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벌떡, 몸을 일으켰다.
 방금까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는데, 여긴...

 "으아아, 시끄러워! 뭐하는거야!"

 "하하하하, 뭐긴 보면 몰라? 장난이지"

 칠판 앞에 서있는 학생과 그에 소리치는 학생.
 학생이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수군대고 있었다.
 아직 머리가 제대로 일을 하지않는지 멍한 정신으로 두리번거리자 방금 전에 소리치던 내 앞에 선다.

 "오, 일어났냐? 어제 잠 안 잤어? 1교시랑 2교시 그냥 날로 주무시던데?"

 결국은 또 다시 학교.
 원인일 터인 행동을 바꾸어도, 결과는 전혀 바뀌지 않는다.
 마치 인과역전.
 그렇지만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행동의 변환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수십번의 일상을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


 벌떡, 몸을 일으켰다.
 방금까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는데, 여긴...

 "으아아, 시끄러워! 뭐하는거야!"

 "하하하하, 뭐긴 보면 몰라? 장난이지"

 칠판 앞에 서있는 학생과 그에 소리치는 학생.
 학생이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수군대고 있었다.
 아직 머리가 제대로 일을 하지않는지 멍한 정신으로 두리번거리자 방금 전에 소리치던 내 앞에 선다.

 "오, 일어났냐? 어제 잠 안 잤어? 1교시랑 2교시 그냥 날로 주무시던데?"

 1교시, 2교시?
 아, 맞아.
 횡단보도를 걷기 전까진 분명 교실이었는데 어째선지 횡단보도를 걷고 있었다.
 말도 안되는 상황.

 "으아아, 대체 어쩌라는거야!"

 "뭐? 왜 그래, 에신"

 나의 말에 반응하는 리군이지만, 일단 무시하고 생각을 이어나간다.
 시간에 관련되었다 생각해 시간을 바꿔보았지만 여전히 덤프트럭은 나타난다.
 장소에 관련되었다 생각해 장소를 바꿔보았지만 차도만 건너면 덤프트럭이 나타난다.
 둘 다 바꿔보아도 녀석은 나타난다.
 그렇다면 더 이상 무슨 방법이 있다는거지?
 어쩌면 방법 같은건 없는게 아닐까?

 "어이, 에신. 듣고 있냐?"

 "아, 왜, 뭐?"

 계속해서 말을 건네는 것에 대충 묻는다.

 "그 얘기 들었어? 얼마 전에 근처 사거리에서 사고가 난 모양이던데?"

 몇번이고 들었던 대사.
 사거리에서 일어났다는 사고에 대해서 이번에도 변함없이 물어본다.
 누가 죽었는지 따위는 관심없다.
 내가 살아남는 것도 머리아픈데.

 "관심 없다고 했잖아, 그딴거"

 몇번이고 들었기에 짜증이 차올라 짜증과 함께 말을 내뱉는다.
 그런 나의 반응이 이상했는지,

 "뭐야, 너. 캐러 바뀌지 않았냐?"

 언젠가 들었던 말을 했다.

 "캐러캐러 시끄럽네. 자리에 돌아가, 곧 수업이잖아"

 마침 내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종이 울린다.

 딩동댕동-, 딩동댕동-.

 내 말이 신경을 건드렸는지, 잠깐 서있던 리군이었지만 이내 자리로 돌아간다.

 어쨌거나 이건 오컬트 관련이다.
 틀림없어.
 그렇다면 이제 믿을 사람은 부장 뿐.


 ◇


 종이 울리고 수업이 끝난다.
 방과 후, 리군이 말을 걸어오는걸 기다리지 않고 바로 교실을 나선다.
 시간에 관련된 것이 아니란건 알았지만, 빨리 해결돼서 나쁠 건 없으니.

 "부장!"

 동아리 부실에 도착하자마자 문을 열어제낀다.
 두번이나 안 왔었지만, 여전히 불이 꺼진 부실.
 부실의 전등을 켜고 묻는다.

 "안 좋은 기운이 대체 뭐죠?"

 나의 질문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는지 이마에 물음표 마크를 띄우는 부장.
 잠시 동안 기다리자 생각이 정리되었는지,

 "아-, 근데 어떻게 알았어? 자고 있길래 말 안 걸었는데?"

