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밤 11시경 하늘에서 내려온 눈은 지금이 겨울임을 알리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지상에 닿기도 전에 강변에 방금 막 하늘에서 떨어진 듯한 번개가 그 열기로 주변의 눈을 녹이고 있었다.
 그곳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대교의 정상에 사람의 그림자가 셋.
 그 중 하나는 빨강.
 그것은 빨강이었다.
 추위도 안 타는지 소매가 없는 빨간 조끼를 입은 그는 안의 옷도 빨간색이었는지 소매도 빨간색이었으며 바지 또한 빨간색이었다.
 그야말로 그는 빨강이었다.

 "랜서 마력도 없는데 저래도 되는걸까-?"

 빨강의 옆에 있던 금발머리 여성이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괜찮아. 어차피 저건 주변의 마력을 흡수하자마자 방출하고 있을 뿐이니까"

 그에 빨강이 살짝 기분 나쁜 듯 말했다.

 "아니아니, 마스터는 난데. 어째서 누님이 괜찮다고 하는겁니까?"

 "그 누님이란 호칭, 어떻게 안될까? 토오사카씨"

 어째선지 토오사카 저택에서 헤어지고 브로드 브릿지에서 다시 만난 엔은 리노를 누님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에 리노는 빨강, 아니, 엔의 누님이란 호칭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아니, 기분이 나빴다.
 그걸 암시하듯 호칭도 엔에서 토오사카씨로 바뀌었지만 엔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어라-? 어째서? 육촌에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까 누님이지. 누님이란 칭호 한번 불러보고 싶었거든, 나"

 "누가 늙었다는거야, 이 머저리가. 하지말라면 하지말란 말이야! XXXXXX--"

 엔에게 있어 그것은 이 세상의 언어가 아니었다.
 언어만이 근원에 연결된 자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녀가 그런 것이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엔이었다.
 놀란 엔이 그 입을 다물고, 마녀의 자식은 마녀라는 것인가라고 까지 생각하는 것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말은 계속되었다.

 "뭐, 이야기를 되돌려서 랜서의 마력방출에 버서커가 나와주면 좋겠는데"

 "네, 그렇네요. 리노님"

 그 딱딱한 언어의 소유자는 아처가 아니라 엔이었다.
 학습능력이 없는지 그만두라는 그녀의 말을 또 한번 무시한 결과, 근원을 한번 더 체험, 결국 리노씨라는 호칭으로 부르게 된 것이었다.


 ◇


 랜서가 일부러 마력을 방출하고 있을 때, 브로드 브릿지를 넘자마자 있는 미야마쵸의 작은 공원에 검은 터틀넥, 검은 바지, 검은 코트를 입은 검은 머리의 남성이 서 있었다.
 언제 어디서 공격해올지 모르는 어쌔신에 대비하기 위해서인지 그 옆에는 세이버가 서있었다.
 소우는 망원경을 통해 랜서를 쳐다보고 있었다.
 세이버는 그런 소우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무슨 일로 직접 나왔나? 소우"

 세이버는 아직 저번의 일을 끌고 있는지 약간 비아냥거리는 말투.
 이에 소우는 신경쓰지 않는지 랜서에게 눈을 떼지 않은 상태로 입을 열었다.

 "뭐, 저번의 일도 있고 해서다"

 신경쓰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저번 같은 상황을 만들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겠지.
 소우의 대답에 세이버는 웃었다.

 "그런가. 그런데 어쩌나? 직접 나왔다고 해서 나를 통제할 수 있는건 아니지 않나. 저번에도 말했지만 령주라도 가져오지 않으면 나의 판단대로 움직일것이야"

 정식 마스터가 아닌 소우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
 이에 소우는 잠시 만원경을 들고 있던 손을 내리고 세이버를 바라보았다.

 "아아, 알고있다. 그렇기에 이걸 들고 왔으니"

 만원경을 들고 있는 오른손이 아닌 왼손을 보이는 소우.
 그 손에 들려있는 것은 한권의 책이었다.
 그것이 뭔지 알 리가 없는 세이버의 물음에 소우는 말을 이어나갔다.

 "위신의 서. 신이치에게서 령주 하나를 빌려왔다"

 그 말에 세이버는 살짝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되돌리더니 웃으며 말했다.

 "좋다, 소우. 그것이 너의 손에 있을 동안은 너가 나의 마스터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너의 모든 명령을 수행하도록 하지, 마스터"

 생전에 자신의 왕의 명령이라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이루어낸 기사.
 지금까지는 신이치가 그의 왕이었으나, 소우에게 위신의 서가 있는 한, 그의 왕은 소우인 것인다.
 대화가 끝났다고 생각한 소우가 망원경을 다시 들어올리려는 순간,
 그것은 나타났다.


 ◇


 랜서가 나타난 것은 버서커와 잠시 이야기를 하다가 성에서 나온 레이야스필이 강변 근처에 도착하고 바로였다.
 눈이 내리는 지금, 겨울의 성녀라 불린 유스티차라즈리이히 폰 아인츠베른, 그녀를 아는 사람은 분명 레이야스필을 보고 그녀가 돌아온 것이 아닐까 생각하리라.

 '아아, 들려?'

 소리가 들려오는 그녀의 귀에는 귀마개와 같은 소형의 기기가 꽂혀있었다.
 그것은 성에 왔던 오리에가 현자의 돌과 함께 주고 간 것으로 소형의 스피커이다.

