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세계의 어느 것에서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만, 모든것은 양면이 존재한다.
 장점과 단점이라던가 빛과 그림자라던가 그런 것, 물론 인간에게도 양면성은 있어서, 가령 대부분의 뉴스에서 나오는 법을 어긴 범죄자의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는 대부분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어휴- 세상이 문제라니까, 그 착한 청년이 그런 일을 할 줄이야. 뭔가 잘못 안 거 아니야? 안동댁도 뭐라고 말 좀-"

 이렇듯 범죄자인 그가 누군가에게는 착한 청년으로 기억되는 반면 그에게 피해를 입은 자들은 그들 나쁜 범죄자라고만 생각할 것이다.
 꼭 범죄자들만이 그런 것은 아니고 분명 누구에게나 그런 양면성은 존재하겠지.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양면성은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는 게 아닐까.
 그것은 물론 이 국민시도 빠뜨릴 수는 없겠지, 라는 철학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방금 전에 목격한 상황에 의해 사고가 이상한 방향으로 달려나갔다고나 할까.
 이유는 너무나도 당연, 눈 앞에서 봐버린 것이다.
 본래라면 쓰레기통이나 나뒹굴어야 할 빌딩과 빌딩 사이의 골목길, 시야를 밝히는 것이라고는 보름달 밖에 없는, 도시에 가득한 네온사인보다는 어둡지만 눈 앞의 상황을 확인할 정도의 장소, 거기에 그 남자는 서있었다.
 나와 비슷한 정도, 즉 175cm 쯤 되어보이는 키에, 얼굴만이 어둠에 떠오를 정도로 어두운 계열의 상하의를 입은 마른 체형의 남자.
 허리까지 오는 길이의 머리모양을 한 지금의 나와는 달리, 뒷목을 덮는 머리칼이 없는 정도로 짧은, 검은색인 내 머리색과 달리 외국인인 듯 금발의 머리칼을 지닌 남자.
 차라리 뒷모습만을 봤으면 좋았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의 옆모습엔 즐기는 듯이 웃고 있는 입이 있었다.
 그야 모든 일도 즐기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감정이 아닐까.
 그도 그럴게, 남자는, 이미 땅바닥에 떨어진 머리는 커녕, 팔과 다리 마저도 몸체에서 분리된, 방금까지 인간이었다고는 생각하기 힘든 시체를 마주하고 있던 것이다.
 웃으며 시체를 바라보던 남자가 시선을 느낀 것인지 이쪽을 바라보았다.

 "어라?"

 고개를 갸우뚱하며 진심으로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는 남자.
 그의 시선에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자, 남자는 비어있는 왼손을 자신의 눈썹 근처에 갖다대더니, 서구적인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한국말로 무언가 중얼거린다.

 "아차, 그러고보면 일반인의 눈에는 이게 인간으로 밖에 안 보였지"

 그러고는 웃으며 이쪽을 향해 말을 건넨다.
 마치 연극이라도 하고 있는 듯한, 마치 헌팅의 대상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말투.

 "오, 누님. 조금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대화를 해보자고, 대화. 5분이면 돼, 5분. 그 정도의 시간은 되잖아?"

 아니, 어느쪽이냐하면 헌팅보다는, 도를 아십니까, 하는 느낌일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말을 건네며 다가오는 남자를 제지한다.

 "누가 누님이야, 누가! 그보다 멈춰, 다가오지마. 나까지 죽일 생각이지, 이 살인자"

 "거 봐, 살인자라니 오해라고, 오해. 나 그렇게 무서운 사람 아니니까. 자, 진정하고, 대화합시다, 대화"

 상황을 정리하기라도 하듯이 말하는 남자였지만, 절대로 거짓말이다.
 게다가 증거인멸이라든가, 목격자는 전부 처리한다, 라던가 하는 이유로 죽일게 틀림없다.
 게다가 살인자가 아니라니.
 단언하건데 저 시체는 분명 저 남자의 짓이다.
 그렇지않고서야,

 "거짓말을 하려면, 그 손에 든 것부터 넣고 하시지"

 저렇게 생생하게 흐르는 피가 잔뜩 묻은 칼을 들고 있을 리가 없다.

