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현대에는 실존하지 않는 환수의, 그 끝이 정해져있는 이야기이다.
 옛날 옛적에 여러 세계를 지키는 신이 있었다.
 신은 자기 혼자 모든 세계를 지키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하여 일단 하나의 세계에 시험삼아 자신의 다섯 속성 중 일부를 떼어내어 사방을 지키는 네마리의 환수와 그 환수들 사이의 소통을 위한 중앙의 하나의 환수, 총 다섯 환수를 지상에 내려보냈다.
 동방엔 나무를 관장하는 청룡을, 남방엔 불을 관장하는 주작을, 서방엔 금을 관장하는 백호를, 북방엔 물을 관장하는 현무를 각각 내려보냈고 중앙의 인간이 사는 지역에는 등사라고 하는 현대의 뱀과 같은 모습을 한 땅을 관장하는 환수를 내려보내, 그 등사라고 하는 환수를 통해 사방신과 인간의 행동을 파악했다.
 등사는 세계의 중심에 있는 거대한 기둥에 몸을 감아 머리는 지상에, 꼬리는 천상에 올려 사방신을 관찰한 후, 그 결과를 신에게 보고했다.

 그렇게 수백년이 지난 지금, 현재의 세계는 말 그대로 엉망이다.
 모든 것은 환수들 때문이다.
 청룡은 현무와 손을 잡고 자신의 자연을 회복하는 능력으로 일부러 현무가 오염시킨 물을 정화시켜 인간들에게 넘겨주는 대신 그들을 자신들 맘대로 쥐락펴락하는 상황에 그뿐 아니라, 주작은 툭하면 마을에 불을 지르고 인간의 물건을 약탈하고 있다.
 그나마 나은 곳이라고는 백호가 있는 남쪽이지만, 이쪽은 오히려 처음에 자리잡았던 토착민이 관직을 차지하고 이민자들을 괴롭히는 실정이다.
 백호는 이것 또한 인간의 삶이라고 방관하는 모양이다.
 물론 이 모든 일을 중앙의 등사가 모를리가 없지만 그는 오히려 이런 네마리의 환수가 하는 일을 즐기며 신에게는 모두가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거짓을 보고하고 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이런 지랄맞은 세상에 태어난 세상에 딱 하나뿐인 신이 심어놓은 간첩, 한마리의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01


 남방의 주작이 수호하는 지역에 한명의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부모는 그 아이의 이름을 자묘라 짓는다.
 보라색 고양이, 그야말로 그의 이름에 걸맞는 이름이었다.

 그는 태어난지 한달만에 걸었고, 그로부터 한달만에 말을 했으며, 또한 그로부터 한달만에 모든걸 깨우친듯 자신의 부모에게 신을 만나러 가겠다고 말하더니 이내 집을 나갔다.
 그때 그의 키는 172cm로 이미 다 자란 성년과 같았다.

 한편, 자묘가 집을 나간 그 때 중앙의 신사에 사환수와 등자가 모여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은 마치 인간과 같았다.
 그 중에서 등사만이 자신의 몸이 천계로 향하는 기둥을 감싸고 있기에 뱀과 같은 자신의 머리에 다리의 일부가 파묻혀 상반신만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신체와 같은 색인 잿빛의 머리카락은 허리를 넘어 다리까지 이어지는 것인지 자신의 진짜 모습인 뱀의 머리까지 늘어져있었고 날카로운 눈매와 그 안의 눈동자는 누가봐도 뱀의 것이었다.
 긴팔의 회색 옷을 입고 있는 등사가 입을 열어 가느다란 목소리를 냈다.

 "이렇게 여러분을 모은 것은 다름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자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등사의 말에 성질이 급한듯한 불타는듯한 머리카락에 윗옷 또한 불의 문양이 그려진 빨간 긴팔을 입고 바지만이 검은색인 남자가 입을 열었다.
 성질이 급한 이 남자가 바로 주작으로 186cm의 키에 눈매는 화가 난듯 항상 위로 치켜올라가 있다.

 "하! 그래서 뭐야? 덜덜 떨고 있는 모양이지? 그런 녀석 나의 불덩이에 녹을텐데 어째서 걱정하는지 모르겠구나, 등사"

 주작의 말에 등사는 그 자를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그런가요. 좋아요, 주작. 마침 당신의 구역에서 태어났다고 했으니 당신이 처리하는게 빠르겠죠"

 등사의 말에 주작의 앞에 서있던 청룡이 입을 열었다.
 청룡은 지나가던 남자 10명 중 10명 모두가 아니, 여자마저도 그를 보려고 돌아볼 정도의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허리까지 오는 긴 하늘빛의 머리칼에 키는 172cm, 몸은 마른편으로 입고 있는 무릎까지 오는 원피스는 머리칼과 같은 색이었다.
 그런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 또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만한 것이었다.