 "네, 들립니다, 오리에"

 레이야스필의 대답을 어떻게 들었는지 오리에는 말을 이어나갔다.

 '좋아. 그럼 세이버의 위치를 알려줄테니 잘 부탁해'

 레이야스필이 고개를 끄덕이자 오리에가 세이버와 그의 마스터의 위치를 전하였다.
 그것을 들은 레이야스필은 다리를 움직여 그들에게로 향했다.


 ◇


 겨울의 성녀라고 하는 말은 성배의 그릇이 되었던 자의 이명이라고 들었지만 현재 존재하는 것 중에서 눈 앞의 것보다 그 말에 어울리는 자가 있을 리 없다.
 소우는 레이야스필을 보고 잠시 숨을 멈췄다.
 그 숨을 다시 내쉬게 한 것은 세이버였다.

 "호오, 버서커의 마스터가 어째서 이쪽에 있나? 랜서는 저쪽에 있다만?"

 세이버가 랜서가 있는 강 저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에 레이야스필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뇨, 세이버를 먼저 쓰러뜨리자는 제안이 있었으니까요"

 "흠, 강한 것은 이래서 고달픈 것이다. 동맹을 맺고 이 나를 쓰러뜨리러 왔다는건가"

 세이버가 곤란하다는 듯 말했으나 레이야스필은 그것을 신경도 쓰지않고 버서커를 실체화했다.
 실체화한 버서커는 순식간에 거대해져 눈이 쌓인 대지에 걸맞게 한 마리 설원의 늑대가 되었다.

 "UUUUhhhhhhh--!!!!"

 "뭐, 좋다. 가끔은 애완견과 놀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성을 잃은 늑대는 달려들었고--
 그것을 막아내는 것은 황금의 창이었다.

 "음? 어느새 날아왔나, 랜서. 미안하지만 오늘은 너와 놀아줄 시간이 없는 듯 하다만"

 "아니, 미안한건 이쪽이다. 뺐어서 미안하다만 이 애완견, 이 몸이 데려가겠다, 세이버"

 랜서의 등장에 레이야스필은 오리에에게 어찌할 지 물었으나 그럴 필요는 없었던 모양이다.

 "응? 뭐, 좋다. 데려가라"

 말을 마친 세이버가 자리를 벗어나 소우와 함께 공원에서 떨어진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전장이 될 공원에 남은 두 서번트, 랜서와 버서커만이 남자 레이야스필의 명령에 의해 약 4m의 거대한 늑대가 먼저 달려들었다.
 본래라면 어제와 같은 상황이 될 전장.
 버서커가 달려들어 거대한 오른팔이 랜서에게 날아들었다.
 그러나 그것을 피할 생각이 없는지 랜서의 창은 그대로 버서커의 심장으로 향한다.
 동귀어진을 노리는 듯한 랜서, 둘의 공격은 거의 동시에 적에게 닿--
 지 않았다.
 파직.
 버서커의 오른팔은 신체가 터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단순한 살덩어리가 되어 몸에서 떨어져나갔다.
 그리고 랜서의 창은 무언가를 맞고 창의 궤도가 엇나간듯 버서커의 오른쪽 땅에 박혀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적을 향해 다시 날아오는 늑대의 왼팔을 랜서가 땅을 박차고 뒤로 물러나 피했다.

 "칫, 어쌔신인가. 귀찮은 녀석"

 그와 동시에 버서커의 오른팔은 순식간에 복구--
 아니, 그것은 이형[異形]이었다.
 떨어져나간 오른팔을 대신하듯 붙어있는 것이 두개.
 현자의 돌에 의해 과다한 마력을 한번에 끌어모아 재생한 탓일까, 그나마 늑대의 형태를 유지했던 버서커의 오른팔은 어깨로부터 두개의 팔이 솓아나 있었다.
 그럼에도 버서커는 아랑곳하지 않는지 그런 상태에서도 눈 앞에 있는 적에게 달려들었다.


 ◇


 두 도시를 잇는 다리의 정상에서 버서커의 오른팔을 날려버린 아처는 자신의 마스터의 명령으로 어쌔신을 찾으러 다니고 있었다.
 랜서의 창을 맞춘 총탄이 날아온 장소는 미야마쵸의 상점가 근처.
 정확한 위치파악 겸, 운이 좋으면 버서커를 저지할 겸, 버서커의 마스터를 노리고 활을 쏜 것이 벌써 11번.
 그것을 고정된 위치에서 막아내는 것도 놀라웠을 터, 그러나 11번의 총탄은 전부 다른 위치에서 날아왔다.
 아무래도 아처의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아처의 위치를 파악하고 벗어나는 듯 했다.
 그렇다고 활을 쏘는 것을 멈추고 어쌔신을 추적할 경우 랜서가 고전할 것은 불보듯 뻔한 상황.
 아처가 이것저것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근처의 상공에 하나의 수레가 보였다.
 그 수레에 힘을 담지 않은채로 화살을 하나 쏘아 발했다.
 그에 라이더가 아처를 눈치챘는지 수레가 다가왔다.

 "어이, 무슨 일이냐. 공격을 한다고 생각되진 않았다만"

 로우의 말에 아처는 감사의 표시를 전하고 말을 이었다.