 "오-"

 나의 지적에 남자는 그제서야 눈치 챈 듯이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고는 과도 같은 칼에서 피를 떨어뜨리려는지 팔을 휘두른다.
 그에 칼에 묻어있던 피가 빌딩 벽과 바닥에 흩날린다.
 그리고는 접이식 칼날이었는지 칼날을 칼자루에 집어넣고 자신의 바지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건 실례, 이야, 정말 미안하다. 나도 처리 도중에 일반인에게 들킨 적이 없어서 말이지. 꽤나 동요를 한 모양이야"

 그러고는 실수를 멋쩍어하는 듯, 크게 웃는 남자였지만, 방금 절대로 처리라고 말했다.
 이렇게 웃고 있지만 언제 죽이려들지 모르는 상황, 애초에 저 시체를 보고도 웃는 남자니까 절대로 살인에 쾌락을 느끼는 변태가 틀림없다, 라고 생각한 나는 남자의 웃음에 맞춰 같이 웃었다.
 그러자 남자는 착각했는지 미소를 띈 채로 재차 말을 건넨다.

 "그래, 그래. 지금처럼 이야기하면 분명 이해한다니까, 오해야, 오해"

 그런 남자의 말에 나는,

 "응, 아니야!"

 내 인생 최대의 속도로 뒤돌아서 달렸다.
 달려나가는 나의 뒤에서 남자의 놀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치마를 입지 않는다고 우겨서 다행이다, 만약 치마였다면 절대로 지금쯤 죽어있다고, 라는 생각을 하면서 몇 분 쯤 달렸을까, 어느새 파출소에 도달한 나는 그대로 파출소에 달려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열심히 달린 탓에 헥헥 대자 경찰이 먼저 말을 걸어온다.

 "무슨 일이세요. 물 좀 드릴까요?"

 경찰은 불친절하다고들 그러는데 의외로 친절한 경찰에게서 물컵을 받아 단번에 목을 축이고 말을 꺼냈다.

 "후-, 좀 살겠네-. 아, 그보다 이럴 때가 아니고 사람, 사람이 죽었어요!"

 긴박한 상태에서 말하자 경찰도 진실이라고 생각됐는지 진지한 얼굴로 장소를 물었다.
 여러명이서 가는게 좋을 것 같았지만 다른 경찰들이 순찰 중이었는지 일단은 나와 친절한 경찰씨 단 둘이서 살인현장으로 향했다.
 장소만 말해주면 된다고 했지만 어쩌다보니 가게 되 장소였기에 달려온 길을 되돌아가야 알 것 같았기에 동행한 것이다.
 그리하여 되돌아간 그 자리엔, 새빨갛게 물들었던 시체가,

 "없어...?"

 없어진 것이다.
 시체는 물론, 빌딩 벽이나 땅에 묻어있던 피의 흔적마저도 닦아낸 듯, 아니 애초에 그런 것은 묻어있지 않았다는 듯, 더러운 원래의 골목길,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물론 진짜라고 말하는 나의 말에 친절한 경찰씨가 비슷한 골목이 많아 헷갈렸을 수도 있다면서 여러 골목을 찾아다녔으나, 결국에는 시체는 커녕 피의 흔적 조차 찾지 못한 채, 귀신에 홀린 듯한 그 날 밤의 막을 내린 것이다.

 01


 주택단지의 끝, 산의 중턱에 위치한 숲에 둘러쌓인 철책의 내부에 아파트 4층 높이 정도의 큰 저택이 있다.
 내부와의 경계인 커다란 문을 열고, 사방에 깔린 마른 풀들 사이에 난 길을 따라 걸어 저택의 문을 열면 커다란 홀이 나온다.
 독일 귀족의 저택을 본딴 듯한 홀의 중앙에서 이어지는 계단은 그대로 2층을 향하고 있고, 호텔이기라도 했는지, 그렇지 않으면 연회에 초대된 귀빈들의 침소였는지 동쪽과 서쪽에는 쓸데없이 돈이 많이 들어간 듯한 장식을 품은 방들이 나열되어있다.
 반면에 1층의 동쪽으로는 손님을 응대할 응접실로 생각되는 곳으로, 3개의 소파가 ㄷ자 형태로 되어있어 그 사이에 무릎 높이까지 오는 탁자가 있으며, 그 안쪽에는 벽면이 커다란 유리로 되어 밖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에 고급진 탁자와 의자가 4개 놓여있다.
 응접실에서 이어지는 곳에는 2층의 방에 거주했던 사람들이 모두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식당이 있으며, 그 안쪽에는 주방이 있어  아무래도 조수가 있어야 침착할 수 있을 것 같은 넓이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1층의 서쪽으로는 지하실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었으나, 특별히 가본 적은 없기에 지하의 구조는 알지 못한다.
 이렇듯 쓸데없이 커다란 구조의 양관에 오늘도 어김없이 시계소리가 울린다.
 홀의 계단 아래쪽에 있는 커다란 괘종시계는 12시가 될 때마다 종소리 비슷한 소리를 낸다.
 덕분에 몇시에 잠이 들지라도 12시가 되면 깨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도 12시에 맞춰 눈을 뜬 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눈부신 햇살과 이 앤티크한 양관에는 좀 어울리지 않는 최신식의 텔레비젼이었다.
 초겨울인 12월의 추위를 느끼며, 몸을 삼킬듯이 푹신한 소파에서 몸을 일으킨다.
 손님을 응대할 때나 거주하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공간으로 사용될 것 같은 응접실이 나의 방, 즉 잠을 자는 공간이다.
 보통의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꽤 불편할지도 모르지만, 나로써는 푹신한 곳에서 잘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할 지경이다.
 뭐, 그 사람이 이 상황을 알면,