 "그거 때문에 이곳에 부른것이오? 등사. 과인은 다른 이유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머리가 좋은 청룡은 아무래도 이미 부른 진짜 이유를 알고 있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다른 이유가 있다고 확정짓는듯 말하자, 청룡의 대각선, 주작의 옆에 있는 현무가 끼어들듯 말을 덧붙였다.

 "아무렴. 그런 떨거지 하나 잡자고 불렀을리는 없겠지, 등사"

 민머리의 그는 덩치가 산만 했다.
 아니, 비록 과장이라 할지라도 194cm의 키에 옆으로 퍼진 그 덩치는 주작과 청룡이 나란히 서있는 정도이다.
 그는 온몸을 검은 옷으로 감싸고 있었다.
 그런 그를 밤에 본다면 머리만 둥둥 떠있는 것처럼 보일테지.

 "슬슬 본주제로 들어가자고"

 현무의 말에 등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처음에 모였을때도 말씀드렸지만 다시 한번 묻죠. 저를 도와 신을 갈아치울 생각은 없습니까?"

 그들이 전부 모인것은 이번이 두번째로 처음은 지금으로부터 약 백년 전이었다.
 그날 등사가 무슨 생각을 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사환수를 모아놓고 말한 것이다.
 신을 바꿀 생각은 없느냐고.
 그 당시엔 청룡과 현무는 반대했고, 주작은 찬성, 백호는 중립이었다.
 그러자 등사는 과반수의 의견에 따르겠다더니 이내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신에게는 세계가 평화롭다고 보고할테니 무엇을 해도 좋다.
 그리고 앞으로 백년 후에 다시 묻겠다고.
 그러자 우선 주작이 하고 싶은대로 날뛰었고 이를 본 청룡과 현무가 주작에게 아무런 제재가 떨어지지 않는걸 약 십년간 지켜보더니 자신들도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또 그걸 지켜본 백호마저도 일에서 손을 놓고 그저 방관만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백년이 지난 지금, 등사의 물음에 아무래도 답은 정해진 듯 하다.
 찬성의 수가 셋, 반대의 수가 영이었다.
 그리고 어디에도 끼지 않은 백호에게 등사가 이유를 묻자 여태껏 입을 다물고 있던 백호가 입을 열었다.

 "귀찮아, 신이니 뭐니 아무래도 좋잖아"

 하얀색의 짧은 머리칼, 키 189cm의 그는 한복과 같은 하얀 옷을 입고 있는 그는 어째서일까 싶을 정도로 무소유의 정신을 지닌듯 하지만, 알고보면 그저 모든게 귀찮을 뿐인 귀차니즘의 소유자다.

 "뭐, 일을 방해하지 않으면 그걸로 좋아요"

 등사의 말에 백호는 말하기도 귀찮은지 아아, 두마디만으로 대답을 끝낸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엔 관심도 없는지 그 자리를 뒤로 했으나, 말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백호가 자리를 뜬 후에 주작과 등사를 제외한 나머지는 자리를 비웠다.
 성질 급한 주작이 당장이라도 나가 방해가 될 쥐새끼를 불태워버리겠다고 했으나 등사가 말린것이다.
 그도 그럴게 아직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은 상황이었으니까.

 "아무것도 몰라서야 이길 적도 못 이겨요, 주작"

 등사의 말에 주작은 자신을 얕보지말라며 자신의 땅 전부를 불태워서라도 쥐새끼를 잡아보이겠다고 말했으나 등사가 이를 진정시키며 영귀를 불렀다.
 영귀는 환수라기보다는 실체가 없는 령에 가까운 환수 중 하나로 린봉귀용의 귀에 해당하는 령이다.
 린봉귀용은 본래 신이 등사에게 내려준 네마리의 령으로 기린은 신의, 봉황은 평안, 영귀는 길흉의 예지, 응룡은 변화를 가져다준다.
 기린에 의해 인간은 사환수와 등사를 믿었으며, 봉황에 의해 세계에 평안을 가져다주었고, 영귀에 의해 길흉을 내다보았으며, 응룡에 의해 변화를 통해 발전해나갔다.
 그러나 등사가 신의 권한을 추락시키기위해 마음 먹은 후부터 그들의 능력을 자신에게로만 제한했다.
 그 중에서도 영귀가 오늘 가져다준 소식은 대흉이었던 것이다.

 "영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주작에게 말해주세요"

 등사의 말에 영귀는 그 느릿한 몸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보랏빛의 고양이가 눈을 떠 세계를 보니 하늘엔 빛이 있으나 지상엔 어둠뿐이니, 이는 자신에게 신이 보내는 전언이요, 명령이니라"

 영귀의 느릿한 말을 듣는 도중 주작이 속이 터졌는지 아니 머리카락이 불타고 있는거 보면 아무래도 속이 아니라 겉까지 터진듯 하다.