 언젠가 들었던 말을 했다.
 이대로 물어봤자, 똑같을게 분명한 반응.
 어차피 글쎄, 라는 말이 돌아오겠지.
 이대로는 안된다.
 그렇다면 직접 물어보는게 빠르겠지.

 "아, 그건 됐고, 그럼 하루가 반복되는데 이거 벗어나는 방법 몰라요?"

 ......
 내가 겪은 일이지만, 말로 했더니 어이가 없네.
 이런걸 믿기나 할까, 싶은 정도다.

 "반복? 그야 인생은 반복되는 일상이니까"

 뭔가 명언 같은 말이 나왔습니다만-.

 "아니아니아니, 그게 아니고. 진짜로! 하루가 반복된다니까요? 아니, 반복이라기보다 왠지 모르게 도로만 건너면 덤프트럭이 달려오고 그대로 깨어나면 교실이에요"

 "흐음-"

 "아니 진짜로 말이 안되는건 저도 아는데 말이죠. 이게 진짜라니까요?"

 나도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모를 정도로 이야기를 퍼붓는 도중에 부장이 말한다.

 "그럼, 도로를 안 건너면 되잖아?"

 어라? 진짜 그러네? 도로를 안 건너면 되잖아!
 아니, 잠깐 근데 횡단보도를 안 건너면 집에 어떻게 가라고?

 "근데요, 부장. 저 집에 가려면 도로를 안 건널 수가 없는데"

 "그래? 그럼 집에 안 가면 되는거 아니야?"

 ......
 집에 안간다고?
 확실히 이건 신세계급 생각이다.

 "그런데 도로 안 건너고 잘만한 데가 있던가요?"

 "글쎄-"

 아, 나왔다.
 글쎄-, 라니 진짜 남 일이라고 너무하네.
 어쨌든 이걸로 얻을건 충분히 얻었다.

 "고마워요, 부장!"

 고개를 끄덕이는 부장을 뒤로 하고 교실을 빠져나온다.
 여태까지의 행동이 습관이 되었는지,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다.
 오후 5시 47분.

 "......"

 원래라면 리군이 말을 건네올 타이밍이지만, 어째선지 나타나지 않는다.

 "어라? 패턴이 바뀌었나? 뭐, 상관없나"

 리군과 조우하지 않은 채로 학교를 빠져나온다.


 ◇


 학교를 빠져나와 인도만을 걸어서 돌아다녀봤으나, 갈만한 곳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다시 학교로 돌아왔는데,

 "으아아, 닫혀있잖아"

 의외로 걸어다니는데 시간이 걸렸다.
 이미 8시가 넘은 시각이니까 어쩔 수가 없겠지.

 "이렇게 된 이상, 게임으로 밤을 지새운다!"

 딱히 입 밖으로 낼 필요는 없었지만 기합이라는 것이다.
 어찌됐든 학교의 교문에 기댄채로 앉아 스마트폰을 꺼낸다.
 요즘이니까 폰으로 게임이지 스마트폰이 아니었으면 대체 어떻게 시간을 때웠을려나, 하는 생각을 하며 게임을 시작한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게임을 하던 도중 시끄러운 소리에 고개를 든다.

 끼이이이익------

 "------"

 해가 사라지고 달이 지상을 비추는 밤.
 언젠가 F1 경기장에서 들어본,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긁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가 들려오는 곳은 오른쪽.
 달려오던 덤프트럭이 그 속도를 줄이지 못하는지 차도에서 이탈해 나를 향해 달려든다.
 운전석에 앉아있는 기사와는 달리, 차체는 전혀 멈출 생각이 없어보인다.
 그렇다고 핸들을 돌리기에는, 아니, 충분히 돌려도 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핸들은 기사의 마음대로 되지 않고.
 목표는 정해져있었다.
 그런 상황에 생각나는건,

 '거짓말이지...? 이래서야 벗어날 방법이---'

 불가능, 이라는 하나의 단어였다.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 리가 없지만, 덤프트럭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끼이이이익------

 "------"


 To be continued...
 But, The time isn't continued.

 04


 벌떡, 몸을 일으켰다.
 방금까지 교문에 앉아있었는데, 여긴...

 "으아아, 시끄러워! 뭐하는거야!"

