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추운 겨울 아침 전철에서 내린 사람들은 시간에 쫒기듯 바쁘게 개찰구로 걸어나간다.
 그 사이에 외국에서 온 듯한 한쌍의 커플이 있었다.
 두 사람은 긴 백발의 머리카락에 붉은 눈을 하고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남자는 머리를 묶고 안경을 쓰고 있었으며, 여성의 새하얀 피부와는 정반대로 그의 피부는 햇볕에 그을린 듯 갈색을 띄고 있었다.
 소녀의 부친으로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닌, 큰 키의 그는 춥지도 않은지 겨울에 맞지않게 옅은 갈색의 와이셔츠에 단추가 달린 진한 갈색의 조끼와 그와 같은 색의 바지를 입고 있었다.

 "여기가 성배전쟁의 도시입니까. 일단은 교회로군요"

 여자는 역에 있는 안내 지도를 바라보며 한 곳을 손으로 집으며 말했다.
 여기로부터 동남쪽에 위치한 곳, 즉 교회가 있는 곳이었다.
 그러자 남자가 싫다는 감정을 감출 생각이 없는지 대놓고 싫다, 라는 식으로 말했다.

 "으- 하필 손 잡은게 교회라니. 날 넘기기라도 할 생각은 아니겠지?"

 "그렇군요, 당신은 이단이었습니다. 거기까진 생각치 못했습니다"

 남자의 우울한 듯한 말에 여자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무표정하게 말했다.
 그러나 남자는 그녀의 말의 어딘가에서 분명한 미안함을 읽어낼 수 있었다.

 "아아, 알고있어. 조금 비아냥 거렸을 뿐이니까 신경 쓸거없어"

 "교회에는 들어오지않아도 좋아요. 밖에서 기다리도록 하세요"

 당주에게 그녀가 감정이 없다고 들었던 그는 꽤 이상히 여겼다.
 그러나 감정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마력패스가 연결된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사소한 것이라 여겨 생각치 않기로 했다.

 "아니- 협력자의 얼굴 정도는 봐두는 편이 좋겠지"

 "본다고 달라질건 없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이 좋을대로 하세요"

 겨울의 땅에서 온 두명의 마술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 교회로 향했다.


 ◇


 같은 시각 학교의 등교길, 한 소년이 학원으로 향하는 비탈을 오르고 있었다.
 소년의 이름은 마토우 신이치.
 그는 현재 호무라바라[穂群原] 학원에 재적 중이다.
 이 길을 오르는 것은 언제나 같은 시각.
 그리고 언제나와 같이 등 뒤에서 그를 부르는 남자가 하나.

 "여어, 오늘도 제 시간이구나, 신이치"

 말과 동시에 어느새 신이치의 옆에 나란히 서 있는 남자.
 그는 신이치보다 큰 키의 건장한 소년이었다.
 신이치는 예상했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라이가야말로 딱 맞춰서 왔네"

 주황머리의 그의 이름은 후지무라 라이가[藤村頼雅].
 신이치와는 어울릴거 같지 않은 그는 전교생 모두가 아는 후지무라구미[組]의 후계이다.
 양지에서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이 경관이라면, 음지에서 그들만의 법과 질서를 지켜 마을을 지키는 것이 후지무라구미.
 그런 탓인지 야쿠자임에도 분명하고 후지무라 라이가는 남녀 모두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일반적인 사람은 흥미가 끌리지 않는다는 모양이지만, 어째선지 마토우 신이치는 보자마자 자신의 마음에 들어 먼저 말을 걸어왔었다.
 별 내용도 없는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학교에 다다를 때 쯤, 사람에 흥미가 없는 라이가의 입에서 나올거라고 생각되지 않는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어제말야, 우리 할머니한테 어떤 여자가 찾아왔는데, 어째선지 모르겠지만 신이치 너와 같은 느낌이 들었단 말이지. 참 이상해"

 그 말에 신이치는 무언가가 신경쓰였는지 여자의 외형과 찾아온 이유에 대해 묻자 단순히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위해 묻는다고 생각한 라이가가 대답했다.