 '이딴 식으로 살거면 전부 돌려받겠다, 애송아. 줘도 쓰지를 못하니, 쯧쯧'

 같은 말을 내뱉을테지.
 그럴 정도로 살만한 방은 넘쳐나지만 그 중에서 한 곳을 선택하기엔 선택받지 못한 방들이 불쌍하기에, 그렇다면 애초에 응접실에서 자면 되잖아! 같은 현명한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라는 것은 물론 변명에 불과하고 그저 방이 쓸데없이 너무 귀족적인 탓에 나와는 맞지 않을 뿐이지만.
 어찌됐든 그런 탓에 오늘도 응접실에서 눈을 뜬 나는 근처 세면소에서 대충 씻고 나와, 이런 일을 하기엔 너무 제대로 된, 응접실보다 추운 주방에서 전자렌지에 3분 카레와 즉석 밥을 데워 응접실로 가지고 돌아온다.
 텔레비전을 켜 알고보면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 방송을 보면서 입에는 카레덮밥을 집어넣는다.
 그러면서도 생각은 또 다른데 가있어서,

 "대체 어젯밤의 그건 뭐였지"

 혼자 살다보니 많아진 혼잣말로 생각을 내뱉는다.

 "분명히 사람이 죽어있었단 말이지. 게다가 자기가 처리라고 분명히 말했고, 음-"

 생각을 하면서도 손은 열심히 카레덮밥을 입에다 퍼다나른다.
 그러기를 몇 차례, 깔끔하게 빈 밥그릇 대용의 일회용 접시를 들고 주방으로 향한다.
 일회용 접시라고는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일반 밥그릇과 다를게 없기에 세면대에서 그릇을 씻어 건조대에 올려놓고 주방을 뒤로 한다.
 그에 맞춰 오랜만에 초인종이 울렸다.
 본래 이런 저택에는 초인종이 어울리지도 않지만, 그 사람으로부터 저택을 받은 후에 집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먹여살릴 돈도 없었기에 혼자가 된 후에 업자를 불러 새로 설치한 것이다.
 거기에 일일히 나가기도 귀찮았기에 방문객을 비추는 씨씨티비 영상을 스마트폰으로 전송할 수 있게도 해놓았다.

 "역시 과학의 발전은 사람에게 이롭단 말이지"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한다.
 거기에는,

 "겍, 뭐야, 이 인간이 어째서 여기에?!"

 여기에 올 리가 없는 어제 사람을 죽인 남자가 서있었다.
 춥지도 않은지 어젯밤에 입었던 양복을 그대로 입고 온 금발의 남자를 보고, 나도 모르게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워 앉아 스마트폰을 바라본다.
 부재를 자처할 수도 있었지만, 어제밤 사라진 시체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컸던 탓에 말을 꺼냈다.
 스마트폰에 말하면 현관의 스피커에서 말이 나오기도 하는 요즘 세상이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편하군.

 "당신, 역시 날 죽일 생각이었지? 그러니까 여기까지 온거지?"

