"

 캐스터의 제안은 자신의 말대로 간단했다.
 세이버를 쓰러뜨리는 데에 도움을 줄테니 자신들을 공격하지 말라.
 어찌보면 캐스터의 도움 없이도 세이버를 쓰러뜨리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되었지만--

 "뭐, 좋겠지. 허나, 그쪽이 도와줄 수 있는게 무엇이 있지?"

 신부는 흔쾌히 그것을 승낙했다.
 이에 캐스터는 웃으며 말했다.

 "오호호호호, 그건 버서커측에 묻는게 어떨까요? 지금쯤 제 마스터가 그쪽에 가있을테니. 그럼, 승낙했다고 알고 돌아가보도록 하죠. 부디 최후까지 남기를 기대하도록 하죠. 코토미네신부"

 캐스터는 마지막 말을 뒤로 하고 응접실을 나갔다.
 그런데 캐스터의 말의 어디가 웃겼는지 신부는 미소를 띄운다.
 그대로 교회를 빠져 나오자 들어설 때와는 달리 하늘은 어둑어둑했다.
 캐스터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자신에게만 보이는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그 결과가 좋았는지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이걸로 일단 마스터가 어쌔신에게 죽는 것은 면했습니다만,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지 걱정이로군요. 오호호호, 뭐- 어떻게든 되겠죠?"

 하늘을 바라보던 캐스터는 시선을 내려 근처 나무 숲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영체화하여 그 자리에서 이동했다.
 그가 바라보던 곳에는 한마리의 새가 앉아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


 방금 전 캐스터가 나선 응집실에는 신부 혼자만이 남아있었다.

 "어쌔신"

 "네"

 신부의 말에 한 남성이 나타났다.
 161cm의 그는 군복을 입고 있었고 얼굴엔 하얀 가면을 쓰고 있었으며 머리엔 군모를 쓰고 있었다.
 그는 그 군복의 두께로 보아 한랭지역의 군인으로 생각된다.

 "지금 즉시 아인츠베른 성으로 향해 캐스터의 마스터를 확인하고 보고하라"

 "네, 알겠습니다"

 신부의 말을 들은 어쌔신은 그 자리에서 영체화하여 모습을 감췄다.
 어쌔신이 사라진 후 신부는 방금 전 대화를 나누었던 캐스터에 대해 생각했다.

 '캐스터인가... 무엇을 꾸미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쪽의 움직임을 파악하는건 분명하다. 지금부터라도 조심해서 움직이지 않으면 안되겠군'

 신부는 두 눈을 감고 생각에 빠졌다.


 ◇


 마토우 저택의 거실, 안 그래도 햇볕이 적게 들어오는 마토우의 집안은 해가 구름에 가려진 오늘 같은 날은 너무나도 어두웠다.
 그 중앙에 있는 소파에 검은색 터틀넥에 검은 바지를 입은 소우가 앉아 중얼거렸다.

 "캐스터의 마스터는 신부인가"

 그 중얼거림에 소우의 머리 속에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 심판역이 전쟁에 참가했나. 그녀석도 꽤나 물불을 가리지 않는 타입인가 보군'

 모습이 보이지 않는 목소리의 주인은 놀라는 기색 하나 없었다.
 그것은 소우도 마찬가지였다.
 소우가 처음 그 자를 교회에서 마주한 것을 1년 전.
 이번 성배전쟁의 준비로 교회에서 파견되었다는 그를 처음 보았을 때, 소우는 압도적인 위압감과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꼈다.
 그것은 자신에게 있어 독이 될 것이라 판단한 소우는 그 뒤로 그 자를 만나는 것은 적극적으로 피하고 성배전쟁이 개시하기 전부터 교회에 사역마를 하나 심어두었다.
 그리고 결국 오늘 그의 부정이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부정이든 뭐든 그런 것은 어찌됐든 상관없다는 듯, 어찌할 것인지를 묻는 세이버에 소우가 입을 열었다.

 "아직이다. 때를 기다린다"

 세이버는 부정을 싫어하는 소우가 당장이라도 공격에 나설거라 생각했는지 의아해했지만, 반면에 지금까지의 싸움을 보고 철저하게 이길 때를 기다리는 것이, 이 남자라고 이해했다.