 "하하하하, 뭐긴 보면 몰라? 장난이지"

 칠판 앞에 서있는 학생과 그에 소리치는 학생.
 학생이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수군대고 있었다.
 아직 머리가 제대로 일을 하지않는지 멍한 정신으로 두리번거리자 방금 전에 소리치던 내 앞에 선다.

 "오, 일어났냐? 어제 잠 안 잤어? 1교시랑 2교시 그냥 날로 주무시던데?"

 1교시, 2교시?
 아, 맞아.
 덤프트럭이 나타나기 전까진 분명 교실이었는데 어째선지 교문 앞에 앉아있었다.
 말도 안되는 상황.
 그것이 말해주는건 당연히,

 "말도 안돼"

 벗어날 방법따윈 없다, 라는 것이었다.
 도저히 이 말도 안되는 지옥같은 상황을 벗어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무한히 반복되는 일상.
 거기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는 것일까.

 반복할수록 신경은 날카로워지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마음 또한 가지지 못했다.
 그렇기에 깨닫지 못한 것이겠지, 이 상황을 간단히 벗어나는 방법을---


 ◇


 "흐음-, 그래?"

 책상을 마주하고 앉은 부장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긴장감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것이었다.
 그와는 반대로 나는 또 죽을걸 생각하면 심장이 벌렁거리기에 한시가 바쁘다.

 "그렇게 여유 있을 때가 아니라니까요? 벌써 몇번인지 세던 것도 까먹을 정도라니깐"

 수업을 마치고, 사실 수업이고 나발이고 집어치우고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부장이 수업을 들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려서 어쩔 수 없었다.
 그리하여 벌써 하루의 절반은 커녕, 앞으로 죽기까지 최대 8시간도 안 남은 이 시간에 부장과 대화를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저번에도 나한테 도움을 받았다는거지?"

 "네, 그렇다니까요. 전-----혀 도움은 안 됐지만!"

 방금 전까지 전날의, 아니, 꿈 속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 선배에게 어제 했던 얘기를 대충했다.
 그런데도 역시 사람은 하루 이틀에 바뀌지 않는지 여전히 태평한 부장.

 "그래서 다른 방법 없어요? 집에 안가는건 안되던데?"

 "흠, 글쎄-"

 "또 나왔다! 글쎄-, 이거 패턴 좀 바꾸면 안돼요?"

 전혀 남의 말에 아무런 생각을 안하는 것 같은 대사에 소리치자,

 "흠, 글쎄-"
 
 같은 말을 반복해주는 부장이었다.

 "아-, 뭐, 됐고! 제대로 생각 좀 해줘요. 이번엔 죽기 싫다니까"

 "어... 그러면 그 덤프트럭인가 뭔가가 안 나타는데 있으면 되는거 아니야? 건물 안이라던가-"

 "음? 오.. 오옷! 그거 좋은데요? 크, 역시 부장! 고마워요!"

 역시 부장은 뭔가 다르다.
 이런걸 바로바로 생각해내다니.
 아, 근데 또 안되면 어떡하지.

 인사를 던지고 나가려던 몸을 돌려 다시 부장의 앞에 앉았다.
 생각해보면 또 안될 경우에 여태까지의 설명을 다시 할려면 시간이 걸릴게 아닌가.
 이 참에 할만한걸 다 듣고 가야지.

 "혹시 그거 말고 다른 방법 없어요?"

 "흠, 글-"

 "오케이! 글쎄- 금지! 그거 금지!"

 "...어게-"

 억지로 다른 말을 한게 분명한 말을 일단 접어두고 다시 생각에 접어든다.
 흠,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덤프트럭을 피하는 게 제일인 것 같긴 한데-

 "그런데 말이야"

 "네?"

 생각에 빠져있자니 왠일인지 부장이 먼저 말을 건넸다.
 지금까지 중에서 처음으로 보이는 패턴.
 드디어 탈출의 기미가 보이는건가---

 "나 이제 가봐야되는데"

 "......"


 ......

 "지금 집이 문제야?! 나 죽는다고!"

 부장의 말에 여태껏 모아왔던 스트레스가 폭발했는지, 나도 모르게, 그래, 나도 모르게 부장의 멱살을 잡고 흔든다.
 그에 부장은 내가 흔드는대로 흔들리고 있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근데 말야"

 "뭡니까?"