 "으아아아!!! 답답해 죽겠네!! 누구 죽일 일 있냐?!! 그보다 뭐야, 이게! 시냐?! 시냐고!! 본론만 말하란 말이다!"

 주작의 분노에 영귀가 알아먹은걸까 확 줄여서 간단하게 말했다, 물론 느렸지만.

 "보라색 고양이가 사환수의 격을 떨어뜨릴 것이다"

 말을 마치고 사라지는 영귀의 눈에 눈물이 좀 맺힌거 같았지만 넘어가도록 하자.
 어찌됐든 이 말을 들은 주작은 보라색 고양이를 찾기 위해 자신의 땅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신사에 남아있는 등사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사환수의 격을 떨어뜨린다, 인가. 거기에 내가 없다는걸 좋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나쁘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고민이로구나"

 등사는 생각에 깊이 잠겨 인간의 모습은 점점 자신의 본체로 녹아들어 사라졌다.

 02


 자묘가 집을 나온지 어연 2개월째, 그는 오로지 중앙의 거대한 기둥을 향해 걸어나간다.
 그 기둥을 향해 천계로 이동할 심산인듯 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남쪽구역의 경계를 벗어나기도 전에 주작의 눈에 띄어버린 모양인지 어느샌가 그의 눈 앞에 인간의 모습을 한 주작이 서있었다.

 "여어, 네 녀석이 보라색 고양이인가 뭔가 하는 녀석 맞지?"

 주작의 물음에 자묘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주작의 팔이 내질러져 거기에서 불이 뿜어져나온다.
 그걸 순간적으로 오른쪽으로 피하고 자세를 잡는다.

 "하! 이걸 피했나? 역시 네 녀석이 맞는 모양이군. 무고한 녀석을 죽이면 어쩌나 했지만 다행이야. 아니 뭐, 무고해도 상관없지만"

 싸울 자세를 잡은 자묘와 달리 주작은 아무런 자세도 취하지 않고 서있다.

 "조심해, 주작. 그렇지않으면 일격에 죽을지도 모르니까"

 의외로 중저음인 자묘의 목소리를 듣고 주작이 크게 웃었다.
 그것은 누가봐도 비웃음에 불과했다.

 "캬하하하!! 땅을 기어다니는 쥐새끼가 하늘을 나는 이 몸에 상처 하나 입힐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는거냐?!"

 "쥐가 아니라 고양이인데......"

 아무래도 비유니 뭐니하는 말의 유연함은 갖다버렸는지 조심히 정정했으나 주작은 어찌돼든 상관없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너 같은 놈이 사환수의 격을 떨어뜨릴거라고 생각치는 않는데, 보기에도 약해빠졌는데 말이지!"

 말하며 주먹을 내지른다.
 이번에도 아까와 같은 불이 자묘를 태우러 덮쳐들고 그것을,
 휙-.
 자묘가 모기를 쫓든 팔을 살짝 흔드는 것만으로 불길을 꺼뜨렸다.

 "뭣-?!"

 자묘의 행동에 주작이 놀라자, 이를 보고는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자묘가 주작에게로 달렸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어 오른손을 주작에게로 뻗어 하관을 밀어친다.
 이에 목이 꺾이며 바닥에 쓰러지는 주작.
 자묘는 주작을 보고 끝이라고 생각했는지 걷던 길을 마저 걸어나가다, 화르륵, 하고 불타는 소리에 순간 뒤를 돌아본다.
 거기엔 한마리의 붉은 새가 공중에 떠있었다.
 눈동자와 부리 그리고 머리에 달린 세개의 깃털은 황금빛을 띄고 있으며 나머지 3m가 넘는 날개를 비롯한 온 신체는 시뻘겋게 타들어가는 불덩이로 뒤덮여있었다.
 이를 본 자묘가 잠시 주춤하자 주작이 즐거운 듯 웃는다.

 "크하하하!! 이 위대한 주작님의 앞에선 누구나가 경외에 몸서리치지!!!"

 그러나 이내 자묘는 정신을 차리더니 주작에게 물었다.

 "동물의 모습으로도 말을 할 수 있는거야? 신기하네"

 "...... 아니, 그런건 어찌돼든 좋잖아. 너, 정말 어째서 아까부터 어찌돼든 좋은것만 집어넘어가냐"

 자묘의 말에 주작이 기가 차서 한마디 해준 뒤, 장난은 끝이라더니 날개짓을 한번.
 그것만으로 일대가 불에 타들어간다.
 마치 화산이 폭발해 그 불덩이가 지상을 덮치듯 수많은 불덩이가 지상을 덮어간다.
 일반인이라면 단 한번의 날개짓으로 죽어, 아니 존재조차 소멸시킬 그 안에서 자묘는 고개를 쳐들고 주작을 쳐다보고 있었다.