 "광륜거에 저를 태워주시지 않겠습니까?"

 아처의 말에 로우가 무슨 말이냐는 듯한 표정을 짓자 아처는 설명했다.

 "버서커를 쓰러뜨리는 데 어쌔신이 방해가 됩니다만 그 위치를 찾기가 힘듭니다. 부디 도움을 주면 감사하겠습니다, 라이더의 마스터"

 아처의 설명에 로우는 이해를 했는지 흔쾌히 승낙했으나, 사실 어쌔신과 버서커가 쓰러지면 자신에게도 이득이 있기 때문이겠지.
 그리하여 광륜거에 오른 아처는 구름에서 내리는 눈과 같이 하얀 옷을 입은 어쌔신을 발견하고는,

 "그리고 제 마스터가 당신들에게 할 말이 있는 듯 합니다"

 자신의 마스터의 위치를 알리고 로우에게 감사의 인사를 남긴 뒤, 영체화하여 어쌔신에게로 향했다.

 "저 녀석이 어쌔신을 쓰러뜨려주면 좋을텐데"

 로우는 중얼거리며 아처에게 들은 장소로 향했다.


 ◇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을 순간적으로 손에 든 총으로 쏴 떨쳐내고 바라보자, 그곳에는 활을 든 서번트가 있었다.

 '아처에게 발각되었습니다. 어찌할까요? 마스터'

 어쌔신은 상대를 아처라고 단정지었다.
 마스터에게 상황을 보고한 어쌔신에게 명령이 떨어진다.

 '버서커와 랜서의 전투가 끝날 때까지 시간을 끌어라'

 마스터의 명령에 수긍한 어쌔신의 손에는 방금전까지 들려있던 총기, 조준경이 없는 모신나강 M28이 아닌 새로운 총이 각각의 손에 한 정씩 들려있었다.
 기관단총 Suomi K31.
 9 mm 파라벨럼 탄을 사용하여 저지력은 그다지 강하지 않았으나, 핀란드 군인들 사이에는 많은 인기를 끌었으며 게다가 위기의 핀란드를 구했기 때문에 구국의 총이라고도 불리우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보편화 된 총이 보구일 리가 없을터.
 그러나--
 그 총에 의해 발사된 총탄은 보기좋게 아처의 화살을 막아냈다.

 '성배에 기초한 지식에 의하면 저것은 핀란드의 보편화 된 총기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것이 보구에 속하는 것인가'

 아처의 시야에 들어온 총기는 분명히 보구였다.
 랭크를 지닐 리가 없는 그것은 틀림 없이 마력이 흐르고 있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의 보구를 막아낸 무기가 보구가 아닐 리가 없다.
 같은 모양의 보구가 두 개, 그것도 한명의 소유자.
 너무나도 기묘한 상황에 대치한 아처였지만 쓰러뜨려야 할 적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


 계속해서 내리는 눈은 조금씩 바닥에 쌓여가고 있었다.
 그 가운데 치열하게 싸우는 자가 둘.
 한쪽은 4m가 넘는 거인으로 다리가 넷, 팔이 여섯인 괴물.
 그리고 그런 괴물을 홀로 상대하는 것은 180cm가 약간 넘는 자신의 키보다 약 2배가 조금 안되는 길이의 창을 사용하는 황금의 남자다.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자가 있었다.

 "세이버, 저 괴물, 이길 수 있어?"

 소우의 물음에 세이버는 조금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혼자서 말인가? 확실히 말해 무리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버서커의 마스터를 죽이면 해결 될지도 모르지"

 세이버의 말에 소우는 버서커의 마스터를 노릴까했지만, 어제의 전투에서 아처가 버서커의 마스터를 노리자, 버서커가 달려드는 것을 보았기에 그만두기로 하고 방관을 자처했다.


 ◇


 '준비는 됐어, 랜서"

 머리 속에서 울리는 엔의 목소리에 랜서가 크게 웃는다.
 자신의 앞에는 어느새 몸이 산덩이처럼 불어나 5m가 넘는 괴물이 하나.
 괴물의 팔은 어느새 다섯으로 네개의 팔 중 하나의 팔꿈치를 베어냈더니 거기서 또 두개의 팔이 생겨난 것이다.
 베어내면 베어낼수록 거대해지는 괴물.
 도망치면 자멸할 뿐인 미쳐버린 것에 대항하는 자신 또한 이미 미쳐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보구는 어제도 안 통했는데 어쩔 생각이야? 랜서'

 머리 속에서 자신을 향해 물어오는 질문에 괴물의 팔을 걷어내며 대답했다.

 '령주다, 엔. 이럴 때를 위해 쓰는게 아닌가, 그것은. 두개만 사용해도 이 괴물을 처리할 수 있을테지'

 '뭐!? 안돼! 나중에 마토우선배의 세이버와 싸울 땐 어쩔 생각이야, 랜서'

 바보 같은 남자.
 그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까지의 3일간 동안 들었다.
 자신이 한번도 이기지 못한 마토우 소우라는 자에게 단 한번이라도 이겨보기 위해 시작한 전쟁.
 패배를 몰랐던 자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그것을 눈 앞의 괴물에게 패배함으로써 알게 되었다.
 이제는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바보 같은 놈. 너가 그 마토우라는 녀석에게 이기기를 바라 듯, 나는 이 괴물에게 이기기를 바란다, 엔. 그것을 모르겠는가?'