 진지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말하려는 부장의 분위기에 우선 멱살을 잡은채로 흔드는걸 멈춘다.
 근데 만약 여기서 진짜로 집에 가야된다거나 하면 이대로 같이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흐흐흐.

 "음? 지금 뭔가 오싹한 생각하지 않았어?"

 "에.. 에? 아뇨아뇨아뇨, 저언혀. 그보다 할 얘기가 뭐죠?"

 생각을 읽은 듯한 부장의 말에 고개를 흔들며 부정한다.
 이에 부장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건 말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게 아닐까?"

 "근본...?"

 "음... 뭐랄까. 덤프트럭이 달려오는 원인이라던가? 있지 않겠어? 아니면 저주를 건 사람이라도 있을거 아냐. 그러면 그 사람을 없애는게 빠르지 않을까?"

 부장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해본다.
 그러고보면 뭐든지 일에는 원인이 있을텐데, 그 원인을 없애면 이 짜증나는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겠구나!

 "오오! 역시 부장! 머리 좋은 사람은 뭔가 다르네요!"

 "음, 그렇다기보다 에신군이 머리가 안-"

 "네, 스톱! 그보다도 지금부터 원인을 규명하는 회의를 가져보도록 합시다!"

 부장의 근본을 꿰뚫는 듯한 말에 사건은 진척되기 시작한다.

 "아니, 진척이 아니라, 나 집에 가야 된다니까?"

 "어이쿠, 마음의 소리가 새어나갔나. 근데 안돼요"

 "......"

 나를 노려보는 부장.
 역시 조용한 사람이 화나면 무섭다더니, 안경 너머의 눈매가 무섭다.
 그러나 나라고 물러설 수는 없지.
 물러서면 죽는다, 라는 생각으로, 뭐, 실제로 죽긴 하지만, 어쨌든 그런 생각으로 부장을 쳐다본다.
 그 이후 잠깐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어떻게든 설득을 끝마쳐 8시까지 회의를 지속하기로 결정했다.


 ◇


 "어제랑은 뭐 달라진거 없어?"

 아무래도 집에 빨리 가고 싶은 모양인지, 적극적이 된 부장의 말에 대답해나간다.

 "흠, 글쎄요-"

 "아니, 그런 패러디 안 해도 되니까 진지하게 생각해봐"

 무의식적으로 부장의 명대사를 꺼내자, 부장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에 잠시 생각해보지만,

 "바로 어제라고 해도 말이죠. 저는 벌써 며칠이나 더 전의 얘기라서요. 그런게 기억날 리 없잖아요?"

 전혀 생각나지 않았기에 당당히 대답했다.
 그에 미간을 찌푸리는 부장이었지만, 이내 다시 질문을 던진다.

 "그럼 하루를 반복할 때마다 계속 말을 건넨다던가, 이상하게 주변을 떠돈다던가 하는 사람 없어? 보통 그런 사람이 범인이니까 말야"

 부장의 말에, 무슨 범인이요, 라고 묻자, 그야 추리소설의, 라고 대답해온다.
 아무래도 추리소설이라고 착각하는 게 아닐까, 싶은 마음에,

 "이거 소설 아니고 진짜인데요, 부장"

 어이 없다는 듯이 말해봤으나, 부장이 마치 이 때를 기다려왔다는 듯이, 세 손가락으로 안경을 올리면서 말한다.

 "현실은 소설보다 진기한 법, 그것이 현실이란 놈이지-"

 "부장... 솔직히 말해봐요. 여기 오컬트부 아니고 중2병부죠?"

 "에신군, 무슨 소리를! 원래 오컬트나 중2병이나 거기서 거기야. 생각해봐, 왼팔에 흑룡이 잠들어있다니 그야말로 오컬트 아니겠어?"

 너무나도 당당히 오컬트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던지는 부장.
 그런 부장의 말에 한마디 해주고 싶었으나, 쓸데없이 시간만 지날 것 같은 예감에 무시했다.

 "그러고보면 리군이 말을 자주 걸긴하는데요. 그건 원래부터 그랬거든요?"

 "에, 무시?"

 자신의 말이 무시된 데에 좀 침울해하는 부장이었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대답을 말을 잇는다.

 "흠, 그럼 리군을 죽-"

 "스톱! 누굴 살인자로 만들 생각이냐?!"