 내 목소리가 남자의 귀에 들어갔는지 남자가 소리가 나는 스피커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오? 무슨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잠깐 이 목소리는! 오오! 어제 그 누님이로구만, 아니, 누님이 아니랬던가? 이야-, 이건 엄청난 우연이로군, 우연"

 하하하, 하고 웃는 남자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한참을 웃어댄다.
 그보다도 그의 말에 의하면 아무래도 내가 여기 있다는걸 알고 있던건 아닌 것 같다.
 남자는 그런 나의 생각을 정답이라는 듯 말했다.

 "거 참, 엄청난 우연이로구만, 하하. 오해를 푸는 것도 좋지만 우선은 안에 들여보내달라고. 대인에게 할 말이 있어서 온거니까 말이야, 대인"

 "대인?"

 순간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이내 그 사람이 몇몇 사람들한테 대인이라고 불리던 사실을 생각해냈다.
 대인.
 이 저택의 주인이었던 일흔이 넘는 노인이었던 그 사람의 호칭 중 하나다.
 그 사람에게서 받은 일이 꽤나 많았기에, 그보다 5년간은 거의 그 사람의 밑에서 대리인에 가깝게 일 했기 때문에 그 호칭을 듣는 일은 많았다.
 약간 무섭다고 할까, 음지라고 할까, 싶은 세계의 사람들이 많았지만, 설마 살인자마저도 그 사람을 알고 찾아올 정도라니.
 그 사람을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지 않을 수도 없는 법.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의 버튼을 열어 문을 열어주고 몸을 일으켜 잠옷 대용인, 소매만 남색인 나그랑티와 남색 바지를 입은 그대로 현관으로 향한다.
 철문에서 저택까지 오는데도 5분 정도는 걸린다.
 응접실에서 저택의 현관까지 향하는 거리와 별 차이가 없기에, 내가 현관에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현관문이 열렸다.

 "여어-, 음? 어제랑 뭔가가 다른거 같은데?"

 남자는 들어와서 나를 보자마자 친한 척 인사를 건네며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뭘 이상하게 생각하는지는 물론 알지만 우선 무시한채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대인과는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모르겠는데. 설마 살인자랑 아는 사이일 줄이야"

 "하하, 그러니까 오해라니까, 오해. 참, 이 누님 질질 끄는거 좋아하네. 오해라고, 오해"

 "누가 누님이야, 누가"

 말을 하며 응접실로 향하자 남자는 자연스럽게 대답하면서 따라 들어온다.

 "오, 그러고보니 누님이 아니잖아? 머리 어떻게 된거야, 머리. 어제밤에 잘랐어?"

 남자는 깨달았다는 듯이 한번 손뼉을 마주치고는 머리모양에 대해 물어봤다.
 눈 앞에 있는 남자에 비하면 긴 편이지만 어젯밤에 하고있던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칼과는 길이 자체가 다르다.
 목의 삼 분의 일 정도까지 내려오는 일반적인 남성의 머리길이다.

 "이게 원래 내 머리거든, 어제는 변장. 게다가 보면 아시겠지만 남자라고"

 귀 위쪽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하자 남자는 농담이라도 들은 듯 웃었다.

 "남자? 하하, 거짓말을 태연하게 하는걸, 누님. 그보다 변장이라니 위험한 일이라도 하고 있었나 봐? 하하하하, 사람을 죽이기라도 했어?"

 "아니, 진짜 남자거든. 게다가 사람을 죽인건 그 쪽이잖아"

 어이가 없어서 한숨을 내쉬며 말하자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오해야, 오해. 그보다 누님이 아니고, 랄까 진짜? 남자라고? 진짜라면 말이 안되는 수준의 얼굴인데? 누가봐도 여자얼굴이라고, 이 참에 성전환이라도 하는게 어때? 하하하"

 쓸데없이 웃어대며 내뱉는 남자의 말을 무시한 채로 말을 건넨다.

 "됐고, 그 사람한테는 무슨 볼 일이야. 아, 여기서부터는 신발 벗고 들어와"

 "여기서부턴 맨발인가, 슬리퍼 없어? 슬리퍼. 그보다 그 사람이라니? 아아, 대인 말인가? 그보다 누님, 이 아니라 형씨? 대인과는 무슨 관계야?"

 "내가 신은 거 밖에 없어. 근데 형씨는 또 뭐야. 대인이 이 저택의 주인이었던 그 사람을 말하는거라면 대리인 같은건데. 그러는 살인자씨는?"