 ◇


 태양이 구름에 가려 어두컴컴해, 밤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그 어두운 공간에 빛이 켜진 성이 있었다.
 성의 응접실인 듯한 곳에 그녀는 혼자 앉아있었다.
 오리에가 이 성을 나선 지 3시간이 지나 숲을 빠져나간 것을 지켜보고 나서야 실체화해 모습을 나타냈다.

 "그녀는 꽤나 재밌는 사람이었더군. 너는 감정이 없다고 들었는데 그렇지도 않았나 봐?"

 오리에와 대화하는 그녀는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만 보였던 그녀의 표정과는 달라보였다.
 역시 마력패스가 연결되면서 무언가가 잘못되어 자신에게만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가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를 본 당신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죠. 제가 제 얼굴을 보고 있지는 않으니까요"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이 잠깐이나마 미소지어 보인 듯 했다.
 이상하다.
 소환된 순간, 분명 무언가가 잘못된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감정이 없다는 그녀가 웃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의 행동에서 더 이상 그녀가 단순한 인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더라도 그녀와 내 사이에 무언가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도중 그녀의 손에 든 것이 눈에 띄었다.

 "그녀가 준 건 뭐지?"

 방금 전 아니, 방금 전이라기엔 3시간이나 전에 왔던 캐스터의 마스터라는 자.
 협력을 구하던 자가 그녀에게 주고 간 것이 신경쓰여 앉아있는 그녀의 손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그것은 내부에 물이 흐르는 듯한 움직임이 있어 당장이라도 흘러내릴 듯한 붉은색의 돌이었다.

 "당신이라면 기뻐하겠군요. 현자의 돌이란 모양입니다"

 그녀의 말에는 놀랐다는 것을 숨기지도 못할 정도로 놀랐다.
 연금술사들의 영원한 과제인 현자의 돌.
 그것은 끝을 이루지 못한 자에게 있어 달성해야 할 목표인 것이다.

 "설마 성배에 불사의 육체를 얻어 이루고자 했던 결과물이 전쟁 도중에 손에 들어오게 될 줄이야. 진짜의 캐스터는 그 끝에 도달했다는 것인가"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목표에 도달한 캐스터가 부러운 듯, 도중에 실패해 괴물이 된 것을 자조하는 듯 말해버렸다.
 그에 그녀는 돌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았다.

 "역시 캐스터가 부러운가요?"

 속마음을 읽어낸 것일까, 아니면 역시 말투에 속마음이 묻어난걸까, 자신의 속내를 알아차린 그녀에게 변명하듯 말했다.

 "아니, 성배를 손에 넣으면 될 뿐이다. 남의 성공 따위 부러워해도 의미가 없지"

 아니다.
 거짓말인 것이 당연하다.
 남의 성공이 부럽지 않을 리가 없다.
 가능하다면 그 자의 가죽을 써 그가 되고 싶을 정도.
 그러나 그녀가 말한 다음의 말에, 모든 것은 눈 녹 듯 사라졌다.

 "그런가요. 사실 저로써는 다행이에요. 만약 당신이 성공했으면 나는 당신과 만날 일이 없었을테니. 그렇다면 저는 진짜의 괴물을 소환해 이 넓은 성에 저 하나였겠죠?"

 아아, 눈이 부시다.
 그 때와 같다.
 그 때도 지금과 같이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이 내리는 밤, 소환되어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와 같이, 여기를 바라보며 말하는 그녀가 너무나도 눈이 부시다.
 아마 천장에서 빛나는 저 조명의 탓이겠지.
 그래, 분명 빛이 안경에 반사된 탓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녀와 내 사이에 무언가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


 아인츠베른 성의 숲에서 빠져나와 호텔에 도착한 오리에는 세이버의 위치를 찾으려고 모니터룸에 들어갔다.
 거기에는 그녀를 기다렸다는 듯 캐스터가 앉아있었다.

 "늦었네요, 미스 카라코우지. 이야기는 잘 마쳤습니까?"

 "네, 버서커 측에서 거절할 이유는 없겠죠. 어차피 언젠가는 쓰러뜨릴 적을 처리하는데 현자의 돌이 하나 공짜로 들어오는 것이니까"

 오리에가 말하듯 버서커와 레이야스필의 입장에선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결국 언젠가는 쓰러뜨릴 적을 현자의 돌을 받는 조건으로 먼저 쓰러뜨릴 뿐.
 그걸 미리 생각했던 오리에이기에 단신으로 성에 쳐들어간 것이다.