 "말도 안돼!!!! 어떻게 멀쩡한거냐?!!! 네 녀석!!!!"

 주작의 말에 자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자신의 양팔을 내밀며 말했다.

 "틀렸어, 주작. 이것 봐, 양팔은 이미 너의 불에 녹아들어가고 있어"

 자묘의 말대로 확실히 그의 팔은 방금이라도 유리를 화로에서 꺼낸듯이 새빨갛게 타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건지, 자묘는 무덤덤하게,

 "그보다 이대로라면 나라가 불에 타 전부 사라질테니 어쩔 수 없네. 이걸로 끝이야, 주작"

 주작에게 죽음을 선언했다.


 ◇


 그것은 거대한 고양이였다.
 인간의 키를 넘어 지상에서 등까지의 거리가 2m에 달했으며 꼬리를 제외한 몸의 길이만도 3m에, 꼬리의 길이는 10m를 넘어서고 있었다.
 신체는 보랏빛의 털로 덮여있었으나 어째선지 군데군데가 투명하게 보였으며 그 투명한 것들은 몸의 이곳저곳을 이동해다녔다.
 그러나 그 앞의 두 발만은 주작의 불덩이에 타들어가며 새빨갛게 빛나고 있었다.
 그런 자묘에 위협을 느꼈는지 주작이 날개를 푸득여 자묘를 불태우려 불덩이를 뿌려대지만 그걸 피하지도 않고 지상에서 발을 떼 공중에 떠올라 정면에서 불타는 앞발로 주작의 두 날개를 잡아 지상에 찍어누른다.
 쿵! 하고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울리고, 그러거나 말거나 주작은 날개를 움직이려하지만 너무나도 꽉 눌린 날개는 움직이지도 못한채 자묘의 이빨에 목을 물어뜯기더니 그 모습이 사라져간다.
 주작이 완전히 사라지자 자묘는 다시 인간의 모습을 되돌려 중앙을 향해 걸어나갔다.


 ◇


 자묘의 목적지인 중앙에 있는, 땅을 관장하는 등사는 이 싸움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주작을 돕지않고 방치한 것은 어째서인가.
 아마 그걸 아는건 이 지상에 등사 하나 뿐이겠지.
 등사는 주작의 죽음을 확인하고 얼굴에 미소를 짓는다.

 사라진 것은 불, 남은 것은 물과 나무와 금.
 자,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지켜보도록 하자.

 03


 청룡이 관리하는 동쪽의 땅, 어디서 끌어모았는지, 아니, 보나마나 청룡이 오염되지 않은 환경의 제공을 빌미로 인간들을 강제로 착취해 세운 것이겠지.
 거기엔 거대한 궁궐이 세워져있었다.
 궁궐 전체가 황금으로 빛났으며 군데군데 자신의 상징인지 푸른색의 용이 그려져있었다.
 그런 궁궐의 제일 안쪽의 한 방, 방이라기엔 일반 건물 한채를 통째로 들여와도 될 듯한 공간에 인간의 모습을 한 청룡과 등사가 있었다.
 여전히 등사의 두 다리는 땅과 이어져있고 여전히 청룡은 그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주작이 죽었다는것이로군요"

 등사가 청룡에게 주작의 죽음을 알리자 청룡이 담담하게 말한것이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과인에게까지 위협이 된다면 이 몸이 직접 나서겠소만"

 청룡의 말에 등사가 미소짓는다.

 "부탁 좀 하도록 하겠습니다, 청룡. 부디 좋은 소식이 있기를"

 등사는 자신의 말을 마치고 녹아내리듯 땅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이를 보고 청룡이 나지막히 중얼거린다.

 "흥, 천박하게 땅을 기어다니는 놈이 무엇을 꾀하는지 모르겠지만, 뜻대로 되게 두진 않을 것이야"


 ◇


 주작를 죽인지 어느새 한달이 지났음에도 자묘의 팔은 여전히 불덩이였다.
 아무래도 자연히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라고 자묘는 살짝 걱정을 하면서 중앙을 향해 걸어나간다.
 고양이의 모습으로 달려가면 순식간에 당도할 것 같지만 아무래도 양 앞발이 불타오르고 있으니 그것도 꽤나 고행이다.
 그런 자묘의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흠, 그 팔을 보아하니 너가 자묘라는 녀석이로구나"

 그렇게 말한 자는 엄청난 덩치의 사내, 현무였다.
 현무는 등사에게 주작이 당했다는 것을 듣고 청룡보다 한발 앞서 자묘를 쓰러뜨리러 온 것이다.
 아무래도 불이라는 능력에 의지하는 주작이 못마땅했던 그이기에 주작이 그저 약해서 졌을뿐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라면 혼자서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 현무를 자묘는 지긋이 쳐다보더니 말했다.