 처음으로 그가 자신의 호칭을 낮추었다.
 그것에 어떠한 감정이 담겨져있었는지 알 리가 없는 엔이었지만 그는 말했다.

 '뭐야- 같았잖아, 우리들. 그래, 그저 한번이라도 이기고 싶을 뿐인거야'

 '같다'라고 말하는 엔의 말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좋아-! 가겠어, 랜서!'

 그 말을 신호로 랜서가 뒤로 도약했다.


 ◇


 미야마쵸에서 날아오던 광륜거가 브로드 브릿지의 정상에 멈춰선다.
 거기에는 한 쌍의 남녀가 있었다.

 "늦었네, 라이더의 마스터씨"

 "그쪽의 아처 탓이지. 그보다 그쪽의 빨강은 처음보는군. 뭐, 랜서의 마스터인가"

 엔은 자신을 보고 랜서의 마스터임을 단번에 알아챈 로우를 보고 놀랐다.

 "오오- 대단하네, 너. 어떻게 알았어?"

 로우는 엔의 반응을 무시하고 리노를 바라보았다.

 "그보다 머저리냐? 적인 나한테 자기들 위치를 알려주고 오라고 하다니, 서번트도 없는 녀석들이"

 로우가 지적하자 이에 리노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그래, 그거. 적을 지적하는 사람이 비겁하게 서번트도 없는 자를 공격할 리는 없다고 생각해서 말야"

 "아아, 그러십니까? Fuck, 대단한 추리력이십니다. 그래서, 무슨 용무냐"

 로우가 리노의 대답에 욕을 내뱉고는 자신을 부른 이유에 대해 묻자 리노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저 버서커 잠시나마 멈출 수 있어?"

 리노가 가리킨 방향에선 괴물이 된 버서커와 처음 보다 지친 듯한 랜서가 싸우고 있었다.
 로우도 잠시 그쪽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글쎄,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만 어쩔 작정이지?"

 "헤에- 안한다고는 안하는구나, 당신"

 리노의 말에 욕을 내뱉던 로우가 리노의 작전을 듣고 광륜거는 전장의 상공을 향해 이동해나간다.
 버서커와 랜서의 위까지 이동한 광륜거, 거기에 타고 있던 라이더는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검, 켄묘렌을 빼들고는 로우를 향해 말했다.

 "마스터여. 명령을"

 "귀찮게, 그냥 쓰면 될 것을. 뭐, 나쁠건 없나. 보구를 개방하라, 라이더"

 귀찮은 듯 말하는 로우의 말에 라이더는 켄묘렌에 마력을 모으며 주창했다.

 "문수보살의 지혜가 담긴 검으로 신과 통하고 연애감정을 폭파시켜 천귀의 비를 뿌린다[文殊智劍大神通 恋愛発破 天鬼雨]!"

 주창이 끝나고 라이더가 켄묘렌을 공중에 던지자 그것은 순식간에 천개로 분열하였다.
 그리고 때마침 버서커로부터 랜서가 멀어진 순간 천개의 칼날이 버서커에게로 쏟아졌다.


클래스        Rider
마스터        아사가미 로우 浅神露
진명        스즈카고젠 鈴鹿御前
성별        여성
신장/체중    154cm/38kg
성향        혼돈 중용
스테이터스    근력 D 내구 E 민첩 C 마력 B 행운 B 보구 A+
클래스별 능력    기승 A+
보유 스킬    신성 B

보구

다이츠렌大通連 B /쇼츠렌小通連 B
-하늘을 나는 검으로 도신刀身만 존재하며 소유자의 생각에 따라 움직인다.

켄묘렌顕明連 A
-분열이 가능한 검으로 분열한 수에 비례하여 그 힘은 떨어지며 소유자의 생각에 따라 움직인다.

코렌샤光連車 A
-6개의 다리를 지닌 두 마리의 영마霊馬가 끄는 하늘을 달리는 수레로 영마의 발이 대기를 박찰 때마다 대기가 진동한다.

문수보살의 지혜가 담긴 검으로 신과 통하고 연애감정을 폭파시켜 천귀의 비를 뿌린다 / 文殊智劍大神通 恋愛発破 天鬼雨 A 대군보구
켄묘렌의 진명개방으로 지상을 향해 수천개의 켄묘렌을 떨어뜨린다.
이 때의 켄묘렌은 각각이 하나의 힘을 발휘한다.
마력량에 따라 원하는 수만큼 조정이 가능하다.

 

 새하얀 눈과 함께 떨어지는 칼날들은 버서커의 몸을 분쇄해나갔다.
 그러나 몸은 분쇄와 동시에 재생되어 점점 더 부풀어 올라갔다.
 그 상황에서 랜서의 창에 마력이 깃들며 엄청난 번개가 모여나간다.
 그것은 어젯밤과 같은 형상을 띄며 굉음을 뿌려나갔다.
 도중에--

 '일곱 서번트 중 하나, 랜서의 마스터로써 명한다. 보구를 사용하라'

 첫번째의 령주가 발동해 마력이 증폭되어 랜서의 창에 굉장한 양의 마력이 모여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한번 엔의 목소리가 들린다.

 '다시 한번 랜서의 마스터로써 명한다. 저 괴물자식을 없애버려! 랜서!!!'