 "사실 버서커가 낮이 되면 단순한 마술사라는 점이 컸지만 말이죠"

 위험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만약 버서커가 밤의 모습인 괴물인 자체였다면 성까지 들어갔을 리가 없었을 터.

 "세이버가 쓰러지면 행동에 나설겁니까? 미스 카라코우지"

 캐스터의 말에 답은 정해져있다는 듯 말했다.

 "네, 현자의 돌도 완성되었겠다, 어쌔신의 동향만 파악하면서 움직이면 적 마스터들을 쓰러뜨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죠"

 레이야스필에게 현자의 돌을 건내주었던 오리에지만 책상의 위에는 또 하나의 돌이 있었다.
 레이야스필에게 전한 것은 캐스터를 소환할 성유물로써 사용했던 것이고,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은 본래 캐스터가 소유하고 있던 현자의 돌.
 그것은 마법을 일으킬 정도의 질 높은 마력의 덩어리였다.

 "그보다도 꽤나 즐겁게 보였습니다만, 재미있었습니까?"

 캐스터의 물음에 오리에는 이해가 안된다는 듯 말했다.

 "뭐가 말이죠?"

 "버서커의 마스터말입니다, 미스 카라코우지. 저랑 이야기할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습니다만. 그렇네요, 친구, 와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캐스터의 말에 오리에는 어이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하아? 그야 당신은 이상한 말만 하니까. 레이야는 이쪽의 이야기를 거의 듣고만 있으니까 편하다고. 당신과는 달리 말이지"

 "오호호호, 그렇습니까? 이야, 다행이네요. 만약 버서커가 쓰러지면 그녀를 구하러 나간다든가 하는 일은 없겠군요"

 "아니 당연하잖아, 그런거. 내가 남을 챙길 사람으로 보이는거야?"

 그 말을 끝으로 오리에는 모니터에 눈을 고정해 세이버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에 선 캐스터는 자신만이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신의 말대로 되면 좋을텐데 말이죠, 미스 카라코우지"


 ◇


 태양이 사라져 어두운 밤하늘엔 새까만 구름이 몰려들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새하얀 눈을 지상에 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내려 쌓여야 할 눈을 지상에 떨어지기 전에 가로채는 자가 하나.
 그 옆에 검은색 와이셔츠와 두꺼운 청바지를 입고 그 위에 무릎까지 오는 쥐색의 코트를 입은 자가 한명.
 그 자는 동행자에게 뭔가에 불만이 있는지 연신 욕을 내뱉었다.

 "Fuck! 이 후의 상황에 대해 아무 대처도 없는데 이 따위 눈에 놀고 있을 때냐, 라이더"

 로우의 욕을 듣는건지 마는건지 하늘에서 내리는 눈에 심취해 있는 라이더.
 마치 광륜거에 눈사람이라도 만들 기세였다.
 로우가 이를 입으로 내뱉자 라이더는 좋은 생각이라는 듯 말했다.

 "광륜거에 눈 집이라도 만들까? 마스터여. 눈집이 의외로 따뜻하다는 지식이 있는데"

 라이더의 멍청한 말에 로우는 포기했는지.

"아아, 그러십니까? 맘대로 하세요, Fucking 공주"

 그리고 라이더는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는지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로우에게 있어선 다행이겠지.
 어딘가에서 마력의 방출이 느껴졌다.

 "서번트인가. 라이더, 가겠어"

 로우의 말에 라이더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흠, 어차피 가도 하는건 구경 뿐일텐데 눈 집이나-"

 "Fuck! 바보같은 소리는 집어치워라, 라이더. 눈집 같은건 성배전쟁이 끝나고 나서라도 만들어라! 알아들었으면 출발해"

 "오오! 그러면 같이 만들기다, 마스터여"

 "Fuck, 좋을대로 해라"

 로우는 라이더의 어처구니없는 말에 어이가 없었으나, 어찌됐든 이리하여 라이더와 로우가 탄 광륜거는 마력을 방출하는 서번트가 있는 장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