 "오, 대리인인가. 아니아니, 그 살인자라는건 오해라니까, 오해. 마침 잘 됐어. 그 오해부터 어떻게 하지않으면 안되겠는걸"

 거실에 신발을 벗어두고 양말인 채로 응접실에 들어와 소파에 앉으면서 말하는 남자.
 마치 자신의 집 같은 행동거지에 기가 막혀하면서 남자가 앉은 반대편에 앉자 남자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흐음,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되려나. 아, 그래, 거기부터 이야기하면 되겠군. 5년 전 이야기니까 잘 들으라고, 잘. 뭐, 대인의 저택에 있다는건 너도 대인을 알고 있다는 것일테니까 마술에 대해서도 물론 알고 있을테지? 마술 말이야. 난 마술사들한테서 돈을 받고 마를 죽이는 일을 하고 있었어. 뭐,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래서 그 때도 돈을 받고 일을 하던 도중이었는데-"

 주저리주저리 말을 이어나가는 남자였지만, 너무나도 쓸데없는 수식어나 반복되는 단어가 많았기에 뇌내 필터를 거치면 다음과 같았다.
 그는 마술사에게서 돈을 받고 마를 죽이는 일을 하던 도중, 인형을 처리해달라는 의뢰에 순순히 응한 것은 좋았지만 의뢰인이 죽은 후에도 자신이 처리했던 인형의 주인인 인형사의 타겟이 된 모양이다.
 그 인형이란게 가면 갈수록 진짜 인간과 닮아지고 피도 점점 많이 뿜어내서 자신을 가지고 노는게 아닌가 싶다, 라는게 그의 말의 요약이다.
 그런데,

 "마술이라니, 그 속임수 같은거?"

 마술이니 마라는 단어가 너무 많이 나와서 왠지 내가 아는 마술이 아닌 것 같은 느낌에 묻자 남자가 웃으며 대답한다.

 "하하, 확실히 속임수지, 속임수. 재치가 있는걸? 역시 대인의 대리인다워"

 내 말이 농담이라고 생각했는지 즐겁게 웃는 남자에겐 미안하지만 진심으로 몰랐기 때문에 다시 한번 물었다.
 그제서야 남자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음? 대인의 대리인이라며? 마술 몰라?"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마술이라면 아는데"

 "아니아니, 그런 눈속임 말고 이쪽의 마술 말이야"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주머니에서 칼을 꺼내든다.
 그 모습에 어젯밤의 장면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에게서 멀어졌지만, 남자는 신경도 쓰지않은 채 칼로 자신의 앞에 놓인 유리로 된 식탁을 내리쳤다.
 그 탓에 식탁이 깨지고 유리조각이 바닥에 떨어진다.
 의미를 모르겠는 행동을 그저 쳐다만 보고 있자 남자는 이어서 자신의 칼날을 자신의 왼쪽 검지손가락에 갖다댄다.
 당연히 손에서는 피가 흐르고 그 피가 유리조각에 떨어지는걸 본 남자가 무언가를 중얼거리자,

 "엣, 거짓말. 거짓말이지?"

 산산조각 났던 유리조각이 모여 다시 원래의 식탁을 만들어낸다.
 남자는 원상태를 찾은 식탁을 만져보고는 만족한 듯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하하, 잘됐군. 뭐, 기초 중에 기초지만 말야"

 그리고는 다시 자리에 앉으면서 이쪽을 쳐다보고 말했다.

 "그래서 이쪽의 마술은 아는 바가 없다, 라는 건 뭐 표정을 보면 알겠는데. 이거 곤란한걸, 무척 곤란해. 대인이 알려주지 않은데는 이유가 있을텐데. 알려준걸 들켰다간 대인한테 한방 먹겠는걸, 하하"

 어느새 칼을 집어넣은 남자는 곤란하다는 듯이 오른손으로 턱을 만지작거렸다.
 그보다도 방금 보여준 마술이란 것은 꽤나 놀라웠다.
 소설이나 만화에서나 보던 마술, 그 자체였다.
 이런것이 실제로 존재할 줄이야.
 게다가 대인도 마술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도중 남자가 말을 건네왔다.
 아무래도 이미 저지른 짓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하하, 어차피 한 소리 들을거 빨리 듣는게 낫겠지? 대인은 어디에 있어? 외출 중인가?"

 "아아, 여행 중이지. 그 사람은 작년에 천국으로 떠났거든"

 자리에 앉으면서, 그 사람의 죽음에 대해 담담히 전하자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다.