 "금발이었는데 묶고 있었지. 그 뭐냐, 포니테일? 이라고 하던가?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에미야저택 좀 빌려도 되느냐고 묻더라고. 그 왜, 그 일식 주택단지 맨 끝에 있는 집 말야"


 ◇


 미야마쵸의 상점가에 붉은 머리의 서양인이 걷고 있었다.
 그는 키 183cm의 꽤 건장한 사내로 주황색 바지와 하얀 티셔츠에 표범을 좋아하는지 표범무늬의 점퍼를 입고 있었다.

 "흠- 엔, 아까부터 이 몸을 쳐다보는 녀석들이 있다만"

 그가 말을 건낸 것은 옆에서 함께 걸어가는 동행인이었다.
 동행인은 말을 건 남자보다는 조금 작은 키의 동양인이었으며, 그는 자신의 검은 머리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지 꽤나 지저분했다.

 "응? 아아, 그야 뭐 애초에 서양식 저택이 지어질 정도로 외국인들이 많은 도시지만 너 같이 잘생긴 녀석은 본적이 없나보지 뭐"

 검은 머리의 동양인은 자신의 동행인의 외모가 눈에 띄어 눈길을 끈다고 생각했고---
 
 "그렇군. 그보다 어디로 가는건가? 아까부터 걷고만 있다만"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믿어버리는 서양인.
 국적과 연령 그리고 시대를 뛰어넘어 둘은 손색 없는 완벽한 파트너였다.

 "응? 아, 신토에. 심심할 땐 신토가 최고지!"

 신토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화제가 바뀌었다.

 "그보다 말야, 랜서. 넌 성배를 구하면 무슨 소원을 바랄거야?"

 "하! 바보 같은 놈! 남자라면 소원 따위는 직접 이루어라, 얼간이. 그런 얼토당토 않은 가짜 기적에 이 몸이 손을 댈꺼라 생각하는가"

 엔은 랜서의 말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서번트란 성배를 얻기 위해 성배전쟁에 소환되어 전쟁을 치루는 자.
 어찌 소원이 없는 자가 스스로 소환이 되길 바란 것인가.
 이에 대해 엔이 묻자 랜서는 당연하다는 듯 소리쳤다.

 "그야 당연히 싸우기 위해서지. 더 강한 녀석과 싸울 수 있다고 들었으니까 성배라는 시스템에 놀아나 줄 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딴 장난에 맞춰 줄 이유가 없지"

 단순히 강한 자와 싸우기 위해 소환되었다는 랜서.
 생애에 자신보다 강한 자가 없었던 그로써는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 뒤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둘은 신토로 향한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오는 여자가 한명.

 "......저 사람들은 뭘 태평히 놀고 있는거야"

 어쌔신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어쌔신이 올 듯한 장소를 찾아다니던 오리에가 미야마쵸로 왔다가 엔과 랜서를 발견한건 약 1시간 전, 뭔가를 건질 생각으로 미행해 30분이 경과할 때 쯤엔 무의미하단걸 알았음에도 무의미한 30분이 아까워 30분을 더 허비해버린 것이다.

 "쳇-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했네. 으으, 추워"

 더 이상 그들을 따라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해 오리에는 미행을 그만두고 자신의 길을 걸어---

 "어라? 저건 '아틀라스원'의 연금술사? 아니, 설마 잘못봤겠죠. 갑시다"

 어쌔신이 찾아 올 듯한 장소의 탐색에 나섰다.


 ◇


 태양이 뜨겁게 지상을 태우는 정오.
 외국인 묘지를 지나 언덕에 있는 교회의 문을 밀고 들어가자 그 안은 꽤나 한산했다.

 "이상하네요, 아무도 없군요"

 "뭐 신부라고 항상 밖에서 기다린다고 볼 수는 없지않나. 안 쪽에 들어가보자고"

 남자의 말에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교회의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누군가가 안쪽에서 나왔다.

 "그럴 필요는 없다. 여기서 하는 말은 의외로 안쪽까지 잘 들리니까 말이지" 

 안에서 나온 남성의 머리는 내방한 두명의 머리와 다르게 꽤나 짧았지만 그 색은 동일했다.
 그는 190cm에 달하는 엄청난 장신으로 신부복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과연 신부복을 입지 않았다면, 그 누가 그를 보고 신부라 생각하리오.
 남자가 풍기는 분위기는 상대를 압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옆에 있는자는 누구지 레이야스필?"