 "아, 그렇네. 그럼 전부는 아니고 반쯤 어때? 이 정도로 합의보자고"

 ......
 아무래도 집에 빨리 가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 같다.
 그래도 그렇지 너무 대충 던지는 거 아냐?

 "부장, 너무 대충하면 안 보내드립니다?"

 "윽, 알았어. 그보다 안경닦이 좀 빌려줄래?"

 아무래도 방금 전에 안경을 올리면서 지문이 묻었는지 안경닦이를 찾는 부장.
 그러게, 왜 쓸데없이 멋있는 척은 하려고 해서.

 "자, 여기요-"

 "고마워, 음? 에신군? 이거 놔줘야 쓰지"

 안경닦이...
 나는 대체 언제부터 안경을 쓰지 않고 있었던거지?

 "자.. 잠깐만요, 부장. 저 언제부터 안경을 안 썼죠?"

 "응? 오늘 렌즈 아니었어?"

 "아뇨, 분명 오늘 아침엔 안경을 썼는데..."

 이상하다.
 애초에 안경을 안 쓰고도 이렇게 잘 보일 리가 없는데.
 무언가가 이상하다.
 생각을 떠올린다.
 대체 언제부터 안경을 안 쓰고 다녔지?
 분명 처음에는 썼을텐데.
 처음?
 처음엔 분명---

 -뭐래. 약 먹었냐? 안경을 쓰던 놈이 안경을 벗었으니까 안보이는게 당연하지, 바보냐?

 리군의 말.
 그래, 이 때만 해도 애들의 얼굴이 안보여서, 안경을 썼는데.

 "그래서? 지금은 잘 보여?"

 생각에 빠져있는 도중에 부장이 말한다.
 그에, 잘 보인다, 라고 대답을 하기 직전에 부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 이상한걸 물었네. 안경을 안 썼는데 잘 안보이는게 당연한가"

 그 말에, 나의 시야는 번지기 시작했다.
 수채화에 물이라도 흘리는 듯, 순식간에 형체가 흐릿해지더니, 이윽고 모든 것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가방에서 안경을 꺼내 쓴다.
 그제서야 시야가 돌아온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거죠, 부장. 여태까지 안경을 안써도 보였는데 어째서-"

 "그게 이 세계의 공략법이 아닐까?"

 "공략법?"

 게임도 아니고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에 물음표를 띄우자 부장이 말을 이어나갔다.

 "여태까지 안경을 쓰지 않아도 보였던 것처럼 뭔가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하고 있어서 하루가 반복되는 게 아닐까 싶은데"

 "그렇단 소리는 이와 같은 이상현상을 다 찾으면"

 "벗어날 수도 있다는 소리지"

 이건 희소식이다.
 이상현상, 안경을 안써도 눈이 보이는 것과 같은 이상현상인가.

 "근데 그걸 어떻게 찾아요?"

 "흠, 그러게-"

 "그것도 금지할까요?"

 웃으면서 최대한의 분노를 나타내자 부장이 대답했다.

 "아니, 이번건 생각이 담긴 그러게니까 이해해 줘. 그보다 생각나는거 없어?"

 부장의 말에 잠시동안 생각에 잠긴다.
 이상현상.
 음...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그게, 전혀 생각나지 않는데요?"

 "하아... 그럼 어쩔 수 없지. 다음번까지의 숙제로 하고 여기까지 하는 수 밖에"

 결국 완벽하게 피할 방법은 찾지 못한채로 부장과 헤어진다.
 그래도 안경이라는 하나의 단서는 찾았으니, 앞으로도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다.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되겠지.
 어차피 끝이 없는 세상이니까.

 "그것보다 우선은 오늘의 덤프트럭을 피해볼까나"

 덤프트럭이 나타날 수 없는 장소, 차도를 제외한 곳을 생각해본다.
 그리하여 가장 좋은 곳을 찾아내 숨는다.
 덤프트럭이 나타나면 숨을 이유는 없겠지만, 덤프트럭을 피해 숨는게 아니고,

 "어라? 그런데 학교에 경비가 있던가?"