 "하하, 대인이라면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겠지. 아니, 그 노인이라면 저승사자랑 거래해서 천국에 갔을지도 모르겠는걸. 거래가 특기니까 말야"

 "본인이 천국이니 지옥이니 믿지 않지만 말야"

 내 말에 남자는, 그것도 그렇군, 하며 다시 한번 웃는다.
 다시라기보다 아까부터 거의 계속 웃기만 하고 있었지만.
 그런 남자가 집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입가에서 미소를 지우고 진심으로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단 말이지. 그건 곤란하게 됐는걸. 대인에게 부탁할 일이 있었는데. 좀만 빨리 올 걸 그랬군. 목표가 있으면 최대한 빨리 실행하라는 대인의 말을 들을걸 그랬어. 처음으로 후회가 되는군. 그럼, 이걸 어쩌면 좋을까"

 그 사람에게로의 부탁.
 본래라면 내가 대신할 필요는 없지만 그 사람의 대리인을 자청한 이상, 일단 이야기라도 들어보는게 도리라고 생각해 입을 열었다.

 "이봐,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그 사람의 대리인이라면 여기에 있으니까 부탁이라면 나한테 해보라고"

 "음? 아니, 나도 가능만 하다면 그러고는 싶은데 말이지. 이게 또 마술 쪽 관련 일이라서 말야, 마술"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이래봬도 나 유명하다고, 당신의 거리의 심부름 센터씨 신한공무점, 몰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돕는 심부름 센터인 신한공무점.
 신한이라고 하는 내 이름을 국민시의 대부분이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물론 국민시 한정으로 외부에서 온 그가 알고 있을 리가 없었기에,

 "처음 들어보는데? 아니, 그보다 이거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분명 일본 야나기하라의-"

 "스톱! 거기까지. 어차피 법에 걸리지 않으니까 문제 없다고"

 "아니아니, 저작권-"

 "쉿!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니까 걱정 없어. 게다가 국민시의 암묵적인 룰이니까 문제 없어"

 내 말에 남자는 자신이 상관할 게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신한공무점에 대한 이야기에서 벗어났다.
 그리고는 이야기하는 것은 별 상관 없다고 생각했는지 본래라면 그 사람에게 했을 부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스토커가 붙어서 말이야"

 "스토커?"

 "인형 말야, 인형. 날 장난감 정도로 생각하는 인형사가 보내는 인형. 처음에는 심심풀이 겸 재미있었고, 누가봐도 인형이라서 인형을 부수는 장면을 들켜도 별 생각 없이 지나쳤단 말이야. 근데 이게 점점 가면 갈수록 인간과 닮아가는데다가 피까지 뿜어내니까 골치가 아파왔어. 그래서 최대한 안 들키게 사람 물리는 마술을 써놓고 일을 처리한다고. 그래서 괜찮았는데 어제는 무슨 일인지 일반인에게 들켜서, 물론 형씨의 얘기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될지 고민하던 도중, 생각해보니 이 근처에 대인이 살았었지, 하고 찾아왔다는거지"

 알아들었어? 하고 묻는 남자.
 그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까의 이야기와는 달리 의외로 명쾌한 이야기였는걸? 근데 생각해보니 대인이 살았었지, 라니 처음부터 그 사람에게 부탁하러 온건 아니라는거야?"

 "대인한테 평소처럼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대면 도중에 쫓겨나니까 말이지, 하하하. 어쨌든 나도 내 선에서 해결할 생각으로 인형사를 찾아서 여기까지 왔다는거지, 인형으로부터 마력을 탐지해서. 근데 생각해보면 인형사를 찾기도 힘들거 같고, 찾는다고 해도 내가 사람을 죽이는건 별로 선호하지 않거든. 게다가 애초에 의뢰라고는 해도 먼저 원한을 산건 이쪽이고 말야"

 의뢰라면 죽이지 못 할 것도 없지만, 개인적인 일로 사람을 죽이는건 사양이라고 덧붙이는 남자.
 날카롭게 생긴 눈초리와는 달리, 의외로 피를 보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은 듯 하다.
 애초에 마를 죽이는 일에서 피를 볼 일은 별로 없다, 란다.
 결론을 말하자면 대인에게 인형사와의 화해(?)를 부탁하고 싶다, 라는 모양이다.