 레이야스필이라 불린 여성은 일반인이라면 자연히 느낄 그 공기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장로님으부터 못 들었습니까? 그가 이번 성배전쟁에 참가할 버서커입니다"

 여자의 말에 남자는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남자를 훑어본다.
 그가 보기에 그 남자는 늑대는 커녕 일반인보다도 약해보였다.
 서번트라기보다는 마스터에 가까워 보이는 그는 전사라기보다는 마술사 같아보였다.

 "이 자가 라이칸스로프라고? 이상하군. 아니면 소환 직전에 서번트를 바꾸었나? 그런 소식은 듣지 못했다만"

 "아뇨, 라이칸스로프가 맞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의 그는 라이콧 슬롯츠[Rycott Slots]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버서커 소개를"

 버서커라 불린 남자는 여자의 소리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야기는 마스터에게 맡기지. 교회놈은 질색이다. 게다가 적의를 드러내는 자를 마주할 이유는 없지. 서로 얼굴은 봐뒀으니 난 이곳을 벗어나도록 하지"

 그는 신부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렇지 않으면 교회자체가 싫은건지 싫어하는 티를 감출 생각 없이 말을 던지고는 그 모습을 감췄다.

 라이칸슬로프[Lycanthrope].
 그리스어의 늑대[Lycos]와 인간[Anthropos]의 합성어로 불리우는 말하자면 늑대인간이다.
 전설에 따르면 늑대인간이 되는 대표적인 방법은 거대한 늑대 또는 늑대인간에게 물리거나 마법사의 저주를 받아 변하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흑마술사가 자신의 의지나 마법의 도구를 이용해서 변하기도 하고, 바곳의 꽃을 먹거나, 늑대인간이 남기고 간 발자국에 고인 물을 마셔도 늑대인간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늑대인간이 된 사람은 손의 검지와 중지의 길이가 같고 손바닥에 털이 났으며, 눈썹이 갈매기 일자눈썹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진다.

 "뭐, 그런 관계로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라이칸스로프에 대해 전해지는 전설에도 있듯이 그는 원래 연금술사였다고 합니다. 그가 현자의 돌을 만들기 위해서 우선 불로불사의 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약을 만들어 마시자 괴물로 변해버렸고, 이를 본 사람들에 의해 소문이 퍼져나가 라이칸스로프라는 늑대인간이 탄생한 것입니다. 소환된 지금은 어째선지 낮에는 인간, 밤에는 늑대인간이 되더군요. 아무래도 역으로 전설에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여자의 말에 남자는 어이가 없었는지 살짝 웃음지었다.

 "이 세상의 모든 악(앙그라마이뉴)을 소환하려다가 인간을 소환해버린 그때와 같이 엉뚱한걸 소환해버렸다는건가? 역시 아하트옹, 운이 붙질 않는군"

 "네, 그 말대로 성에서 그가 소환되었을 당시 유브스탁하이트 대장로는 '아아! 이래서야 3번째 성배전쟁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성배는 포기한다. 지금부터 호문클루스의 기동을 정지할 준비에 착수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 기억에 장로님이 해서 원하는대로 되는것은 보질 못했기에 이 정도의 이상[異常]은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저에게 있어서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쓸데없이 아인츠베른의 당주를 떠올리게 하는 듯한 말에 덧붙여진 말엔 거짓 하나 없었다.
 유브스탁하이트 폰 아인츠베른이란 자는 어째선지 항상 자신이 원하는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자신이 참가한 세번째의 성배전쟁에선 '이 세상의 모든 악(앙그라마이뉴)'를 소환했으나 그것은 단순한 인간이었으며, 네번째의 성배전쟁에선 성배를 코 앞에 두고 이방의 마술사에게 배신을 당하고, 바로 직전의 다섯번째의 성배전쟁에서는 이질의 서번트에 의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탈락했던 것이다.
 사실 그러한 사실을 제외하더라도 여자는 거짓말이란 인간만의 것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그런가. 그렇다면 어차피 이번 전쟁으로 마지막이니 죽기살기로 힘쓰는것이 좋겠지, 레이야스필 폰 아인츠베른. 자, 따라 들어와라. 마스터들과 그 서번트들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도록 하겠다"

 "네, 감사합니다. 그러고보니 이름이 어떻게 됐었죠?"