 혹시라도 나타날 경비를 피하기 위해 우선 불을 끈 채로 교실에 들어앉는다.
 덤프트럭이 날아올 리도 없고 2층이라면 충분하겠지.
 자리를 잡고 스마트폰을 킨다.
 시간은 어느새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몇분 안남았네. 그래도 심심한데 게임은 어제 실컷했고 오늘은 인터넷이나 볼까나"

 인터넷에 들어가자 뉴스들이 올라와 있다.
 사고사, 유아살해, 방화 등의 지금의 나와는 연관 없는 뉴스의 헤드라인만 대충 보고 웹툰을 본다.
 즐거운 시간은 꽤나 빨리 흘러서 어느덧 12시가 되었는지,

 끼이이이익------

 "------"

 해가 사라지고 달이 지상을 비추는 밤.
 언젠가 F1 경기장에서 들어본,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긁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가 들려오는 곳은 오른쪽.
 대체 어디서 나타났는지 달려오던 덤프트럭이 그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나를 향해 달려든다.
 핸들을 돌리기에는, 아니, 거기에 운전기사는 없다.
 핸들은 누군가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목표는 정해져있었다.
 그런 상황에 생각나는건,

 '역시 안되나'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 리가 없지만, 덤프트럭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끼이이이익------

 "------"


 To be continued...
 But, The time isn't continued.

 05


 벌떡, 몸을 일으켰다.
 방금까지 교실에 있었는데, 여긴...

 "으아아, 시끄러워! 뭐하는거야!"

 "하하하하, 뭐긴 보면 몰라? 장난이지"

 칠판 앞에 서있는 학생과 그에 소리치는 학생.
 학생이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수군대고 있었다.
 아직 머리가 제대로 일을 하지않는지 멍한 정신으로 두리번거리자 방금 전에 소리치던 내 앞에 선다.

 "오, 일어났냐? 어제 잠 안 잤어? 1교시랑 2교시 그냥 날로 주무시던데?"

 1교시, 2교시?
 아, 맞아.
 2층인 교실에 덤프트럭이 나타나서 나에게 달려들었다.
 말도 안되는 상황.

 "뭐, 결국은 원인찾기인가"

 "응? 무슨 얘기야?"

 내 말에 리군이 묻는다.
 그러고보면 안경에 대해 처음 이야기해준 것도 리군이었다.
 리군이라면 평소랑 달라진 게 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리군, 평소랑 달라진거 없어?"

 "평소랑 달라진거? 글쎄? 아, 그러고보면-"

 무언가를 생각하던 리군이 뭔가를 떠올린 듯이 말한다.
 아무래도 이번에야말로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

 "근처 사거리에서 사고가 났다는데, 알고 있냐?"

 "......"

 맥이 풀린다.
 기껏 뭔가 알아내나 했더니, 고작 하는 말이 여태껏 수없이 들어왔던 얘기라니.

 "그런거 말고 나랑 관련된거 중에 말야. 뭐 없어?"

 "그거 말고 다른건 없는거 같은데? 왜? 캐러라도 바꿨냐?"

 아무래도 이 녀석 진짜 로보트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사고와 캐러에 집착하는 수준인 리군의 말에 부정을 하려고 하는 것과 동시에 종이 울린다.

 딩동댕동-, 딩동댕동-.

 그대로 수업은 시작되었고, 나는 결국 또 다시 방과후를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


 "그래서 이상현상을 찾고 있다고?"

 "네, 저 뭐 다른거 모르겠어요?"

 방과후, 언제나처럼 부장을 찾아와 어제까지의 설명을 간략히 끝마친다.
 그에 부장은 역시나 언제나처럼 고개를 끄덕이고는 상담모드에 돌입했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근처에 따라다닌다는가 하는 사람은 없어?"

 "아, 그것도 부장이 말했었는데요. 리군 밖에 없어요. 근데 리군은 원래 자주 같이 다녔으니까"

 "그래? 그래도 혹시 몰라. 원래 범인은 친한 관계 중에 있는 법이 많거든"

 "범인요? 아-"

 나도 모르게 되물었지만, 다음 대사를 깨닫고 실패를 깨닫는다.
 하지만 반격의 기회는 있지.

 "현실은 소설보다 진기한 법, 그것이 현실이란 놈이니까?"

 "... 말도 안돼. 나의 대사를 빼앗다니!"

 "훗"

 ......
 아니, 근데 지금 이러고 놀 때가 아닌데.
 잠깐 놓았던 정신줄을 다시 잡는다.