 서번트의 강제명령권, 령주.
 두 획을 사용하면 대마력 랭크 A의 서번트가 저항하지 못할 정도 마술을 행사하는 그것이 하나의 보구에 밀집해나갔다.

 "아아, 명령을 실행하겠다! 마스터. 저 고기덩어리 한조각도 남기지 않으마!"

 랜서는 말과 동시에 도약해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울려퍼지는 번개의 진명--

 "세계의 끝의 여덟개의 번개[Κεραυνός]!!!"

 번개의 창은 깨끗하게 버서커의 심장을 노리고 던져졌다.
 그리고 랜서의 머리가 꿰뚫린 것은 그와 동시였다.

 성배에 소환된 것은 단순히 강한 상대와 싸우기 위해서.
 세이버와 싸우고 비슷한 정도의 상대를 만났다고 기뻐했다.
 버서커와 싸우고 자신의 보구가 통하지 않는 괴물도 있다고 깨달았다.
 버서커에게 당해 처음으로 패배감을 느끼고, 마력이 바닥나고 나서야 처음으로 위기감이라는 것을 느꼈다.
 복수하기로 결정한 순간, 처음으로 행복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패배감과 위기감을 주었던 적에게 죽음을 하사하려는 지금--
 그깟 암살자 하나에 이 몸이 쓰러지는 것인가!?
 그깟 총탄 하나에 이 몸이 죽어야만 하는가!?
 그깟 약해빠진 클래스에게 내가 죽는 것인가!?
 그깟! 그깟!! 그깟!!!! 쓰레기 같은 새끼 때문에!?

 "어쌔신!!!!! 비겁한 암살자 새끼가!!!!!! 저주하겠다!!! 이 개같은 자식!!!!!"

 총탄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며 어쌔신을 매도하면서 랜서는 그대로 소멸되었다.
 그리고 주인을 잃은 창은 그 힘이 반감되어 버서커에게 도달해, 그와 동시에--
 한 줄기 빛이 하늘에서 떨어져 버서커를 불태웠다.


 ◇


 어느새 눈이 땅을 뒤덮고 있는 시각.
 후유키 상점가의 옥상에선 아처와 어쌔신이 한창 전투 중이었다.
 아처의 화살 하나 하나를 어쌔신이 맞추어나가는 어쌔신의 방어전이 계속되어 아처가 접근전으로 바꾸려 생각할 때 쯤 멀리 떨어져 있을 공원에서 엄청난 마력이 모이는 것이 느껴졌다.
 아처와 어쌔신 둘 다 상황을 자신의 마스터로부터 전달 받고 있는 상황에, 순간 어쌔신이 무기를 바꿔들었다.
 M28.
 단 한발로 아처의 화살 한발 한발을 막아낸 무기다.
 조준경이 없는 그것을 두 손으로 잡은 순간 아처의 활에서 하나의 화살이 이번에야말로 적을 관통하기 위해 날아가고 M28의 총구에선 불을 내뿜었다.
 찰나이지만 먼저 쏘아진 화살이 어쌔신의 가면을 맞추어 깨뜨리고 탄환은 아처를 빗나가 뒤로 빠져나갔다.

 '빗나갔다? 아니, 있을 수 없어. 설마!?'

 그 생각이 머리에 스친 순간 아처는 놀란 듯 뒤를 바라보았다.
 아처의 시야에 비춘 것은 수십미터 떨어진 곳인 공원의 상공, 이마가 관통 된 랜서였다.
 그것을 파악한 아처가 다시 어쌔신 쪽을 바라보았으나, 거기엔 마치 원래부터 아무도 없었다는 듯 아무런 자취도 남아있지 않았다.


 ◇


 세이버와 소우는 그 상황을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랜서가 소멸한 것을 본 세이버는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하! 랜서, 결국엔 그 전설과 같이 창을 놓는 순간 죽어버렸구나. 웃기는 일이다. 게다가 결국 저 괴물은 죽이지도 못했는가, 바보 같은 놈. 저딴 것과는 싸울 필요가 없거늘"

 세이버가 즐거운 듯 말하는 것을 듣고 그 옆에서 소우가 말했다.

 "웃을 시간은 없다, 세이버. 기회는 지금이다. 버서커를-"

 그러나 그걸 말할 시간도 없이 소우가 쳐다보고 있던 괴물이 이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걸 세이버도 파악했는지 소우의 앞에 서서 다급하게 말했다.

 "어이, 마스터, 이번엔 사용하겠어"

 "아아, 허가한다, 세이버"

 세이버가 무엇을 사용한다는지 듣지 않아도 알고 있는건지 소우는 허가를 내렸다.
 이에 세이버의 손에는 들고 있던 발뭉은 사라지고 다른 검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마치 상대가 무엇을 할 지 느끼기라도 하듯 즉시 마력을 모아 가기 시작했다.


 ◇


 케라우노스에 의해 몸의 반이 날아가고 번개를 맞아 온 몸이 불 탔던 버서커의 몸은 어느새 재생하여 이제는 괴물이라기보단 단순히 살덩이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아직 싸우려는 무언가에 지배되어 움직이자 이를 포착한 오리에가 레이야스필에게 세이버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이에 버서커에게 령주를 사용하여 세이버가 있을 위치에 보구의 사용을 명령하자 버서커의 온 몸에 저장된 모든 마력이 한 곳에 모여든다.
 그것을 바라보는 레이야스필의 귀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이야, 그 뒤 숲으로 들어가 숨어. 곧 갈테니까'

 오리에의 목소리를 들은 레이야스필은 버서커를 놔두고 근처의 숲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소리가 울려퍼졌다.