 여자의 말에 신부는 무언가를 잠시 생각하더니--

 "응? 아아, 이름인가. 뭐, 일단 코토미네[言峰]라고 불러둬라"

 자신의 이름을 코토미네라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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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스        Berserker
마스터        레이야스필 폰 아인츠베른 Lëjasviel von Einzbern
진명        라이콧 슬롯츠 Rycott Slots
성별        남성
신장/체중    180cm/70kg
성향        혼돈 광
스테이터스    근력 E 내구 E 민첩 E 마력 B 행운 D 보구 B

클래스별 능력
광화 E-
-패러미터 보정이 전혀 없는 대신 이성을 지니고 있다.

보유 스킬
마술 A+
-생전에 마술을 사용했음을 나타내는 스킬. 라이콧 슬롯츠는 본래 뛰어난 마술사였기에 버서커임에도 불구하고 랭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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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을이 지는 시각, 미야마쵸 어느 일식 저택의 거실, 일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리노 에델펠트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리노는 채널을 수시로 바꾸며 중얼거렸다.

 "아아, 지루하네. 아처, 뭐 재미난 일 없을까?"

 그러다가 볼 것이 없어 질렸는지 멈춘 화면에는 신토의 한 호텔이 잡혀있었다.
 -어제밤 두명의 투숙객이 어지러움을 호소해......

 "어제보니 근처에 상점가가 있던데요. 심심하면 가보시는게 어떤가요? 마스터"

 아처의 성격 상 지루해하는 마스터의 모습을 보기 힘들었는지 리노를 권유했다.
 그러나 아처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멍하니 TV를 바라보던 리노가 입을 열었다.

 "으음, 그럴까? 아니다, 어차피 나간다면 신토의 번화가라도 가자"

 리노는 머플러를 두르고, 영체화한 아처와 함께 신토로 향했다.


 ◇


 엔과 랜서는 다리를 건너 신토의 번화가를 둘러보는 도중이었다.
 엔이 신토에 오는 것도 벌써 3년이나 지나있었다.
 학창시절과 그 후 약 2년 간은 무뚝뚝한 학생회장이었던 선배 소우나 시끄러운 불량학생이었던 동급생 쿄우게츠[鏡月]와 함께 신토에 놀러다니곤 하였다.
 그것이 바뀐 것이 약 3년 전으로, 엔이 런던으로 떠난 것이 원인이었다.
 엔이 사라지자 자연히 소우와 쿄우게츠의 인연은 끊켰는지, 가끔씩 오는 쿄우게츠의 전화에서 소우의 이야기가 들릴 일은 없었다.

 "헤에, 오랜만에 오는데 꽤나 변했잖아"

 "저건 뭐하는거지? 엔"

 엔이 3년 동안에 많이 변해버린 신토를 두리번거리는 도중에 랜서가 엔을 불렀다.
 랜서가 가리킨 방향에는 자신들쪽을 등지고 선 기자와 그것을 찍는 방송용 카메라를 든 무리가 있었다.

 "어제밤 두명의 투숙객이 어지러움을 호소해..."

 엔은 그것을 보고 재밌는 장난이라도 생각났는지 물어본 랜서는 뒷전으로 놔두고 카메라가 잡히는 방향으로 다가갔다.
 카메라가 잡히는 방향까지 나아간 엔은 손을 들어 올리려 했다.
 그러나 그 팔을 잡는 자가 있었다.

 "엔, 이 몸의 말을 무시하는가?"

 "아, 잠깐만 기다려 봐, 랜서"

 그리고 다시 카메라를 쳐다보았을 때는 이미 촬영을 끝냈는지 정리하는 중이었다.
 엔은 시무룩해져서 랜서를 쳐다보았다.

 "체에- TV에 나와보나 했는데 너 때문이야, 랜서"

 엔은 랜서에게 불평을 하다가 금새 잊었는지 다시 잡담을 하며 번화가 구경을 계속하였다.


 ◇


 노을이 지고 땅거미가 묽은 안개가 퍼지듯 내리는 시각, 한 남성이 마토우 저택의 벨을 누르고 있었다.
 남자는 저택의 주거하는 소우와 비슷한 키에, 남색머리는 꽤나 길어 어깨의 위까지 내려와 있었다.
 동양인으로 보이는 그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는지 욕을 내뱉었다.