 "이럴 때가 아니라고요. 어쨌든 리군은 아는게 없던데요"

 "아니, 말한건 에신군인데. 그것보다 범인이 진실을 말해줄 리가 없잖아"

 아무래도 저번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리군을 범인으로 의심하나보다.
 이것이 오컬트부원의 감이라는 것인가.

 "그럼 그렇다 쳐요. 근데 그 다음은요?"

 "흠, 글쎄-"

 "그 대사 이제 지겨운데요"

 이제는 너무 자주 들어서 지겨운 대사에 불평을 던진다.

 "리군도 그렇고 부장도 그렇고 로봇입니까? 뭔 패턴을 그리 잘 지켜요?"

 "음? 리군도 그래?"

 내 말에 무언가를 느꼈는지 진지한 느낌으로 묻는 부장.
 그에 리군이 말해왔던 것에 대해 털어놓았다.
 사거리의 사고에 대한 이야기와 성격이 변한거 아니냐고 묻는 말.
 그 말을 듣고는 부장이 입을 열었다.

 "그 사고란거 말이야. 에신군의 사고 말하는거 아니야?"

 "에.. 네? 아니, 그럴리가 없잖아요. 저 아직 살아있는데요?"

 "에신군의 하루는 반복되지만, 뉴스는 갱신될 수도 있지"

 부장의 말도 안되는 소리에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스마트폰을 열어 뉴스를 본다.
 사고사, 유아살해, 사체유기 등의 기사들.
 헤드라인만이 써있는 기사들 중에 사고사라고 써있는 기사를 연다.


 미정고 앞 사거리 교통사고, 학생 1명 사고사

 오늘(11일) 오후 6시12분쯤 미정고 앞 사거리에서 덤프트럭이 학생을 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학생이 사망하였다.

 피해자는 미정고등학생 3학년 신모군으로 밝혀졌으며, 근처에는 스마트폰이 신모군의 스마트폰으로 추정되는 것이 떨어져있었다.

 한편, 경찰은 운전자가 황색등일 때에 신호를 지나가기 위해 속도를 줄이지 않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
 오늘 6시 12분?
 이게 무슨 바보같은 소리야?
 아직 6시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기사가 나와있다고?
 혼란스러운 오른손으로 머리를 잡고 있자, 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이걸로 풀린거 아니야? 에신군, 아마도 지금 혼수상태인게 아닐까?"

 "아니, 그게 말이 안되잖아요. 제가 혼수상태인데 여기에 있다고요? 아니 그보다도 사고난건 신모군인데 저는-"

 말도 안되는 소리에 이런저런 항변을 늘어놓고 있자, 부장이 이상한 듯 말한다.
 진짜로 이상하다는 표정과 함께,

 "응? 에신군, 신씨잖아?"

 너무나도 이상한 말을 한다.
 신씨라니...
 내가 아무말도 안하고 있자, 부장이 곧 깨달았다는 듯이 말을 잇는다.

 "아, 이름도 잊었던거였구나. 신수열"

 신수열.
 그래, 부장의 입에서 나온 그것은, 분명히 나의 이름이었다.

 "그럼 에신이란건 누구 이름이에요?"

 혼란으로 가득한 머리를 어떻게든 진정시키고 부장에게 질문을 했다.

 "닉네임이잖아? 우리 오컬트부 부원들 다 닉네임으로 부르고 있잖아. 나도 부장이라고 불리고 있고 말이야"

 "아니 그거 닉네임입니까?"

 방금 부장의 이야기를 듣고나서 생각이 떠오른거지만 생각해보면 닉네임이었다.
 오컬트부원답게 닉네임을 하나씩 정하자, 라고 누군가가 말했었다.
 적어도 자기가 정하자는 의견을 수렴해 각자가 자기의 닉네임을 정하자고 했기에, 가짜라는 뜻의 일어 nise[偽]를 뒤집어 esin을 자처했다.
 나 나름대로 간지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중2병스러운 이름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부장이 입을 열었다.

 "애초에 에신이라는 이름일리가 없잖아. 한국인이라고? 한국어 말하고 있으면서 에신이라는 이름이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읏..."

 확실히 부장의 말이 맞다.
 한국어를 말하면서 에신이라는 이름에 위화감 하나 갖지 않았다니.

 "잠깐, 그러면 리군은?"