 "UUUUUUUUUhhhhhhhhhhhhh---!!!!!!!!!"

 어제의 포효와는 랭크 조차 다르게 느껴지는 파동을--

 "파멸을 부르는 보복의 검[Dáinsleif]!!!"

 세이버의 검에서 나오는 밤의 어둠마저도 집어삼킬듯한 칠흑같은 어둠이 집어삼키고 그대로 버서커마저도 집어삼켜 흔적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칫, 기분 나쁜 검이로군. 이것이 저주라는 것인가, 주인을 침식해나가다니"

 세이버의 갑옷 위로도 거미줄 같이 선명히 드러나는 검붉은 선들이 손을 타고 올라와 팔꿈치까지 얽혀있었다.
 다인슬라이프를 쓴 세이버는 진명개방을 끝내자마자 영체화하고 소우는 전장을 이탈했다.


클래스        Saber
마스터        마토우 소우 間桐霜
진명        하겐 폰 트론예 Hagen von Tronje
신장/체중    190cm/89kg
성향        질서 악
스테이터스    근력 A 내구 A 민첩 B 마력 B 행운 C 보구 A++ 

클래스별 능력
기승 A
-환수·신수를 제외한 모든 탈것을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다.
대마력 A
-A랭크 이하의 마술은 모두 무효화한다. 사실상 현대의 마술사는 피해입히는 것이 불가능.

보유 스킬
직감 C
-타고난 제6감. 전투시 자신에게 최적한 전개를 느끼게 해준다. 전투 관련 행위에만 사용 가능. 세이버 치고는 낮은 랭크다. '왠지 모르게 이쪽으로 공격하면 맞을 것 같다' 라고 생각이 떠오르는 정도.
마력방출 A
-무기 혹은 자신의 육체에 마력을 두른 후, 순간적으로 방출하여 운동능력을 향상시킨다.

보구

환상대검 천마실추 / Balmung A+ 대군보구
원전인 마검 '그람'으로서의 속성도 겸비하고 있어서 손에 든 자에 따라 성검, 마검의 속성이 변화하고 용종의 피를 이어받은 자에게 추가 피해를 입힌다.
칼자루의 푸른 보옥에는 신대의 마력(진 에테르)이 저장 보관되어 있으며 이를 해방하면 황혼빛의 검기를 방출한다.
진명개방 시 도신에 에테르가 차올라 이를 방출한다.

파멸을 부르는 보복의 검 / Dáinsleif A++  대성보구
니벨룽겐의 마검으로 소유자에게 파멸을 가져오는 저주의 보구.
강력한 '보복'의 저주를 지녔지만 동시에 소유자의 운명조차 파멸로 몰아넣는다. 
일반적으로 마검 및 성검은 영광과 파멸이 양립하지만 다인슬라이프는 오직 파멸만을 소유자에게 가져다 준다고 한다.
진명개방을 하지 않아도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몸을 침식해나가 최후엔 심장에 도달해 소유자의 목숨을 앗아간다.
전설에 따르면 항상 이 검을 세번째 뽑았을 때에 소유자는 목숨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상대의 마력방출형 보구를 저주로 물들여 흡수해 상대에게 추가피해를 입힌다.

 


 신토의 호텔 최상층에서 캐스터와 모니터를 관람하던 오리에가 급하게 건물 밖으로 뛰쳐나온다.
 손에 든 휴대폰은 영상통화를 하고 있는 듯 레이야스필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다.

 "레이야, 그 뒤 숲으로 들어가 숨어. 곧 갈테니까"

 버서커가 소멸하고 나서 그녀를 노릴 상대는 많을테지.
 한명의 마스터라고는 하나 마지막엔 성배가 되어 소원을 이루어줄 그릇이다.
 그렇기에 그녀를 손에 넣으려고 하는 오리에.
 그러나 과연 그것만이 전부일까, 오리에는 조금 전 저녁에 캐스터와 했던 대화를 생각해냈다.

 -오호호호, 그렇습니까? 이야, 다행이네요. 만약 버서커가 쓰러지면 그녀를 구하러 나간다든가 하는 일은 없겠군요.

 그의 말에 분명 자신은 뭐라고 말했던가.

 -아니 당연하잖아, 그런거. 내가 남을 챙길 사람으로 보이는거야?

 그 때는 확신했다.
 분명 그녀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 자신과는 관계가 없을 터라고.
 그러나 방금 전 버서커가 죽을거라고 생각이 든 순간, 자신도 모르게 다리는 빌딩의 비상구를 달리고 있었다.
 그것을 마치 미리 알고 있었던 듯한 캐스터의 말이 머리속에서 걸리긴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도 그녀를 구하러 달리는 자신이 이상해 머리 속이 엉망이 될 것 같다.
 다행히도 어쌔신은 아처와 싸우고 있던 상황이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달려나갔을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성배의 그릇이기에?
 아니, 다르다.
 성배의 그릇은 교회측에서 보호, 회수를 할 터인데 어찌하여 자신은 이렇게도 그녀의 안전을 확인하려 하는 것인가.