 "살 좀 빼는게 좋아, 비만은 몸에 안 좋으니까. 그보다 비켜주지 않을래? 난 중앙으로 향하고 있거든"

 비만.
 어째서 적의 신체까지 신경을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엉뚱한 자묘니까 어쩔 수 없다.
 그런 어쩔 수 없는 말에 현무는 화가 난 모양이다.

 "비만이라니! 이 자식! 이건 전부 근육이라고!!"

 그러더니 자묘를 향해 달려들며 오른손을 자묘를 향해 내려찍는다.
 그것을 자묘가 뒤로 뛰어 피하자 현무의 주먹은 자연히 아무것도 없는 공기를 가르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방금까지 자묘가 있었던 자리의 지면이 파인다.
 그것은 물줄기에 의한 것이었다.
 현무의 주먹은 허공을 갈랐지만 팔에 감겨져있던 물이 관성에 의해 지면에 도달해 그것을 뚫어버린 것이다.
 이를 보고 자묘가 놀랐는지 입을 열어 현무에게 말을 건넨다.

 "함부로 땅을 파면 안돼, 현무"

 "하! 너가 피하지만 않으면 땅이 파일 이유는 없다!!!"

 현무는 말을 하며 자묘에게 달려들었다.
 이를 자묘가 피하자 현무는 쉴틈도 없이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그에 자묘는 계속해서 피하기만 하며 말했다.

 "어쩔 수 없네. 미안해, 현무. 나도 바쁘니까 말이지"

 말을 마친 자묘는 순식간에 현무의 가슴에 파고 들어가 명치에 주먹을 날렸다.
 아무리 환수라도 인간의 몸일땐 인간의 약점을 지니는 법이기에 단 한방으로 그 거대한 신체가 쓰러진다.
 이것을 본 자묘는 현무를 뒤로 하고 길을 걸어나간다.
 그러나 그 순간 다리가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들리는 목소리는,

 "하하하, 방심했구나, 꼬맹아. 이 현무님이 그 일격에 죽을거라고 생각했는가"

 틀림없이 방금전에 쓰러진 현무의 것이었다.
 자묘는 현무의 공격으로 무거워진듯한 다리를 움직여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 있는 것은 지금의 뱀의 머리와 꼬리에 거북의 몸통을 달아놓은 듯한 거대한 환수였다.
 머리부터 꼬리까지의 길이는 10m에 달했으며, 지면부터 거북의 등까지의 높이는 약 5m를 넘고 온 몸은 검은색이었으며, 거북의 몸에서는 쉴새없이 물이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이를 본 자묘가 조용히 현무에게 말을 건넨다.

 "이대로 있다간 홍수가 나버릴거야"

 자묘의 말에 현무가 자신의 걱정이나 하라며 웃자, 자묘는 안타까운 듯,

 "그래, 그렇다면 여기서 끝이야, 현무"

 현무의 죽음을 선언했다.


 ◇


 그것은 거대한 고양이였다.
 인간의 키를 넘어 지상에서 등까지의 거리가 2m에 달했으며 꼬리를 제외한 몸의 길이만도 3m에, 꼬리의 길이는 10m를 넘어서고 있었다.
 신체는 보랏빛의 털로 덮여있었으나 어째선지 군데군데가 투명하게 보였으며 그 투명한 것들은 몸의 이곳저곳을 이동해다녔다.
 그러나 그 앞의 두 발은 주작의 불덩이에 타들어가며 새빨갛게 빛나고 있었고, 이전과 달리 지금은 뒤의 두 발은 현무의 물에 휩싸여 얼어붙어있었다.
 이 모습을 본 현무가 주작이 죽은 이유를 깨닫고, 먼저 공격에 나서 긴 꼬리와 머리를 이용해 자묘를 휘감싸 조이며 온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물로 자묘를 점점 뒤덮어갔다.
 그러나 자묘는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꼬리로 현무의 몸통을 감쌌다.
 그러자 퍽, 하는 엄청난 굉음이 나며 현무의 등껍질이 산산조각 났고, 이에 힘이 풀린 현무의 목을 이빨로 물어뜯어 그대로 현무는 지면에 쓰러져 서서히 그 모습이 사라져갔다.
 현무가 완전히 사라지자 자묘는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가 얼어버린 두 다리를 움직여 중앙으로 향했다.