 "Fuck! 벌써 3번이나 눌렀는데, 없는건가?"

 '어딘가 나간게 아닌가? 마스터여'

 신경질을 내는 마스터에게 영체화 상태의 라이더가 말을 걸었다.
 그리고 순전히 자신이 가고 싶었던건지 다음의 말을 이었다.

 '무엇 때문에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에 다시 오도록 하자. 일단은 상점가라는 데를 가보는게 어떤가?'

 라이더의 말을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마토우 저택을 바라본 채로 로우는 현관문의 창살에 손을 댔다.
 그리고는 결심한 듯이 자신의 마력회로를 열어 마력을 뇌와 시신경에 집중한다.

 "내가 올 때까지 이 몸 지키고 있어"

 '음? 어딘가 갈 생각...'

 라이더가 말을 마치기 전에 로우의 의식은 눈에 집중되어 마토우 저택에 진입했다.
 현관을 지나, 마루, 거실, 부엌, 화장실, 방, 계단을 지나 2층의 방에 들어가---

 "보였다"

 로우의 시야엔 마토우 저택의 현관문이 들어왔다.

 '뭐가 보였단건가? 마스터여'

 라이더는 아무 말 없이 남의 집 현관문에 달라붙어있다가 갑자기 무언가가 보였다고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2층 방에 처박혀 자고 있었나. 부숴, 라이더"

 '응?'

 "저기 2층 창문을 부숴. 그럼 나오겠지"

 라이더는 무슨 말인지 아직 이해하지 못했지만 자신의 마스터가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파악했는지, 아니면 일을 빨리 끝내고 상점가에 가고 싶었는지 별 반대 없이 켄묘렌을 움직인다.
 켄묘렌은 저택에 둘러쳐진 결계와 함께 로우가 가리킨 2층 창문을 부수었다.
 잠시 뒤 저택 안에서 남색의 미역을 머리에 얹은듯한 소년이 나왔다.

 "뭐...뭡니까?! 당신은!"

 "아아, 드디어 나왔나! 안심해라, 싸우러 온건 아니니까"

 허겁지겁 뛰어나온 소년에게 로우는 안심시키려는 듯 말했다.
 창문을 부순 자가 안심시키려 한다는 사실이 웃겼는지 라이더는 영체화한 채로 웃었지만 로우는 무시했다.

 "네?"

 그리고 당연히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소년이었다.

 "그 뭐냐, 너가 아버지한테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사실 네 형이다"

 "에....에엣! 그럼 설마 아버지한테 여자가?! 아니 잠깐, 내가 동생이니까 우리 어머니가 세컨드?!"

 로우답지 않게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그 충격적인 사실이 조심스럽게 받아들여질 리 없이 당연히 소년은 충격에 빠졌다.

 "응? 아니 어머니는 같...."

 로우가 말을 하는 도중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야? 신이치 .......마스터인가, 네 녀석"

 뒤돌아본 로우에 눈에 비친건 검은머리칼을 지닌 남성이었다.
 그의 키는 자신과 비슷했으며 그 머리색은 자신과는 달리 검은색이었다.

 "아! 소우형, 어서와! 아니, 그보다 대문제야! 아버지한테 배다른 자식이 있었던 모양이야"

 "뭐라고?!"

 소년의 말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는지 무엇에도 놀라지 않을거 같던 남자는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러니까 형의 자식? 에, 그럼 내 조카잖아?! 잠깐, 침착해! 신이치!"

 "아니, 침착해야되는건 그쪽 같은데"

 "침착?! 이게 침착할 일이냐?! 멍청이!"

 "아니, 당신이 먼저 말한건데..."

 남자의 말에 로우는 어이가 없는지 얼떨떨해 했다.
 그러나 남자는 로우가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쓰지도 않고 저택으로 뛰어들어가려했다.

 "어서 신고[新五]형한테 연락 해보지 않으면!"

 그의 말에 로우는 이상한 듯이 입을 열었다.

 "응? 신지[新二]가 아니고?"


 ◇


 2명의 남자 마토우 소우와 아사가미 로우가 마토우 저택 거실 쇼파에 앉아있었다.
 얼핏보면 그 머리카락과 그을린 피부 탓에 알지 못하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얼굴은 마치 도장으로 찍어낸 듯 똑같았다.