 -그런가요. 사실 저로써는 다행이에요. 만약 당신이 성공했으면 나는 당신과 만날 일이 없었을테니. 그렇다면 저는 진짜의 괴물을 소환해 이 넓은 성에 저 하나였겠죠?

 자신이 숲을 빠져나오자 실체화한 버서커와 그녀가 한 대화.
 듣고 있었다.
 분명 그 때문이겠지.
 처음 보았을 때 감정이 없다고 생각되었던 그녀가 단 몇시간 만에, 외로웠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고독.
 자신의 과거 그리고 현재.
 언제나 고독했다.
 카라코우지라는 가문은 야쿠자 집안이었다.
 자신을 낳았던 부모는 첫째가 여자임을 알자 후계를 잇지 못하기에 방치했다.
 그래도 가문의 이름 덕분이겠지.
 버려지지는 않았고, 입을 것, 먹을 것 등 사는 데 필요한 것은 부족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문의 이름 때문이겠지.
 누구도 그녀와 가까워지지 않았고, 심지어 괴롭힘을 당하는 처지.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에 강함에 메달렸다.
 누구보다도 강해지자 마음 먹은 그녀는 오로지 검도에 집착하고 13살이 되던 해 검도 1단을 따냈다.
 그리고 어째선지 그 자리에 있던 엘멜로이라고 하는 시계탑의 강사에 눈에 띄었는지 유학하게 되었다.
 분명 이전보다 나을거라고 생각했던 그곳에서 오리에는 더욱 더 고독을 맛보았다.
 가문의 이름도 없는 단순한 인간이라고 생각되었던 그녀가 탑에 올라서자 시기와 질투는 하늘을 치솟았고 그야말로 알아주는 이 없이 고독했다.
 그 중 단 한명 강사인 엘멜로이만이 그녀의 이해자였다.
 반말을 할 때의 신경질적임은 엘멜로이의 덕이라고 봐야겠지.
 그로인해 어차피 고독할거라면 더욱 강해져 우러러보게 만들어주겠다 생각한 그녀는 동료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집행자에 지원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단어.
 지금까지도 자신을 쫒아다니는 고독.
 그렇기에 그녀는 더 이상 고독하지 않기를 바란다.
 엘멜로이가 자신에게 있어 그랬듯, 이제는 자신이 누군가의 아니, 그녀의 고독을 쫓아낼 수 있다면--
 하고 눈 덮인 도시의 길을 뛰어나간다.
 그 곳에 있는 누구나가 세이버와 버서커를 바라보고 있었던 덕분인지 오리에는 무사히 레이야스필이 다른 마스터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들어갔던 숲에 도착했다.
 여태껏 숨이 찰 정도로 뛴 적이 없던 그녀가 처음으로 숨을 헐떡였다.
 숨을 내쉬고 있는 그녀에게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오셨네요, 오리에. 그런데 무슨 일로"

 오리에가 시선을 올리자 거기에는 눈으로 뒤덮힌 나무숲, 그 안에 하얀 드레스를 입은 겨울의 성녀가 있었다.
 자신에게 달려온 이유를 모르는 듯한 말투.
 그야 그렇겠지.
 자신이 성배의 그릇이라는 건 참가자의 대부분이 알고 있을 터.
 게다가 교회의 감독역이 그녀를 보호할 것이기에 오리에가 달려올 필요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려 온 오리에는 숨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레이야, 나와 같이 가지 않겠습니까?"

 마스터라고는 하지만 버서커가 없는 지금 솔직히 말해 번거로운 짐이 될 뿐인 그녀를 데려가려는 오리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감정에 치우쳐 쓸데없는 짓은 하지않았던 오리에가 처음으로 의미가 없는 말을 꺼냈다.
 그러나--

 "아뇨, 성배의 그릇인 저는 교회에 가야되니까요"

 레이야스필은 이를 거부했다.
 당연한 대답.
 물론 오리에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저 몸이 먼저 움직였을 뿐.
 그렇기에 그 당연한 대답에 네, 그렇군요. 라는 당연한 대답을 하려는 오리에의 말은 계속되는 레이야스필의 말에 막혔다.

 "그렇지만-- 마지막에 저에게 찾아오는 것이 당신이라면 저는 기쁠거에요, 오리에"

 마치 오래된 친구에게 보이는 듯한 웃음과 함께 전해온 말.
 그 말을 들은 오리에는--

 "물론, 기다리고 있어, 레이야. 절대로 찾아갈테니까"

 성배전쟁이 개시한 이래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성배를 손에 넣으리라 다짐했다.


 ◇


 '캐스터의 마스터입니다. 사살할까요? 마스터'

 오리에와 레이야스필이 대화하는 숲의 나무 중 하나의 가지 위에 어쌔신이 있었다.
 그가 둘의 존재를 파악하고 자신의 마스터에게 묻자,

 '흠, 안타깝군. 신을 믿는 자가 거짓을 말할 수는 없지. 세이버가 살아남아있는 지금 캐스터와의 거래는 유효하다, 지켜보기만 하라'

 진심으로 안타까운 듯한 신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쌔신은 나무의 그림자에 숨어, 둘의 감시를 계속했다.