 "그 인형사가 그 사람이 아는 사람이라면 내가 화해시켜줄 수도 있을거 같은데. 나도 대인이랑 꽤 같이 다녔으니까. 근데 나랑 같이 다닐 때 마술 쪽 사람들이랑 만난 적이 있는지 모르겠네. 일단 누군지라도 확인 가능하면 만나봐야 될 것 같은데 어때?"

 내 말에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건 무리한 이야긴데, 무리. 누군지 알면 내가 해결했지. 굳이 대인의 손을 빌릴 것도 없다고? 만난 적이 있으면 그 녀석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걸, 하하하"

 자신의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펴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면서 웃는 남자.
 방금 전엔 개인적으로 죽이고 싶지는 않다더니, 실제로 보면 처리해버릴 정도로 원한이 깊은 듯 하다.

 "하하, 역시 무리한 이야기였나. 뭐, 어쩔 수 없지. 그래도 혹시 인형사에 대해 알게되면 찾아오도록 하지. 나로써도 피를 보지 않고 끝났으면 하니까 말야. 형씨도 모르는 사람이면 그때는 내 손으로 끝내겠지만 말야"

 "그래, 언제든지 신한공무점에 대한 의뢰라면 환영할게. 아, 참고로 돈은 받을거니까"

 "하하, 역시 대인의 대리인답군. 대인의 좌우명이 '돈은 받을 수 있을 때 받아둬라' 였던가?"

 대인의 좌우명을 알고 있었는지 웃으며 말하는 남자였으나, 조금 다르다.
 정확히는,

 "돈은 뽑을 수 있을 때 뽑아둬라, 겠지"

 착취를 근본으로 한 좌우명이다.
 정말이지, 돈 때문에 결혼도 못한 독고노인답달까.
 그 사람은 자기를 좋아한다는 여자는 죄다 돈만 노리는 녀석들이라면서 젊은 시절에 다가오는 여자를 전부 쳐내다보니 결국, 나랑 만났던 때인 일흔이 될 때까지 결혼도 못하고 혼자 살게 됐다고 한다.
 그러니 자식도 없겠다 남은 재산을 전부 나한테 떠넘긴 것이다만, 쓸데없이 엄청난 양이라 쓸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번 돈이 아닌걸 쓰다보면 흥청망청 쓰게 되는 법이기에, 나는 내가 번 돈만 쓰리라 다짐한 것도 있어서, 그 엄청난 양의 돈은 그 사람이 넣어둔 은행에 그대로 담겨있다.
 어찌됐든 대인의 좌우명을 올바르게 전해 들은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 뭐, 어찌됐든 돈은 있으니까 웬만큼 바가지가 아니라면 부탁하도록 하지, 바가지가 아니라면. 그럼 이만 가보도록 하지. 하아, 오늘도 오려나, 인형"

 벌써부터 찾아올 인형에 걱정이 되는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남자.
 남자를 배웅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다.
 같이 응접실을 나와 현관으로 향한다.
 그리고 현관을 빠져나가려는 도중, 남자가 손뼉을 치더니 뒤에 있는 나를 바라본다.

 "그러고보니 이름을 안 물어봤잖아. 깜빡할 뻔 했군 그래. 형씨, 이름이 어떻게 되지?"

 "음? 아, 이름은 따로 말 안 했던가? 그래도 알 줄 알았는데. 뭐, 아까도 말했지만, 당신의 거리의 심부름 센터씨 신한공무점의 신한. 당신은?"

 "하하, 이름 그대로구만. 내 이름은 SC제일이다, 스탠다드 차타드 제일. 부르고 싶은대로 부르라고, 형씨"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어딘가의 은행 이름이 아닌가 싶은 이름을 대는 처음 들어보는 어딘가의 나라와 한국인의 혼혈이라는 남자.
 스마트폰 번호도 알려줬는데, 스마트폰은 없다고 한다.
 마술사에게 전자기기는 사치래나 뭐래나.
 공중전화도 거의 없는 요즘 세상에 어떻게 전화를 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연락할 일이 있으면 연락을 준다며 떠나갔다.
 스마트폰을 바라보자, 어느새 시각은 3시 32분.
 꽤나 오랜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떠난 마술사에 의해 앞으로의 생활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기대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으로 긴장된 마음을 갖고,

 "약속한 시간까지 아직 2시간 30분 가량 남았으니, 잠이나 더 자볼까"

 꿈의 세계로 떠나기 위해 응접실로 걸음을 옮겼다.