 ◇


 자묘의 목적지인 중앙에 있는, 땅을 관장하는 등사는 이 싸움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현무를 돕지않고 방치한 것은 어째서인가.
 아마 그걸 아는건 이 지상에 등사 하나 뿐이겠지.
 등사는 현무의 죽음을 확인하고 얼굴에 미소를 짓는다.

 사라진 것은 불과 물, 남은 것은 나무와 금.
 자,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지켜보도록 하자.

 04


 현무가 죽은 한달이 지나자 자묘를 쓰러뜨리기위해 청룡은 엄청난 인파를 이끌로 자묘의 앞에 나섰다.
 이 때 청룡은 이미 현무가 죽었다는 것을 등사에게 들은 후였다.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자묘와 마주한 청룡의 뒤에 서 있었다.

 "자묘라고 했는가? 이 인간들을 죽일 생각이 없으면 이대로 물러가는 편이 나을 것이오"

 청룡이 자묘에게 말하자 자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렇네, 싸우게 되면 분명 여기 있는 사람들은 죽어버릴테니까"

 아무래도 인간을 죽이는 것을 원하지 않는 자묘다보니 이게 꽤 먹힌 모양이다.
 이를 보고 청룡이 미소지었다.

 "좋소. 그럼 물러난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대답은 뜻밖의 것이었다.

 "아니, 그들이 다른데로 가면 될 뿐인 이야기잖아?"

 말과 동시에 자묘가 자신의 팔을 앞으로 내밀어 휘두르자 수만의 사람들은 마치 처음부터 거기에 없었던 것 마냥 그 모습을 감췄다.

 "...... 뭐죠, 이건. 무슨 수를 쓴건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환수만큼 격이 높다는건 알겠소이다"

 "그래서 청룡, 당신도 다른 자들처럼 나를 막아설건가요?"

 자묘의 천진한 물음에 청룡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과인이, 아니, 제가 당신을 이길거라곤 생각하지 않소. 오히려 지금부턴 그대가 향하는 길을 열도록 하겠소"

 아무래도 청룡은 자신의 힘으로 자묘를 이기지 못한다고 깨달았는지 자묘를 도와 중앙에 다다르기로 하였다.
 그렇게 자묘에게는 처음으로 동료가 생긴 것이다.


 ◇


 중앙의 신사에서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본 등사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땅으로 녹아들어갔다.
 그리고 서방의 신사에 있는 백호의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백호는 눈을 감고 정좌를 한 채로 있었다.

 "백호,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다짜고짜 나타나 도와달라는 등사의 말에 백호는 눈을 감은채로 입만을 움직인다.

 "뭔데 그래, 귀찮게. 난 중립선언을 했다고 기억하는데, 벌써 잊었나? 등사"

 백호의 말에 등사가 입을 다물고 서있자 백호가 이내 한숨을 쉬더니 말을 잇는다.

 "절대로 이번만이야. 등사, 너 때문에 몇년이나 편했으니 그 빚은 갚아야겠지"

 백호의 말에 등사가 미소짓더니,

 "그럼, 잘 부탁할게요. 청룡이 그쪽에 붙었으니 조심해요"

 청룡에 대한 소식을 전하고는 사라졌다.
 이에 백호가 놀랐는지 감고 있던 두눈을 크게 떴지만 이내 두눈을 다시 감고 당했군, 이라고 중얼거렸다.


 ◇


 청룡의 능력으로 자묘는 현무에게 당했던 다리가 원래대로 돌아왔으나 아무래도 팔은 나무의 기운마저 태워버리기에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자묘는 다리만이라도 원상태로 돌려준 청룡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런 청룡과 동료가 된지 1개월 후 그들의 앞에 백호가 나타났다.

 "청룡, 너는 찬성했었다고 기억하고 있는데. 내 기억이 틀렸나?"

 백호가 나타나자마자 청룡에게 묻자,

 "그러는 백호, 그대는 반대는 아닐지라도 중립이지 않았소? 어찌하여 우리를 막아서지?"

 청룡은 오히려 백호에게 의문을 던졌다.
 그러자 백호는 등사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말하고는 순식간에 자신의 모습을 변형했다.
 그 모습은 거대한 호랑이와 같았다.
 온 몸이 흰 거대한 호랑이는 몸 전체길이가 5m에 달했으며, 다리의 길이만도 1m를 훌쩍 넘고 있었다.
 그 이빨은 단 한번 물리는 것만으로 죽음이 확정될 정도로 날카로웠다.