 "즉, 결론은 나와 당신이 쌍둥이로 그쪽이 형 내쪽이 동생이다, 이 말이죠? 아버지에 대해 들은건 1년 전이고요?"

 "아아, 맞아"

 소우의 물음에 로우는 짧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아까부터 궁금했었던 궁금증을 입에 담았다.

 "그런데 어째서 아버지의 손자가 널 형이라 부르지? 삼촌이잖아?"

 "삼촌이라기엔 젊으니까 형이라고 부르기로 했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어째선지 공격적인 소우의 말을 소우는 웃어넘겼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아버지를 언급했다.

 "아니 전혀, 문제가 있다면 50세 넘어서 애를 만든 Fucking 아버지겠지"

 "뭐 확실히 생각해보면 40대 초반인 형이 20대 후반의 남성을 낳았다는게 말이 안됐죠"

 "그런거 치곤 꽤나 당황해보였는데 동생씨"

 로우의 조롱에 소우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화제를 전환하였다.

 "음? 그런 기억은 없습니다만 그보다 찾아온 이유는 뭐죠? 25년이나 지난 지금 단순히 동생을 찾아왔을리는 없을 터"

 "아니, 이거 나쁘게 됐는데 단순히 그게 다야. 뭐 덧붙이자면, Fucking 아버지라도 만나서 한 소리 아니 한 대 때려줄까 했지만"

 로우는 소우의 질문에 대답을 하며 일어섰다.

 "대충 목적은 달성했으니 이만 가보겠어. 적 마스터끼리 오래 있어봤자 좋을건 없겠지"

 "잠깐만요.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어째서 성배전쟁에 참가한거죠?"

 소우의 물음에 골똘히 생각하던 로우는 대답했다.

 "뭐, 숨길 것도 없나. Fucking 장로들에게 성배를 들이밀어 자신들이 후계자를 잘못 골랐다는걸 보여주고 싶을 뿐이야"

 "개인적인 이유로군요"

 로우는 자신의 말에 기분 나쁘게 대답하는 소우에게 말했다.

 "아아, 그 말대로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지. 그러는 너는 무엇을 바라 성배를 구하지? 동생"

 소우는 되돌아온 자신의 질문에 지금은 죽고 없는 자신의 아버지인 마토우 신지[間桐信二]를 떠올렸다.

 소우와 로우의 아버지인 마토우 신지.
 그는 27세의 나이에 마토우가의 당주인 마토우 조켄[間桐臓硯]에 의해 구해져 온 모체와의 사이에서 한 아이를 낳았다.
 그는 당연히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에게서 낳은 아이를 사랑해줄 리가 없었고 방치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경쓰지도 않던 자신의 아들이 저택의 지하실에서 나오는 그 모습을 보고 누군가를 떠올렸는지 정의의 사자에게 손을 뻗었고, 조켄은 그 썩어가는 영혼이 소멸되어 마토우는 지긋지긋한 조켄에게서 벗어났다.
 그러나 이미 모체로 들어온 여자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고, 대신이라기엔 뭐하지만 그녀가 낳았던 아이를 잘 보살피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그렇게 살아온 것이 약 30년, 어느새 자란 아이가 자신의 아이를 낳아 행복을 찾은 듯 하였기 때문일까, 그렇지않으면 약 50년 전의 기적을 떠올렸기 때문일까, 그는 어디선가 한 아이를 데려오더니 자신의 아들에게 말했다.

 "이 아이는 지금부터 우리 집에서 기르겠다. 마술사로서의 마토우를 살리는 것은 이 아이가 될거야. 이 아이라면 성배를 손에 넣어주겠지"

 이리하여 마토우 신지에 의해 데려와진 마토우 소우는 마술사로써 자라 성배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어느 날 성배를 얻은 후 무엇을 바랄 것인지를 물어보았을 때 소우의 아비는 말했다.

 "그 녀석이 나를 구원했듯이, 나 역시 주변의 어려운 자들을 구원할거야"

 그 말을 들은 마토우 소우는 어린 마음에 생각한 것이다.
 자신이 성배를 구한다면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어 줄 것이라고---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던 소우는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세계 아니 제 주변의 인물이 행복하기를 바라 성배를 구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손을 빌려주지 않겠습니까?"