 "글쎄? 난 만난적 없으니까 모르지"

 "아-, 그런가"

 확실히 리군과 부장이 만날 일은 전혀 없다.
 리군은 반친구, 부장은 동아리친구, 라는 곳이다.
 그럼 어째서 리군은, 별명같은 이름인거지?

 "에신군 이름처럼 잊고 있는거 아냐?"

 "흠, 그런가?"

 그럴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자기 자신 이름도 잊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그러고보면 제 이름 알려준 것도 리군인데요?"

 생각해보면 내 이름을 알려준 것도 자신의 이름을 알려준 것도 리군이었다.

 "그러면 평소에도 에신군이 그 친구를 리군이라고 불렀거나, 아니면-"

 범인이거나, 라고 말하는 부장의 말은 지금까지와 달리 제일 현실성 있게 들린 것이었다.


 ◇


 어느덧 시간이 흘러 부장이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어차피 지금 죽으나 늦게 죽으나 별 차이 없다는 생각에 부장과 같이 학교를 나선다.

 "그러고보면 저 죽었잖아요? 그러면 여기 사후세계인가?"

 "그럴리가 없잖아. 사후세계가 있을리가 없지"

 마치 자기의 말이 진실이라는 듯이 말하는 부장.
 그러나 오컬트부의 부장이 그런 말을 하니 전혀 믿을 수가 없다.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확신을 해요?"

 내가 웃으면서 말하자 부장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이 나이에 벌써 죽을리가 없잖아. 난 80까지 살 운명이라고"

 "뭡니까, 그 말도 안되는 소리는"

 "너무하네, 말도 안된다니"

 전혀 논리 같지도 않은 말에 반박을 하면서 길을 걸어나간다.
 그런 반박에도 부장은 자신의 생각을 펼쳐나갔다.

 "사후세계설보다는 에신군의 머릿속이라는 설이 더 맞지 않을까?"

 "머릿속이요?"

 나의 반문에 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나간다.

 "생각이야, 생각. 심상이라고도 말하지. 생각해보면 그쪽이 더 들어맞아. 이렇게 대화하고 있는 나도 에신군이 생각하는 나라는거지. 리군이라는 친구 또한 그럴거고 말이야. 에신군말야. 지금까지 나랑 리군말고 대화했던 사람 있어?"

 부장의 말에 생각을 떠올린다.
 하루를 반복해나가면서 대화를 한 사람은 단 두명.
 리군과 부장 뿐이다.

 "하지만 그건 친한 사람이 두명 뿐이니까"

 "아, 에신군 왕따?"

 "아니, 그건 아니지만-"

 말하면서도 생각을 해보지만 어째서 두명 이외에 대화를 하려고 했던 적이 없을까.
 생각해보지만 마땅히 이유가 있는건 아니었다.
 그저 대화에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니까, 라는게 이유라면 이유겠지.

 "뭐, 어쨌든 그런거니까 다음번엔 반 친구들과 대화해봐. 내 생각엔 무리가 아닐까 싶은데"

 "어째서요?"

 "그건 아직 확실하지 않으니까 다음번에 얘기하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녹색불이 된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부장이 손을 흔든다.
 나는 그에 손을 흔들지않고 달렸다.
 생각해보면 누군가랑 같이 횡단보도를 건넌 적은 없었다.
 언제나 혼자.
 그리고 녀석이 나타나는 것은 언제나 혼자였을 때.
 그렇다면 다른 사람과 있을 때라면 혹시, 라는 생각을 하며 달린다.

 끼이이이익------

 "------"

 노을이 지는 저녁.
 횡단보도를 건너는 도중, 언젠가 F1 경기장에서 들어본,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긁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가 들려오는 곳은 오른편.
 달려오던 덤프트럭이 그 속도를 줄이지 못하는지 빨간불로 바뀐 지금에서도 나를 향해 달려든다.
 운전석에 앉아있는 기사와는 달리, 차체는 전혀 멈출 생각이 없어보인다.
 그렇다고 핸들을 돌리기에는 횡단보도에 서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건너는 사람은 단 한명.
 자신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 생각나는건,

 '같이 있는 사람은 자동으로 사라진다, 라'

 어디론가 사라진 부장에 대해서였다.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 리가 없지만, 덤프트럭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끼이이이익------

 "------"


 To be continued...
 But, The time isn't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