 이 모습을 본 청룡도 또한 자신의 몸을 바꾸었다.
 청룡은 푸른색 뱀과 같은 그 길다란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그 몸은 하나하나가 일반적인 성인 남자의 손바닥 크기만한 비늘로 덮여있었고 그 꼬리 또한 지느러미와 같은 것이 달려있었으며 얼굴에는 두개의 수염이 나있었다.
 몸 전체의 길이는 10m를 넘어서 그 몸을 휘감으며 하늘에 떠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웅장한 아름다움을 지닌 청룡을 백호가 뛰어올라 덮쳤다.
 현대의 용호상박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순식간에 청룡은 백호의 앞발에 눌려 땅에 떨어지고 목부분을 물려 그대로 지상으로 사라져간다.
 청룡을 쓰러뜨린 장본인인 백호는 다음의 사냥감을 노리듯 자묘가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거기엔 어느새 변해있는 자묘가 있었다.


 ◇


 그것은 거대한 고양이였다.
 인간의 키를 넘어 지상에서 등까지의 거리가 2m에 달했으며 꼬리를 제외한 몸의 길이만도 3m에, 꼬리의 길이는 10m를 넘어서고 있었다.
 신체는 보랏빛의 털로 덮여있었으나 어째선지 군데군데가 투명하게 보였으며 그 투명한 것들은 몸의 이곳저곳을 이동해다녔다.
 앞발은 여전히 불에 타들어가고 있었으나 뒷발은 청룡의 도움으로 원래의 상태를 되찾아 보랏빛의 털로 뒤덮여있었다.

 백호는 자신보다 조금 작은 자묘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자묘는 뛰어올라 공중에 떠오르더니 그대로 떨어져 백호의 등에 올라탔다.
 그리곤 그대로 백호의 몸을 꼬리로 감은채로 뒷덜미를 물어뜯었다.
 그러나 백호는 그대로 사라지지않고 발버둥치더니 자신의 발톱으로 자묘의 꼬리를 끊어버리고 그걸 마지막으로 백호는 그대로 모습이 사라져갔다.
 이를 본 자묘는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와 중앙으로 향했다.


 ◇


 자묘의 목적지인 중앙에 있는, 땅을 관장하는 등사는 이 싸움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백호를 돕지않고 방치한 것은 어째서인가.
 아마 그걸 아는건 이 지상에 등사 하나 뿐이겠지.
 등사는 청룡과 백호의 죽음을 확인하고 얼굴에 미소를 짓는다.

 사라진 것은 불과 물과 나무와 금.
 자,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지켜보도록 하자.

 05


 청룡과 백호가 쓰러진지 약 1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드디어 자묘는 중앙의 신전에 도착했다.
 자묘는 그 신전을 들어가 잿빛의 거대한 뱀머리 앞에 섰다.
 그런 자묘를 반기듯 등사가 인간형태의 모습을 드러내 말을 건넸다.

 "여기까지 고생이 많았군요, 신님"

 이에 자묘는 마치 지금 눈을 뜬 듯한 기분이 들며 이상한 기억이 끼어들어왔다.


 ◇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분명 등사.
 그러나 주변의 환경은 방금전까지와는 다르다.
 나와 등사는 마치 구름 속에 있는게 아닐까 싶은 새하얀 공간에 있다.
 등사가 입을 열어 말한다.

 "흠, 그래도 되는건가요? 그러면 당연히 해이해질게 분명한대요"

 그 말에 어째선지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아아, 그걸로 좋다. 어차피 실험작이다. 내가 감시하지 않는다고 해이해질 녀석들이라면 없애버리는게 낫지"

 분명히 내가 말하는것일텐데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등사는 살짝 안타깝다는듯 말한다.

 "아무리 그래도 신님이 한번 만드신 것인데 없애버리긴 그렇지 않습니까? 약간의 벌만 주시는게......"

 아무래도 등사는 그들이 죽는게 불쌍한 듯 하다.

 "뭐, 그건 상황의 정도를 봐서겠지"

 등사의 말에 내가 적당히 대답하자, 등사는 수긍하더니 그 모습을 감추었다.
 아무래도 지상으로 내려간 듯 하다.


 ◇


 ......
 순식간에 무언가가 지나간 듯 한데, 어느새 등사가 또 눈 앞에 있었다.
 여전히 구름 속인 듯 한데,

 "그래서 어떻게 됐지? 그쪽은 벌써 10년 정도 지났던가?"

 내가 아닌 나의 말에 등사가 고개를 끄덕이곤 대답한다.

 "네, 그 날로부터 10년이 지났습니다. 주작은 날뛰고 청룡과 현무는 인간을 괴롭히며 백호는 방관하고 있습니다"

 등사의 말에 나는 손으로 왼눈썹을 문지르며 말한다.
 아무래도 꽤나 머리가 아픈가보다.

 "그건 꽤 심하군. 그래서 그것도 물어보았나?"

 "네. 주작과 청룡, 현무는 찬성하였으며, 백호는 어찌되든 좋다고 하였습니다"

 무엇에 관해 찬성과 중립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꽤나 화가 났는지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서 말했다.