 소우의 말에 거짓은 없었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지금 이 때 성배전쟁을 위해서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거기에 거짓을 말 할 정도로 소우는 타락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한 소우의 진지한 답변에 로우는 웃음을 참을 생각도 없는지 웃어제꼈다.

 "푸웁! 크하하하! 크윽 바보냐, 너? 이건 웃겼다. 너 개그에 소질이 있는거 아냐? 아아, 너무 웃어서 배꼽이 빠질 뻔했군"

 "......"

 "아, 그 뭐냐, 힘내라. 뭐, 정의의 사자도 나쁘지 않겠지"

 웃어대던 로우를 소우가 째려보자 로우는 격려하듯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 이것은 이것이라는 식으로 협력의 제안은 싹둑 거절했다.

 "근데 말이지, 나는 어린애의 망상 같은 장난에 노닥거려줄 시간이 없어서 말이지"

 "그렇습니까. 뭐, 상관없습니다. 그냥 해본 말이고 말이죠"

 "그러냐. 그럼 열심히 해라, 동생. 아, 마중은 필요없으니까"

 로우는 그 말을 끝으로 소우의 인사도 듣지 않은채 마토우 저택을 나갔다.
 방 안에 남은 것은 허망한 소망을 꿈꾸는 청년이 한명.
 소우 혼자 남겨진 거실에 2층에서 신이치가 내려온다.

 "소우형, 그 사람의 말은 신경 쓸거 없어. 자기주변의 행복을 원하는게 무엇이 나빠? 형은 잘못되지 않았어"

 "...그래, 네 말이 맞아, 신이치. 고맙다, 덕분에 힘이 나는걸"

 실패를 움직이는 인형사는, 실에 묶인지도 모른 채 환상을 꿈꾸는 꼭두각시를 보며 미소지었다.
 그에 인형사의 검은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


 밖은 어느새 태양이 사라지고 달이 떠오른 밤이 되어있었다.

 '어떤 녀석인가 했더니 꽤나 이상주의자였지 않은가? 그대와는 딴판이로다'

 로우는 밖에 나오자마자 말을 걸어오는 라이더의 말에 반응했는지 혼잣말과 같게 중얼거렸다.

 "행복은 누군가가 이루어 주는게 아니란걸 모르는군, 바보녀석"


 ◇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온 밤 9시 경 호텔 로비에 들어서는 오리에는 누군가에 의해 걸음이 멈춰졌다.

 "저기, 미안한데- 이 호텔에서 숙박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돌아본 오리에의 시야엔 자신보다 키가 큰 외국인의 여성이 들어왔다.
 유창한 일본어를 쓴 외국인은 금발의 머리카락을 앞머리를 남긴 채 뒤로 넘겨 머리끈 하나로 묶고 있었다.

 "네? 뭐라고....요?"

 오리에는 그녀를 보고 당황했으나 그녀는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다시 한번 물었고, 오리에는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아, 네. 여기서 숙박하는데 무슨 일이시죠?"

 "잠시 뭐 좀 물어봐도 될까?"

 그녀의 물음에 오리에의 머릿속에서 여러가지 상황이 떠올랐으나 이를 진정시키고 침착히 대답했다.

 "네. 제가 아는거라면"

 오리에의 대답에 그녀는 프론트 쪽을 힐끗 쳐다보더니, 그들이 들으면 안된다는 듯 오리에에게만 들리게 끔 목소리를 낮췄다.

 "어제밤에 이 호텔에서 두명 쓰러졌다는거 알고 있어?"

 "네? 아뇨, 잘 모르겠는데요. 무슨 일 있었나요?"

 잠시 생각하는 듯한 오리에의 대답에 그녀는 실망한 기색도 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라, 모르는구나. 흠- 역시 프론트에 물어야 되려나"

 그런 그녀를 잠시 바라보더니 이윽고 자신에게 볼일이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오리에가 그녀에게 말했다.

 "저기 저는 그럼 이만"

 "아, 응, 그래. 고마워. 바이바이"

 엘레베이터에 오른 오리에는 자신이 통째로 빌린 26층이나 27층이 아닌 12층의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12층에 도착하자 엘레베이터에서 내려 잠시 멈춰서더니 곧 다시 다리를 움직여 비상구 계단으로 향하고,
 엘레베이터에 탄 오리에를 바라보던 외국인 여성은 엘레베이터 층표시를 확인하더니 12층에 멈춘 것을 보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


 호텔의 최상층에 있던 캐스터는 계단을 올라온 오리에를 웃으며 맞이했다.