 ◇


 그 후 레이야스필은 현장수습 겸 나온 감독역에게 인수되었다.
 그리고 그걸로 오늘의 싸움은 끝이 난 듯, 뿔뿔이 흩어졌다.
 여기에 두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만.
 새하얀 눈이 쏟아져 도시의 더러움을 덮어가는 새벽 1시경 토오사카 저택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무거운 공기의 안, 엔과 리노가 거실의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래서? 이제부터 어떻게 할꺼야?"

 무거운 공기를 깨는 한마디의 말.
 랜서가 소멸한 지금, 엔에게 성배전쟁을 해나갈 방법은 없었다.
 그럼에도 포기가 아닌 어떻게 할건지 묻는다는 점이 의문이었겠지.

 "어떻게라니? 난 끝이잖아? 서번트도 없고 말야"

 당연한 엔의 말에 리노는 끄덕이고 자리를 일어섰다.

 "뭐, 확실히 그렇네. 그럼 무사히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길 바랄게, 엔. 바이바이"

 엔은 리노의 인사에 화답했다.
 그리고 리노는 토오사카 저택을 나와 자신의 주거지로 향했다.
 눈길을 터벅터벅 걸어나가며 아처에게 어쌔신과의 싸움을 보고받는다.
 일반 무기가 보구로 취급되는 점과 그 무기의 종류에서 핀란드의 영령이라는 것을 알아냈고, 싸움의 마지막에 어쌔신의 총탄이 랜서를 정확하게 맞추었다는 점에서 어쌔신이 천리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이 두가지를 들은 리노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거 시모 해위해[Simo Häyhä] 아냐?"

 핀란드 태생의 할머니를 가져서일까, 리노의 입에서 단번에 전설의 저격수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시모 해위해[Simo Häyhä].
 그는 제 2차 세계대전 직전 벌어진 겨울전쟁 당시, 100일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혼자서 무려 542명을 사살한 저격수였다.
 참고로 500여명이라는 사살수는 단지 저격만 따졌을 경우고, 기관단총인 Suomi K31로도 200명 이상 사살했다고 한다.
 혼자서 800명 가까이를 사살했단 말.
 이 때문에 당시 소련군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그들은 그에게 하얀 사신[Белая Смерть]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소련은 1개 소대 이상 규모의 오로지 시모 해위해를 저격하기 위한 저격 부대를 투입했으나, 그의 코트를 찢어 놓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그가 단 한번도 조준경을 사용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실전에서 그의 총에 조준경이 장비되었던 적은 없다.
 그는 오로지 총신의 가늠쇠를 이용하여 시력만으로 조준하였다.
 이 당시 가늠쇠는 실제로 정조준을 하기 적합한 형태도 아니었다.
 시모 해위해는 이미 마음속으로 조준선을 맞추고 사격을 하는 경지에 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노는 어쌔신의 진명이 거의 맞을거라고 예상하며 길에 쌓이는 눈에 걱정을 하며 눈을 밟으며 걸어나갔다.


클래스        Assassin
마스터        코토미네 言峰
진명        시모 해위해 Simo Häyhä
성별        남성
신장/체중    161cm/55kg
성향        중립 악
스테이터스    근력 D 내구 E 민첩 A+ 마력 D 행운 B 보구 B
클래스별 능력    기척차단 A+
보유 스킬    천리안 C / 마안 C

보구
상징은 나에게 의미가 없나니 / Symbol minulle ole järkeä C 상시발동형보구
자신이 생전에 쓰던 모든 무기의 보구화.   
랭크는 D~A로 성능에 맞게 정해진다.

전장의 하얀 사신 / Белая Смерть B
자신의 마안의 시야에 포착된 대상의 마력을 읽어내 저격 시 그 탄환은 마안으로부터 백업을 받아 빗나가는 일 없이 적에게로 향한다.
눈이 내린 필드에서 운의 패러미터와 기척차단의 랭크가 한 단계 상승한다.

 

 호텔에 돌아온 오리에를 맞아주는 것은 이제는 익숙해진 캐스터였다.
 캐스터는 오리에가 올라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웃어댔다.

 "오호호호호, 어땠습니까? 미스 카라코우지"

 모든 걸 보고 있었으면서 일부러 묻는 캐스터.
 분명 그의 머리속은 오리에를 놀려줄 생각으로 가득 차 있겠지.

 "시끄러워, 친구 만나러 가는게 뭐가 웃겨?"

 정색하며 말하는 오리에.
 그런데 그것 또한 웃겼는지 캐스터는 배를 잡고 웃어댔다.

 "친구입니까, 아하하하하! 아아, 이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대사입니까, 미스 카라코우지"

 "시끄럽다니까! 그보다 당신, 나한테 뭐 숨기는거 있지. 내가 그녀한테 갈거라고 알고 있었던거 같은데"

 그 말에 그때까지 웃어대던 캐스터가 딱 하고 멈췄다.
 그러더니 한번도 보인 적 없는 진지한 모습으로 말했다.

 "아뇨, 당신에게 피해를 줄 일은 없어요, 미스 카라코우지"

 "흥, 뭘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적당히 해요"

 진지한 모습으로 말하는 캐스터를 믿는 것인지 오리에는 깊게 추궁하지는 않았다.
 오리에는 캐스터에게 모니터의 확인을 맡기고 침실로 들어갔다.
 그것을 지켜본 캐스터가 중얼거렸다.

 "일단 오늘은 살아났습니다만, 또 다음이 문제로군요. 뭐, 어떻게든 되리라 생각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