 "좋다. 지금 당장 나의 일부를 떼내어 사환수에게 벌을 내리도록 하겠다. 등사, 너는 녀석들을 꼬득여 나의 일부를 공격하도록 하라. 그것이 녀석들의 마지막 선택이다. 신의 일부임을 알고서도 대든다면 그걸로 녀석은 죽임보다도 더한 고통을 주도록 하지"

 그걸 마지막으로 시야는 어둠에 빠져들었다.


 ◇


 그리고 다시 눈을 뜨자 눈 앞에는 등사가 서있었다.
 주변을 잠시 둘러보자 그곳은 여전히 같은 공간이었으나 아무래도 몸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는걸로 봐선 현재인 듯 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살펴보자 자신은 하얀 띠를 두르듯 걸치고 있었으며 어느새 의자에 앉아있었다.
 자신이 누군지 기억해낸 신은 등사에게 말했다.

 "이걸로 사환수는 전부 소집했다. 그러나 벌은 아직이지"

 신의 말에 등사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그들을 다시 신님의 몸에 되돌린 자체가 벌이 아니었는지요"

 그에 신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그것만으로는 안될거라 생각했는지 사환수의 벌을 나열하고 등사에게는 고생한 대가로 상을 내려주었다.

 그렇게 이 환수들의 이야기는 끝난다.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의 이야기이며 그대들이 살아가는 세계에서도 일어났을지 모르는 이야기이다.

 아, 참.
 벌을 받은 사환수와 상을 받은 등사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그것은 상을 받은 등사에게 듣는 편이 좋겠지.
 자, 그럼 나의 이야기는 이만 마치도록 하겠다.

 Epilogue


 나는 등사다.
 아니, 신이 인간들에게 세계를 넘기고나서는 환수란 존재는 모두 이 세계에서 사라졌다.
 그렇기에 지금은 단순히 내 원래의 모습을 분열하고 또 분열하여 사람의 팔 하나나 둘 정도의 길이로 줄어들어 '뱀'이란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다.
 신님에게 연락할 수 있는 수단도 얻었고 게다가 불로불사를 받아 죽지않고 살아갈 기회를 얻었으나 아무래도 그래서야 환수가 아닌가 싶었는지 주기적으로 탈피라는 것을 해야한다고 한다.
 뭐, 그 정도 귀찮음으로 불로불사를 얻었으니 나쁠건 없는데, 문제는 사환수 녀석들이다.

 그들은 우선 그 크기가 작아진건 두말할 것도 없지만 첫째로 주작은 인간을 죽이고 불태운 죗값으로 '닭'이라는 이름을 얻고 인간들을 위해 해가 뜨면 아침을 알리고 알을 낳으며 자신의 몸 마저 먹히고 있다.
 수없이 분열한 그 몸의 고통을 주작이라는 하나의 영혼이 받고 있으니 그 고통은 형용할 수 없겠지.
 게다가 알에서 태어나는 것 또한 자기 자신이라고 하니 정말 불쌍하다.

 그 다음으로는 현무.
 그는 사람들이 먹는 물을 일부러 오염시킨 죗값으로 우선 그 몸이 둘로 분열되었다.
 '거북'과 '물뱀'이라는 이름을 얻어 지상에서는 엄청나게 느리게 되었으며 때가 되면 알을 낳아야하는데 그 고통이 장난이 아닌 모양이다.
 뭐, 그래도 청룡의 꼬득임에 속아넘어갔다는게 판명되었는지 주작과 청룡에 비하면 나은 편인 것 같다.

 그런 현무를 꼬득인 청룡은 '이무기'라는 구렁이와 비슷한 녀석이 되었는데 청룡일때의 아름다움은 어디갔는지 정반대였으며 더러운 물에서 밖에 살지 못하는 듯 하다.
 그래도 그는 나중에라도 신님을 도와준 덕분인지 다시 청룡으로 되돌아갈 방법을 하나 알려주신 모양이다.
 천년 동안 이무기로 살다가 인간에게 모습을 드러내 그 인간이 그를 용이라고 인식하면 청룡으로 되돌아갈 수 있고 인식하지 못하면 다시 천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근데 아무래도 힘들지 않을까......

 어찌됐든 마지막으로 백호.
 그는 찬성이 아닌 중립을 선언했기 때문일까, 그저 그의 금속성과 백색만을 빼앗긴 채로 '호랑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백명의 인간을 도우면 다음 세대에 백색은 돌려받는다고 하니 앞의 셋의 환수에 비하면 무척이나 낫다고 생각한다.

 죄를 저질렀다고는 하지만 부디 그들이 그 죗값을 치르고 해방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그들도 부디 죄를 저지르지 않고 살기를 바라는 바이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