 "고생하셨네요. 미스 카라코우지. 아처의 마스터가 엘레베이터를 지켜보고 있는건 어찌 아셨습니까?"

 캐스터의 웃음에 어째선지 기분이 나빠질 듯한 오리에였지만 기분을 가라앉힌채 오리에는 당연하듯 말했다.

 "그야 나였으면 그랬을테니까. 뭐, 솔직히 말해 진짜 나였다면 계단에서 기다리고 있었겠지만 말이지. 그 예상도 해서 경계하며 나왔지만 거기까진 아니었네"

 "아뇨- 사실 아처가 12층까지 따라 붙었었어요? 미스 카라코우지"

 웃으며 말하는 캐스터.
 그에 반해 아차 싶은 표정의 오리에는 곤란한 듯, 놀란 듯 입을 열었다.

 "진짜로? 아, 확실히 나 서번트의 존재를 까먹고 있었어. 으으- 여차하면 죽었다는건가? 나"

 그 말에 무엇이 웃긴지 킥킥 웃어대는 캐스터.
 자신의 마스터가 죽을 위험에 처했다가 살아나 곤란해하는데 웃어댈 서번트가 어디에 있는가.
 오리에는 기분이 상했으나 그런 오리에의 기분은 안중에도 없는지 캐스터는 웃어댔다.
 그리고는--

 "아뇨, 거짓말입니다. 아하하하하- 어때요? 웃겼죠? 방금거"

 얼토당토않는 개그임을 밝혔다.
 당연히 이런 개그에 웃어줄 성인[聖人]이 아닌 오리에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어찌됐든 자신의 실수였음은 인정하기에 분노를 눌러앉혔다.

 ".......너 한번 죽으면 어때?"

 "미스 카라코우지는 멍청하군요! 전 이미 한번 죽었었어요? 아하하하-"

 억지로 눌러앉힌 분노를 파악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자신의 마스터를 화나게 만들고 싶은건지 어찌됐든 공기를 읽지 못하는 캐스터였다.
 오리에는 연신 웃어대는 캐스터의 다리를 발로 차고 방으로 들어가 신토 상점가에서 구입했던 모니터를 켰다.
 오리에에게 차인 다리를 잡고 뒹굴뒹굴 구르던 캐스터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따라들어왔다.

 "폭력은 나쁩니다, 미스 카라코우지. 어라-? 그보다 제가 만든 돈으로 이런걸 산겁니까?"

 방안에는 벽 한면을 가득 채운 거대한 모니터가 하나 있었다.
 오늘 낮 배송되어 온 이것은 캐스터가 자신의 연금술로 만들어낸 금을 돈으로 바꿔 사온 것이다.

 "에에, 그래요"

 "흠, 이건 어디에 쓰려는 겁니까?"

 캐스터의 질문에 처음으로 좋은걸 물어봤다는 듯 웃더니 역으로 캐스터에게 물어보았다.

 "당신의 기억이랄까- 정보를 여기에 연결할 수 있죠?"

 당연히 가능할거라 생각했던 오리에의 말에 캐스터는 고개를 가로지었다.
 그리고 뱉어낸 말은 또 다시 오리에의 화를 자초하는 것이었다.

 "잊으셨나본데 전 연금술사에요, 미스 카라코우지. 기계공이 아니란 말입니다"

 "윽, 전선을 연결하란 말이 아니고! 어제 수정으로 아처와 라이더의 싸움을 본거처럼 투영하란 말이야!"

 화가 나면 존칭이 사라지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캐스터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셨어야죠. 네, 가능합니다. 그보다-"

 "그보다, 뭐?"

 치솟아 올랐던 분노를 겨우 붙잡아 누르며 캐스터의 말을 듣던 오리에가 신경질적으로 묻자, 변할 리 없는 캐스터가 말했다.

 "너무 화만 내면 일찍 늙어요?"

 그 말에 오리에는 아무 말 없이 캐스터를 발로 차기 시작했다.
 차지면서도 웃어대는 캐스터의 머리 속엔 다음의 놀릴거리가 떠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